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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장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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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人卒
意知而力不能行邪
知和 曰
今夫此人 以爲與己 同時而生하야 同鄕而處者하다가 以爲夫絶俗過世之士焉하나니
此其所以論長生安體樂意之道 不亦遠乎
하며 怵惕之恐 欣歡之喜 不監於心하며 하나니
是以 貴爲天子하며 富有天下라도 而不免於患也니라
無足
夫富之於人 無所不利하니
天下雖非我라도 孰能辭之리오
知和 曰
知者之爲 故動以百姓하야 不違其度하나니
是以 足而不爭하며 니라
廉貪之實 非以迫外也
勢爲天子라도 而不以貴 驕人하며 하나니
計其患하며 慮其反하야 以爲害於性(이라)
辭而不受也하나니 非以要名譽也니라
善卷許由 得帝而不受하니 非虛辭讓也 不以事 害己니라
無足
必持其名인댄 苦體絶甘하야 約養以持生이라
知和 曰
爲福 有餘 爲害者 莫不然이로대 而財 其甚者也니라
하며 且馮而不舍하나니 可謂辱矣로다
財積而無用이어늘 服膺而不舍하야 하나니 可謂憂矣로다
此六者 天下之至害也어늘 皆遺忘하야 而不知察이라가
及其患至하야아 求盡性竭財하야 니라
觀之名則不見이오 求之利則不得이로대


무족無足지화知和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명성을 좇고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만일 이런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그 부자에게 몰려오고, 몰려와서는 그에게 몸을 굽히고 몸을 굽히고서는 곧 존경하게 되나니, 남들로부터 머리 숙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 것이 장수하고 신체가 안락하고 기분이 유쾌하게 되는 방법인데, 이제 그대만이 유독 이런 명리名利에 전연 뜻이 없으니, 가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혹 알긴 알면서도 행동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정말로 올바른 도를 결코 잊지 않고 추진하여 그것을 잊지 않아서인가?”
지화知和가 말했다.
“이제 〈명성을 좇고 이익을 얻으려는〉 저 사람들은 〈부자가 된 사람을〉 자기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거꾸로〉 그 사람은 범속凡俗함을 뛰어넘고 세상을 능가하는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오로지 올바른 주견이 없는데 그 상태로 고금古今의 시대 추이推移시비선악是非善惡의 구별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속과 동조하고 세상과 동화해서 지중至重의 생명을 없애고 지존至尊의 생명을 버리고서 그런 행동을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장수하고 신체가 안락하고 기분이 유쾌하게 되는 방법으로서는 또한 멀지 아니한가.
무엇이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병이며 무엇이 안락하고 유쾌한 편안함인가를 몸에 비추어보지 않으며, 무엇이 깜짝 놀랄 두려움이며 무엇이 흔쾌하고 즐거운 기쁨인가를 자기 마음에 비추어보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줄은 알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귀하기로는 천자가 되고 부유하기로는 천하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결코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무족無足이 말했다.
란 사람에게 이롭지 아니함이 없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 손에 넣고 모든 세력을 다 아우르는지라 지인至人이 미치지 못하고, 현인賢人이 미치지 못한다.
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용기와 힘을 돈으로 사서 끼고서 자기의 위세로 삼고, 타인의 지모知謀를 빌려서 자기의 명찰明察로 삼고, 타인의 덕행을 이용해서 자기의 훌륭함으로 삼고(賢人良才가 되고), 나라를 받아서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위엄이 마치 군주와 같다.
게다가 사람에게 성색聲色자미滋味권력權力은 배우지 않고서도 마음이 이것을 즐기고, 몸이 본받음을 기다릴 것도 없이 이것을 편안히 여기니 바라고 싫어하고 피하고 나아가는 것은 본디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천하 사람들이 비록 내가 아닐지라도 누가 이 를 사양할 수 있겠는가.”
지화知和가 말했다.
지자知者의 행위는 본시 백성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행동해서 일정한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만족하여 남과 다투지 아니하며 일부러 꼭 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다른 데서 구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데서 구하게 되는데, 그래서 사방에서 다투는데도 스스로 탐욕스럽다고 의식하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지자知者는〉 남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양하는데, 천하를 버리고서도 스스로 청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렴淸廉이니 탐욕貪慾이니 하는 실상은 밖에서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돌아보아 일정한 법도에 비추어보는 것이다.
