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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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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於하야
견오肩吾연숙連叔에게 물었다.
曰 吾聞言於호되 하며 일새
“나는 접여接輿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크기만 하고 사리에 합당하지 않으며 확대되어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에 그만 놀라고 두렵기까지 하였는데 그 말은 하늘의 은하수와 같아서 끝없이 크기만 하였습니다.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서 상식에 어긋납니다.”
連叔曰
연숙連叔이 말하였다.
其言 謂何哉
“그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가.”
견오肩吾가 말하였다.
之山 居焉하니 肌膚若氷雪하고
約若하니
“‘막고야藐姑射의 산에 신인神人들이 살고 있는데 피부는 빙설氷雪처럼 희고 몸매가 부드러운 것은 처녀처럼 사랑스럽다.
곡식은 일체 먹지 않고 바람을 들이키고 이슬을 마시고서 구름 기운을 타고 비룡飛龍을 몰아 사해四海 밖에 노닌다.
하면 使物이라할새
〈신인들의〉 신묘한 정기精氣의 작용력이 응집凝集하면 모든 것을 상처나고 병들지 않게 성장시키고 해마다의 곡식이 풍성하게 영글도록 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吾以是 하노라
나는 이 때문에 〈접여의〉 이 이야기가 상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져 믿을 수가 없습니다.”
連叔
연숙이 말하였다.
하니라
“그렇겠군.
無以하고 無以與乎鐘鼓之聲하나니 리오
장님은 무늬와 빛깔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고 귀머거리는 종소리와 북소리의 황홀한 가락을 들을 수가 없는데, 어찌 육체에만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겠는가.
에도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네.
〈정신세계에도 이 있다는〉 이 말은 지금의 그대에게 딱 들어맞는 말일세.
하나니이로대하야 以天下 爲事리오
이런 신인, 이런 신인의 은 장차 이 세상 만물을 〈무위자연으로〉 혼합하여 하나로 합해 버릴 수도 있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가 천하를 다스려 주기를 바라지만, 누가 수고스럽게 애쓰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따위를 일삼겠는가.
이 사람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손상되지 아니하니, 큰 홍수가 나서 하늘에까지 닿을 지경이 되어도 물에 빠지지 아니하며 크게 가물어 금석金石이 녹아 흐르고 토산土山이 타버리더라도 불에 타지 아니한다.
신인神人은 〈먼지‧때‧쭉정이‧겨와 같은〉 자기 몸의 발톱에 낀 때 정도를 가지고서도 요임금이나 순임금 따위를 빚어낼 수 있다.
그러니 누가 세상일 따위를 기꺼이 일삼으려 하겠는가.”
나라 사람이 갓을 장사 밑천으로 장만하여 나라로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文身을 하고 있어서 갓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堯治天下之民하며 平海內之政하고 往見하야 하니라
요 임금은 천하의 민중을 다스려 사해四海 안의 정치를 평정하고서 〈어느 날〉 막고야산藐姑射山으로 가서 4명의 신인神人을 만나 보고는 〈돌아와〉 분수汾水의 북쪽에 와서 그만 멍하게 얼이 빠져 자기가 다스리는 천하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역주
역주1 肩吾 : 인명. 전설상의 인물. 아래에 나오는 接輿와 동시대의 인물로 설정되었으니 春秋時代 후기에 활약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成玄英은 ‘連叔과 아울러 옛날 도를 품었던 사람[肩吾連叔 並古之懷道人也]’이라고 풀이했고, 李頤는 현인이라 했고, 司馬彪는 神의 이름으로 풀이했다. 林希逸은 “肩吾와 連叔은 모두 반드시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두 寓言이니 또한 반드시 이름의 뜻을 찾을 것도 없다[肩吾連叔 皆未必實有此人 此皆寓言 亦不必就名字上求義理].”고 풀이했다. 肩吾의 이야기는 〈大宗師〉‧〈應帝王〉‧〈田子方〉편에도 보인다.
역주2 連叔 : 인명. 역시 전설상의 인물. 李頤는 ‘도를 품은 사람[懷道人也]’이라고 풀이했다. 《장자》에서 連叔은 여기 한 곳에만 등장한다.
