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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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齧缺 問於王倪하야 라한대
설결齧缺왕예王倪에게 물었는데, 네 번 물어도 네 번 다 모른다고 하였다.
齧缺 因躍而大喜하야 한대
설결이 그로 말미암아 뛸 듯이 크게 기뻐하여, 가서 포의자蒲衣子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蒲衣子曰
포의자蒲衣子가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비로소 그것을 알았는가.
유우씨有虞氏태씨泰氏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有虞氏 其猶하니 亦得人矣이어니와
유우씨는 그래도 오히려 자기 마음 속에 을 품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니 또한 백성들을 얻었지만, 애초에 사람이 아닌 자연의 경지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태씨는 누워 잠잘 적에는 느긋했고, 깨어 있을 때에는 어수룩해서, 어느 때에는 자신을 말이라고 여기고 때로는 자기를 소라고 여겼다.
그의 는 참으로 믿을 만하였으며, 그의 은 매우 진실하였으니 애초부터 사람이 아닌 자연의 경지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역주
역주1 四問而四不知 : 네 번 물어도 네 번 다 모른다고 함. 네 가지를 물었는데 네 가지 다 모른다고 대답했다는 뜻. 向秀는 “이 일은 〈제물론〉편에 보인다[事在齊物論中].”고 했고, 成玄英은 “〈제물론〉 중의 네 번의 물음이다[齊物論中四問也].”라고 하였는데, 〈齊物論〉편 제3장에 실려 있는 내용은 설결이 세 번 묻고 왕예가 세 번 다 모른다고 대답한 문답이다. 질문한 내용은 ‘子知物之所同是乎’, ‘子知子之所不知邪’, ‘然則物無知邪’의 세 가지이지만 뒷부분의 ‘不知利害’까지 합치면 네 가지가 된다(陳景元, 池田知久). 자세한 내용은 〈齊物論〉편의 역주 참조.
역주2 行以告蒲衣子 : 가서 포의자에게 그 이야기를 함. 蒲衣子는 架空의 人物. 陸德明은 《尸子》를 인용하여 “蒲衣가 8세 때 舜임금이 천하를 禪讓했다[尸子云 蒲衣八歲 舜讓以天下].”고 했고, 崔譔은 “바로 被衣이니 王倪의 스승이다. 《淮南子》에 齧缺이 被衣에게 道를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卽被衣 王倪之師也 淮南子曰 齧缺問道於被衣].”고 했다. 또 〈知北遊〉편에도 ‘齧缺問乎被衣’라고 있고, 〈天地〉편에는 ‘堯之師曰許由 許由之師曰齧缺 齧缺之師曰王倪 王倪之師曰被衣’라고 있다. 林希逸은 “蒲衣는 被衣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莊子가 말한 인물의 이름은 많은 부분이 虛言이니, 烏有나 亡是公(烏有 亡是公은 司馬相如의 〈子虛賦〉에 보인다. 周啓成, 《莊子鬳齋口義校注》)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자세하게 천착할 필요는 없다[蒲衣 或曰被衣也 莊子所言人物名字多是虛言 卽烏有亡是公之類 不必致辯].”고 했는데 적절한 지적이다.
역주3 而乃今知之乎 : 그대는 이제 비로소 그것을 알았는가. 而는 2인칭 대명사. 현토본의 현토는 ‘인저’로 되어 있음. 그렇게 보면 ‘그대는 이제 비로소 그것을 알았구나’의 뜻이 된다. 大意에 차이가 없어 여기에서도 현토본과 같이 현토하였다.
