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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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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새 顔淵하야
師金曰
惜乎
顔淵曰
何也
師金曰
盛以하며 하고 라가 하야는 行者 踐其首脊하고 取而爨之而已
將復取而盛以 篋 衍하며 巾以文繡하고 하면 하리니
亦取先王 하야 하며 游居寢臥其下
伐樹於宋하며 削迹於衛하며 窮於商周하니 是 非其夢邪
夫水行 莫如用舟하고 而陸行 莫如用車하니
且子 獨不見夫者乎
引之則俯하고 舍之則仰하나니
俯仰而하나니라
이오 而矜於治하시나니
하면 彼 必하야 하리니 觀古今之異컨댄 猶猨狙之異乎周公也니라
어늘 其里之醜人 하야하야 亦捧心而矉其里한대 其里之富人 見之하고 堅閉門而不出커늘 貧人 見之하고 挈妻子而去走하니
惜乎 而夫子 其窮哉인저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안연顔淵나라 악관樂官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유세遊說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금師金이 말했다.
“애석하구나!
당신의 선생은 〈이번 여행에서〉 궁지에 빠질 것이다.”
안연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사금師金이 말했다.
“무릇 제사 때 악령을 쫓기 위해 쓰는 추구芻狗가 아직 제사에 진열陳列되기 전에는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제관祭官들이 몸을 깨끗이 재계하고서 그것을 받들다가, 이미 진열陳列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길가는 사람들이 머리와 등줄기를 밟고 지나가고 풀 베는 사람들이 주워서 불을 붙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것을〉 다시 가져다가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잔다면 그는 분명 악몽을 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주 가위눌려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그대의 선생 또한 옛 성왕聖王들이 이미 진설했던 〈인의예악仁義禮樂이라고 하는〉 추구芻狗를 주워다가 모시고서 제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자고 있다.
그 때문에 송나라에서는 환퇴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였고 상나라의 옛터나 주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니 이것이 바로 악몽이 아니겠는가.
나라와 나라의 국경에서는 포위당해 7일간이나 불로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음과 삶이 서로 이웃이 될 정도로 죽도록 고생했으니 이것이 바로 가위눌려 고통을 당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무릇 물길을 가는 경우에는 배를 쓰는 것이 제일이고 땅 위를 가는 경우에는 수레를 쓰는 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배가 물 위에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땅 위에서 밀고 가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얼마(尋은 8, 은 1장6, 16) 가지 못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뭍의 차이가 아니겠으며 문화文化문화文化의 차이는 배와 수레 차이가 아니겠는가.
지금 노나라에서 옛날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그대로 시행하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땅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은 것인지라 공연히 수고스럽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고 도리어 몸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다.
공자孔子라는 사람은 일정한 방향 없이 자유롭게 유전하는 도가 만물에 대응하여 다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또 당신도 두레박을 보아서 알 것이다.
이것은 잡아당기면 아래쪽으로 엎어지고 손을 놓아 버리면 위를 본다.
저 두레박은 사람이 끌어당겨서 그렇게 된 것이지 〈두레박 쪽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아래를 굽어보거나 위로 올려다보면서 사람에게 책망받는 일이 없다.
그 때문에 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예의 법도라고 하는 것도 똑같이 시행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황오제의 예의禮義법도法度를 열매에 비유하자면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의 열매와 같을 것이다.
그 나무들의 열매의 맛은 서로 다르더라도 사람의 입맛에 맞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그러므로 예의와 법도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지금 원숭이를 잡아다 놓고 주공周公의 옷을 입히면 원숭이는 반드시 그 옷을 깨물고 물어뜯고 잡아당겨 찢어서 깡그리 없애 버린 뒤에야 비로소 흡족해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원숭이와 주공周公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들의 제도를 흉내 내는 것은 마치〉 서시西施가 가슴을 앓아 마을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자 그 마을의 어떤 추녀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자기 집에 돌아가 그 또한 가슴을 부여잡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니 그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고는 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처자식을 이끌고 그 마을을 떠나 버렸다.
그 추녀는 찡그린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만 알았고 찡그린 것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선생은 〈가서〉 궁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역주
역주1 孔子西遊於衛 :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떠남. 이하의 내용에 공자가 송나라에서 곤경을 당한 일부터 시작해서 위나라에서 배척받고 진채지간에서 고초를 겪은 일까지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번의 위나라 방문은 이들 사건이 일어난 뒤의 위나라 방문으로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이것은 《史記》 〈孔子世家〉에 기술된 孔子諸國遍歷의 차례와는 다르지만 《史記》에 그렇게 정리되기 이전에 이 장의 내용과 같은 설화도 유포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魯나라의 서울 曲阜에서부터 衛나라의 서울인 帝丘까지는 똑바로 서쪽으로 약 180㎞에 달하는 거리이다(池田知久).