역주3 接輿 : 인명. 孔子와 동시대의 楚나라의 隱者. 그러나 여기서는 架空의 인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論語》 〈微子〉편에는 공자의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을 비판한 接輿의 말이 보이는데, 朱熹는 《論語集註》에서 “夫子(孔子)께서 이때 장차 楚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그래서 接輿가 노래하며 그 수레 앞을 지나간 것이다[夫子時將適楚 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라고 풀이했다. 接輿는 《논어》 본문에 ‘楚狂接輿’로 나오기 때문에 楚狂接輿 또는 狂接輿로 흔히 불린다. 接輿에 관한 記述은 《論語》 이외에도 《荀子》 〈堯問〉편, 《戰國策》 〈秦策3〉, 《楚辭》 〈涉江〉편, 《韓非子》 〈解老〉편, 《尸子》 등의 文獻에 보인다. 尸子는 전국시대 楚나라 사람. 商鞅의 스승으로 이름은 佼. 《尸子》는 尸佼의 撰으로 본디 20편이었으나 南宋에 이르러 散失되었다고 한다. 현존의 《尸子》는 淸 章宗源이 輯成하고 孫星衍이 補訂한 것.
역주4 大而無當 : 크기만 하고 사리에 합당하지 않음. 이 편 제5장에서는 惠子가 莊子에게 “그대의 말은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다[子之言 大而無用].”고 한 이와 유사한 대목이 나온다. 王先謙은 當을 바닥, 또는 끝이라는 뜻의 底로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르면 大而無當을 터무니없이 크고 끝이 없음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當을 본래 글자 그대로 보고 하나하나의 말에 합당하게 대응하는 事物이 없다는 뜻, 곧 언설이 도리에 어긋난다는 뜻으로 보았다.
역주5 往而不返 :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음. 返은 反과 같다. 〈天下〉편의 ‘百家往而不反 必不合矣’, ‘逐萬物而不反’, 《史記》 〈樂書〉의 ‘遂往不反’ 및 〈蔡澤傳〉의 ‘往而不能自反者也’ 등의 文句를 참조하여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널리 확대되어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는다, 歸着点이 없다는 등의 해석이 가능하다. 李基東은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고 장황하게 진행되기만 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역주6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 나는 그 이야기에 그만 놀라고 두렵기까지 하였는데 그 말은 하늘의 은하수와 같아서 끝없이 크기만 하였기 때문임. 하늘의 은하수처럼 끝없이 크기만 한 그 말에 나는 놀라고 두려웠다고 해석하여도 좋다. 淸 茆泮林의 輯本에 의하면 司馬彪는 河漢은 黃河와 漢水를 말한다고 했으나 적절치 않다. 林希逸은 天河라 했고, 成玄英은 上天의 河漢이라고 했는데 이들의 견해를 따라 하늘의 銀河水로 번역하였다.
역주7 大有逕庭 : 현실과 크게 동떨어짐. 大有는 甚有의 뜻(林希逸)이고 逕庭은 현실과 멀리 동떨어졌다는 뜻. 朴世堂은 “逕은 좁은 길이다. 逕은 좁고 뜰은 넓으니 〈逕庭은〉 그 넓고 좁음이 심하게 서로 닮지 않음을 말함이다[逕 狹路 逕狹而庭廣 言其濶狹甚不相侔].”라고 풀이했다.
역주8 不近人情焉 : 인정과 가깝지 않음. 곧 사람의 상식[人情]과 어긋난다는 뜻. 林希逸은 “세속에 상식적으로 흔히 있는 바가 아님을 말한다[言非世俗所常有也].”고 하였다. 北宋의 舊派 정치인들이 新派의 王安石을 비판할 때 흔히 쓴 말도 不近人情이었다.
역주9 藐姑射(막고야) : 산명. ‘묘고야’로 읽는 사람도 있다. 막이라고 발음할 때는 멀다[遠], 넓다[廣]의 뜻이고, 묘라 발음하면 작다[小], 깔본다[輕視], 예쁘다[麗]의 뜻이 된다. 육덕명은 邈이라 音을 달았고 簡文帝는 멀다[遠]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막’이라고 읽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막고야 전체를 山名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육덕명은 姑射를 “산 이름이니 북해 속에 있다[山名 在北海中].”고 풀이하고 있어, 이에 따르면 멀리 있는 고야산이 된다. 《山海經》의 〈東山經〉과 《列子》 〈黃帝〉편을 아울러 참조할 것.