역주4 有虞氏 不及泰氏 : 유우씨는 태씨에 미치지 못함. 有虞氏는 舜임금이고, 泰氏는 太昊 伏羲氏이다. 司馬彪는 有虞氏와 泰氏를 상고시대의 제왕[上古帝王也]이라고 보았고, 李頤는 이름없는 임금[無名之君]으로 풀이했다. 呂惠卿은 有虞氏와 泰氏라는 이름은 寓意를 지닌 것으로 파악하여, “有虞는 또한 憂虞라는 뜻이고 泰氏는 또한 泰定의 뜻이다. 지식이 있으면 우려함이 있게 되니, 지식이 없으면서 크게 안정됨만 못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有虞亦訓憂虞 泰氏亦泰定之義 謂有知而有虞 不若無知而泰定].”라고 풀이하였다. 한편 池田知久는 《淮南子》 〈覽冥〉편에 “그러나 여전히 복희씨의 도에는 미치지 못했다[然猶未及 戱氏之道也].”고 한 기록을 근거로 삼아, 成玄英이 “태씨는 바로 태호 복희씨이다[泰氏卽太昊伏羲也].”라고 한 풀이를 따랐는데 이 견해를 따른다.
역주5 藏仁以要人 : 자기 마음 속에 仁을 품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음. 藏은 《孟子》 〈萬章 上〉의 ‘不藏怒焉’의 藏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품는다는 뜻. 要는 求하다는 뜻으로 要人은 사람을 불러모으다의 뜻.
역주6 未始出於非人 : 애초에 사람이 아닌 자연의 경지로 나아가지는 못함. 이 구절에 대해서는 異說이 분분하다. 林希逸의 경우는 非人이 天을 지칭한다고 보고 사람이 아닌 자연의 경지로 이해하여 出을 “〈비인의 경지로〉 나아가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宣穎의 경우는 非人이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서의 外物을 지칭한다고 보고 “非人이란 物이다. 다른 사람을 불러 모으는데 뜻을 두면 도리어 外物에 얽매이게 되니 초연히 物의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非人者物也 有心要人 則猶繫於物 是未能超然出於物之外也].”고 풀이했는데 이 경우는 出을 〈非人을〉 벗어나다는 의미로 풀이한 것이다. 陳鼓應도 宣穎의 견해를 따라 “유우씨가 仁義를 표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는 하였지만 아직 외물의 얽매임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번역하였다. 曹礎基, 張黙生 등도 같은 견해. 그러나 여기서는 林希逸의 견해를 따라 非人을 자연의 경지, 하늘의 세계, 인간 이상의 경지로 번역하였다. 林希逸은 “藏은 품음이고 要는 모음이다. 仁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모으면, 또한 사람을 얻을 수 있지만, 天과 같은 경지에는 나아가지 못했을 뿐이니 단지 하늘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될 수 있을 뿐임을 말한 것이다. 非人은 곧 天이다. 그 때문에 애초에 非人의 경지에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未始出’은 불과 이와 같다고 말한 것과 같다. 天이라고 말하지 않고 非人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그 기이한 필치를 놀린 것이다[藏懷也 要結也 以仁而結人之心 亦可以得人 不出於如天而已 謂其但能與天爲徒也 非人卽天也 故曰未始出於非人 未始出 猶曰不過如此也 不曰天而非人皆是其弄奇筆處].”라고 풀이했다. 한편 福永光司는 “여기의 非人이란 사람이 아닌 것, 곧 天이지만, 非人의 경지에 나아가서 非人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는다[出於非人 未始入於非人].”는 표현은 莊子的 絶對者의 성격을 설명하는 要點이다. 《莊子》에서 절대자란, 인간세계를 9만 리 상공에서 비상하는 초월자임과 동시에 현실세계에 내려와 세속과 흙먼지[塵]를 함께 하는 汚瀆의 遊戱者였다. 인간을 초월하면서 인간 속에 있고, 세속을 초월하면서 세속 가운데 逍遙하는 데에, 장자적 절대자의 구속됨이 없는 자유가 있다. 만일 人間 그것을 부정하고 높이 초월의 세계만을 유일한 것으로 고집한다면, 그 고집은 세속에의 고집과 같이 不自由에 떨어질 것이다. 그 때문에 장자는 ‘出於非人’하는 높은 초월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未始入於非人’이라는 현실세계로의 하강을 이야기한다. 天에 들어가면서 天에 구속당하지 않고, 人에 들어가면서 人에 구속당하지 않는 것에 장자적 절대자의 참된 자유가 있다. 절대자의 지배는 이 참된 자유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고 풀이했는데 여기의 ‘未始出於非人’과 뒤의 ‘未始入於非人’을 연결시켜 이해하는데 참고할 만하다. 