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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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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顔回 問仲尼하야
안회顔回중니仲尼에게 물었다.
其母死커늘 하며 中心不戚하며 居喪不哀하야
맹손재孟孫才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곡읍哭泣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마음 속에 슬픔을 느끼지 아니하고, 상을 치르면서 서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無是三者로대 하니
이 세 가지가 없었는데도 상례喪禮를 잘 치렀다는 명성이 나라를 덮었습니다.
固有無其實而得其名者乎잇가
본래 〈그 명성에 해당하는〉 실제의 행위가 없는 데도 명성을 얻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까?
하노이다
저는 오로지 그게 이상합니다.”
仲尼曰
중니仲尼가 말했다.
夫孟孫氏 盡之矣
맹손씨孟孫氏생사生死의 도리를 극진히 하였다.
그것은 상례喪禮를 아는 데에서 더 나아간 경지이다.
비록 상례를 간소히 치르려 하다가 뜻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간소히 한 바가 있다.
맹손씨는 삶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아니하고, 죽음의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아니하며,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을 알려고 하지 아니하고 〈죽고 난〉 뒤의 모습도 알려고 하지 않고, 변화에 순응하여 사물과 동화同化되어, 아직 알지 못하는 변화를 기다릴 뿐이다.
또 막 변화했을 때 아직 변화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어찌 알 것이며, 아직 변화하지 않았을 때 이미 변화한 이후의 모습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特與汝 인저
나와 너는 다만 아직 처음부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며 하니 孟孫氏 特覺로대 人哭이어든 亦哭하나니 니라
“또 저 사람은 몸이 놀라는 일은 있어도 마음이 손상당하는 일은 없으며, 〈마음이 머물고 있는〉 집이 동요하는 일은 있지만 〈집에 머물고 있는〉 마음이 죽는 일은 없으니, 맹손씨孟孫氏는 홀로 깨어서 〈화광동진和光同塵해서〉 사람들이 곡을 하면 자기도 곡을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잠시〉 서로 함께하는 것을 나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니, 어찌 나 자신이 이른바 나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나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또 너는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며,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에 잠기는데, 알 수 없구나!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꿈에서 깨어난 것인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잠깐의 즐거움은 웃음에 미치지 못하고, 드러난 웃음은 자연의 추이推移를 따름에 미치지 못하니, 자연의 추이를 편안히 여겨 그 변화 조차도 잊어버리면 마침내 고요한 하늘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역주
역주1 孟孫才 : 인명. 魯나라의 公族. 三桓의 後孫으로 才는 이름(李頤). 池田知久는 《論語》에 孟懿子‧孟武伯 父子가 孔子에게 孝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과 孟莊子의 효행을 공자가 칭찬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효와 관계가 깊은 일족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역주2 哭泣無涕 : 哭泣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음. 哭은 소리내어 우는 것이고 泣은 눈물 흘리며 우는 것. 여기서는 상례 절차 중의 하나인 哭泣의 禮를 지칭한다.
역주3 以善處喪蓋魯國 : 상례를 잘 치른 것으로 노나라를 덮음. 곧 상례를 잘 치렀다는 명성이 魯나라에 자자했다는 뜻. 蓋는 ‘力拔山氣蓋世’의 蓋와 같이 덮어서 가리다의 뜻. 成玄英은 蓋를 發語辭로 풀이했는데 옳지 않다. 善處喪의 ‘處’字는 世德堂本 등 諸本에는 없다.
역주4 壹怪之 : 오직 그것을 이상하게 여김. 壹은 專一로 오로지의 뜻.
역주5 進於知矣 : 喪禮를 아는 데에서 더 나아감. 곧 상례를 아는 사람보다 더 낫다는 뜻이다. 進은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는 뜻으로 〈養生主〉편에 나오는 ‘進乎技矣’의 進과 같지만 여기서는 낫다[勝]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羅勉道는 “상례를 아는 이보다 더 낫다[勝於知喪禮者].”고 풀이했다.
역주6 唯(수)簡之而不得 夫已有所簡矣 : 비록 상례를 간소히 치르려 하다가 뜻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간소히 한 바가 있음. 곧 어쩔 수 없이 哭泣의 禮를 지켜 상례를 치르는 등 자신이 바라던 정도만큼 간소히 치르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면 이미 세속의 상례보다 간소히 치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唯는 수(雖)로 읽는다(陶鴻慶, 褚伯秀). 簡은 상례를 간소하게 치른다는 뜻. 郭象과 成玄英은 簡擇으로 풀이했지만 옳지 않다. 不得은 不得其志로 母喪을 자신의 뜻대로 완전히 간소하게 치르지 못했음을 의미.
역주7 不知所以生 不知所以死 不知就先 不知就後 : 삶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아니하고 죽음의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아니하며,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을 알려고 하지 아니하고 죽고 난 뒤의 모습도 알려고 하지 않음. 池田知久는 이 구절이 제4장의 ‘死生先後之所在’를 자세히 풀이한 것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역주8 若化爲物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 : 변화를 따라 사물이 되어 아직 알지 못하는 변화를 기다릴 뿐임. 곧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여 무슨 사물이 되든지 그와 일체가 된다는 뜻. 제3장에서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된들 좋지 않겠는가[惡乎往而不可哉]’라고 말한 子來의 태도와 같은 맥락. 若은 따르다[順]의 뜻(成玄英). 已는 어조사로 而已와 같다(王叔岷).
