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莊子(2)

장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장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之盜하야 而爲守備인댄 則必하나니
작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짝을 뜯는 도둑을 염려하여 지키고 방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끈이나 줄을 당겨 단단히 묶고 빗장과 자물쇠를 튼튼히 채운다.
此 世俗之所謂知也
이것이 세속世俗에서 이른바 〈도둑을 방비하는〉 지혜이다.
然而巨盜至하야 하나니
그러나 큰 도둑이 오면, 궤짝을 통째로 등에 지고 상자를 손에 들고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달아나면서 오직 끈이나 줄, 빗장이나 자물쇠가 견고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앞서 이른바 지혜라는 것은 큰 도둑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嘗試論之하노라
그 때문에 시험 삼아 따져 보려고 한다.
世俗之所謂知者 有不爲大盜하야 積者乎 所謂聖者 有不爲大盜하야 守者乎
세속에서 이른바 지혜라는 것이 큰 도둑을 위해 도와준 것이 아니겠으며 이른바 이란 것이 큰 도둑을 위해 지켜 준 것이 아니겠는가.
何以知其然邪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昔者 齊國 하야 方二千餘里러니 하야 所以立宗廟社稷 리오마는 然而 殺齊君而하니 所盜者 豈獨其國邪리오
옛날 나라는 이웃 고을이 서로 바라보이며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서 그물이 펼쳐지는 곳과 쟁기와 보습이 찌르는 곳이 사방 2천 리에 달했는데 사방 국경 안을 통틀어 종묘宗廟사직社稷을 세우고 등의 고을을 구석구석까지 다스림에 어찌 성인을 본받지 않았겠는가마는 전성자田成子가 하루아침에 제나라 임금을 죽이고 그 나라를 훔쳤으니 훔친 것이 어찌 나라뿐이었겠는가.
竝與其聖知之法而盜之하니라
성지聖知의 규범도 함께 훔쳤다.
田成子 有乎盜賊之名하나 而身處堯舜之安이라 小國 不敢非하며 大國 不敢誅하야 하니 則是 不乃竊齊國 竝與其聖知之法하야 以守其盜賊之身乎
그 때문에 전성자田成子는 도적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몸은 과 같이 편안한 지위에 머물러 작은 나라가 감히 비난하지 못하고 큰 나라가 감히 주벌誅伐하지 못해서 열두 세대 동안이나 제나라를 차지하였으니, 이는 제나라를 훔쳤을 뿐만 아니라 성지聖知의 규범까지 아울러 훔쳐서 도적의 몸을 지킨 것이 아니겠는가.
역주
역주1 將爲 : 장차 염려함. 爲는 ‘때문에’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도둑질당할 것을 염려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역주2 胠篋 : 작은 상자를 엶. 곧 상자 안의 물건을 훔친다는 뜻. 胠는 ‘열다’는 뜻. 馬叙倫은 劫의 가차자로 보고 빼앗는다는 뜻으로 보았지만 이 부분의 내용은 뒤의 큰 도둑과는 달리 상자를 통째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상자 속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좀도둑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篋은 작은 상자. 큰 것을 箱이라 하고 좁고 긴 것을 篋이라 한다[大曰箱 狹而長曰篋]. 司馬彪는 “옆으로 여는 상자를 胠라 한다[從旁開爲胠].”라고 했다.
역주3 探囊發匱 : 주머니를 뒤지고 나무 상자를 뜯어냄. 探은 손으로 더듬는 동작을 나타내는데 여기서는 ‘뒤지다’는 뜻이다. 囊은 주머니. 發은 열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뜯다’는 뜻으로 쓰였다. 匱는 궤짝으로 나무 상자. 陸德明은 우리[檻]라고 했다.
역주4 攝緘縢 : 끈이나 줄을 당겨 단단히 묶음. 攝은 묶는다는 뜻이고 緘과 縢은 모두 끈의 종류. 李頤는 攝을 묶다[結也]는 뜻으로 풀이했고, 陸德明은 “緘과 縢은 모두 끈이다[緘縢 皆繩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林希逸은 攝을 “얽어매다[纏繞也].”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의미의 차이는 없다.
역주5 固扃鐍 : 빗장과 자물쇠를 튼튼히 채움. 固는 단단히 하다는 뜻이고 扃과 鐍은 모두 잠금 장치의 일종으로 扃은 빗장[關]이고 鐍은 자물쇠[鎖]. 崔譔과 李頤 모두 扃을 빗장[關]으로 풀이했다. 成玄英은 鐍을 자물쇠[鎖]로 풀이했다.