역주2 師金 : 악사 金. 師는 樂工의 우두머리. 金은 그 이름. 魯나라의 太師로 추정된다. 李頤는 “師는 魯나라 太師이고 金은 그 이름이다[師 魯太師也 金 其名也].”라고 풀이했다. 《論語》에는 〈八佾〉편을 비롯하여 공자가 魯나라 태사와 이야기하는 대목이 몇 차례에 걸쳐 나오는데 동일 인물을 빗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역주3 以夫子之行爲奚如 : 선생님의 이번 遊說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以A 爲B, A를 B(어떻게) 爲(생각)하는가의 文形이다. 夫子之行은 선생님의 이번 유세 여행, 奚如는 何如와 마찬가지이다.
역주4 而夫子其窮哉 : 당신의 선생은 〈이번 遊說에서〉 궁지에 빠질 것이다. 而는 2인칭 대명사 ‘너’의 뜻. 궁지에 빠질 것이라 함은 크게 혼이 날 것이라는 뜻.
역주5 夫芻狗之未陳也 : 芻狗가 아직 제사에 陳列되기 이전. 芻狗는 풀 강아지로 무속에서 사용하는 풀로 엮어 만든 강아지 모형이다. 李頤는 “풀을 엮어서 개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무축들이 그것을 사용한다[結芻爲狗 巫祝用之].”라고 풀이했다. 成玄英은 그 용도를 “그것을 가지고 맺힌 것을 풀어 주고 나쁜 것을 제거한다[以解除也].”라고 풀이했다. 《老子》 제5장에도 같은 용어가 보인다.
역주6 篋衍 : 대나무 상자. 篋은 대로 만든 상자. 衍은 簞의 가차자로 역시 상자. 陸德明은 어떤 판본에는 篋자가 筐자로 표기되어 있다고 했다. 《經典釋文》의 李頤는 衍을 “상자이다. 개를 담는 물건이다[笥也 盛狗之物也].”라고 풀이했다. 衍은 馬叙倫에 의거 簞의 假借字로 본다.
역주7 巾以文繡 :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음. 巾은 덮는다는 뜻. 成玄英은 覆로 풀이했으며 高亨도 “巾은 덮음과 같다[巾猶覆也].”라고 풀이했다. 郭慶藩이 《莊子集釋》에서 巾을 飾의 잘못이라 함은 잘못이다(池田知久).
역주8 尸祝齊戒以將之 : 尸와 祝의 祭官들이 몸을 깨끗이 재계하고서 그것을 받듦. 尸와 祝은 모두 祭官. 尸는 太廟 안의 神主(成玄英), 祝은 귀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陸德明). 보통 尸라 할 때에는 제사 때 신위 자리에 대신 앉히는 어린 尸童을 말하고 祝이라 하면 제사 때 祝文 읽는 祭官을 의미한다. 齊자가 齋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陸德明). 將은 받든다는 뜻. 成玄英은 “보냄이다[送也].”라고 풀이했는데 역시 받들어 보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張之純, 阮毓崧이 “받든다[奉].”는 뜻으로 풀이한 것을 따른다.
역주9 及其已陳也 : 이미 陳列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陳列을 마쳤다는 것은 祭床에 차려놓고 지내는 奉納의 祭禮를 마쳤다는 뜻.
역주10 蘇者 : 풀 베는 사람. 李頤는 蘇를 풀로 보고 “蘇는 풀이다. 풀 베는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불을 땔 수 있다[蘇 草也 取草者得以炊也].”라고 풀이했는데, 여기서는 陸德明이 “《史記》에는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벤 뒤에 불을 땐다고 했는데 注에 이르기를 蘇는 풀을 벰이다 라고 했다[史記云 樵蘇後爨 注云 蘇 取草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라 蘇를 取草로 해석하였다.
