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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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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於聰者 하나니 非乎
하야 以收名聲하야 使天下 하야 以奉不及之法하나니 非乎
是已
騈於辯者 하며 하며 하야 하야하나니 非乎
是已


발가락의 군더더기 살과 육손이는 태어날 때부터의 본성에서 나왔지만 보통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보다 많고, 쓸데없이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사마귀는 〈태어난 뒤〉 몸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람이 타고나는 본성보다 많고, 인의를 조작해 쓰는 이들은 이것을 중시해서 오장과 나란히 배열하지만 도덕의 올바름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발가락에 군더더기 살이 붙어 있는 것은 쓸모없는 살이 이어져 있는 것이고, 손에 여섯째 손가락이 붙어 있는 것은 쓸모없는 손가락이 심어져 있는 것이다.
오장의 본래 모습에 〈쓸모없는 인의仁義 따위를〉 여러 갈래로 기워 붙이면 인의의 행위에 치우쳐서 이목耳目난용亂用을 통해 얻은 지식을 온갖 방면으로 부리게 된다.
이 때문에 눈이 쓸데없이 밝은 자는 오색의 아름다움 〈때문〉에 눈이 어지럽혀지고 무늬의 화려함에 지나치게 탐닉하나니 청황보불靑黃黼黻의 휘황찬란함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주離朱 같은 이가 바로 그런 걸 추구한 사람이다.
귀가 쓸데없이 밝은 자는 오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귀가 어지럽혀지고 육률의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탐닉하나니 의 악기 소리와 황종黃鐘대려大呂와 같은 음률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광師曠 같은 이가 바로 그런 걸 추구한 사람이다.
쓸데없이 인의仁義를 내세우는 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덕을 뽑아 버리고 본성本性을 막아 명성名聲을 손에 넣으려 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서 미칠 수 없는 법도法度를 받들게 하니 바로 이런 것이 인의를 쓸데없이 내세우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증삼曾參사추史鰌 같은 이가 바로 그런 걸 추구한 사람이다.
변론辯論을 지나치게 일삼는 자는 쓸데없는 기교技巧를 부리고 노끈을 묶고 문구를 어렵게 꾸며서 견백론堅白論이나 동이론同異論 따위에 마음이 빠져서 하찮은 명예와 쓸모없는 말에 피폐해지니 바로 이런 것이 변론을 지나치게 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양주楊朱묵적墨翟 같은 이가 바로 이런 걸 추구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조작해 내고 억지로 기워 붙이는 행위이므로 천하의 지극한 정도가 아니다.


역주
역주1 騈拇(변무)枝指 : 발가락의 군더더기 살과 육손이. 拇는 엄지발가락[足大指]이고 騈은 붙어 있다[合]는 뜻. 따라서 騈拇는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 있는 것으로 개구리 따위의 물갈퀴 모양으로 발가락 사이에 붙어 있는 군살을 말하는데, 육손이나 뒤의 附贅縣疣와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이 지닌 것보다 더 많은 군더더기를 의미한다. 다만 第2章 말미에 騈拇와 枝指를 두고 “두 가지 중 어떤 것은 수효가 남고 어떤 것은 수효가 부족하다[二者 或有餘於數 或不足於數].”라고 한 내용이 있으므로 騈拇를 보통 사람들의 발가락 다섯 개보다 하나 부족한 ‘네 발가락’으로 번역하는 것도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말하는 “보통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보다 많다[侈於德]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네 발가락’ 보다는 ‘군더더기 살’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枝는 곁으로 자라난 가지[旁生]로 枝指는 육손을 뜻한다. 이 문장의 의도는 사람은 다섯 개의 발가락과 다섯 개의 손가락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데 騈拇와 枝指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이므로 모두 사람의 자연스런 본성과 거리가 있음을 지적하는 데 있다.
