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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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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 魯侯 有憂色이어늘
市南子曰
君有憂色 何也잇고
魯侯曰
吾是以하노라
市南子曰
君之除患之術 淺矣샷다
하며 伏於巖穴 靜也 夜行晝居 戒也이라도 定也
然且不免於之患하나니 何罪之有哉리오
其皮 爲之災也니라
魯國 獨非君之皮邪
願君 하며 洒心去欲하고하소서
有邑焉하니 名爲이니 하며 하여 與而不求其報하며 하며 이오 이로대이니 願君 去國捐俗하시고 與道 相輔而行하소서
君曰
하고 又有江山하니 我無舟車호니 奈何
市南子曰
하야 以爲君車하소서
君曰
彼其道 幽遠而無人이어시니
吾 無糧하며 我 無食호니 安得而至焉이리오
市南子曰
君其涉於江而浮於海하야 望之而不見其崖하며 愈往而不知其所窮이라
送君者 皆自崖而反이어든 自此 遠矣시리이다
願去君之累하시며 除君之憂하시고 而獨與道 遊於하소서
할새 이어든 雖有惼心之人이라도 不怒어니와 有一人 在其上이면호대 一呼而不聞하며 再呼而不聞커든 於是 三呼邪 則必以惡聲으로 隨之하리니 向也 不怒 而今也 向也하고 而今也일새니라
人能虛己以遊世하면 其孰能害之리오


저잣거리 남쪽에 사는 나라 사람 웅의료熊宜僚나라 임금을 만나 뵈었는데 나라 임금이 근심하는 기색을 띠고 있었다.
시남자市南子(熊宜僚)가 말했다.
“임금께서 얼굴에 근심스러운 안색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나라 임금이 말했다.
“나는 옛날 성왕聖王들의 치도治道를 배우고 선대先代 임금들의 유업遺業을 닦아서 귀신鬼神을 공경하고 현자賢者를 존경하여 몸소 이런 도리를 실천하여 잠시도 선왕지도先王之道를 떠나서 안일하게 거처함이 없었는데도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시남자市南子가 말했다.
“임금께서 걱정을 없애는 방법이 천박합니다.
무릇 풍성한 털을 가진 여우와 아름다운 무늬의 가죽을 가진 표범이 산림山林 깊숙한 곳에 살며 암혈巖穴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고요함을 잘 지키는 것이고, 밤에 나돌아 다니고 낮에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경계하는 것이고, 비록 배고프고 목마르고 곤궁困窮하더라도 오히려 커다란 하천河川이나 넓은 호수 가에서 멀리 떨어져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안정安定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물이나 덫에 걸려 죽는 걱정을 면치 못하니 어찌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가죽이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야말로 바로 임금님의 가죽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임금께서 임금이란 신분身分을 베어버리고 나라라는 가죽을 내버려서 마음을 씻고 욕심을 버리고 아무도 없는 들에서 자유롭게 노니시기를 바랍니다.
남월南越에 어떤 고을이 있는데 이름을 을 확립한 사람들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백성들은 우직愚直하고 소박素朴하여 사욕私欲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여서 묵묵히 일할 줄만 알고 자기 몫으로 저장貯藏할 줄 모르며, 남에게 주기만 하고 그 보답을 바라지 아니하며 도리에 꼭 맞출 줄 모르며 를 받들 줄도 모르고 미친 듯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도 대도大道를 벗어나지 아니하여 삶을 즐길 만하고 죽음을 거두어 간직할 만하니 저는 임금께서 나라를 떠나 세속世俗을 버리시고 와 더불어 서로 도우면서 이 나라[建德之國]로 떠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임금이 말했다.
“그 도정道程은 멀고 험한데다 큰 강과 산이 가로 놓여 있는데 나에게는 배와 수레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시남자市南子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오만함을 없애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집착을 없애서 그것을 임금님의 수레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임금이 말했다.
“저 는 깊고 멀어서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으니 내 누구와 이웃이 될 수 있겠습니까?
또 나는 양식이 없고 먹을 것이 없으니 어떻게 저곳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시남자市南子가 말했다.