그러니 권세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더라도 귀한 신분을 가지고 남에게 교만하게 뻐기지 않으며 부유함이 천하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천하를 버리는 것은〉 천자의 고통을 헤아리고 그것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그 가〉 자기의 본성에 해로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 까닭에 사양하고 받지 않는 것이니, 그렇게 함으로써 〈청렴하다는〉 명예를 구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요순堯舜이 제왕이 되어서 천하의 백성들이 화합하였으니 이것은 천하에 인정仁政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라 선정善政의 실현이라는 미명美名으로 자기 생명을 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권善卷허유許由는 임금자리를 양보 받고서도 받지 아니하였으니, 공연히 사양한 것이 아니라 번거로운 일 때문에 자기 생명을 해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에게 유익한 쪽으로 나가고 자기에게 해로운 쪽을 피했던 것인데 천하 사람들이 그들을 현인賢人이라고 칭송하였으니, 그들이 현인의 명예를 가질 만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명예를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무족無足이 말했다.
“사람이 반드시 자기의 명예를 지키려고 할진댄 육체를 괴롭히고 맛있는 음식을 끊어 몸의 보양保養을 줄여서 생명을 간신히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병을 앓고 긴 세월 가난에 고생하면서 죽지 않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경우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지화知和가 말했다.
“과불급 없이 평탄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고 너무 많아서 남아도는 것이 해가 되는 것은 모든 사물이 그렇지 않음이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재물의 경우가 제일 심하다.
이제 부유한 자들은 귀는 종소리, 북소리, 피리소리에 어지럽혀지고 입은 맛있는 쇠고기, 돼지고기와 탁주와 감주甘酒를 실컷 먹어서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게 되니 어지러운 생활이라 할 만하다.
왕성한 혈기에 분별없이 빠져 있어서 마치 노예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과 같으니 괴로움이라 할 만하다.
재물을 탐내서 걱정으로 우울해지고 권력을 탐해서 체력을 다 소모하여, 여가가 있을 때에는 쾌락에 탐닉하고 몸이 윤택하게 되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움직이게 되니 병이라 할 만하다.
를 바라고 이익에 달려가기 때문에 가득 참이 마치 담장에 흙을 쌓듯 하지만 그로 인한 해를 피할 줄 모르며, 또한 왕성하게 쌓으면서 그만두지 않으니 가히 이라 할 만하다.
재물이 쌓여서 그것을 쓸 데가 없는 데도 재물 쌓는 일을 가슴속에 품고 멈추지 아니하여 마음은 온통 초췌해졌는데도 재물이 더욱 보태지기를 추구하여 멈추지 않으니 근심하고 번뇌한다 이를 만하다.
집안에 있을 때에는 위협하거나 빼앗으려는 도적을 걱정하고 밖에 외출해서는 강도와 도적의 해를 두려워하여 집 둘레에는 망루와 견고한 건축물로 두르고 밖으로는 감히 혼자 다니지 않으니 두려움에 가득 찬 생활이라 할 만하다.
이 여섯 가지는 천하에서 가장 심한 해로움인데도 세상의 부자富者들은 모두 이 사실을 잊은 채 살펴볼 줄 모른다.
그러다가 재앙이 현실로 나타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 쏟고 긁어모은 재산을 다 털어서 다만 하루라도 아무 일 없는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기를 구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명예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하고 이익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
그런데도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몸을 멸망시켜 가면서까지 명리名利를 다투니 이는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역주
역주1 無足問於知和 : 無足이 知和에게 물음. 無足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끝까지 욕망을 추구하는 인물을 상징하는 가공의 인명. 《老子》 제46장에 나오는 “재앙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禍莫大於不知足].”라고 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知和는 조화, 마음의 평정, 곧 정신적으로 평화로운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가공의 인명이다. 《老子》 제55장에서 “조화를 잘 아는 것을 일정함이라 한다[知和曰常].”고 언급한 내용을 人名으로 취한 것이다. 成玄英은 “無足은 탐욕스러운 사람을 말함이니 만족할 줄 모르는 이다. 知和는 중화의 도리를 체득하여 분수를 지켜 청렴한 사람이다. 두 사람을 가정하여 탐욕과 청렴의 화복을 밝힌 것이다[無足 謂貪婪之人 不止足者也 知和 謂體知中和之道 守分淸廉之人也 假設二人以明貪廉之禍福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 人卒未有不興名就利者 彼富則人歸之 歸則下之 下則貴之 : 사람들은 누구나 명성을 좇고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만일 이런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그 부자에게 몰려오고, 몰려와서는 그에게 몸을 굽히고 몸을 굽히고서는 곧 존경하게 됨. 歸之는 ‘그에게로 귀복함’, 곧 ‘모여든다’는 뜻이다. 下之는 ‘그에게 자신을 낮춤’, ‘몸을 굽힌다’는 뜻. 人卒은 사람들. 未有不은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음.’