역주2 出乎性哉而侈於德 : 태어날 때부터의 본성에서 나왔지만 보통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보다 많음. 여기서의 性은 뒤의 形과 대비되는 의미. 본성에서 나왔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발생한 병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선천적인 기형이라는 뜻으로 뒤의 형체에서 나온 사마귀 등이 후천적으로 생겨난 것과는 다른 종류라는 뜻이다. 德은 보통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 곧 生得的인 것을 의미한다. 崔譔은 德을 容으로 풀이했고, 成玄英은 仁義禮智信의 五德이라고 풀이했는데 모두 적절치 않다. 林希逸은 “태어나면서 함께 생기는 것을 性이라 하고 사람들이 다 같이 얻어서 태어나는 것을 德이라 한다. 騈拇와 枝指는 모두 병이다. 본래 자연에서 나왔지만 사람들이 다 같이 얻어서 태어나는 것과 견주어 보면 더 많은 것이 된다. 侈는 남아돈다는 뜻이다. 여기에 나오는 성과 덕은 字義가 聖賢이 말하는 것과 꽤 다르다[與生俱生曰性 人所同得曰德 騈拇枝指 皆病也 本出於自然 比人所同得者 則爲侈矣 侈 剩也 似此性德字義 皆與聖賢稍異].”라고 했다. 청대의 兪樾 또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은 600년 전에 林希逸이 먼저 제기한 견해이다(池田知久).
역주3 附贅縣疣 : 쓸데없이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사마귀. 附와 縣은 모두 붙어 있다는 뜻이고, ‘贅’와 ‘疣’는 모두 사마귀 종류이다. 王叔岷은 《衆經音義》를 인용하여 “작은 것을 肬라 하고 큰 것을 贅라 한다[小曰肬 大曰贅].”라고 풀이했는데 〈大宗師〉편에 이미 나왔다. 福永光司는 騈拇, 枝指, 附贅, 縣肬는 肉體的 剩餘物을 가리키고, 仁義禮智의 가르침은 精神的 剩餘物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역주4 出乎形哉而侈於性 : 몸, 곧 형체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람이 타고나는 본성보다 많음. 앞의 선천적인 기형과는 달리 태어난 뒤 후천적으로 발생한 군더더기라는 의미.
역주5 多方乎仁義而用之者 : 인의를 여러 갈래로 만들어 내서 이용함. 곧 인의를 조작해 내서 이용한다는 뜻. 方은 術과 같은 뜻으로 多方은 여러 갈래로 만들어 낸다는 뜻. 林希逸은 多方을 多端으로 풀이했고, 成玄英은 方을 道術로 풀이했는데 여기서는 林希逸의 견해를 따랐다.
역주6 列於五藏哉 : 오장과 나란히 배열함. 仁義禮智信의 五常을 肝은 仁, 肺는 義, 心은 禮, 腎은 智, 脾는 信에 해당하는 것으로 억지로 기워 붙였다는 뜻. 陳景元은 “肝은 木氣로 인에 해당하고 肺는 金氣로 의에 해당하고 心은 火氣로 예에 해당하고 腎은 水氣로 지에 해당하고 脾는 土氣로 신에 해당한다[肝木仁也 肺金義也 心火禮也 腎水智也 脾土信也].”라고 했고, 楊樹達은 《白虎通》 〈性情〉篇을 인용하여 “肝은 인에 해당하고 肺는 의에 해당하고 心은 예에 해당하고 腎은 智에 해당하고 脾는 신에 해당한다[肝仁 肺義 心禮 腎智 脾信也].”라고 했다.
역주7 非道德之正也 : 도덕의 올바름이 아님. 사람이 본래 타고난 도덕이 아니라는 뜻. 方勇‧陸永品은 正을 本然으로 풀이했다.
역주8 騈於足者 連無用之肉也 : 발가락에 군더더기 살이 붙어 있는 것은 쓸모없는 살이 이어져 있는 것임. 無用之肉은 쓸모없는 살, 連은 이어져 있다는 뜻.
역주9 枝於手者 樹無用之指也 : 손에 여섯째 손가락이 붙어 있는 것은 쓸모없는 손가락이 심어져 있는 것임. 無用之指는 쓸데없는 손가락, 樹는 심다는 뜻.