“임금께서 비용을 줄이시고 욕심을 적게 하면 비록 양식이 없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임금께서 강을 지나 바다에 떠가시면 멀리서 바라볼 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며 갈수록 다하는 곳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임금을 전송하는 이들은 모두 그 끝에서 되돌아오면 임금께서는 거기서부터 더 멀리 나아가실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인민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 다스리는 자는 얽매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는 근심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요임금은 인민을 자신의 소유로 다스리려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임금께서 얽매인 것을 풀어버리고 근심하는 것을 제거해서 홀로 와 함께 아득한 대막의 나라[大莫之國]에서 노니시기를 바랍니다.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띄워 하수를 건너갈 때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비록 속 좁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지만 그 위에 사람이 있으면 고성으로 배를 밀어라 당겨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고 두 번 소리쳐도 듣지 못하여 결국에 세 번 소리 지르게 되면 반드시 욕설이 따르게 될 것이니 지난번에는 노여워하지 않았다가 이번에는 노여워하는 까닭은 지난번에는 빈 배였고 이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을 비워서 세상에 노닐면 누가 해칠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市南宜僚 : 인명. 司馬彪는 “熊宜僚이다. 저잣거리 남쪽에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熊宜僚也 居市南 因爲號也].”고 풀이했고, 李頤는 “성은 웅이고 이름이 의료이다[姓熊 名宜僚].”고 풀이했다. 또 陸德明은 “《春秋左氏傳》을 살펴보건대 저잣거리 남쪽에 웅의료라는 이가 있는데 초나라 사람이라고 했다[案左傳云 市南有熊宜僚 楚人也].”고 풀이하고 있다(《春秋左氏傳》 哀公16년). 한편 兪樾은 《淮南子》 〈主術訓〉편의 高誘 注에 의료가 성이고 이름이 웅으로 되어 있는 것을 들어 이름과 성이 서로 잘못된 것 같다는 견해[高注淮南主術篇云 宜遼 姓也 名熊 疑名姓字互誤]를 제시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2 魯侯 : 노나라 임금. 애공으로 추정. 文如海의 고증을 따르면 노나라 애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馬叙倫의 고증에 따르면 宣公은 아니다.
역주3 學先王之道 脩先君之業 : 聖王들의 治道를 배우고 先代 임금들의 遺業을 닦음. 成玄英은 先王을 “왕계와 문왕을 말한다[謂王季文王].”고 풀이했는데 赤塚忠의 지적처럼 너무 좁게 본 것으로 유교에서 말하는 성왕들을 포괄적으로 일컬은 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先君은 成玄英이 “주공과 백금을 말함이다[謂周公伯禽也].”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역주4 敬鬼尊賢 : 鬼神을 공경하고 賢者를 존경함. 赤塚忠의 견해를 따라 敬鬼는 《墨子》의 明鬼(귀신의 實在를 밝힘)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尊賢은 《孟子》에 ‘尊賢使能’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墨子》의 ‘尙賢’과 같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둘 다 墨家의 思想 표현이다. 한편 福永光司는 《論語》의 ‘敬鬼神而遠之’를 인용하고 있는데 일리가 있지만 맥락상 赤塚忠의 견해가 유력하다. 池田知久는 〈山木〉편 제2장이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국 말기에는, 墨家의 주장이 儒家의 그것과 혼동되어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5 親而行之 : 몸소 〈선왕의〉 도리를 실천함. 有德者와 친하여 정치를 시행한다는 견해(武延緖)와 친절하게 시행한다는 견해(林雲銘) 등이 있지만 阮毓崧이 “존경(敬鬼尊賢)의 일을 몸소 실천함이다[躬行尊敬之事].”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6 無須臾離居 然不免於患 : 잠시도 先王之道를 떠나서 안일하게 거처함이 없었는데도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함. 陸德明은 ‘無須臾離’를 揭出(드러내어 표시)하고 있으며, “崔譔본에는 離자가 없다[崔本無離字].”라 하고, 또 ‘居然’을 揭出(드러내어 표시)하여 “崔譔은 居자를 위 구절과 이어서 읽었다[崔讀以居字連上句].”라고 풀이했다. 絶句는 成玄英이 올바르다. 離는 위 문장의 ‘先王之道’ 등에서 떨어지는 것(赤塚忠). 居는 成玄英에 의거 “安居”. 이 부분의 종래의 여러 학설에 대한 정리와 비판은 赤塚忠이 뛰어나다.