역주11 遊居寢臥其下 :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잠. 〈逍遙遊〉편 제5장에는 “그 아래에서 잠시 동안 누워 잠잔다[逍遙乎寢臥其下].”라고 하여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逍遙遊〉편의 遊는 장자적 사유의 긍정적 표현으로 절대 자유를 상징한다면 여기의 遊는 한갓 선왕의 법도를 인위적으로 흉내나 내며 옛것에 구속당하는 태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표현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역주12 彼不得夢 必且數眯焉 : 그는 분명 악몽을 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주 가위눌려 시달림을 받게 될 것임. 不得夢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꿈은, 뒤에 공자가 窮地에 빠진 예를 들고 “이것이 그 악몽이 아니겠는가[是非其夢邪].”라고 하여 ‘夢’을 惡夢으로 본 것을 근거로, 惡夢이라 풀이한다. 必且는 ‘반드시’의 뜻. 眯는 악몽에 가위눌린다는 뜻이다. 成玄英이 “가위눌림이다[魘‧염].”라고 풀이한 것을 따랐다.
역주13 而夫子 : 그대의 선생. 而는 2인칭 대명사. ‘너’의 뜻.
역주14 已陳芻狗 : 이미 진설했던 〈仁義禮樂이라고 하는〉 芻狗. 이미 진설했던 芻狗는 제사 지낸 뒤에, 쓰고 나서 버린 추구라는 뜻이다.
역주15 聚弟子 : 제자를 끌어 모음. 古逸叢書本과 敦煌본, 그리고 底本인 《莊子集釋》본에는 聚로 표기되어 있으나 世德堂本 등 다른 판본에는 取로 되어 있다.
역주16 伐樹於宋 削迹於衛 窮於商周 是非其夢邪 圍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死生 相與隣 是非其眯邪 : 송나라에서는 환퇴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였고 상나라의 옛터나 주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니 이것이 바로 악몽이 아니겠는가. 또 陳나라와 蔡나라의 국경에서는 포위당해 7일간이나 불로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음과 삶이 서로 이웃이 될 정도로 죽도록 고생했으니 이것이 바로 가위눌려 고통을 당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이상은 芻狗의 비유를 통한, 공자의 시대착오적 행동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의식과는 상관없이 공자가 여러 나라에서 곤경을 겪은 것을 《孟子》에 찾아보면 〈萬章 上〉편에 “공자께서 魯나라와 衛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여 〈그곳을 떠나〉 宋나라에서 桓司馬(환퇴)가 장차 맞이하여 죽이려 함을 만나 微服으로 宋나라를 지나가셨다[孔子不悅於魯衛 遭宋桓司馬將要而殺之 微服而過宋].”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孔子受難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주석을 보려면 池田知久의 《莊子》 註解를 참고할 것.
역주17 以舟之可行於水也 而求推之於陸 : 배가 물 위에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땅 위에서 밀고 가려 한다면. 《尙書》 〈益稷〉편에는 堯임금의 아들 丹朱의 일로 “물 없는 데에서 배를 가게 하려 했다[罔水行舟].”는 기록이 보인다. 赤塚忠은 바로 그런 설화를 기초로 삼아서 이 대목을 “帝堯의 아들 丹朱는 이 같은 터무니없음을 저지른 자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8 尋常 : 尋은 여덟 자[八尺]. 常은 尋의 배. 곧 열여섯 자. 여기서는 조금, 보통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王先謙은 “여덟 자를 尋이라 하고 尋의 두 배를 常이라 한다[八尺曰 尋 倍尋曰 常].”라고 풀이했다.
역주19 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 :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뭍의 차이가 아니겠으며 周의 문화와 魯의 문화의 차이는 배와 수레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古今이 다른 것이 水와 陸의 차이와 같고 周와 魯의 다른 것이 배와 수레의 차이와 같다는 뜻이다. 春秋시대 魯나라에 먼 옛날 周나라의 禮制를 부활하려고 한 孔子의 시대착오를 야유한 것.
역주20 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 : 지금 노나라에서 옛날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그대로 시행하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땅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蘄는 바란다는 뜻. 周는 옛 周나라의 문물제도를 지칭한다. 陸德明은 “蘄는 음이 ‘기(祈)’이고 구한다는 뜻[音祈求也].”이라고 했다.
역주21 勞而無功 : 공연히 수고스럽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을 것임. 功은 功效. 이야기의 맥락은 다르지만 〈天地〉편 제11장에서 “힘은 아주 조금 들이고도 효과는 크게 얻을 수 있다[用力甚寡 而見功多].”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
역주22 彼 未知夫 無方之傳 應物而不窮者也 : 일정한 방향 없이 자유롭게 유전하는 것, 곧 도가 만물에 대응하여 다함이 없음. 앞에 보이는 彼는 공자를 가리키고, 無方之傳은 限定된 방향이 없는 轉變 즉 無限變化를 의미한다. 傳은 成玄英이 轉으로 풀이했고 郭慶藩도 역시 轉으로 보아 轉動으로 고증을 하고 있다. 應物而不窮은 끝없이 자유자재로[不窮] 대상 세계[物]에 대응[應]하는 根源의 理法 즉 道를 말한다. 이 대목은 《鶡冠子》 〈天權〉편에 보이는 말이다.
