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道 不怒하며 又好學而博不異하나 不與先王으로 同하야 毁古之禮樂하니
天子는 棺槨이 七重이오 諸侯는 五重이오 大夫는 三重이오 士는 再重이어늘
將使後世之墨者
로 必自苦
하야 以腓無胈 脛無毛
로 니
후세 사람들에게 사치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만물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법도를 번드레하게 내걸지 아니하여 엄격한 계율을 만들어 스스로를 규제하여 세상의 위급에 대비하니 옛날의 도술道術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학술이 있었다.
묵적墨翟과 금골리禽滑釐는 그 학문의 기풍을 듣고 기뻐하여 실천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추구했고 절제하기를 너무 지나칠 정도로 따라서, 비악非樂편을 짓고, 절용節用편이라는 이름을 붙여 살아서는 노래하지 않고 죽어서는 상복을 입는 일이 없었다.
묵자墨子는 널리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어야 하며 싸움은 그르다고 말했다.
남이 모욕해도 성내지 않는 것을 도리로 여겼으며 또 학문을 좋아하여 널리 배우는 것만은 선왕의 도道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학문은 선왕의 도道와 같지 않아서 옛날의 예와 악을 비난하였다.
황제黃帝에게는 함지咸池가 있었고, 요堯임금에게는 대장大章이 있었고, 순舜임금에게는 대소大韶가 있었고, 우禹임금에게는 대하大夏가 있었고, 탕湯임금에게는 대호大濩가 있었고, 주周 문왕文王에게는 벽옹辟雍이라는 태학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있었고, 무왕武王와 주공周公은 무武라는 음악을 지었다.
고대古代의 상례喪禮는 귀천에 따른 의례가 있었으며, 상하의 사이에 차등이 있었다.
천자는 관棺과 곽槨을 합쳐 일곱 겹이고 제후는 다섯 겹이고 대부는 세 겹이고 사士는 두 겹이었다.
그런데 유독 묵자墨子만은 살아서는 노래하지 아니하고 죽어서는 상복喪服을 입지 않고, 오동나무 관을 세 치 두께로 만들고, 외관은 만들지 아니하고 그것을 법식으로 삼았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면 아마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런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면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흥겨워 노래하고 싶은데 노래를 비난하며, 울고 싶은데 우는 것을 비난하며, 음악을 연주하여 즐기고 싶은데 음악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인정人情에 가까운 것인가.
살아서는 노동에 지치고, 죽어서는 허술하게 떠나니, 그 도道는 너무 인정머리가 없다.
세상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을 슬프게 할 뿐이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니 아마도 그것을 성인의 도道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하 사람들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인지라 천하 사람들이 그것을 감내하지 못할 것이니 묵자가 비록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한들 천하 사람들을 어쩌겠는가.
천하 사람들로부터 유리遊離되어 버린지라 왕자의 도道에서 멀리 벗어나 버린 것이다.
“옛날 우禹임금이 홍수를 막고 장강과 황하의 수로를 터서 사방의 이적夷狄과 구주九州의 교통로를 소통하게 하였는데 그때 천하天下에는 커다란 하천이 3백 개였고, 지류가 3천 개였으며, 그 밖에 작은 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우임금이 친히 삼태기와 보습을 손에 들고 천하의 내를 규합할 때 우임금의 장딴지에는 살이 빠졌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어지고 장맛비에 얼굴 씻고 모진 바람에 빗질한 끝에 만국萬國을 건설하였다.
우임금은 대성인大聖人인데도 이처럼 천하를 위해 자기 몸을 혹사했다.”
그리하여 후세의 묵가墨家로 하여금 거친 옷을 입고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자기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최고의 규율로 삼게 하고는 말하기를,
“능히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우임금의 도리가 아닌지라 묵가라 하기에 부족하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묵가의 제자로는〉 상리근相里勤의 제자들과 오후五侯의 무리와 남방南方의 묵가墨家와 고획苦獲과 이치已齒와 등릉자鄧陵子의 무리들이 모두 묵가의 경서를 독송하고 있는데, 그 해석이 서로 배반하고 대립하여 같지 않아서 서로 상대방을 별묵別墨이라 하여
견백론堅白論과 동이론同異論으로 서로 비난하고 기수奇數와 우수偶數처럼, 짝이 맞지 않고 어긋나는 말로 서로 응수하여 ‘거자巨子’를 성인聖人이라고 하면서
모두 자기가 주인이 되기를 원하여 자기가 묵자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묵적墨翟과 금골리禽滑釐의 뜻은 옳았으나 실천 방법은 잘못되었다.
후세의 묵가로 하여금 반드시 스스로를 괴롭혀서 장딴지에 살이 다 빠지고 정강이에 털이 닳아 없어지도록 강제함으로써 서로 생명을 다 소진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데는 상책이요 천하를 편안히 다스리는 데는 하책이다.
비록 그러하나 묵자 자신은 참으로 천하를 좋아하였다.
그는 구하던 것을 얻지 못하게 되면 비록 자기 몸이 말라비틀어진다 하더라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