역주3 見下貴者 所以長生安體樂意之道也 : 남들로부터 머리 숙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 것이 장수하고 신체가 안락하고 기분이 유쾌하게 되는 방법임. 見은 피동의 표현으로 여기서는 下貴, 곧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존경하는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所以는 道也에까지 걸린다. ‘방도’, ‘방법’, ‘비결’의 의미이다.
역주4 今子獨無意焉 知不足邪 意知而力不能行邪 故推正不忘邪 : 이제 그대만이 유독 이런 名利에 전연 뜻이 없으니, 知가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혹 알긴 알면서도 행동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정말로 올바른 도를 결코 잊지 않고 추진하여 그것을 잊지 않아서인가? 意는 ‘아니면’, 抑과 같다. 郭慶藩은 “意는 어조사이다. 抑과 같이 읽는다. 抑자와 意자는 고자에는 통용했다[意 語詞也 讀若抑 抑意 古字通].”라고 풀이했다. 故는 여기서는 ‘정말로’, ‘참으로’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不忘邪가 不妄邪(함부로 하지 않음, 無妄의 의미)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陸德明).
역주5 知和曰 今夫此人以爲與己同時而生 同鄕而處者 以爲夫絶俗過世之士焉 是專無主正 所以覽古今之時 是非之分也 : 지화가 말했다. 이제 〈명성을 좇고 이익을 얻으려는〉 저 사람들은 〈부자가 된 사람을〉 자기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거꾸로〉 그 사람은 범속함을 뛰어넘고 세상을 능가하는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오로지 올바른 주견이 없는데 그 상태로 고금의 시대 추이와 시비선악의 구별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此人을 두고 成玄英, 林希逸, 福永光司 등은 ‘富貴之人’이라고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名利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王先謙은 “바로 위에 나온 명성을 좇고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다[卽上興名就利之人].”라고 풀이했는데 이 견해가 옳다. 阮毓崧도 같은 견해. 또 此人을 주어로 하는 以爲……以爲의 병렬문으로 보는 金谷治와 池田知久의 견해가 정확하다. 福永光司는 ‘同鄕而處者’의 뒤에 “모두 나만 못하다[皆不及我].”는 의미를 보충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또 以爲夫絶俗過世之士焉에서 以 뒤에 彼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또한 참고할 만하다(池田知久). 以爲與己는 以(德)爲與己의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絶俗過世之士’는 ‘세속을 뛰어넘고 세상을 능가한 사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해석이 있다. 우선 福永光司는 “知和가 말했다. 이제 그 ‘이 사람(富貴之人)’은 자기와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만이 저 凡俗을 뛰어넘고 세상을 능가하는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고금의 시대의 推移와 선악의 구별을 볼 줄 아는 주체성(主正)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맥락으로 이해했고, 金谷治와 池田知久는 “知和가 말했다. 이제 그 ‘이 사람들(興名就利하는 人卒)은 〈富貴之人을〉 자기와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고장에 살고 있〈으니 나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가 〈이번에는 거꾸로 富貴之人을〉 凡俗을 뛰어넘고 세상을 능가하는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은 고금의 推移와 선악의 구별을 볼 줄 아는 주체성(主正)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맥락으로 이해했고, 林希逸(현토본)은 “知和가 말했다. 이제 그 ‘이 사람(富貴之人)’은 나와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凡俗을 뛰어넘고 세상을 능가하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인가.”라고 하여 反語의 문장으로 이해했는데 이 글만으로 끝나면 林希逸의 해석이 가장 분명하다. 그러나 下文과의 연계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선 풀이만 소개해 둔다.
