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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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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衛靈公하야 賦斂以爲鐘하더니
奢曰
聞之호니 이라호라
하며 하며 其送往而迎來하야 來者 勿禁하며 往者 勿止하야서 하노니
하니 而況有大塗者乎따녀


북궁사北宮奢나라 영공靈公을 위해 백성에게 특별히 세금을 걷어 그것으로 종을 만들었다.
〈이 종을 주조하기 위해〉 성곽문 밖에 토단土壇을 축조한 지 불과 삼 개월 만에 위아래 두 단에 종을 걸어놓자 〈이때 마침 나라에 망명해 있던 나라의〉 왕자王子 경기慶忌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도대체 그대는 어떤 기술을 썼습니까?”
북궁사가 대답했다.
“저는 마음을 순일純一하게 하였을 뿐 감히 다른 기술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듣건대, ‘인위人爲를 깎고 쪼아 없앤 뒤에 자연自然순박純朴함으로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멍하게 아는 것이 없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어리석은 듯하며 황홀한 가운데 가는 사람을 보내고 오는 사람을 맞이함에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아서 사나운 백성들은 사나운 채로 맡겨 두고 잘 구부리고 따르는 사람은 따르는 대로 내맡겨 두어 그들 스스로 이르는 것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세금을 거두어도 털끝만큼도 백성들을 해치는 일이 없었으니 하물며 대도大道를 체득한 사람이겠습니까?”


역주
역주1 北宮奢 : 인명. 북궁은 姓. 奢는 이름. 李頤는 “위나라 대부이며, 궁의 북쪽 북궁이라는 지방에 살았으므로 북궁이라고 하였다. 사는 그의 이름이다[衛大夫 居北宮 因以爲號 奢 其名也].”고 풀이했고, 成玄英의 풀이도 대동소이하다.
역주2 爲壇乎郭門之外 : 성곽문 밖에 土壇을 축조함. 李頤는 “제사 지내는 것이다. 기도하기 때문에 단을 쌓는다[祭也 禱之 故爲壇也].”고 풀이한 이래, 成玄英과 林希逸 등이 이 견해를 따랐지만, 宣穎이 “단을 만들고 올라가서 거기서 종을 鑄造한다[爲壇而登 因鑄於其所].”고 풀이한 것이 정확하다.
역주3 三月而成上下之縣 : 삼 개월 만에 위아래 두 단에 종을 걸어놓음. 上段 8개, 下段 8개, 合計 16개의 종이 묶여져 있는 編鐘을 완성했다는 뜻.
역주4 王子慶忌 : 왕자인 慶忌. 인명. 李頤는 “왕족이다. 경기는 周의 대부인데, 北宮奢가 쉽고 빠르게 일을 진척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질문한 것이다[王族也 慶忌 周大夫也 怪其簡速 故問之].”라고 풀이했는데, 王子 慶忌는 吳나라 왕 僚의 자식.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吳王 闔閭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위나라로 망명했다가 합려가 보낸 자객 要離에게 죽었다는 이야기가 《呂氏春秋》 〈忠廉〉편 등에 보인다(福永光司). 馬叙倫과 池田知久는 《呂氏春秋》 〈忠廉〉편의 王子 慶忌라 했는데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역주5 子何術之設 : 도대체 그대는 어떤 기술을 썼습니까? 어떤 묘수를 썼기에 이렇게 멋진 編鐘을 이렇게 簡速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역주6 奢曰 一之間 無敢設也 : 마음을 純一하게 하였을 뿐 감히 다른 기술을 쓰지 않았음. 郭象은 “고요히 하나를 끌어안아 지킬 뿐, 일을 벌여 쓸데없는 일을 늘리지 않는다[泊然抱一耳 非敢假設以益事也].”고 풀이했다.