역주10 神人 : 막고야산에 있는 네 사람의 신인. 下文에 ‘往見四子藐姑射之山’이라고 하고 있어 막고야산에 있는 네 사람의 신인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司馬彪와 李頤는 〈天地〉편에 의거하여 네 사람의 신인을 許由, 齧缺, 王倪, 被衣의 네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지만, 이들의 견해는 무리한 比定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도 있다(池田知久). 또 赤塚忠은 이 네 사람[四子]을 神人‧接輿‧連叔‧肩吾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는데, 그렇게 본다면 이 神人은 複數가 아닌 單數가 되어야 한다. 일단 본문의 해석은 《釋文》의 李頤와 司馬彪의 견해를 따랐다. 중요한 것은 앞의 제1장 말미의 ‘神人無功’의 神人과 이 章의 下文에 보이는 ‘孰弊弊焉以天下爲事’는 모두 無功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역주11 綽(淖)約 : 부드러운 모양. 李頤는 유약한 모양[柔弱貌]으로 풀이했고, 司馬彪는 더 나아가 여성의 아름다움[好貌]이라 하였고 林希逸은 ‘부드럽고 고와서 사랑스러움[綽約者 柔媚可愛也]’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역주12 : 淖
역주13 處子 : 처녀를 말한다. ‘處子 處女也’(林希逸).
역주14 不食五穀 : 오곡을 먹지 않음. 五穀은 五穀百果의 오곡으로 《孟子》 〈滕文公 上〉 許行章의 趙岐 註에 의하면 벼[稻], 찰기장[黍], 메기장[稷], 보리[麥], 콩[菽]의 다섯 가지 곡식 또는 곡식의 총칭이다. 여기의 不食五穀은 〈達生〉편 등에 보이는 養生術과 道敎의 양생법인 辟穀의 典據가 되는 글이다. 《淮南子》 〈人間訓〉에는 ‘單豹(선표)……不食五穀 行年七十 猶有童子之顔色’이라는 내용이 있고, 〈達生〉편에도 魯나라의 선표가 ‘行年七十而猶有嬰兒之色’이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巖居而水飮 不與民共利’라고 하였을 뿐 〈達生〉편에는 不食五穀이라는 표현은 없다(池田知久). 또 《史記》 〈留侯世家〉의 ‘學辟穀 道引輕身’, 《論衡》 〈道虛〉편의 ‘世或以辟穀不食爲道術之人’ 등의 養生術에서 말하고 있는 辟穀의 典據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글이다(池田知久).
역주15 乘雲氣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 구름 기운을 타고 飛龍을 몰아 四海 밖에 노닒. 林希逸은 不食五穀 이하의 4구(乘雲氣御氣龍 而遊乎四海之外 포함)는 “그 神妙함을 말한 것이다[言其神妙也].”라고 풀이했다. 池田知久는 “乘雲氣, 御飛龍은 世界를 그 根底에서 지배하고 있는 것을 말하며 遊乎四海之外는 그것이 目的意識的으로 追求된 것이 아닌, 最後窮極的인 행위로서의, 세계로부터의 자유로운 超出‧遊임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龍은 자주 道의 體得者를 형용하는 말(〈在宥〉편, 〈天運〉편 등)로 쓰인다(福永光司-〈列禦寇〉편의 해설). ‘乘雲氣…’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이 편 제1장의 ‘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無窮’과 〈齊物論〉편 제3장 ‘乘雲氣 騎日月而遊乎四海之外’를 들 수 있다.
역주16 其神凝 : 신묘한 精氣의 작용력이 凝集됨. 神은 흔히 精神의 의미로 풀이(林希逸, 安東林, 李基東, 福永光司 등)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赤塚忠이 神氣‧精氣로 풀이한 견해를 따랐다. 赤塚忠은 儒家의 經典 四書의 하나인 《中庸》이 유교에 대한 대립 사상으로 등장한 道家哲學의 挑戰 속에 그 철학적 자극을 스스로에 대한 補完資料로 삼아 새로운 哲學的 理論補完을 거쳐 成立되었다는 見解(赤塚忠譯 《大學‧中庸》, 新釋漢文大系2, 明治書院, 1967)를 제시하고 있는데, 《中庸》 제27장의 내용(大哉 聖人之道 洋洋乎發育萬物 峻極于天……故曰 苟不至德 至道不凝焉)이 바로 《장자》의 이 대목(其神凝……)을 이어받은 文章일 것이라는 견해(池田知久)와 함께 주목할 만하다. 또 〈天地〉편 제2장에는 《中庸》의 위 引用文의 일부인 ‘洋洋乎發育萬物’과 類似한 표현(夫道 覆載萬物者也 洋洋乎大哉라…)이 보인다(福永光司).