역주6 去至重 棄至尊 以爲其所爲也 : 至重의 생명을 없애고 至尊의 생명을 버리고서 그런 행동을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함. 至重과 至尊은 모두 지극히 존귀한 생명을 말한다. 成玄英은 “지극히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지극히 존귀한 것은 도이다[至重 生也 至尊 道也].”라고 풀이하여 至重과 至尊을 나누어서 이해하였고, 方勇‧陸永品은 至尊을 자연의 본성이라고 풀이했지만 맥락상 모두 생명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其所爲는 其所當爲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역주7 慘怛之疾 恬愉之安 不監於體 : 무엇이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병이며 무엇이 안락하고 유쾌한 편안함인가를 몸에 비추어보지 않음. 부귀를 추구하는 사람은 무엇이 자기 몸에 고통스럽고 즐거운지를 제대로 비추어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慘怛은 슬픔이고 恬愉는 즐거움이다[慘怛 悲也 恬愉 樂也].”라고 풀이했다.
역주8 知爲爲而不知所以爲 : 하고 싶은 일을 할 줄은 알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함. 자신의 욕망만 추구할 줄 안다는 뜻이다. 所以는 ‘목적’, 즉 不知所以爲는 하여야 하는 목적이다. 곧 부를 추구하면서도 부를 추구해야 하는 목적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역주9 窮美究埶 至人之所不得逮 賢人之所不能及 :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 손에 넣고 모든 세력을 다 아우르는지라 至人이 미치지 못하고, 賢人이 미치지 못함. 窮은 다함. 陸德明은 “窮은 다함이다[窮猶盡也].”라고 풀이했다. 究는 끝까지 추구함. 世德堂本에서는 賢人의 ‘賢’이 ‘聖’으로 표기되어 있다. 究埶의 埶는 勢와 같은 뜻으로 ‘세’로 읽는다. 한편 陸德明은 究埶의 음을 勢로 표기하고 또 다른 음으로 藝를 들고 있는데 앞의 견해를 따라 勢로 읽는다.
역주10 俠人之勇力而以爲威强 秉人之知謀以爲明察 因人之德以爲賢良 非享國而嚴若君父 : 타인의 용기와 힘을 돈으로 사서 끼고서 자기의 위세로 삼고 타인의 知謀를 빌려서 자기의 明察로 삼고, 타인의 덕행을 이용해서 자기의 훌륭함으로 삼고(賢人良才가 되고), 나라를 받아서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위엄이 마치 군주와 같음. 俠은 낀다는 뜻으로 狹과 같다(陳景元). 因은 ‘이용함’. 德은 ‘덕행’.
역주11 且夫聲色滋味權勢之於人 心不待學而樂之 體不待象而安之 : 게다가 사람에게 聲色과 滋味와 權力은 배우지 않고서도 마음이 이것을 즐기고, 몸이 본받음을 기다릴 것도 없이 이것을 편안히 여김. 聲色은 富로 얻어지는 음악과 미색. 象은 成玄英이 ‘본받음[法象]’으로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12 夫欲惡避就 固不待師 此人之性也 : 바라고 싫어하고 피하고 나아가는 것은 본디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인간의 본성임. 林希逸은 固不待師에 대해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도 잘할 수 있기 때문에 본디 스승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자연의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不待敎而後能 故曰固不待師 此出於天性之自然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3 無以爲故不求 : 일부러 꼭 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다른 데서 구하지 않음. 池田知久는 無以爲를 無所以爲의 의미로 보지만 취하지 않는다. 여기서 以爲는 ‘이유, 원인이 되는 일’
역주14 不足故求之 爭四處而不自以爲貪 有餘故辭之 棄天下而不自以爲廉 : 〈세상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데서 구하게 되는데, 그래서 사방에서 다투는데도 스스로 탐욕스럽다고 의식하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知者는〉 남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양하는데, 천하를 버리고서도 스스로 청렴하다고 생각하지 않음. 不足故求之 爭四處而不自以爲貪의 주체를 두고 池田知久는 成玄英, 呂惠卿, 林自 등의 견해를 인용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세속인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했고, 陳景元은 ‘知者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福永光司도 이런 입장이지만, 여기에서는 呂惠卿의 입장을 택하여 ‘爭四處而不自以爲貪’의 주체는 세상 사람들로 보고 ‘棄天下而不自以爲廉’은 만족할 줄 아는 知者의 이야기로 보았다. 廉은 廉潔.
