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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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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물건이고, 낮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백성들이고, 번거롭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이고, 거칠지만 베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고, 멀지만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고, 친근하여 인정에 빠지기 쉬운 것이지만 넓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고, 절도를 귀찮게 따지지만 익혀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고, 중용을 따라 세상과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높여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고, 유일唯一 절대絶對의 하나이지만 때에 따라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고, 영묘하지만 닦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늘이다.
聖人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하며 恃於民而不輕하며 因於物而不去하나니라
그 때문에 성인은 천도天道의 변화를 살피기는 하지만 조장하지는 않으며, 덕을 이루기는 하지만 인위에 얽매이지는 않으며, 행동이 도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계획하지는 않으며, 행동이 에 부합되지만 그것을 믿지 아니하며, 에 다가가면서도 쌓지 않으며, 를 지키면서도 금기에 얽매이지 않으며, 일을 처리하면서도 핑계 대지 않으며, 법으로 백성들을 가지런히 하면서도 지배하지 않으며, 백성들에 의지하면서도 〈백성들의 노동력을〉 가볍게 사용하지 않으며, 물건을 용도에 따라 쓰기는 하지만 버리지 않는다.
물건이란 추구할 만한 가치는 없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不純於德하고 不通於道者 하니
〈그러니 이 때〉 천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자는 덕이 순일하지 못하고 도를 통달하지 못하는 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이야말로 슬프다.
何謂道
무엇을 도라 하는가.
有天道하며 有人道하니 無爲而尊者 天道也
천도天道가 있고 인도人道가 있으니 아무런 작용 없이 존귀한 것은 천도이고 인위적으로 움직여서 번거롭게 얽매이는 것이 인도이다.
主者 天道也
군주는 천도를 실천해야 하는 자이고 신하는 인도를 실천해야 할 자이다.
天道之與人道也 相去遠矣 不可不察也니라
천도와 인도는 서로 차이가 크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된다.
역주
역주1 不可不任者 : 쓰지 않을 수 없는 것. 任은 맡길 임. 그 功用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곧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란 뜻이 된다.
역주2 匿而不可不爲者 事也 : 번거롭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임. 일상의 잡무는 번거롭지만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 郭象과 成玄英은 匿을 감추다[藏]는 뜻으로 풀이했고, 馬其昶과 武延緖는 친하다[暱(닐)]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馬叙倫이 번거롭다는 뜻의 縟(욕=繁)字의 뜻으로 취한 것을 따른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3 麤而不可不陳者 法也 : 거칠지만 베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법임. 麤는 馬叙倫이 粗 또는 伹의 가차자로 본 것이 적절하다. 陳은 成玄英 疏를 따라 陳言한다, 말한다는 뜻으로 취하는 해석도 있으나(安東林) 赤塚忠의 주석에 따라 布陳‧施行의 뜻으로 취한다(池田知久). 즉 베푼다, 施行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역주4 遠而不可不居者 義也 : 멀지만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의임. 居는 몸을 둔다는 뜻. 成玄英은 遠을 道로부터 멀다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 呂惠卿, 陸樹芝 등이 지적한 것처럼 仁이 가깝다[親]면 義는 멀다는 뜻에서 遠으로 표현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福永光司도 말했듯이, 仁이 친근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倫理라고 한다면 義는 親近 관계가 없는 사회 일반의 사람들에 대한 行爲의 規範이다.
역주5 節而不可不積者 禮也 : 절도를 귀찮게 따지지만 익혀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예임. 節은 절도를 귀찮게 따진다는 뜻이고 不可不積의 積은 익혀 둔다는 뜻. 積은 池田知久도 지적하였듯이 成玄英 疏의 ‘厚也’를 따르기보다는 陸樹芝의 “積之以至於習熱也”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荀子》 〈性惡〉편에 보이는 ‘禮儀積僞’의 積과 같은 뜻.