역주7 旣彫旣琢 復歸於朴 : 人爲를 깎고 쪼아 없앤 뒤에 自然의 純朴함으로 돌아감. 林希逸은 “모난 곳을 제거해서 원래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言去圭角而歸於自然也].”고 풀이했다. 〈應帝王〉에도 “列子는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자기 아내를 위해 밥을 지었으며, 돼지를 먹이되 사람에게 먹이듯 하였으며, 매사에 더불어 親疏를 따짐이 없었고, 새기거나 쪼아대는 人爲를 버리고 소박한 데로 돌아가, 아무런 감정 없이 외로이 홀로 서서 어지러이 만물과 뒤섞였는데, 한결같이 이런 태도를 지키면서 일생을 마쳤다[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 三年不出 爲其妻爨 食豕如食人 於事無與親 彫琢復朴 塊然獨以其形立 紛而封哉 一以是終].”고 하여 彫琢復朴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또 《老子》 제28장에도 ‘常德乃足 復歸於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속의 정을 깎아 버려서 정신을 純一한 상태로 연마하는 것을 말한다(福永光司).
역주8 侗乎其無識 : 멍하게 아는 것이 없는 듯함. 陸德明은 侗乎를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無知貌].”라고 풀이했다. 한편 이 구절은 〈馬蹄〉편에 나온 ‘同乎無知’라는 표현과 유사한데 이 책의 〈馬蹄〉편에서는 ‘同乎無知’를 ‘侗乎無知’로 보지 않고 ‘함께 무지, 무욕하다’는 뜻으로 번역한 바 있다.
역주9 儻乎其怠疑 : 아무 생각 없이 어리석은 듯함. 儻은 倘(혹시 당, 어정거릴 당)으로 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王叔岷). 馬叙倫은 怳의 假借字라고 했지만 다소 무리하다. 乎자가 兮로 되어 있는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成玄英이 “생각이 없음이다[無慮也].”로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儻然과 같은데 儻然은 〈天地〉편 제11장 〈田子方〉편 제1장에도 있다(福永光司, 李勉). 怠疑는 어리석은 모습. 郭象은 “지향하는 바가 없다[無所趣也].”고 풀이했고, 章炳麟, 阮毓崧, 赤塚忠 등이 이 견해를 따랐다. 成玄英은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하거나 깊이 생각하여 분별하는 일들이 이미 사라졌다[言狐疑思慮之事 並已去矣].”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마치 게으른 듯 마치 의심하는 듯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없는 상태이다.”고 풀이했다.
역주10 萃乎芒乎 : 황홀한 모습. 萃는 武延緖가 芴(황홀할 홀, 아둔할 홀)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고, 奚侗이 芴의 假借字로 보았으며, 胡懷琛이 芴로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들의 견해를 따른다. 芒乎는 成玄英이 “멍하니 알지 못함이다[芒然不知].”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역주11 從其强梁 隨其曲傅 因其自窮 : 사나운 백성들은 사나운 채로 맡겨 두고 잘 구부리고 따르는 사람은 따르는 대로 내맡겨 두어 그들 스스로 이르는 것을 따랐을 뿐임. 從, 隨, 因은 모두 같은 뜻(林希逸, 王敔, 陳壽昌). 强梁은 힘이 세고 사나운 사람. 陸德明은 “强梁은 힘이 많음이다[强梁多力也].”고 풀이했다. 曲傅의 傅가 傳으로 표기된 판본이 있지만(馬叙倫, 劉文典, 王叔岷), 傅가 옳다(馬叙倫). 司馬彪는 “자기 자신을 굽혀서 따르는 자를 말함이다[謂曲附己者隨之也].”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窮은 窮也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羅勉道). ‘因其自窮’은 林希逸이 “自窮이란 스스로 이르는 것이다. 혹 따르기도 하고 혹 거스르기도 하지만, 要는 결국 모두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른다[自窮者 自至也 或順或逆 要終皆不求而自至].”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12 故朝夕賦斂而毫毛不挫 : 그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세금을 거두어도 털끝만큼도 백성들을 해치는 일이 없음. 毫가 豪로 표기된 판본이 있다(羅振玉). 挫는 馬叙倫의 견해를 따라 剉의 가차자로 보는 것이 무난. 不挫의 대상은 林希逸이 말하는 것처럼 백성이다. 林雲銘은 내 마음[吾心]이라 했는데 적절치 않다. 또 阮毓崧이 나와 남으로 한 것도 적절치 않다(池田知久).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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