역주15 廉貪之實 非以迫外也 反監之度 : 청렴이니 탐욕이니 하는 실상은 밖에서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돌아보아 일정한 법도에 비추어보는 것임. 迫은 ‘강제됨’. 監은 비추어봄. 反監은 법도에 비추어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監은 비춤이다[監 照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6 富有天下而不以財戲人 : 부유함이 천하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음. 戲는 侮와 같이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馬叙倫은 자랑하고 뽐낸다는 뜻인 詡의 假借字로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7 堯舜爲帝而雍 非仁天下也 不以美害生也 : 요순이 제왕이 되어서 천하의 백성들이 화합하였으니 이것은 천하에 仁政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라 善政의 실현이라는 미명으로 자기 생명을 해치지 않았기 때문임. 雍은 和合의 뜻. 推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孫詒讓, 章炳麟). 堯舜에 대해서는 〈讓王〉편 제1장에 “천하는 지극히 중요한 물건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는 않아야 할 것인데 또 하물며 천하 이외의 다른 물건일까 보냐. 오직 천하를 다스리겠다고 함이 없는 자라야만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夫天下至重也 而不以害其生 又況他物乎 唯無以天下爲者 可以託天下也].”라고 한 맥락과 유사하다. 仁은 동사로 非仁天下也는 仁政을 천하에 베풀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美는 美政. 천하의 통치보다도 자기의 생을 소중히 생각하였기 때문에 천하의 통치에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역주18 善卷許由得帝而不受 非虛辭讓也 不以事害己 此皆就其利 辭其害 而天下稱賢焉 則可以有之 彼非以興名譽也 : 善卷과 許由는 임금자리를 양보받고서도 받지 아니하였으니, 공연히 사양한 것이 아니라 번거로운 일 때문에 자기 생명을 해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에게 유익한 쪽으로 나가고 자기에게 해로운 쪽을 피했던 것인데 천하 사람들이 그들을 賢人이라고 칭송하였으니, 그들이 현인의 명예를 가질 만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명예를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님. 虛는 부사로 ‘의미도 없이’, 또는 ‘의미 없는’. 林希逸 현토본에는 不以事害己 뒤에 也자가 붙어 있다. ‘可以有之’에 대해서 林希逸은 “천하에서 어질다는 명성을 스스로 차지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言天下之賢名 可以自有而無愧也].”라고 풀이했고, 王先謙은 “이같이 어질다는 명성을 지니고 있을 만하다[可以有此賢名而居之].”라고 풀이했다.
역주19 必持其名 苦體絶甘 約養以持生 則亦久病長阨而不死者也 : 반드시 자기의 명예를 지키려고 할진댄 육체를 괴롭히고 맛있는 음식을 끊어 몸의 保養을 줄여서 생명을 간신히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병을 앓고 긴 세월 가난에 고생하면서 죽지 않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경우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임. 陳景元은 《莊子闕誤》에서 江南古藏本을 인용하여 ‘亦’ 다음에 ‘猶’字를 넣었다(馬叙倫, 王叔岷). 이 경우 ‘또한 ~과 같다.’는 뜻이 된다. 長阨은 ‘긴 세월 가난에 고생함’. 阨은 ‘가난 때문에 고생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이것은 無足의 말로 知和를 비난하는 내용이다[此無足之辭 以難知和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0 耳營鍾鼓筦籥之聲 : 귀는 종소리, 북소리, 피리소리에 어지럽혀짐. 王叔岷은 耳營뒤에 於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어조사는 생략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추가하지는 않는다. 營은 ‘어지럽혀진다’는 뜻이다(福永光司, 金谷治, 池田知久). 筦은 管과 통용한다.
