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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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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라
聖人 하고 聖人 하고
聖人 하시니
故曰라하노라
孰知 리오
若有能知 하며 이로대
이니라
堯問於舜曰
舜曰


는 본시 구별이 있지 않았고, 말은 본시 고정불변의 일정한 의미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일정한 의미가 없는 말로 를 표현하려 했으니〉 이 때문에 사물에 구별이 있게 되었다.
그 구별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왼쪽이 있고 오른쪽이 있으며, 인륜人倫이 있으며 의리義理가 있으며, 신분이 있으며 차별이 있으며, 겨루는 일이 있으며 다투는 일이 있으니, 이것을 일컬어 인간에게 있는 8개의 작용이라고 한다.
육합六合의 밖에 대해서는 성인聖人은 그냥 두고 하지 아니하고, 육합六合의 안에 대해서는 성인은 하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 시비를 따지지 않는다.
춘추春秋》에 나타난 경세經世에 대한 선왕先王들의 기록에 대해서는 성인은 시비를 따지기는 하되 공과功過를 나누어 차별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사물을 구분하지만 그중에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지만 그중에는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말하노니, 무슨 까닭인가?
성인은 그것을 품고,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구별해서 서로 내보인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구별하지만 그중에는 〈구별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는 일컬어지지 아니하고, 큰 말은 말하지 아니하며, 크게 어진 행위는 어질지 아니하며, 크게 깨끗한 행위는 겸손한 체 아니하며, 큰 용맹은 사납게 굴지 않는다.
가 밝게 드러나면 도답지 않게 되고, 말이 분명하면 미치지 못하고, 이 일정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깨끗함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고, 용맹스러움이 사나워지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이 다섯 가지는 둥글고자 하면서도 도리어 모난 데로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
그 때문에 지혜가 알지 못하는 바에 도달해서 멈추면 지극하다.
누가 말 없는 말과 라 하지 않는 를 아는가.
만일 이것을 안다면 〈그 지혜는〉 하늘의 창고라고 일컬을 것이니 아무리 부어대도 가득차지 않으며,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래를 알지 못한다.
이를 일컬어 밝은 빛을 안으로 감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옛날에 임금이 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나라‧나라‧서오족胥敖族을 무력으로 정벌하고자 하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으로서 마음이 석연치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대답했다.
“이 세 나라는 아직도 쑥밭 사이에 있는데 당신께서 석연치 않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옛날에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올라 만물이 모두 비추어졌는데 하물며 덕이 태양보다 더 나은 사람이겠습니까.”


역주
역주1 道未始有封 : 道는 본시 구별이 있지 않음. 곧 도는 본시 이것저것의 구별이 없고 한 덩어리의 혼돈이었다는 뜻. 郭象은 “아득히 있지 않은 곳이 없다[冥然無不在也].”고 하여 도의 遍在性을 나타낸 표현으로 풀이했다.
역주2 言未始有常 : 말에는 본시 고정불변의 일정한 의미가 있지 않음. 곽상은 “是非에 일정함이 없다[是非無定].”고 풀이했다.
역주3 爲是而有畛也 : 이 때문에 사물에 구별이 있게 됨. 말 때문에 구별이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일정한 의미가 없는 말로 道를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사물에 구별‧대립‧차별 등이 있게 되었다는 뜻. 畛은 농토와 농토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 여기서는 앞의 封과 같이 구별‧대립‧차별 등의 뜻으로 쓰였다. 成玄英은 界畔이라 했다. 林希逸은 “至道와 至言은 본래 彼此의 구별이 없는데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 속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구별이 있게 되었다[至道至言 本無彼此 因人心之私有箇是字 故生出許多疆界].”고 하여 是를 지시대명사로 보지 않고 是非의 是로 보고 있다.
역주4 請言其畛 : 청컨대 그 구별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함. 혼돈 상태의 도를 인위적으로 구별하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는 뜻.
역주5 有左有右 : 왼쪽이 있고 오른쪽이 있음. 이것저것의 공간적 구분의 대표로 든 것이다. 成玄英은 “左는 陽이고 右는 陰이다[左陽也 右陰也].”라고 했다.
역주6 有倫有義 : 인륜과 의리가 있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든 것이다. 郭象은 “事事物物에 이치와 마땅함이 있다[物物有理 事事有宜].”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倫은 理이고 義는 宜이다[倫理也 義宜也].”라고 풀이했다. 崔譔본에는 ‘有論有議’로 되어 있는데 兪樾은 다음 문장의 ‘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를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고 주장했다(《釋文》).