역주23 桔橰(길고) : 두레박. 두레박은 〈天地〉편에서 橰로 나왔다(阮毓崧). 다만 여기 桔橰에 作者가 담은 뜻은 〈天地〉편의 부정적인 것과는 달리 두레박이 물을 퍼 올리는 원리를 시대의 추세에 따르는 비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天地〉편 제11장의 子貢과 漢水 남쪽[漢陰]의 한 노인[一丈人]과의 문답 속에서는 槹라는 기계가 나오는데 거기서는 機械와 機事, 機心은 도와 상충되는 것으로 보아 그 기계‧기술 문명에 대한 莊子의 부정적인 입장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 〈天運〉편의 경우 두레박은 이미 세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 상식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는 점 또한 커다란 차이라 할 수 있다. 池田知久는 이것을, 道家도 새로운 시대의 到來에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역주24 彼 人之所引 非引人也 : 저 두레박은 사람이 끌어당겨서 그렇게 된 것이지 〈두레박 쪽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두레박이 제 구실을 하는 것은 사람이 끌어당기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반대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곧 세상을 다스리는 예의 법도 등의 도구도 세상의 변화 추이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 과거의 예의 법도에 맞춰서 세상을 다스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 無心히 俯仰할 뿐인 두레박이 시대착오적 作爲를 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주25 不得罪於人 : 사람에게 책망받지 않는다. 사람에게 죄를 얻지 않는다는 것은, 욕을 먹는 일 책망받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역주26 三皇五帝 : 《史記》가 〈五帝本紀〉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三皇에 대하여는 異說이 분분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지칭하는지 시대에 따라 많이 변화하고 있는데, 伏犧‧神農‧黃帝를 삼황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池田知久에 의하면 《史記》 〈秦始皇本紀〉에서는 三皇을 天皇‧地皇‧泰皇이라 하고 있다고 한다. 五帝는 《史記》의 〈五帝本紀〉에 의거 黃帝‧顓頊‧帝嚳‧堯‧舜을 가리킨다.
역주27 禮義法度 : 예의와 법도. 敦煌본에는 義자가 儀로 표기되어 있고(劉文典), 儀로 표기한 인용문도(劉文典, 王叔岷) 있지만 두 글자는 통한다(王叔岷).
역주28 不矜於同 : 똑같이 시행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님. 矜은 가치 있게 여겨서 숭상한다는 뜻. 成玄英은 “아름답게 여김이다[美也].”라고 풀이했는데 무난하기는 하지만 충분치는 않으며, 林雲銘이 “숭상함이다[尙也].”라고 풀이한 것이 정확하다(池田知久).
역주29 譬三皇五帝之禮義法度 : 삼황오제의 예의 법도를 비유함. 三皇이 三王으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王叔岷). 앞의 경우처럼 敦煌본에는 義가 儀로 표기되어 있고 儀로 표기된 인용문도 있다(王叔岷).
역주30 其猶柤梨橘柚邪 :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의 열매와 같을 것이다. 아가위나무는 앵두나무의 일종. 모두 쓸모 있는 有實樹이다. 柤梨橘柚는 〈人間世〉편 제4장에 이미 나왔다. 柤자가 査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柚의 아래에 “菓瓜之屬”이 있는 인용문이 있으나, 〈人間世〉편에 근거해서 보탠 것 같다(劉文典). 또 전체를 “其猶柤梨之食邪”로 표기한 판본도 있다(王叔岷).
역주31 其味相反而皆可於口 : 그 나무들의 열매의 맛은 서로 다르더라도 모두 다 사람의 입에 맞음. 맛은 각각 다르더라도 사람의 입맛에 맞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는 뜻이다. 相反은 서로 다르다는 뜻. 其자 앞에 雖자가 있는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또 可자 아래에 適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이 있고(劉文典), ‘皆可於口’ 아래에 也가 붙어 있는 인용문도 있다(王叔岷). 《淮南子》 〈說林訓〉편에 “배나무, 귤나무, 대추나무, 밤나무는 열매의 맛은 다르지만 모두 사람의 입에 맞다[梨橘棗栗 不同味而皆調於口].”라고 한 내용이 보이며(王叔岷), 《鶡冠子》 〈環流〉편에도 “시고 짜고 달고 써 맛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모두 잘 조절된 맛들이다[酸鹹甘苦之味相反 然其爲善均也].”라고 하여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池田知久).
