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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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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失其性命之情하나니
지극한 정도正道를 실천하는 사람은 타고난 성명性命의 실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어진 것을 군더더기라 여기지 아니하며 갈래 진 것을 여분餘分의 손가락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긴 것을 남는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짧은 것을 부족하다 여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이어 주면 슬퍼하고 학의 다리가 길지만 자르면 슬퍼한다.
그 때문에 타고난 본성本性이 긴지라 잘라야 할 것이 아니며, 타고난 본성이 짧은지라 이어 줄 것이 아니며 근심거리로 여겨 없앨 것이 아니다.
생각건대 인의仁義인정人情이 아닐 것이다.
彼仁人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어찌하여 그리 근심이 많은고.
발가락의 군살은 갈라서 찢어 버리면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여분餘分으로 붙어 있는 손가락은 물어뜯어 떼어 버리면 아파서 소리 내어 운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것은 수효數爻보다 많고 어떤 것은 수효보다 부족하지만 근심거리가 됨은 마찬가지이다.
今世之仁人 하고 不仁之人 하나니
요즘 세상의 인인仁人은 근심스런 눈으로 세상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여기고 불인不仁한 자들은 성명의 실정을 결딴내 부귀를 탐낸다.
意仁義 其非人情乎인저
따라서 아무래도 인의는 인정이 아닌 것 같다.
삼대 이후에는 천하가 어찌 그리 시끄러운고.
역주
역주1 彼正(至)正者 : 지극한 정도를 실천하는 사람. 郭象은 “사물이 각자 본성을 따르는 것이 정정[物各任性 乃正正也].”이라 했고, 成玄英도 正正을 그대로 두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 문장에 彼라는 지시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正正은 至正의 잘못이며, 至正은 바로 앞 문장의 ‘非天下之至正也’의 ‘至正’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兪樾은 위의 正자를 至자의 誤字[上正字 乃至字之誤]라고 보았고 褚伯秀, 羅勉道, 王敔, 宣穎 등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같은 견해이다.
역주2 合者不爲騈 : 이어진 것을 군더더기로 여기지 않음. 合은 聯合의 뜻으로 발가락 사이에 이어져 있는 군더더기 살을 의미한다.
역주3 枝(跂)者不爲跂(枝) : 갈래 진 것을 여분의 손가락(육손이)으로 여기지 않음. 奚侗은 ‘枝者不爲跂’는 ‘跂者不爲枝’로 바꾸어야 앞의 ‘合者不爲騈’과 대구가 자연스럽다고 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王叔岷 등도 같은 견해. 지극한 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연스런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발가락 사이에 이어져 있는 살[合]이나 갈래 진 손가락[跂] 같은 자연스런 본성의 발현을 군더더기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
역주4 長者不爲有餘 短者不爲不足 : 긴 것을 남는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짧은 것을 부족하다 여기지 않음. 有餘는 남아도는 여분의 것.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사물의 장단을 재단하지 않고 자연스런 본성에 맡긴다는 뜻이다.
역주5 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이어 주면 그 무리한 행동에 슬퍼하고 학의 다리가 길지만 자르면 슬퍼함. 郭象은 “각자 올바른 기준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사물을 기준으로 다른 사물을 바로잡아서 손익해서는 안 된다[各自有正 不可以此正彼而損益之].”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어리석은 사람은 학의 긴 다리를 자르고 오리의 짧은 다리를 이어서 가지런히 하려고 한다[惑者 方欲截鶴之長續鳧之短以爲齊].”라고 풀이했다. 鳧는 오리. 成玄英은 小鴨이라고 풀이했다.
역주6 性長 非所斷 性短 非所續 : 타고난 본성이 긴지라 잘라야 할 것이 아니며, 타고난 본성이 짧은지라 이어 줄 것이 아님. 후천적인 조작이 아니라 본성이 길어서 길게 나타나거나 짧게 나타난 것은 인위적인 기준에 맞추어 자르거나 이어 줄 대상이 아니라는 뜻.
역주7 無所去憂也 : 근심거리로 여겨 없앨 것이 아님. 去는 제거한다는 뜻이고 憂는 근심거리로 여긴다는 뜻으로 去憂는 짧고 긴 것을 잘라서 없애거나 근심거리로 여긴다는 뜻.
