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 夫衛靈公
이 飮酒湛樂
하야 不聽國家之政
하며 으로 不應諸侯之際
하니 其所以爲靈公者
는 何邪
오
其慢이 若彼之甚也로대 見賢人이 若此其肅也하니 是其所以爲靈公也니라
夫靈公也 死커늘 卜葬於故墓한대 不吉하고 卜葬於沙丘而吉이어늘
어느 날 중니仲尼가 태사太史의 관직에 있는 대도大弢와 백상건伯常騫과 시위狶韋에게 물었다.
“저 위衛나라의 영공靈公이라는 군주는 술을 많이 마시고 쾌락에 탐닉해서 나라의 정치를 돌보지 아니하였으며, 사냥을 하거나 그물질하거나 주살 쏘는 일에만 열중함으로써 제후들과의 회맹에 응하지도 아니하였는데도 영공이라는 시호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러한 행동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저 영공靈公에게는 아내가 세 명 있었는데 그들과 같은 욕조에서 함께 목욕할 때 대부 사추史鰌가 예물을 받들고 공公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자 폐백을 스스로 받아들고 사추史鰌를 부축했습니다.
〈사생활의〉 방자함이 저토록 심했지만 현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처럼 조심스러웠으니 바로 이것이 그가 영공靈公이라는 시호를 얻게 된 까닭입니다.”
“영공이 죽었을 때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묘소에 매장하려고 점을 쳐보았더니 불길不吉로 나왔고 사구沙丘라는 땅에 매장하려고 점을 쳐보았더니 길吉하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구沙丘라는 땅을 몇 길 파보았더니 거기에서 석곽石槨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깨끗이 씻고 잘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는데 ‘〈여기 묻힌 사람은〉 그 자손에게 의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장차〉 영공靈公이라는 임금이 이 자리를 빼앗고 여기에 묻힐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 저 영공이 영靈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 대도大弢와 백상건伯常騫이 어찌 이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