역주6 中而不可不高者 德也 : 중용을 따라 세상과의 和合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높여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덕임. “中은 따름이다. 본성을 따라 높여 나감이다[中者 順也 順其性而高也].”라고 한 《經典釋文》의 주석, 中은 中庸일 것이라는 주석(赤塚忠), 그리고 “덕은 사람이 다 같이 生得的으로 타고난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세상과 和同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마땅히 自立하는 것이 있으니 어찌 世人과 같을 수 있겠는가[德 人所同得也 雖與世和同 有當自立處 豈得與人同].”라고 하면서 세상과 같을 수 없는 德과 대비하여 “中은 和同이다[中 和同也].”라고 한 林希逸의 주석을 참조하여 이상과 같이 해석하였음. 그러나 어딘가 똑 떨어진 해석이 되는 것 같지 않은 점이 있어, 馬叙倫(福永光司도)의 해석을 따르고 싶지만 ‘中’을 ‘得’의 假借字로 보는 해석에 얼른 따르기가 어려워 취하지 않는다. 다만 이 해석을 따르면 “生得의 것이지만 높여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덕이다.”라고 해석됨을 참고삼아 제시한다.
역주7 一而不可不易者 道也 : 唯一絶對의 하나이지만 때에 따라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도임. 易은 郭象이 難易의 易(이)라고 풀이했고, 成玄英도 郭象의 견해를 답습하여 簡易라고 풀이했지만 池田知久가 지적한 것처럼 林希逸, 陸樹芝, 馬叙倫, 錢穆 등의 견해를 따라 變易의 뜻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錢穆은 《管子》 〈形勢〉편에 “도가 말하는 것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쓰는 것은 다르다[道之所言者一也 而用之者異].”라고 한 부분이 있음을 들어 變易의 易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역주8 神而不可不爲者 天也 : 靈妙하지만 닦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늘[天]임. 爲는 닦음의 뜻. 安東林은 실천한다고 번역하였음.
역주9 觀於天而不助 : 천도의 변화를 살피기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조장하지는 않음. 〈大宗師〉편 제1장에 “心知로 道를 손상시키지 아니하고, 인위적인 행위로 무리하게 자연의 운행을 助長하지 않는다[不以心捐道 不以人助天].”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표현이다. 助는 《孟子》 〈公孫丑 上〉의 ‘勿助長’의 助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王敔).
역주10 成於德而不累 : 덕을 이루기는 하지만 인위에 얽매이지는 않음. 累는 成玄英이 흠[瑕累]으로 한 이래 이를 따르는 견해가 많지만 적절치 않다(池田知久). 또 林希逸은 “不累란 쌓아서 높이지 않음이다. 쌓아서 높이면 마음을 씀이 자연스럽지 못하다[不累者 不累積以高也 累積以爲高 則是容心不自然矣].”라고 하여 累를 累積의 뜻으로 풀이했다(池田知久).
역주11 出於道而不謀 : 행동이 道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계획하지는 않음. 道는 무위자연의 도이고 出於의 於는 from으로도 해석이 되고 to로도 해석이 됨. 道에서 나오거나, 道로 나가거나 모두 無爲自然의 도를 따른다는 뜻. 謀는 계획한다, 思慮‧努力을 한다는 뜻.
역주12 會於仁而不恃 : 행동이 인에 부합되지만 그것을 믿지 아니함. 會는 부합된다는 뜻으로 合과 같다. 不恃는 믿고 과시하지 않는다는 뜻. 王先謙은 “행동이 저절로 인과 부합되지만 그것을 믿고 의지하지는 않는다[所爲自與仁會 不恃賴之].”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不恃는, 池田知久는 《老子》 제2장에 나오는 ‘爲而不恃’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 하고 있음.
역주13 薄於義而不積 : 의에 다가가면서도 쌓지 않음. 薄은 林希逸이 풀이한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다[逼也 近也].”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王敔, 馬叙倫의 경우 泊과 迫의 가차자라 했는데 林希逸의 견해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馬其昶은 그만두다[止也]는 뜻으로 보았는데 맥락상 적절치 않고, 沈一貫은 이 구절을 ‘積於義而不薄’이 도치된 표현이라고 보았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다(池田知久).