역주32 禮義法度者 應時而變者也 : 예의와 법도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임. 赤塚忠이 지적하는 것처럼 《韓非子》 〈五蠹〉편의 “성인은 옛것을 닦기를 기필하지 않고 항상 옳은 것을 본보기로 삼지 않는다. 세상의 일을 논의하여 그것에 따라 대비한다.…… 옛날과 지금은 풍속이 다르므로 옛것을 새롭게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일에 대비한다[聖人不期修古 不法常可 論世之事 因爲之備……夫古今異俗 新故異備].” 등에 유래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池田知久).
역주33 今取猨狙而衣以周公之服 : 지금 원숭이를 잡아다 놓고 周公의 옷을 입힌다면. 周公은 본래 주나라의 공을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孔子가 존경하는 聖人의 한 사람인 周公 姬旦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더 자주 쓰인다. 여기서도 姬旦을 지칭한다. 武王의 동생이며 魯나라의 시조이기도 하다. 衣以周公之服의 衣는 입힌다는 뜻의 동사. 林希逸은 “周公이 예를 제정하여 冠冕衣裳의 제도가 있게 되었다[周公制禮 有冠冕衣裳之制].”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런 제도를 비웃기 위한 사례로 예시한 것이다. 《淮南子》 〈要略訓〉편에는 “주공이 노나라에 분봉을 받아서 이로써 풍속을 바꾸었고 공자는 성왕과 강왕의 도를 닦고 주공의 가르침을 전술하여 70명의 제자를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주공이 제정한 의관을 입게 하고 전적을 닦게 하였다[周公受封於魯 以此移風易俗 孔子脩成康之道 述周公之訓 以敎七十子 使服其衣冠 脩其篇籍].”라고 한 기록이 있기도 하다(池田知久).
역주34 齕齧挽裂 : 깨물고 물어뜯고 잡아당겨 찢음. 挽은 당긴다는 뜻으로 挽裂은 잡아당겨 찢어 버린다는 뜻.
역주35 盡去而後慊 : 깡그리 없애 버린 뒤에야 비로소 흡족해함. 慊은 ‘흡족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때로는 정반대의 뜻인 불만족스럽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李頤는 “만족스러워함이다[足也].”라고 풀이했고 奚侗은 快의 뜻이라 하고, 羅勉道도 일찍이 “흡족함이다[快足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6 西施病心而矉其里 : 西施가 가슴을 앓아 마을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님. 西施는 전국시대 越나라의 미인으로 〈齊物論〉편 제1장에 이미 나왔다. 病心이 心痛으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陸德明은 “《通俗文》에 이르기를 이맛살을 찌푸리는 것을 矉이라 한다고 했다[通俗文云 蹙額曰矉].”라고 풀이했다. ‘病心而矉其里 其里之醜人’의 其里가 중복되지 않고 ‘病心而矉 其里之醜人’으로 된 인용문이 있으며(馬叙倫, 王叔岷), 兪樾은 衍文이라고 했는데 池田知久는 陸德明의 《經典釋文》이 근거한 底本이나 敦煌본을 근거로 兪樾의 衍文說이 오히려 잘못이라 하고 있다.
역주37 見之而美之 :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김. 美는 羨으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는데(王叔岷, 池田知久) 그것을 따르면 ‘선’으로 읽고 “부러워하였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역주38 彼知美矉 而不知矉之所以美 : 美矉은, 底本은 矉美로 되어 있으나 이것을 오류로 보는 견해들을 따라 美矉으로 고친다. 美는 동사로 읽어 〈찡그린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는 뜻. 彼는 그 醜女를 말함. 번역은, “그 추녀는 찡그린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만 알았고 찡그린 것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했다.”가 된다. 所以美는, 아무나 찡그린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더 볼 수 없을 정도로 추해지는 등, 언제 누가 찡그려서 아름다운가 하는 이유를 말한다. 또 知가 爲로 된 인용문도 있는데(劉文典), 이것을 따르면 爲를 ‘때문’의 뜻으로 읽어 “찡그린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만 알았고 찡그린 것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로 번역해야 하는데 구문상으로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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