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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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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2章
顔淵 問乎仲尼曰
回嘗聞諸夫子호니이라하시니
하노이다
仲尼曰
하나니 與物化者 一不化者也 安與之相靡
君子之人 若儒墨者師따녀
聖人 處物호대 不傷物하나니 不傷物者 物亦不能傷也하나니라
唯無所傷者 爲能與人으로 相將迎이니라
山林與 皐壤與
樂未畢也하야서 哀又繼之하나다
哀樂之來 吾不能禦 其去 弗能止로소니 悲夫
世人이여 로다
至言 去言하고 至爲 去爲 니라


12章
안연顔淵중니仲尼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가 일찍이 선생님께 들었는데 ‘보내지도 말고 맞이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감히 그 까닭을 여쭙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옛사람들은 밖으로는 〈만물과 함께〉 변화해도 안은 〈자연의 천성을 지켜〉 변하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안은 〈자연의 천성을 잃고〉 변화해도 밖은 변하지 않고 〈만물과 대치하고〉 있으니 밖으로 〈만물과 함께〉 변하는 사람은 안으로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으니, 무엇을 변한다 하고 무엇을 변하지 않는다고 하겠으며 어찌 만물과 다투겠는가.
반드시 만물과 다투어 이기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희위씨狶韋氏의 동산과 황제黃帝의 들과 유우씨有虞氏의 궁궐과 임금의 집이 그러한 곳이다.
이른바 군자라는 사람들은 유가儒家묵가墨家의 스승이 되어서도 시비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이겠는가.
성인은 만물과 함께 살지만 만물을 해치지 않으니 만물을 해치지 않는 이는 만물 또한 그를 해치지 않는다.
오직 만물을 해치지 않는 자라야 다른 사람들과 서로 보내고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산과 깊은 숲을 보고 늪지의 땅을 보았는가.
나와 친함이 없지만 나로 하여금 기뻐하면서 즐기게 하는구나.
그러나 그 즐거움이 아직 다하지 않았을 때에 슬픔이 또 이어진다.
슬픔과 즐거움이 오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고, 슬픔과 즐거움이 가는 것을 내가 붙잡을 수 없으니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다만 외물外物을 맞이하고 보내는 여관일 뿐이로구나.
무릇 〈인간은〉 만난 것은 알지만 만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며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본디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찌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지극한 말은 말을 떠나고 지극한 행위는 행위를 떠나니 앎이 알 수 있는 것을 가지런히 하려고 한다면 천박한 행위가 될 뿐이다.”


역주
역주1 無有所將 無有所迎 : 보내지도 말고 맞이하지도 말라. 將은 傳送한다는 뜻. 迎은 맞이함. 〈大宗師〉편 제2장에서 “사물을 보내지 아니함이 없고 맞이하지 아니함이 없다[無不將也 無不迎也].”고 한 내용의 역설적 표현이다.
역주2 敢問其遊 : 제가 감히 그 까닭을 여쭙습니다. 遊는 까닭. 由와 같다. 奚侗은 由의 가차자로 풀이했다.
역주3 古之人 外化而內不化 今之人 內化而外不化 : 옛사람들은 밖으로는 〈만물과 함께〉 변화해도 안은 〈자연의 천성을 지켜〉 변하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안은 〈자연의 천성을 잃고〉 변화해도 밖은 변하지 않음.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변했다는 비판이다.
역주4 安化安不化 : 무엇을 변한다 하고 무엇을 변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成玄英은 安을 “맡김이다[任也].”라고 풀이하여 이 대목을 ‘변화에도 편안하고 변화하지 않음에도 편안하다.’는 뜻으로 이해했지만 바로 앞에 〈만물과 함께〉 변하는 사람은 안으로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다[與物化者 一不化者也]는 표현이 나오므로 맥락상 安을 ‘어찌’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역주5 必與之莫多 : 반드시 만물과 다투어 이기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임. 多는 많음을 다투어 이기려 한다는 뜻. 林希逸은 “多는 많기를 구함이다. 많기를 구함은 서로 이기려함이다. 많기를 구하지 않으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다[多 求多也 求多 相勝也 莫多 則不求相勝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狶韋氏之囿 黃帝之圃 有虞氏之宮 湯武之室 : 시위씨의 동산과 황제의 들과 유우씨의 궁궐과 탕임금의 집이 그러한 곳임. 狶韋氏는 상고시대의 제왕. 〈大宗師〉편에 이미 나왔다. 囿, 圃, 宮, 室은 모두 인간의 정신세계를 뜻하며 道가 있는 곳을 나타낸다.
역주7 以是非相𩐈也 而況今之人乎 : 시비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이겠는가. 𩐈는 다툰다는 뜻으로 앞의 ‘靡’자, 바로 뒤의 ‘傷’자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역주8 山林與 皐壤與〈與我無親〉使我欣欣然而樂與 : 높은 산과 깊은 숲을 보고 늪지의 땅을 보았는가. 나와 친함이 없지만 나로 하여금 기뻐하면서 즐기게 하는구나. 陳景元의 《莊子闕誤》에 인용된 江南古藏本에는 皐壤與 아래에 與我無親의 네 글자가 있는데 郭象의 주에서 이 구절을 풀이하면서 “山林과 皐壤이 나에게 잘해 주지 않지만 내가 그것들을 즐거워하니 이것이 연고 없이 즐거워하는 것이다[山林皐壤 未善於我 而我便樂之 此爲無故而樂也].”라고 했는데 方勇‧陸永品의 지적처럼 郭象 注의 ‘未善於我’가 바로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與我無親’ 네 글자에 대한 주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덧붙여 넣는다.
역주9 直爲物 逆旅耳 : 세상 사람들은 다만 外物을 맞이하고 보내는 여관일 뿐임. 逆旅는 나그네를 맞이하는 곳으로 여관이다.
역주10 夫知遇 而不知所不遇 知能能 而不能所不能 : 무릇 〈인간은〉 만난 것은 알지만 만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며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음. 遇는 경험한 것이고 不遇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역주11 夫務免乎人之所不免者 豈不亦悲哉 :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찌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알 수 없는 것을 기어코 알려 하고 할 수 없는 것을 기어코 하려 하는 세속인들의 헛된 욕심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역주12 齊知之所知則淺矣 : 앎이 알 수 있는 것을 가지런히 하려고 한다면 천박한 행위가 될 뿐임. 齊知之所知는 인간의 앎이 알 수 있는 것을 가지런히 하려 함. 곧 알 수 없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다 알려고 기를 쓴다는 뜻으로 인간이 가진 지적 욕망의 천박성을 비판하는 말이다. 齊知를 인간의 명민한 知로 보는 견해(赤塚忠, 池田知久)와 일반적인 세간의 지혜로 보는 견해(金谷治)가 있지만 齊知 자체를 성어로 보는 것은 구문상 부자연스러워 문의가 통하지 않는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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