역주14 應於禮而不諱 : 예를 지키면서도 금기에 얽매이지 않음. 諱는 말하지 말아야 할 금기. 成玄英은 “어찌 기휘에 구애되겠는가[豈拘忌諱].”라고 풀이했다. 池田知久는 兪樾이 諱를 違의 가차자로 본 것은 터무니없는 잘못이라 하고 있다.
역주15 接於事而不辭 : 일을 처리하면서도 핑계 대지 않음. 不辭는 핑계 대지 않는다는 뜻. 이때의 辭는 사양이 아니라 핑계 댄다, 일일이 설명의 말을 한다는 뜻. 그런데 口義本에는 辭가 讓으로 되어 있는데 郭象, 成玄英 이래 辭를 辭讓의 뜻으로 본 데서 기인한 오류인 듯하다(池田知久).
역주16 齊於法而不亂 : 법으로 백성들을 가지런히 하면서도 지배하지 않음. 亂은 反訓文字로 다스리다는 뜻으로, ‘治亂曰亂’에 해당한다. 民國 胡遠濬의 《莊子詮詁》, 日本의 池田知久, 金谷治 등이 이 해석을 따름. 그러나 법으로 백성들을 가지런히 하면서도 다스리지 않는다고 번역할 때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 여기서는 ‘지배하지 않는다’고 번역하였음. 亂을 글자 그대로 어지러움으로 해석하는 번역본도 많이 있음. 또 ‘齊於法’은 《論語》 〈爲政〉편의 ‘齊之以刑’을 참조할 것(福永光司).
역주17 物者 莫足爲也 而不可不爲 : 물건이란 추구할 만한 가치는 없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임. 《經典釋文》에서 陸德明은 ‘물건이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物者莫足爲也].’을 “분수 밖의 것을 가리킨다[分外也].”라고 풀이했고, 이어지는 ‘쓰지 않을 수 없는 것[不可不爲].’을 “분수 안의 것을 가리킨다[分內也].”라고 풀이했다(池田知久).
역주18 不明於天者 : 천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자. 大意는 褚伯秀가 “그렇다면 물건은 사람에게 없애기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천도를 분명히 알고 도에 통달하고 덕에 순일하게 되면 물건이 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물건이 저절로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다[然則物之於人 難去者矣 但能明于天 通于道 純于德則不待去物 而物自不能爲之累矣].”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池田知久).
역주19 無自而可 : 할 수 있는 것이 없음. 무엇에 의해서도[自]可함이 없다는 뜻. 그런데 自는 往 또는 適과 같이 나아가다는 뜻과 통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林希逸은 “어디에 간들 막히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言無往而不窒礙也].”라고 풀이했는데 이것도 自를 往의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역주20 不明於道者 悲夫 : 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이야말로 슬픔. 池田知久의 註解에도 인용되어 있듯이 林希逸은 “위에서는 천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도에 통달하지 못함을 말했고, 이곳 마무리 부분에 이르러 또 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천도를 알 수 없고 도에 통할 수 없다고 말했으니 두 구절은 같은 뜻이다[上言不明於天 不通於道 致此結處 又曰不明於道 則知不明於天 不通於道 兩句只是一意].”라고 풀이하고 있다.
역주21 有爲而累者 人道也 : 인위적으로 움직여서 번거롭게 얽매이는 것이 인도임. 累는 위 문장과 마찬가지로 얽매이다는 뜻.
역주22 臣者 人道也 : 신하는 인도를 실천해야 함. 林希逸은 “여기의 臣자와 主자는 조정의 군주와 신하가 아니다. 종래에 《莊子》를 읽는 이들이 이것을 단지 군주와 신하로 보고 말했는데 잘못이다. 이것은 일신 중의 君臣을 말한 것이다[此臣主字 不是朝廷君臣 從來讀者 只作君臣說 誤矣 此是一身中君臣].”라고 하여 이 문장의 主와 臣을 몸의 군주와 신하를 비유한 것이라고 풀이했는데 특이한 견해이지만 池田知久도 지적하였듯이 맥락상 오류인 듯하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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