역주8 意仁義其非人情乎 : 생각건대 인의는 인정이 아닐 것이다. 意는 意者와 같이 ‘생각건대, 아무래도’ 정도의 어조사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覆宋本에는 噫로 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意를 噫로 보고 탄식성으로 풀이하는 주석이 많다. 成玄英 또한 意를 噫로 보고 탄식하는 소리[嗟歎之聲]라 했고, 현토본에도 “意라 仁義는 其非人情乎인저”로 현토되어 있는데 이 또한 탄식하는 소리로 본 것이다. 그러나 抑자가 意자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고(王念孫), 뒤의 故意仁義其非人情乎와 견주어 볼 때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인 故와 탄식성인 噫가 이어서 쓰이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여기의 意도 탄식성인 噫로 쓰였을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따르지 않는다. 郭慶藩이나 王叔岷, 方勇‧陸永品 등도 이와 같은 견해이다. 人情은 人之實情으로 앞의 性命之情을 뜻한다.
역주9 何其多憂也 : 어쩌면 그렇게도 근심이 많은가. 만약 仁義가 人情이라면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근심거리가 많지 않을 것임을 들어 앞의 판단을 증명하는 반어적 표현이다.
〈騈拇〉편의 第1章에서는 騈拇(발가락의 군더더기 살)와 枝指(육손이)가 儒家 학파의 仁義에 비유되면서 ‘쓸모없는 잉여물’ 또는 ‘無用之長物’로 비판되고 있다. 그런데 그 騈拇와 枝指가 이 第2章에서는 一轉하여 만물의 生得的인 自然으로 肯定되고 있어, 이 第1章과 第2章 사이의 論理의 不整合을 날카롭게 지적한 학자가 있다. 일본의 福永光司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된다.
“즉 騈拇와 枝指가 긍정되어야 할 生得의 自然이라고 한다면 仁義도 또한 마찬가지로 긍정되어야만 할 것이고, 逆으로 仁義가 無用之長物로 부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騈拇‧枝指도 또한 부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논리의 不整合이 여기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논리의 不整合은 어떻게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생각건대 이 〈騈拇〉편의 작자에게는 모든 奇形不具를 萬物齊同과 無用之用의 철학의 입장에서 긍정하는 內篇 莊子的 思考에의 共感과 다른 한편 奇形不具를 至正한 것에 對置하는 상식적인 입장에서의 思考가 混在하여, 그 불철저함이 이 같은 矛盾을 낳은 것이라고 추측된다.”
역주10 騈於拇者 決之則泣 枝於手者 齕之則啼 : 발가락의 군살은 갈라서 찢으면 아파서 눈물을 흘리고, 여분의 손가락은 물어뜯어 떼어 버리면 소리 내어 욺. 泣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고 啼는 소리 내어 운다는 뜻이지만 의미에 큰 차이는 없다.
역주11 或有餘於數 或不足於數 : 어떤 것은 수효가 남고 어떤 것은 수효가 부족함. 수가 남는 것은 枝指, 곧 육손을 말한 것이고 수가 부족한 것은 騈拇를 말한 것이다.
역주12 其於憂 一也 : 근심거리가 됨은 마찬가지임. 모자라고 남음의 차이는 있지만 근심거리가 됨에는 마찬가지라는 뜻.
역주13 蒿目而憂世之患 : 근심스런 눈으로 세상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여김. 蒿目은 근심스런 눈빛. 蒿는 眊의 가차자라는 주장이 유력하다(奚侗, 朱駿聲, 章炳麟, 王叔岷). 兪樾은 “司馬彪와 郭象이 모두 蒿目 두 글자를 한 구로 보고 천하 사람들의 이목을 어지럽힌다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뜻이 자연스럽지 않다[馬與郭注 共以蒿目二字爲句 解爲亂天下之目 義殊未安].”라고 지적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역주14 決性命之情而饕貴富 : 성명의 자연스런 실정을 결딴내서 부귀를 탐냄. 본래의 질박한 본성을 훼손하여 부귀를 추구하는 것이 인정에 맞지 않다는 의미. 決은 훼손한다는 뜻이고 饕는 재물을 탐낸다[貪財曰饕]는 뜻.
역주15 自三代以下者 天下 何其囂囂也 : 삼대 이후에는 천하가 어찌 그리 시끄러운가. 삼대 이전의 소박한 시대와 비교하여 삼대 이후 번잡스럽게 인의를 추구하고 부귀를 탐내는 어지러운 시대상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三代는 夏‧殷‧周의 세 왕조를 일컫는 말(成玄英). 囂囂는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모습. 때로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을 표현하는 경우(《孟子》)도 있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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