역주10 [多方]騈枝於五藏之情者 : 오장의 본래 모습에 군더더기를 붙임. 손과 발에 변무와 지지가 있는 것처럼 오장의 본모습에 인의를 여러 갈래로 갖다 붙인다는 의미. 多方은 잘못 끼어든 글자. 多方과 騈枝에 대해 宋의 羅勉道, 明의 朱得之, 明의 焦竑 등은 모두 多方을 잘못 끼어든 글자라고 했고, 馬叙倫은 騈枝 쪽을 衍文이라 했으며, 일본의 福永光司나 池田知久 등은 그대로 두고 해석해도 좋다고 하여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에 나온 多方乎仁義而用之者에서 알 수 있듯 다방은 인의를 여러 갈래로 만들어 내서 이용하는 것이고, 변지는 수족의 군더더기이므로, 다방과 변지는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바로 뒤의 문단에 나오는 騈於明者와 多於聰者를 보면 騈과 多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세 주장은 모두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를 따라 多方을 연문으로 처리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1 淫僻於仁義之行 : 인의의 행위에 치우침. 인의를 실천하는 것이 오장처럼 인간의 본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만들어 낸 인위적 행위임을 비판한 내용이다.
역주12 而多方於聰明之用也 : 耳目의 亂用을 통해 얻은 지식을 온갖 방면으로 부림. 耳目으로 명석하게 인식하는 亂用을 강요한다는 의미로, 인간을 감각적 耽溺 속으로 埋沒시켜 버림을 비유. 聰과 明은 각각 귀가 밝고 눈이 밝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이목의 어지러운 작용을 의미한다.
역주13 騈於明者 : 밝음에 지나친 자. 곧 눈이 쓸데없이 밝거나 예민함을 뜻한다. 여기의 騈은 뒤에 나오는 淫文章의 淫, 多於聰者의 多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추구함을 표현한 것이다.
역주14 亂五色 淫文章 : 오색의 아름다움 때문에 눈이 어지럽혀지고 무늬의 화려함에 지나치게 탐닉한다. 亂五色은 오색을 어지럽힌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여기서는 오색의 아름다움 때문에 눈이 어지럽혀진다는 뜻으로 봄이 可할 듯. 즉 亂於五色과 같은 뜻. 《老子》 제12장의 ‘五色令人目盲’과 가까운 생각. 오색은 靑, 黃, 赤, 白, 黑의 다섯 가지 색. 文章의 文은 청색과 적색을 섞어 만든 무늬이고, 章은 적색과 백색을 섞어 만든 무늬. 《周禮》 〈冬官 考工記〉에 “청색과 적색을 섞은 것을 문이라 하고, 적색과 백색을 섞은 것을 장이라 하고, 백색과 흑색을 섞은 것은 黼라 하고, 흑색과 청색을 섞은 것을 黻이라 하고 다섯 가지 채색을 모두 섞은 것을 繡라 한다[靑與赤謂之文 赤與白謂之章 白與黑謂之黼 黑與靑謂之黻 五采備謂之繡].”라고 했다. 따라서 여기의 문장은 문자나 글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청색과 적색, 적색과 백색을 섞어서 만든 무늬, 또는 이런 색깔의 실로 수놓아 지은 예복을 뜻한다.
역주15 靑黃黼黻之煌煌 : 靑黃黼黻의 휘황찬란함. 煌煌은 찬란하게 빛나는 모양. 黼黻에 대해서는 바로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역주16 非乎 : 아니겠는가. 바로 그렇다는 뜻. 向秀는 “非乎는 그렇다는 것을 말함이다[非乎 言是也].”라고 했다. 따라서 현토도 ‘非乎아’로 하여야 한다. 그런데 ‘非乎인저’로 읽어 ‘……은 잘못된 것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아니겠는가[非乎아]’의 뜻으로 해석하는 쪽을 택한다.