역주7 豐狐文豹 : 풍성한 털을 가진 여우와 아름다운 무늬의 가죽을 가진 표범. 司馬彪는 豐을 ‘大’로 풀이했다. 이 문장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福永光司의 지적처럼 〈應帝王〉편 제4장의 ‘虎豹之文來田’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역주8 棲於山林 : 山林 깊숙한 곳에 삶. 〈天地〉편에 “민첩한 원숭이가 山林에서 붙잡혀 온다[猨狙之便 自山林來].”고 한 내용이 있다.
역주9 飢渴隱約 : 배고프고 목마르고 困窮함. 隱約은 窮困 혹은 憂苦의 뜻이다.
역주10 猶且胥疏於江湖之上而求食焉 : 오히려 커다란 河川이나 넓은 호수 가에서 멀리 떨어져 먹을 것을 찾음. 林希逸은 “비록 배고프고 목마름으로 나아가 강이나 호수 가에서 먹을 것을 구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을 피해서 그들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雖有饑渴 出而求食於江湖之上 猶且避人而與之相疏遠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1 罔羅機辟 : 〈逍遙遊〉편에도 “中於機辟 死於罔罟”라고 있다(阮毓崧). 罔은 網과 같다. 羅도 網의 일종.
역주12 刳形去皮 : 임금이란 身分을 베어버리고 魯나라라는 가죽을 내버림. 괴로움의 근원인 군주의 지위를 버리라는 뜻이다.
역주13 遊於無人之野 : 아무도 없는 들에서 자유롭게 노닒. 〈逍遙遊〉편의 “廣莫之野”, 〈在宥〉편의 “遊於無極之野”, 〈應帝王〉편의 “遊於無何有之鄕”과 유사한 표현이다. 成玄英이 “도덕의 고장을 이름이다[謂道德之鄕也].”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역주14 南越 : 지명. 郭象은 “남월에 붙인 것은 노나라와 거리가 멂을 취한 것이다[寄之南越 取其去魯之遠也].”고 풀이했다.
역주15 建德之國 : 德을 확립한 사람들의 나라. 建德은 무위자연의 德을 세웠다는 의미. 成玄英은 建德之國에 대해 “노나라와의 거리가 이미 멂을 말하고 또 무위의 도덕을 건립했음을 말한 것이다[言去魯旣遙 名建立無爲之道德也].”고 풀이했다. 《史記》 〈南越列傳〉에 南越王 建德의 이름이 보인다(池田知久).
역주16 其民愚而朴 少私而寡欲 : 그 백성들이 愚直하고 素朴하여 私欲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가짐. 福永光司는 “民에 대해 愚, 朴, 少私, 寡欲을 말하는 것은 《老子》를 답습한 것이다.”라고 풀이했는데 《老子》 제3장, 제19장, 제57장, 제65장 등에 유사한 표현이 보인다.
역주17 知作而不知藏 : 묵묵히 일할 줄만 알고 자기 몫으로 貯藏할 줄 모름. 作은 耕作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고 藏은 사사로이 곡물 등을 감춘다는 뜻이다.
역주18 不知義之所適 : 도리에 꼭 맞출 줄 모름. 適은 꼭 맞춘다는 뜻. 劉鳳苞는 適을 가다[往]의 뜻으로 보았지만 適合의 뜻으로 보는 것이 더 좋다. 무엇이 정의에 합당한가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역주19 不知禮之所將 : 禮를 받들 줄도 모름. 成玄英은 ‘將’을 ‘行’으로 풀이했다.
역주20 猖狂妄行 : 미친 듯 제멋대로 행동함. 사려분별을 일체 하지 않고 자유로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 猖狂은 상식에 구속되지 않고 미친 듯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在宥〉편 제4장, 〈庚桑楚〉편 제1장에도 보인다. 妄은 〈齊物論〉의 妄言, 妄聽의 妄과 같은 뜻으로 제멋대로, 함부로의 뜻이다. 馬叙倫은 忘의 가차자로 풀이했는데 다소 무리이다.