역주17 疵癘(자려) : 손상시키고 병들게 함. 疵는 傷, 癘는 惡病의 뜻. 朴世堂은 ‘其神凝 使物不疵癘’에 대하여 “神凝해서 모든 物을 상처나고 병들지 않게 한다는 것은 所存者神이라 하는 것과 같다[神凝而物不疵癘 猶言所存者神].”고 하였는데 ‘所存者神’은 《孟子》 〈盡心 上〉에 보이는 말이다. “군자(여기서는 성인의 뜻에 가까움)가 지나는 곳의 백성들은 모두 그 德에 교화되고[君子所過者化]”에 이어 보이는 말이 ‘所存者神’이다. 그 뜻은 군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또는 군자가 머물고 사는 곳에서는)그 德化가 神妙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인데 바로 이 말을 朴世堂은 ‘神凝而物不疵癘’와 같은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다른 주석에서 볼 수 없는 특색있는 풀이이다.
역주18 年穀熟 : 해마다의 곡식이 풍성하게 영글도록 함. 해마다 곡식이 풍성하게 익도록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年이 부사로 쓰인 경우), 해마다의, 또는 그 해의 곡식이 잘 익도록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年을 형용사로 읽음). 그런데 年을 형용사로 읽는 年穀이란 용어는 戰國時代 이래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말(池田知久)이므로 번역은 해마다의 곡식이라고 하였다. 현토본에서도 ‘年穀이 熟이라할새’로 현토하고 있다.
역주19 狂而不信 : 상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져 믿을 수가 없음. 狂은 馬叙倫이 誑의 假借字라 하였지만, 이미 林希逸의 註에서도 ‘狂은 誑과 같다[狂 與誑同]’고 풀이했다. 誑은 속인다, 현혹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常軌를 逸脫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0 瞽者 : 장님. 陸德明은 “맹인은 눈동자가 없어서 마치 북의 가죽과 같다[盲者無目 如鼓皮也].”고 풀이했다.
역주21 與乎文章之觀 : 무늬와 빛깔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음. 與는 참여하다는 뜻(曹受坤). 文章之觀은 무늬와 빛깔의 아름다운 볼거리. 〈大宗師〉편 제6장에도 비슷한 문장 ‘夫盲者 無以與乎眉目顔色之好 瞽者 無以與乎靑黃黼黻之觀’이 보이는데, 盲者와 瞽者에 대해서는 눈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盲者로,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瞽者로 보는 등의 여러 설이 있다.
역주22 聾者 : 귀머거리. 聾은 成玄英이 ‘귀에 생긴 질병[耳病也]’으로 풀이한 것보다는 陸德明이 ‘귀가 들리지 않음[不聞也]’으로 풀이한 것이 더 명확하다.
역주23 豈唯形骸有聾盲哉 : 어찌 육체에만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겠는가. 形骸는 육체. 聾盲은 거의 모든 판본이 聾盲으로 되어 있는데, 宋의 陳景元은 聾瞽로 된 판본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金谷治의 경우는 위의 瞽者, 聾者와 잘 부합된다고 해서 聾瞽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여기서는 따르지 않았다.