역주17 而離朱是已 : 離朱와 같은 사람이 바로 이 같은 행위를 한 사람임. 離朱는 인명으로 눈이 밝은 사람. 孟子의 離婁와 같은 사람으로 추정. 司馬彪는 “황제 때의 사람으로 백보 밖에서 가을 터럭의 끄트머리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천리 밖에서 바늘 끄트머리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孟子에는 離婁로 되어 있다[黃帝時人 百步見秋毫之末 一云 見千里針鋒 孟子作離婁].”라고 했다. 而는 如와 같다. 而를 如로 보는 견해는 兪樾이 맨 처음 제기했는데 章炳麟, 王叔岷, 方勇‧陸永品 등도 모두 兪樾의 견해를 지지했다. 而가 如와 같이 쓰이는 용례는 《莊子》의 而師曠, 而曾史, 而楊墨 등에도 보이며, 《孟子》 〈離婁 下〉의 ‘望道而未之見’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已는 종결사.
역주18 亂五聲 淫六律 : 오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귀가 어지럽혀지고 육률의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탐닉함. 五聲은 宮, 商, 角, 徵, 羽. 六律은 黃鐘, 太簇, 姑洗, 蕤賓, 無射, 夷則. ‘亂五聲’의 경우도 역시 ‘亂於五聲’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老子》 제12장의 ‘五音令人耳聾’과 비슷한 생각이다.
역주19 金石絲竹黃鐘大呂之聲 : 金‧石‧絲‧竹의 악기 소리와 黃鐘‧大呂와 같은 음률. 金石絲竹은 각각 쇠붙이와 돌, 실과 대통으로 만든 악기인데 여기에 匏土革木을 보태서 八音이라고 한다.
역주20 師曠 : 人名, 〈齊物論〉에 이미 나왔다. 司馬彪는 “진나라의 어진 대부로 음률에 뛰어나 귀신을 불러올 수 있었다. 《史記》에는 기주의 남화 사람으로 날 때부터 눈이 없었다고 했다[晉賢大夫也 善音律 能致鬼神 史記云 冀州南和人 生而無目].”라고 했다.
역주21 是故로 … 是已라 : 현토본에는 〈是故로 騈於明者는 亂五色하며 淫文章하나니 靑黃黼黻之煌煌이로소니 非乎인댄 而離朱는 是已라하야닛다녀 多於聰者는 亂五聲하며 淫六律하나니 金石絲竹黃鐘大呂之聲이로소니 非乎인댄 而師曠은 是已라하야닛다녀〉로 되어 있다.
역주22 枝於仁者 : 쓸데없이 인의를 내세우는 자. 직역을 하면, 仁에 枝한 자, 仁에 여분이 있는 자, 仁에 군더더기를 덧붙인 자가 되는데 ‘仁이라고 하는 군더더기의 規範을 떠메고 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역주23 擢德塞性 : 덕을 뽑아 버리고 본성을 틀어막음. 王念孫은 擢과 塞의 의미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塞을 搴으로 바꾸어서 擢과 搴을 모두 뽑아낸다는 뜻[塞與擢義不相類 塞當爲搴 擢搴 皆謂拔取之也]으로 풀이하였고, 王叔岷과 池田知久 등도 이 견해를 따라 拔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拔本塞源의 경우처럼 拔과 塞이 반드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擢은 본래의 덕성을 뽑아 버린다[拔]는 뜻으로 풀이하고 塞은 자연의 본성이 발휘되는 것을 틀어막는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원래의 글자를 그대로 두고도 맥락에 맞는 풀이가 가능하므로 따르지 않는다. 한편 方勇‧陸永品의 경우는 ‘거짓된 덕을 끄집어내고 참다운 본성을 막는다[拔擢僞德 蔽塞眞性].’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이 편의 德과 性은 侈於德 侈於性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모두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본래의 것을 의미하므로 맥락에 맞지 않는다.
역주24 簧鼓 : 피리를 불다. 쓸데없는 말을 시끄럽게 떠들어 댐을 의미한다. 鼓는 연주한다는 뜻. 陸德明은 “簧鼓는 笙簧을 말한다. 鼓는 動의 뜻이다[簧鼓 謂笙簧也 鼓 動也].”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笙을 불고 簧을 분다[吹笙鼓簧].”라고 풀이했다.