또 이외에도 非人을 “다른 사람을 비난하다.”는 뜻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成玄英은 “아직도 是非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未出於是非之域].”라고 보았으며, 安東林도 이 견해를 따라 未始出於非人을 “〈자기 입장만 옳다고 하고〉 남을 비난하는 경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해석하였고, 오강남도 “그러나 아직 시비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석하였다. 또 王叔岷은 “인성을 잃어버리다.”는 뜻으로 보았다. 王叔岷은 이 구절을 〈騈拇〉편의 ‘自虞氏招仁義以撓天下也 天下莫不奔命於仁義 是非以仁義易其性與’와 같은 맥락으로 보고, 莊子는 仁義를 인간이 지니고 있는 本性이 아닌 것으로 보았는데, 순임금은 仁을 품고서 사람을 구했기 때문에 仁으로 사람의 본성을 바꾸어서 비록 사람을 얻었어도 사람들은 이미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여기의 未始出於非人은 “人性을 잃어버리는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곧 “人性을 仁義로 바꾸어 버렸다.”는 뜻이며 뒤의 未始入於非人은 “人性을 잃어버리는 지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곧 人性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의미로 보았는데 참고할 만한 견해이다.
역주7 其臥徐徐 其覺(교)于于 : 누워 잠잘 적에는 느긋하고, 깨어 있을 때에는 어수룩함. 〈大宗師〉편의 “옛날의 진인은 잠잘 때에는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 있을 때에는 근심이 없었다[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는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張黙生). 司馬彪는 “徐徐는 安穩한 모습, 于于는 아는 것이 없는 모습이다[徐徐安穩貌 于于無所知貌].”라고 풀이했다. 曹礎基는 “徐徐는 편안하고 느긋하면서 自得[安閑自得]한 모양이고, 于于는 어리석고 무지[愚昧無知]한 모양이다.”라고 풀이했다.
역주8 一以己爲馬 一以己爲牛 : 어느 때에는 자신을 말이라고 여기고 때로는 자기를 소라고 여김. 〈天道〉편에 ‘子呼我牛也 而謂之牛 呼我馬也 而謂之馬’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의미(朱桂曜). 林希逸은 “누가 말이라고 하든 소라고 하든 모두 그냥 두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니, 남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을 따른다[或以己爲馬 或以己爲牛 皆置之不問 言聽人誰何也].”고 풀이했다.
역주9 其知情信 其德甚眞 : 그의 知는 참으로 믿을 만하며, 그의 德은 매우 진실함. 情과 甚은 모두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부사. 信과 眞은 모두 진실함을 뜻하는 술어.
역주10 未始入於非人 : 애초부터 사람이 아닌 자연의 경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음. 林希逸은 “이 곳에 이르러서는 ‘天’자를 가지고도 이름 붙이기에 부족하다. 이것은 自然而然에 맡겨 두는 것이요, 또한 造化의 위에 벗어난 것이다. 그 때문에 非人(天)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앞에서는 出이라고 하고 뒤에서는 入이라고 말했으니 글자가 놓인 맥락을 보아야 한다. 帝王의 道는 자연에 맡겨두는 것일 뿐이니, 이 편을 응제왕이라고 이름붙인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到此處 天字又不足以名之 是其任自然而然 又出於造化之上 故曰未始入於非人 前曰出 後曰入 看他下字處 帝王之道 任自然而已 其名篇以應帝王 意正在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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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장 354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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