역주7 有分有辯 : 신분과 차별이 있음. 사람과 사람을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규정하는 예로 든 것이다. 郭象과 成玄英 모두 辯을 別로 풀이했다.
역주8 有競有爭 : 겨룸과 다툼이 있음. 사람과 사람이 이익을 놓고 다투는 어지러운 대립 상황을 표현한 예이다. 곽상은 “競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나란히 쫓아 가는 것이고, 爭은 서로 맞서서 변론하는 것이다[竝逐曰競 對辯曰爭].”라고 했다.
역주9 此之謂八德 : 이것을 八德이라고 함. 八德은 앞에 든 左‧右, 倫‧義, 分‧辯, 競‧爭의 여덟 가지를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作用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成玄英은 “덕은 작용을 일컬음이다[德者 功用之名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0 六合之外 : 六合의 바깥. 〈應帝王〉편과 〈天運〉편의 ‘六極’과 같은 개념이다. 六合은 天地(上下)와 四方을 합친 개념(成玄英)으로 ‘六合之內’라고 하면 물리적인 공간 전체, 곧 이 세상을 의미하고, 六合之外는 이 세상 바깥, 곧 形而上의 세계, 不可知의 세계를 의미한다.
역주11 存而不論 : 그냥 놓아두고 論하지 않음. 存은 存置, 곧 내버려 둔다는 뜻.
역주12 六合之內 : 위의 역주 261) 참조.
역주13 論而不議 : 論하기만 하고 是非를 따지지 않음. 곧 다른 사람의 견해를 두고 옳다 그르다 하지 않음. 議는 物議의 議와 같이 어떤 일을 두고 시비를 따진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14 春秋經世先王之志 : 《춘추》에 나타난 선왕들이 經世한 기록. 春秋先王經世之志로 先王과 經世가 도치된 표현이다. 앞의 ‘大木百圍之竅穴’이 百圍大木之竅穴을 도치시켜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蔣錫昌). 志는 誌와 같고, 誌는 記載한다는 뜻(成玄英).
역주15 議而不辯 : 是非를 따지기는 하지만 功과 過를 구별하지 않음.
역주16 故分也者 有不分也 : 〈사람들은〉 사물을 구분하지만 그중에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있음. 여기의 故는 앞에 원인을 나타내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결과를 표시하는 글자가 아니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때 쓰이는 상투적인 助詞로 보아야 한다(楊樹達, 《詞詮》).
※ 《釋文》에 인용된 班固의 주장에 의하면 ‘夫道未始有封……故分也者 有不分也’는 원래 外篇에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부분은 〈齊物論〉편의 원문은 아닌 셈이다. 따라서 道와 言의 관계에서 언어의 한계를 말한 이 장은 앞 장의 보충문으로 후대에 삽입된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金谷治).
역주17 辯也者 有不辯也 : 〈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지만 그중에는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있음. 곧 말로 구별해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뜻.
역주18 曰何也 : 말하노니 무슨 까닭인가. 自問自答하는 형식으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표현.
역주19 聖人懷之 衆人辯之 以相示也 : 성인은 그것을 품고,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구별해서 서로 내보인다. 성인은 사물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통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여 내세움으로써 서로 자신이 옳다고 다툰다는 뜻.
역주20 辯也者 有不見也 : 사람들은 구별하지만 그중에는 〈구별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음. 인간의 구별 능력으로는 道를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 바로 뒤의 ‘大道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大道不稱]’는 命題와 연결된다.
역주21 大道不稱 : 큰 道는 일컬어지지 아니함. 곧 大道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 《老子》 25장의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와 유사한 의미이다.
역주22 大辯不言 : 큰 말은 말하지 않음. 참된 말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뜻을 전달한다는 뜻.
역주23 大仁不仁 : 큰 仁은 사랑하지 않음. 곧 참된 仁은 對象을 차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역주24 大廉不嗛 : 크게 깨끗한 행위는 겸손하지 않음. 참으로 깨끗한 사람은 겸손한 체하지 않는다는 뜻. 嗛을 謙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異說이 분분하다. 馬其昶은 嗛을 隒으로 보아 “크게 깨끗한 사람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풀이했고 黃元炳은 “크게 깨끗한 사람은 태도가 宛然해서 마치 깨끗하지 않은 것 같다.”고 풀이하여 大廉不廉으로 보았다.
역주25 大勇不忮 : 참된 용기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 忮는 사납다, 暴力化한다는 뜻.
역주26 道昭而不道 : 道가 밝게 드러나면 도리어 도답지 않음. 而는 則과 같다. 朴世堂은 “昭는 조금 밝은 모양이다[昭 小明貌].”라고 풀이했다.
