及至
이 로라하야 하며 하며 하며 하야늘 馬之死者十二三矣
오
하며 하며 하야 前有
하고 而後有
하야늘 而馬之死者 已過半矣
니라
世世
에 稱之
하야 曰伯樂
은 善治馬
하고 而陶匠
은 善治埴木
이라하나니 니라
말은 굽으로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발을 들고 뛰어다닌다.
이것이 말의 참된 본성本性이니 비록 높은 누대樓臺나 호화로운 저택邸宅이 있다 하더라도 쓸 곳이 없다.
그런데 백락伯樂이 “나는 말을 잘 다룬다.”고 해서 털을 태우고 깎아 내며 굽을 깎고 낙인을 찍으며 연이어 굴레를 씌우고 다리를 묶으며 구유와 마판에 줄줄이 묶어 놓음에 이르러 죽는 말이 열에 두세 마리에 이르고,
굶기고 목마르게 하며 달리고 뛰게 하며 정돈整頓시키고 가지런히 해서 앞에서는 재갈이나 가슴받이 장식으로 끌어대는 괴로움이 있고 뒤로는 가죽 채찍이나 대나무 채찍으로 때려 대는 억압抑壓이 있게 되면 죽는 말이 이미 절반을 넘게 된다.
둥근 것은 그림쇠에 꼭 맞고 모난 것은 곱자에 딱 들어맞는다.”고 하며, 목수는 “나는 나무를 잘 다룬다.
굽은 것은 갈고리에 꼭 맞고 곧은 것은 먹줄에 꼭 맞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 진흙이나 나무의 본성本性이 어찌 그림쇠, 곱자, 갈고리, 먹줄에 꼭 맞기를 바라겠는가.
그럼에도 세상에서는 대대로 일컫기를 백락伯樂은 말을 잘 다루고 옹기장이와 목수는 진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하니 이 또한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과실이다.
나는 생각건대 천하를 잘 다스리는 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일정하게 타고난 본성이 있어서 길쌈을 해서 옷을 지어 입으며 밭 갈아서 먹을 것을 장만하는데 이를 일러 타고나면서부터 다 같이 얻은 덕이라고 한다.
모두 한결같지만 서로 짜고 이룬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늘이 놓아준 것’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