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며 無門無房
하야 니 하며 하며 耳目聰明
하며 其用心不勞
하며 其應物無方
하니라
人生天地之間
이 니 하야 莫不出焉
하며 하야 莫不入焉
하나니라
“오늘은 조금 한가하신 듯하여 감히 지도至道에 대해서 여쭙습니다.”
“당신은 재계齋戒해서 당신의 마음을 소통시키고 당신의 정신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당신의 지혜를 밀쳐 버리도록 하십시오.
도道는 아득하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장차 당신을 위해 그 언저리의 대략을 말해 보겠습니다.
무릇 밝은 것은 어두운 것에서 생기고 모양이 있는 것은 모양이 없는 것에서 생기고 정신은 도에서 생기고 모습은 본래 정기精氣에서 생깁니다.
만물은 모양을 갖추고 생성하니 무릇 구멍이 아홉 개인 것들은 태胎에서 생겨나고 여덟 개인 것들은 알에서 생겨납니다.
올 때에는 자취가 없고 갈 때에는 끄트머리가 없으며 문도 없고 방도 없어서 사방으로 탁 트여 있을 뿐이니 이것을 따르는 자는 사지가 강하고 생각이 순조롭게 이해되고 이목耳目이 총명해지고 마음 씀씀이가 수고롭지 아니하며 사물에 대응함에 일정함이 없습니다.
하늘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높아질 수 없고 땅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넓어질 수 없으며 해와 달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운행되지 못하며 만물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창성昌盛할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도道입니다.
뿐만 아니라 박학다식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도를 알 수는 없으며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반드시 도를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그런 것들을 이미 끊어버린 것입니다.
이를테면 보태도 보태지지 아니하며 덜어내도 덜어지지 않는 것은 성인이 보존하는 것이니 깊고 깊어서 마치 바다와 같고 높고 높아서 끝나면 다시 시작합니다.
만물을 운행運行하고 포용包容하여 버리지 아니하니 군자의 도는 그것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물이 그에게 가서 의지하지만 부족해지지 아니하니 이것이 진정한 도가 아니겠습니까.
중국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음陰도 아니고 양陽도 아닙니다.
천지 사이에 머물러서 단지 잠시 사람이 되었을지언정 장차 사물의 조종으로 돌아갑니다.
근본인 대도大道를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삶이란 기氣가 잠깐 모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 비록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차이가 있으나 서로 간의 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잠깐 사이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요堯임금과 걸왕桀王의 시비를 따지기에 충분하겠습니까.
나무의 과실과 풀에서 자라는 열매는 생장하는 이치가 있으며 사람의 윤리를 가지런히 다스리기가 비록 어렵다지만 이빨이 서로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나란하니 성인은 그런 것을 만나면 어기지도 아니하지만, 지나갈 뿐 지키려 하지도 않습니다.
함께 화합하면서 대하는 것은 덕德이고 만나서 호응하는 것은 도道이니 도와 덕은 제왕帝王이 흥기興起하는 근거입니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빠른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은지라 순식간에 지나갈 뿐이니 줄줄이 쑥쑥 자라나서 생성되지 않음이 없으며 스르르 흘러가서 죽음으로 들어가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미 변화해서 태어나고 또 변화해서 죽게 되면 태어난 사물은 〈같은 무리가 죽으면〉 슬퍼하고 사람의 무리는 〈같은 사람이 죽으면〉 비통해 하지만 사실은 하늘의 활 통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것이며 하늘의 칼집에 매여 있다가 떨어진 것과 같아서 이리저리 흩날리고 이리저리 굴러서 혼백이 막 돌아가게 되면 마침내 몸이 함께 따르게 되니 바로 크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이 나타나고 나타난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다 같이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막 도道에 도달하려는 사람이 힘쓰는 것이 아니라 중인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 도에 도달하려는 지인은 말을 하지 않으니 말하면 〈도道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道가〉 분명하게 보이는 자는 〈도道를〉 만나지 못할 것이니 말 잘하는 것이 침묵만 못합니다.
도는 들을 수 없으니 듣는 것이 귀를 막느니만 못하니 이것을 대득大得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