역주25 曾史 : 曾參과 史鰌. 曾은 공자의 제자 증삼. 史는 史鰌. 陸德明은 “증삼은 인을 실천했고 사추는 의를 실천했다[曾參行仁 史鰌行義].”라고 풀이했다. 史鰌는 姓이 史, 이름이 鰌, 字는 子魚로 춘추 말기 衛나라의 대부로 전해진다. 《論語》 〈衛靈公〉에도 “정직하구나 史魚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과 같이 곧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과 같이 곧았다[直哉史魚 邦有道如矢 邦無道如矢].”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26 纍瓦(丸) : 쓸데없는 기교를 부림. 纍는 累와 같은 의미. 瓦는 丸의 誤字. 向秀와 崔譔 등은 본래 글자 그대로 보고 瓦로 풀이했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견해를 따라 기왓장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쓸데없는 말을 꾸며 댄다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여기서는 劉師培가 陸德明이 《經典釋文》에서 “一說에 瓦는 丸자가 되어야 한다[一云 瓦當作丸].”라고 소개한 내용이 다른 주석에 비해 정확하다고 한 견해를 따라 累丸으로 보고 번역하였다. 王叔岷 또한 纍瓦를 〈達生〉편에 나오는 累丸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累丸은 痀僂者가 매미를 잡기 위해 공을 겹쳐 놓고 떨어지지 않도록 기술을 익히는 것으로, 자세한 내용은 〈達生〉편에 나온다.
역주27 結繩 : 노끈을 묶어서 매듭을 만듦. 역시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만든다는 뜻. 崔譔은 “쓸데없는 말을 끌어댐이 마치 기왓장을 쌓고 노끈의 매듭을 짓는 것과 같이한다[聚無用之語 如瓦之纍 繩之結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8 竄句 : 문구를 어지럽게 꾸밈. 竄은 고치고 꾸민다는 뜻. 林希逸은 “竄은 改定함이니 脩改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곧 문구를 고치고 꾸며서 화려하게 장식함[竄 定 猶言脩改也 脩改其言句以爲升].”이라고 풀이했고, 王敔는 “문구를 訂正함[點竄文句].”이라고 풀이했는데 의미의 차이는 없다. 陸樹芝, 王先謙, 張之純, 阮毓崧 등도 모두 이 견해를 따랐다. 한편 王叔岷은 敦煌 唐寫本 《經典釋文》에 근거하여 竄句 아래에 ‘棰辭’ 두 글자가 빠졌다고 보고 ‘纍瓦結繩 竄句’를 ‘累丸結繩 竄句棰辭’로 복원해서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문장의 대구가 자연스러워진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역주29 遊心於堅白同異之間 : 堅白論이나 同異論 따위에 마음이 빠짐. 곧 쓸데없이 논리나 따지고 궤변을 일삼는다는 뜻. 堅白論은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는 公孫龍의 주장이고, 同異論은 다른 것을 같다고 하는 惠施의 주장이다. 〈秋水〉편에 자세하다.
역주30 敝跬譽無用之言 : 하찮은 명예와 쓸모없는 말에 피폐해짐. 跬譽는 작은 명예. 따라서 跬譽無用之言은 상대와의 논쟁에서 이겨서 하찮은 명예를 얻기 위한 쓸모없는 말을 뜻한다. 敝는 피폐해짐. 陸德明은 얽매인다[蹩]는 뜻으로 풀이하여 讀音도 蹩로 표기했지만, 여기서는 司馬彪가 피곤해진다[罷]는 뜻으로 풀이한 견해를 따랐다. 跬는 반걸음. 郭嵩燾는 “跬譽는 한때의 하찮은 명예이고, 敝는 勞敝이다[跬譽者 邀一時之近譽也 敝謂勞敝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1 楊墨 : 楊朱와 墨翟.
역주32 枝於仁者는 …非天下之至正也니라 : 현토본에는 〈枝於仁者는 擢德塞性하야 以收名聲하야 使天下로 簧鼓하야 以奉不及之法하나니 非乎인댄 而曾史는 是已라하야닛다녀 騈於辯者는 纍瓦하며 結繩하며 竄句하야 遊心於堅白同異之間하야 而敝跬譽無用之言하나니 非乎인댄 而楊墨은 是已라하야닛다녀 故로 此는 皆多騈旁枝之道라 非天下之至正也니라〉로 되어 있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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