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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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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生也하고 而知也 無涯하니
이오 하면 可以保身이며 可以全生이며 이며 可以盡年이니라


우리의 생명은 한계가 있지만, 지식은 무한하다.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게 되면 위태로울 뿐이다.
그런데도 를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위태로울 뿐이다.
을 행하되 명예에 가까이 가지는 말며, 을 행하되 형벌에 가까이 가지는 말고, 의 경지를 따라 그것을 삶의 근본원리로 삼으면 자기 몸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고, 자신의 생명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고, 어버이를 잘 봉양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천수를 끝까지 누릴 수 있다.


역주
역주1 涯(애) : 물가. 여기서는 끝, 한계라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2 以有涯 隨無涯 :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함. 끝이 있는 것은 유한한 인간의 생명을 비유한 것이고 끝이 없는 것은 무한한 지식을 비유한 것이다. 《老子》 71장의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최고의 지혜이고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통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也].”는 언급과 유사한 맥락이다.
역주3 殆已 : 위태로울 뿐임. 郭象은 殆를 막힌다[困]는 뜻으로 풀이했고, 向秀는 疲困의 의미로 풀이했다. 殆已를 지칠 뿐이라고도 볼 수 있다. 韓元震은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면 정신이 안에서 피폐해지고 재앙이 밖에서 이른다. 지식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도리이고 삶을 기르는 방도가 아니다. 그 때문에 위태로울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以有限之生 役於無限之知 則精神內弊 患害外至 知者 卽危身之道 而非養生之方 故曰殆已].”라고 풀이했다.
역주4 已而 : 이미 그런데도. 已然而와 같다.
역주5 爲知者 : 知를 추구하는 것. 郭象은 “知를 추구하여 위태로운 것을 구제하려는 인위적인 행위이다[爲知以救之].”로 풀이했다.
역주6 殆而已矣 : 더더욱 위태로울 뿐임. 앞의 殆가 위태롭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규정한 말이라면, 여기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知를 추구하게 되면 결과로서 위태로워짐을 말한 것이다. 郭象은 앞의 殆보다 ‘정도가 심한 위태로움[眞大殆也]’을 표시한다고 보았다.
역주7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 善을 행하되 명예에 가까이 가지는 말며, 악을 행하되 형벌에 가까이 가지는 말라. 얼핏 보면 선과 악을 적절하게 행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선을 행하지도 악을 저지르지도 말라는 뜻이다. 곧 선을 행하면 명예가 생기기 때문에 결국 그 명예로 인해 위태로워지고, 악을 저지르면 형벌로 처벌받기 때문에 결국 몸이 위태로워지므로 선도 악도 아닌 中의 입장을 택하여, 일체의 善惡과 是非를 떠나라는 뜻이다. 명예와 형벌이 모두 몸을 망치는 근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無는 禁止辭로 毋와 통용한다(張之純).
역주8 緣督以爲經 : 中의 경지를 따라 그것을 삶의 근본원리로 삼음. 緣督의 督은 中의 뜻(陸德明). 《靈樞》에 의하면 사람의 八脈 가운데 중앙의 맥을 督脈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中의 뜻으로 사용한 듯하다. 緣은 順‧循‧因으로 따른다는 뜻. 緣督은 일체의 선악과 시비를 無化시켜 無心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經은 삶의 근본원리, 근본법칙.
역주9 可以養親 : 어버이를 잘 봉양할 수 있음. 親을 身의 假借字로 보고 “몸을 잘 기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지만, 여기서는 앞의 ‘保身’보다 높은 차원의 養生을 養親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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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장(1) 641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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