역주6 負匱揭篋擔囊而趨 : 궤짝을 등에 지고 상자를 손에 들고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달아남. 負는 등에 짊어짐. 揭는 손에 든다는 뜻이고 擔은 어깨에 멘다는 뜻. 匱, 篋, 囊은 각각 궤짝, 상자, 주머니. 馬叙倫은 《說文解字》에서 “竭은 등에 짐이다[竭 負擧也].”라고 한 풀이를 따라 揭를 竭의 가차자로 풀이했다.
역주7 唯恐緘縢扃鐍之不固也 : 끈이나 줄, 빗장이나 자물쇠가 견고하지 못할까 두려워함. 도둑을 방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도리어 도둑이 바라는 것을 도와주는 도구가 됨을 풍자한 표현이다. 唯恐은 오직 ~할까 염려함.
역주8 鄕之所謂知者 : 앞서 말한 지혜란 것. 곧 세속에서 말하는 도둑을 방비하는 지혜[世俗之所謂知]를 지칭한다. 鄕은 아까, 접때의 뜻으로 曏, 嚮, 向과 통용하며 여기서는 ‘앞서’의 뜻. 道藏본 林希逸의 《南華眞經口義》와 褚伯秀의 《南華眞經義海纂微》, 羅勉道의 《南華眞經循本》, 趙諫議본 등에는 鄕이 모두 向자로 되어 있다(王叔岷, 方勇‧陸永品).
역주9 不乃爲大盜積者也 : 큰 도둑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不乃는 無乃와 같고 무내는 無와 같다. 뒤의 의문사 也와 함께 “~한 것이 아니겠는가.”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論語》의 無乃大簡乎(雍也), 無乃爲佞乎(憲問), 無乃爾是過與(季氏)의 “無乃~乎‧與”와 같은 구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奚侗은 不은 無로 읽고 也는 乎로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래의 문장 ‘不乃竊齊國~盜賊之身乎’의 경우를 보더라도 타당한 견해이다. 陸樹芝, 陳壽昌 등도 不乃는 毋乃나 無乃와 같다고 풀이했다. 반면 不자를 끼어든 문자로 보거나(兪樾), 乃가 反자로 쓰인 인용을 들어 ‘도리어’의 뜻으로 풀이한 견해가 있지만 본문(아래의 則是不乃竊齊國 竝與其聖知之法 以守其盜賊之身乎)에서 동일한 표현이 반복되는 걸로 볼 때 적절치 않다. 또 馬叙倫은 乃를 啻의 가차자로 보고 不乃를 “~할 뿐만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보았지만 다소 지나친 견해이다. 積은 ‘미리 준비하다’의 뜻으로 결국 ‘도와주다’의 뜻이다.
역주10 隣邑相望 鷄狗之音相聞 : 이웃 고을이 서로 바라보이며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림. 백성들의 수가 많음을 표현한 것으로 《孟子》 〈公孫丑 上〉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서 사방 국경까지 이른다[雞鳴狗吠相聞 而達乎四境].”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나라의 부강함을 묘사한 것이다. 또 《老子》 제80장에 나오는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데 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라고 한 표현과도 유사하다.
역주11 罔罟之所布 耒耨之所刺 : 그물이 펼쳐지는 곳과 쟁기와 보습이 찌르는 곳. 곧 통치의 힘이 미치는 영역으로 여기서는 제나라의 영토가 넓음을 표현한 것이다. 罔罟는 鳥獸와 물고기를 잡는 그물. 耒耨는 쟁기와 보습. 罔罟之所布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는 곳, 즉 山林川澤을 뜻하며 耒耨之所刺는 쟁기와 보습이 찌르는 곳, 즉 경작하는 땅을 의미한다.
역주12 闔四竟之內 : 사방 국경 안을 통틀어. 闔은 ‘문(짝)을 닫다’는 뜻. 金谷治는 ‘合’의 의미로, 池田知久는 ‘덮어서’의 의미로 보았다. 竟은 境과 통용하는 글자로 古逸叢書本에는 境으로 쓰여 있다(池田知久). 四竟之內는 사방 국경 안.