역주21 蹈乎大方 其生可樂 其死可葬 : 大道를 벗어나지 아니하여 삶을 즐길 만하고 죽음을 거두어 간직할 만함. 方은 成玄英에 의거 ‘道’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 大方은 〈秋水〉편에 이미 나온다(福永光司). 王敔는 大方을 “광대한 경지이다[廣大之境也].”라고 풀이했는데 적절치 않다. 林希逸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모두 도리에 합당함이다[從心所欲 皆合乎道].”고 하여 《論語》를 인용하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葬은 매장함, 간직함. 藏과 통한다.
역주22 彼其道 遠而險 : 그 道程은 멀고 험함. 彼其道의 彼는 ‘建德之國’을 지칭하며 道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뜻한다.
역주23 無形倨 無留居 : 겉으로 드러나는 오만함을 없애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집착을 없앰. 形倨는 形貌態度의 尊大함. 留居는 現狀에 얽매이는 보수적인 태도를 뜻한다.
역주24 誰與爲隣 : 누구와 이웃이 될 수 있겠습니까. 與誰爲隣과 같다.
역주25 少君之費 寡君之欲 雖無糧而乃足 : 임금이 쓰는 비용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하면 비록 양식이 없어도 충분할 것임. 林雲銘은 “이는 도에 입문하는 이는 마땅히 기욕을 제거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此言入道者當去其嗜慾也].”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郭象은 《老子》 제46장을 인용하고 있으며, 福永光司는 제19장, 제44장을 인용하고 있고, 池田知久는 제33장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乃足의 乃는 能과 같다(馬叙倫).
역주26 有人者累 見有於人者憂 : 인민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 다스리는 자는 얽매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는 근심하게 됨. 사람을 지배하는 군주는 항상 그 일 때문에 번거로움이 떠날 날이 없고 반면 남에게 지배를 당하는 인민은 고통이 떠날 날이 없다는 뜻이다.
역주27 堯非有人 非見有於人也 : 堯임금은 인민을 자신의 소유로 다스리려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지도 않았음. 堯임금은 남을 지배함도 없고 남에게 지배받지도 않는 이상적인 정치를 이 세상에 실현하였다는 의미이다.
역주28 大莫之國 : 아득한 대막의 나라. 莫은 邈, 漠, 寞, 無 등과 뜻이 통한다. 큰 寂寞의 세계. 근원적인 자유의 경지를 뜻한다. 褚伯秀는 “아무도 없는 무인의 들판을 걸어 덕이 확립된 건덕의 나라로 나아가 큰 나라에 노닐게 되면 德 또한 잊어버리게 될 것이니 바로 〈逍遙遊〉에서 이른바 무하유의 고을이 이에 해당한다[蓋由無人之野 斯造建德之國 遊大國 則德亦忘矣 卽逍遙遊所謂無何有之鄕 是也].”고 풀이했다.
역주29 方舟而濟於河 :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띄워 하수를 건너감. 方舟는 《說文解字》에서 “方은 배를 나란히 띄움이다[方 幷船也].”고 풀이한 것을 따라 나란히 배를 띄운다는 뜻인 比船으로 보는 것이 유력하나 方을 放으로 보고 단순히 배를 띄운다는 뜻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역주30 有虛船來觸 : 빈 배가 와서 부딪침. 底本에는 船이 ‘舩’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馬叙倫에 의거하여 고쳤다. 어떤 판본에는 舡으로 되어 있다(林希逸).
역주31 呼張歙之 : 배를 밀어라 당겨라 하고 소리를 지름. 張은 開(배를 밖으로 향하게 함), 歙은 斂(배를 안으로 향하게 함). 배를 ‘張하라, 歙하라’ 하고 소리 지른다[呼]는 뜻. 《淮南子》 高誘 注에 “배의 노를 젓는 자는 배를 강가에 가까이 대는 것을 ‘歙’이라 하고 강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을 ‘張’이라 한다[持舟檝者 謂近岸爲歙 遠岸爲張也].”고 풀이한 것을 따른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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