역주21 口嗛於芻豢醪醴之味 以感其意 遺忘其業 可謂亂矣 : 입은 맛있는 쇠고기, 돼지고기와 탁주와 甘酒를 실컷 먹어서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게 되니 어지러운 생활이라 할 만함. 嗛은 실컷 먹음. 林希逸은 “입에 가득 채움이다[塞滿其口也].”라고 풀이했다. 感은 惑亂의 뜻(福永光司).
역주22 侅溺於馮氣하논디 若負重行而上也하나니 可謂苦矣 : 왕성한 혈기에 분별없이 빠져 있어서 마치 노예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과 같으니 괴로움이라 할 만함. 侅溺은 심하게 빠졌다는 뜻이다. 陸德明은 “밥을 먹어서 목구멍이 메일 정도에 이르는 것이 侅이다[飯食至咽爲侅].”라고 풀이했다. 馮氣는 왕성한 혈기. 王念孫은 “왕성한 기운이다[盛氣也].”라고 풀이했다. 行而上은 올라간다는 뜻이다(林自, 林希逸, 宣穎).
역주23 貪財而取慰 貪權而取竭 靜居則溺 體澤則馮 可謂疾矣 : 재물을 탐내서 걱정으로 우울해지고 권력을 탐해서 체력을 다 소모하여, 여가가 있을 때에는 쾌락에 탐닉하고 몸이 윤택하게 되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움직이게 되니 병이라 할 만함. 慰는 病(郭慶藩). 取慰는 ‘병이 된다, 걱정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體澤은 몸이 윤택하게 됨. 呂惠卿은 “형체가 윤택함이다[形體潤澤].”라고 풀이했다.
역주24 爲欲富就利 故滿若堵耳而不知避 : 富를 바라고 이익에 달려가기 때문에 가득 참이 마치 담장에 흙을 쌓듯 하지만 그로 인한 해를 피할 줄 모름. 若堵는 ‘담장에 흙을 쌓듯 하다.’는 뜻으로 滿若堵는 재물이 쌓임을 나타낸 표현이다(林自, 林希逸).
역주25 滿心戚醮 求益而不止 : 마음은 온통 초췌해졌는데도 재물이 더욱 보태지기를 추구하여 멈추지 않음. 戚醮는 顦顇와 같다(李頤). 成玄英은 ‘煩惱’로 풀이했다. 馬叙倫은 戚을 慽의 생략형이라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26 內則疑刦請之賊 外則畏寇盜之害 內周樓疏 外不敢獨行 可謂畏矣 : 집안에 있을 때에는 위협하거나 빼앗으려는 도적을 걱정하고 밖에 외출해서는 강도와 도적의 해를 두려워하여 집 둘레에는 망루와 견고한 건축물로 두르고 밖으로는 감히 혼자 다니지 않으니 두려움에 가득 찬 생활이라 할 만함. 疑는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恐’으로 풀이했다. 刦은 劫과 같다. 刦請은 겁탈함. 林希逸은 ‘劫取’로 풀이했고, 陸樹芝는 “위협으로 빼앗음이다[以威脅取].”라고 풀이했다. 樓疏는 高樓望臺(林希逸, 宣穎). 疏는 도적을 막기 위해 활을 쏘는 창문(安東林).
역주27 單以反一日之無故而不可得也 : 다만 하루라도 아무 일 없는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기를 구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음. 成玄英은 單을 설명하면서 “殫은 다함이다[殫 盡也].”라고 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成玄英 疏에는 殫으로 표기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馬叙倫) 어색하다. 林希逸이 “單은 홀로, 다만이다[單 獨也 但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郭嵩燾와 武延緖 등도 같은 견해. 故는 事故, 變故의 뜻이다.
역주28 繚意體而爭 此不亦惑乎 :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몸을 멸망시켜 가면서까지 名利를 다투니 이는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繚意는 흐트러뜨림. 成玄英은 “이리저리 얽어맴이다[纏繞也].”라고 풀이했고, 奚侗은 “얽어맴이다[纏也].”라고 풀이했다. 陸德明은 반대로 “다스림이다[理也].”라고 풀이했지만 옳지 않다(奚侗, 吳承仕). 繚자가 없는 판본이 있지만(馬叙倫, 王叔岷) 있는 것이 옳다(王叔岷).

장자(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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