역주9 方將化 惡知不化哉 方將不化 惡知已化哉 : 막 변화했을 때 아직 변화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어찌 알 것이며, 아직 변화하지 않았을 때 이미 변화한 이후의 모습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곧 태어난 뒤에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을 알 수 없고, 죽기 전에 죽어서 변화한 이후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뜻. 郭象은 “이미 변화하여 태어났을 때 어찌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를 알겠으며 아직 변화하여 죽기 전에 어찌 이미 죽은 뒤를 알겠는가[已化而生 焉知未生之時哉 未化而死 焉知已死之後哉].”라고 풀이했다.
역주10 其夢未始覺(교)者邪 : 아마도 아직 처음부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임. ‘其~邪’는 ‘아마도 ~일 것’이라는 뜻으로 ‘其~乎’, ‘其~與’와 같이 추측을 나타내는 표현.
역주11 彼有駭形而無損心 : 저 사람은 몸이 놀라는 일은 있어도 마음이 손상당하는 일은 없음. 죽음을 앞에 두고(母喪) 겉모습은 마치 놀란 듯하지만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생사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표현. 彼는 孟孫才.
역주12 有旦宅而無情死 : 집이 동요하는 일은 있지만 마음이 죽는 일은 없음. 宅은 마음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신체를 의미, 郭象은 ‘神이 머무는 집[神之舍]’으로 풀이했다. 情은 신체에 머물고 있는 마음을 지칭. 旦은 怛로 놀라다는 뜻(李頤)으로 제3장에 나온 ‘無怛化’의 怛과 같다. 郭象과 王叔之는 각각 日新과 改易의 뜻으로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 奚侗은 “旦宅은 怛化로 고쳐야 하고 情은 精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게 볼 경우 有怛化而無精死로 뜻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참고할 만하다. 王叔岷도 奚侗과 같은 견해.
역주13 是自其所以乃 : 이것이 바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임. 이것이 바로 그가 상례를 잘 치렀다는 명성을 얻게 된 까닭이라는 뜻. 乃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章炳麟이 乃를 然의 假借字로 보고 如此의 뜻으로 풀이한 것을 따랐다. 郭象은 宜로 풀이하였는데 林希逸이 비판한 것처럼 정말 아래의 且자와 합쳐서 宜자(乃+且→宜)로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然으로 보고 然자의 뜻을 宜로 풀이한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自는 卽과 같다(王叔岷).
역주14 且也相與 吾之耳矣 : 또한 세상 사람들은 〈잠시〉 서로 함께하는 것을 나라고 여기는 것일 뿐임.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수많은 변화 가운데에 잠시 머무는 형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且也는 또한, 뿐만 아니라의 뜻. 〈人間世〉편에 이미 나왔다. 相與는 지금 함께하고 있는 자신의 신체를 지칭. 吾之는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는 뜻. 王先謙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잠깐 동안 지니는 몸을 보고 서로 자신이라고 여긴다[人每見吾暫有身 則相與吾之].”고 풀이했다.
역주15 庸詎知吾所謂吾之乎 : 어찌 나 자신이 이른바 나라고 여기는 것임을 알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자기 자신임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는 뜻. 王先謙은 “내가 이른바 나라고 여기는 것이 과연 나인가, 아니면 내가 아닌가[吾所謂吾之 果爲吾乎 果非吾乎].”라고 풀이했다. 庸詎知는 어찌 알 수 있겠는가의 뜻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
역주16 夢爲鳥而厲乎天 夢爲魚而沒於淵 :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며,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에 잠김. 厲는 이른다는 뜻. 《詩經》 〈大雅 旱麓〉편의 ‘鳶飛戾天 魚躍于淵’의 戾와 같다.
역주17 不識 : 알 수 없구나. 뒷구절과 연결하여 어떤 사실을 확신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
역주18 今之言者 其覺者乎 其夢者乎 :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꿈에서 깨어난 것인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孔子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앞의 ‘且汝 夢爲鳥~’를 이어보면 顔回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고, 두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역주19 造適 不及笑 : 잠시의 즐거움은 웃음에 미치지 못함. 곧 마음 속에서만 흐뭇함을 느끼는 것은 즐거움이 웃음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 造는 造次의 造와 같이(赤塚忠) 잠시의 뜻. 適은 適意(羅勉道)로 곧 마음에 꼭 맞음, 흡족함을 뜻한다. 笑는 소리내어 웃는 것.
역주20 獻笑 不及排 : 드러난 웃음은 자연의 推移에 미치지 못함. 獻은 드러났다는 뜻으로 獻笑는 앞에 나온 不及笑의 笑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역시 웃음을 뜻한다. 王叔之는 “드러남이니 뜻에 만족함이 있어 웃음으로 드러났다. 그 때문에 獻笑라 한 것이다[章也 意有適 章於笑 故曰獻笑].”로 풀이했다. 排는 자연의 推移(郭象)로 여기서는 자연의 변화를 따른다는 뜻. 朴世堂은 “排는 天命이 按排하여 결정한 것이다[排者 天命之所排而定者].”라고 풀이했다.
역주21 安排而去化 : 자연의 추이를 편안히 받아들여 변화를 잊어버림. 자연의 변화를 편안히 받아들여 변화한다는 사실 자체까지도 잊어버린다는 뜻. 安排는 앞에 나온 ‘不及排’의 排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 朴世堂은 去를 잊어버린다는 뜻[去猶忘也]으로 풀이했다.
역주22 入於寥天一 : 고요한 하늘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 들어감. 王敔는 “고요한 하늘과 일체가 된다[與廖天爲一].”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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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5장 440
동영상 재생
2 제5장 475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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