역주27 言辯而不及 : 말이 분명하면 미치지 못함. 말이 분명하면 도리어 말의 목적인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 辯을 多辯으로 보아 너무 多辯하게 되면 大辯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석도 있으나 취하지 않는다. 及은 達과 같다.
역주28 仁常而不成 : 仁이 일정하게 되면 이루지 못함. 곧 특정한 사물만 차별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도리어 仁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
역주29 廉淸而不信 : 깨끗함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믿어주지 않음. 곧 청렴함을 겉으로 드러내서 분명하게 하면 사람들이 도리어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뜻. 淸은 분명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30 勇忮而不成 : 용맹이 사나워지면 이루지 못함. 忮는 해친다는 뜻(陸德明).
역주31 五者园而幾向方矣 : 다섯 가지는 둥글고자 하면서도 도리어 모난 데로 나아가는 것에 가까움. 곧 道‧言‧仁‧廉‧勇의 다섯 가지는 본래 원만함을 추구하려 한 것인데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고 昭‧辯‧常‧淸‧忮와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도리어 본래의 목적과 어긋나 모난 데로 간다는 뜻. 园은 圓과 통한다. 모서리를 깎아서 둥글게 만든다는 뜻. 道藏의 褚伯秀본에는 圓으로 되어 있다.
역주32 知止其所不知 至矣 : 지혜가 알지 못하는 바에 도달해서 멈추면 지극함. 알 수 없는 것을 〈분석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지극한 지혜라는 뜻. 〈庚桑楚〉편에는 ‘知止乎其所不能知 至矣’로 되어 있다.
역주33 不言之辯 :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참된 말. 《老子》 2장의 ‘不言之敎’와 비슷한 의미.
역주34 不道之道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大道. 곧 道라고 言表되지 않는 참된 道를 의미한다. 《老子》 1장의 ‘道可道’의 반대.
역주35 此之謂天府 : 이것을 일러 하늘의 창고라 함. 이런 사람의 지혜는 하늘의 창고(자연의 창고)와 같이 한이 없다는 뜻. 大道를 가슴에 품은 眞人을 비유한 말이다.
역주36 注焉而不滿 : 여기에 물을 부어도 가득 차지 않음. 受容量에 한계가 없음을 비유한 표현.
역주37 酌焉而不竭 : 아무리 덜어내도 다하지 않음. 역시 수용량에 한계가 없음을 비유한 표현.
역주38 不知其所由來 : 그 유래한 바를 알지 못함.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뜻.
역주39 此之謂葆光 : 이것을 일러 葆光이라 함. 葆光은 밝은 빛을 안으로 감추어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林希逸). 안에 감추어진 빛 즉 道라고 읽을 수도 있다. 앞의 ‘滑疑之耀’와 《노자》 56장의 ‘和其光 同其塵’과 유사한 표현이다.
역주40 昔者 : 옛적에. 者는 시기를 나타내는 접미사.
역주41 伐宗(숭)膾胥敖 : 숭나라와 회나라, 서오족을 정벌함. 宗과 膾는 國名이고 胥敖는 종족명이다. 宗은 崇의 假借字. 그러나 이 세 나라는 모두 가공의 나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42 南面而不釋然 : 남면하는 제왕으로서 석연치 않음. 南面은 남쪽을 바라본다는 뜻이지만 군주가 남쪽을 바라보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 不釋然은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
역주43 其故何也 : 그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말.
역주44 夫三子者 : 저 세 사람들. 여기서는 앞의 숭나라와 회나라, 서오족을 지칭해서 하는 말.
역주45 猶存乎蓬艾之間 : 아직도 쑥밭 사이에 있음. 쑥밭 사이는 곡식이 자라지 않는 황폐한 땅이라는 뜻으로 세 나라가 아직 미개한 野蠻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역주46 若不釋然何哉 : 당신이 석연치 않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若은 2인칭 대명사.
역주47 十日竝出 萬物皆照 :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와 만물이 모두 비추어짐. 《淮南子》 〈本經訓〉에도 ‘逮至堯之時 十日竝出 焦禾稼 殺草木 而民無所食’이라 하여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역주48 況德之進乎日者乎 : 하물며 덕이 태양보다 나은 사람이겠는가. 훌륭한 덕을 가진 사람은 야만족들도 감화시킬 수 있다는 뜻. 결국 武力으로 정벌하지 말고 文德을 닦아 그들이 스스로 歸服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권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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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장(1)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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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장(2)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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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2장(3)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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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2장(4) 143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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