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行於山中하다가 見大木(하니) 枝葉이 盛茂호대 伐木者 止其旁而不取也어늘
昨日
에 山中之木
은 以不材
로 得終其天年
하고 今 主人之雁
은 以不材
로 死
하니 잇고
材與不材之間은 似之而非也론 故로 未免乎累어니와
合則離
하고 成則毁
하고 하고 하고 有爲則虧
하고 賢則謀
하고 不肖則欺
하나니 리오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伐木하는 사람들이 그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나무를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구나.”
선생先生이 산에서 나와 옛 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친구가 기뻐하여 아이 종에게 거위를 잡아서 요리하라고 시켰더니, 아이 종이 여쭙기를
“한 마리는 잘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제 산중山中의 나무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었고 지금 주인집 거위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죽었으니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무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아직 완전한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의 번거로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道와 덕德을 타고 어디든 정처 없이 떠다니듯 노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명예도 없고 비방도 없이 한 번은 하늘에 오르는 용이 되었다가 또 한 번은 땅속을 기는 뱀이 되어 때와 함께 변화하면서 한 가지를 오로지 고집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한 번 하늘 높이 올라가고 한 번 땅속 깊이 내려감에 조화로움을 한량으로 삼아서 만물의 시초에 자유롭게 노닐며, 만물萬物을 만물萬物로 존재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물物에 의해 물物로 규정받지 않으니 어떤 물物이 번거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옛날 신농神農과 황제黃帝가 지켰던 삶의 법칙이다.
그런데 만물의 실정實情과 인간 세상사의 전변轉變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합하였다 하면 이윽고 분열하고, 완성되었다 하면 이윽고 파괴되고, 날카롭게 모가 났다 하면 어느새 꺾이고, 존귀尊貴하게 되었다 하면 어느새 몰락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싶으면 무너지고, 현명하면 모함에 걸리고, 어리석으면 기만당하니 어찌 〈세상의 번거로움을 면할 것이라고〉 기필할 수 있겠는가.
〈내 몸을 둘 수 있는 곳은〉 오직 도道와 덕德의 고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