역주13 治邑屋州閭鄕曲者 : 邑‧屋‧州‧閭‧鄕 등의 고을을 구석구석까지 다스린 법칙. 邑‧屋‧州‧閭‧鄕은 모두 행정구역의 대소를 나누는 단위. 成玄英은 《司馬法》을 인용하여 “6尺=1步, 100步=1畝, 100畝=1夫, 3夫=1屋, 3屋=1井, 4井=1邑, 5家=1比, 5比=1閭, 5閭=1族, 5族=1黨, 5黨=1州, 5州=1鄕[六尺爲步 步百爲畝 畝百爲夫 夫三爲屋 屋三爲井 井四爲邑 又云 五家爲比 五比爲閭 五閭爲族 五族爲黨 五黨爲州 五州爲鄕].”으로 정리했다. 한편 鄭玄의 《周禮注》에 나온 정리를 따르면 25家가 閭이고, 2500家가 州이고, 12500家가 鄕[二十五家爲閭 二千五百家爲州 萬二千五百家爲鄕]이다. 曲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여러 단위로 표시된 고을의 일부분을 의미하는데 坊坊曲曲의 曲과 같다.
역주14 曷嘗不法聖人哉 : 어찌 성인을 본받지 않았겠는가마는. 제나라 또한 앞에서 말한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邑‧屋‧州‧閭‧鄕 등의 고을로 나누어 나라를 다스렸는데 이는 모두 성인의 법도를 본받은 것이라는 뜻. 曷은 어찌.
역주15 田成子 : 齊나라 대부 田常(陳恒). 陳나라에서 제나라로 도망친 田完의 손자로 당시 제나라의 군주였던 簡公을 죽이고 간공의 아우였던 鷔를 추대하여 평공을 세우고 국정을 전횡했다. 田常의 증손인 田和에 이르러 결국 군주를 내쫓고 스스로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論語》 등의 문헌에는 陳恒 또는 陳成子로 표기되어 있고 《史記》 등의 문헌에는 田常 또는 田成子로 표기되어 있는데 陳과 田의 음이 같고 常과 恒의 뜻이 같기 때문에 통용한 듯하다.
역주16 一旦 : 하루아침에. 一朝와 같다. 一日로 된 인용이 있다(馬叙倫).
역주17 盜其國 : 그 나라를 훔침. 田氏 일족이 제나라를 차지한 것은 위에서 밝힌 것처럼 田和에 이르러서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田成子가 나라를 훔친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제나라를 훔치려는 계획이 전성자 때부터 시작된 것을 두고 과장해서 말한 것일 수도 있고, 司馬彪의 풀이처럼 “전성자가 안읍 이동에서 낭야에 이르는 지역을 분할하여 자신의 봉읍으로 삼은 것을 두고 말한 것[謂割安邑以東至郞邪自爲封邑也].”일 수도 있다. 其國이 齊國으로 된 인용이 있다(王叔岷).
역주18 十二世有齊國 : 열두 세대 동안 제나라를 차지함. 十二의 위에 而자가 있는 인용이 있다(王叔岷). 十二世에 대해서는 陸德明이 “전경중에서 장자에 이르기까지 아홉 세대 동안 제나라 정치를 담당했고 태공 전화부터 위왕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 동안 제나라 임금이었기 때문에 열두 세대라 한 것이다[自敬仲至莊子 九世知齊政 自太公和至威王 三世爲齊侯 故云十二世也].”라고 한 이래로 成玄英, 羅勉道, 焦竑 등 모두 그것을 정설로 따랐지만, 兪樾 등이 지적한 것처럼 전경중부터 헤아려서 열두 세대를 억지로 기워 맞추는 것은 적절치 않다. 兪樾과 馬叙倫은 十二世를 世世의 오기라 하고, 嚴靈峯은 十二世를 專의 오기라고 했지만 역시 근거가 지리멸렬하여 따르기 어렵다. 한편 于鬯은 《史記》 〈田完世家〉의 《索隱》의 설을 채용하여 田成子에서 최후의 王建에 이르기까지 十世이지만, 《竹書紀年》에 근거해서 田成子와 太公 田和의 사이에 田悼子를 보충하고, 田和와 桓公 田午의 사이에 田剡을 보충하면 十二世가 된다(武內義雄, 關鋒)고 했는데 이 견해를 따를 만하다. 또한 陸樹芝, 金谷治 등은 B.C. 221년 王建이 秦始皇에게 항복하여 제나라는 멸망하였고, 이때에 천하가 통일되었으므로, 《莊子》 이 편의 저작 시대는 제나라 마지막 제후인 왕건(B.C. 265 즉위)보다 이후의 것이고, 장주 본인보다는 후대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金谷治)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