역주24 夫知亦有之 : 知에도 그런 경우가 있음. 知에도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다는 뜻. 林希逸은 “어찌 육체에만 이 같은 병(장님과 귀머거리)이 있으리오. 마음에도 또한 이 같은 병(認識能力의 부족)이 있으니 그 말하는 뜻은, 그 마음에 견식이 없는 것이 귀머거리와 장님이 그러함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견오가〉 이 말(此語 : 接輿의 말)의 뜻을 알지 못하고 현혹하는 말로 여긴 것이다[豈唯形骸有此病 在心亦有此病 言其心無見識 猶聾盲然 故不知此語而以爲誑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일단 이 註解의 말 속에 보이는 此語가 접여의 말을 의미하는 것을, 다음의 ‘是其言也 猶時女也’와 연관하여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부분의 해석에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郭象도 “至言의 微妙함을 알지 못하고 狂으로 여겨 不信하였으니 이것이 知의 聾盲이다[不知至言之極妙 而以爲狂而不信 此知之聾盲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5 是其言也猶時女也 : 이 말은 지금의 그대에게 딱 들어맞는 말임. 是其言也는 ‘이(또는 그) 말은’으로 번역되는데 그 말을 누구의 말, 어떤 말로 보느냐에 따라 풀이가 달라진다. 郭象, 成玄英, 林希逸 등이 모두 接輿의 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 是其言也는 접여의 말로 보아서는 무리한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時女를 ‘猶處女也’(司馬彪) 또는 ‘少年處室之女’(成玄英) 등으로 해석해서는 더욱 무리한 해석이 뒤따르게 된다. 林希逸까지도 時女를 처녀[處子]의 뜻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林希逸은 “時는 是이고 女는 汝와 같다. 전후의 해석자들이 모두 이 時女를 處子라고 하였기 때문에 견강부회하여 뜻이 통하지 않았다[時是也 女與汝同 前後解者 皆以此時女爲處子 故牽强不通].”라고 하였다. 그러나 林希逸은 是其言也를 接輿의 말로 보기 때문에 “그 뜻은 아마도 〈접여의〉 이와 같은 말을 ‘어찌 이 너와 같은 사람들이 능히 이해할 수 있으리오’ 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其意蓋謂如此言語 豈汝一等人能之].”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현토본도 ‘是其言也ㅣ 猶時女也리오’로 토를 달고 있다. 그러나 是其言也는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라는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대의 주석가들(安東林‧李基東‧金谷治‧福永光司‧池田知久 등)이 모두 이 해석을 취하고 있고 猶時女也도 ‘이는 너와 같은 것이다’, ‘이는 너를 두고 한 말이다’, ‘너에 해당한다’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朴世堂도 이미 이와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박세당은 “肩吾가 〈접여가 말한〉 神人을 의심한 것은 또한 매미‧작은 비둘기‧메추라기가 큰 붕새를 비웃는 것과 같다. 귀와 눈의 결함은 병이 육체에 있는 것이고 인식능력의 결함은 병이 마음에 있는 것이니 이것은 〈견오가〉 神人의 경지를 알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니 〈知에도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다는〉 古人의 말은 바로 너와 같은 사람을 일컬은 것이다[按肩吾之疑於神人 亦猶蜩鳩斥鴳之笑大鵬 耳目聾瞽 病在於形 知之聾瞽 病在於心 言其不識神人 古人所言 正謂如汝者].”라고 하고 있으며 여기에 현토를 하면 ‘是其言也 猶時女也로다’가 된다.
역주26 之人也之德也 : 이런 사람과 이런 덕. 之자는 둘 다 是, 此의 뜻이다. 이 편의 제1장에 나온 ‘之二蟲又何知’의 之와 같고, 〈庚桑楚〉편에 보이는 ‘之數物者 不足以厚民’의 之도 같은 뜻이다.
역주27 將旁礡萬物以爲一 : 장차 만물을 혼합하여 하나로 합침. 旁礡을 司馬彪는 混同으로 보고 ‘혼합한다’, ‘반죽한다’는 뜻이라 했다. 以爲一은 하나로 한다, 하나로 합한다는 뜻인데 以爲一에서 句를 끊지 않고 아래의 世자까지 붙여 읽어 ‘一世蘄乎亂’에서 絶句하는 견해(林希逸, 朴世堂, 王先謙 등)도 있지만 취하지 않았다. 이 구절의 뜻은 만물을 혼합하여 하나로 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무위자연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作爲的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로 한다는 爲一은, 〈齊物論〉편 제1장에 ‘萬物與我爲一’이라고 하는 장자의 萬物齊同의 철학과 관련시켜 읽으면 더욱 깊은 뜻을 음미할 수 있다.
역주28 蘄(기)乎亂 : 다스려 주기를 바람. 곧 이런 신인들이 천하를 다스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 朴世堂은 林希逸의 견해를 인용하여 “蘄는 祈와 같고, 亂은 治이다[蘄與祈同 亂治也].”라고 풀이했다. 蘄는 祈願한다, 求한다는 뜻이고, 亂은 한 글자가 맥락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하는 反訓文字로 여기서는 治의 뜻이다. 《爾雅》 〈釋詁〉나 《說文解字》에도 亂을 治로 풀이한 내용이 있다(池田知久). 《孟子》 〈滕文公 下〉에 보이는 ‘孔子成春秋 而亂臣賊子懼’라 할 때의 亂臣의 亂은 일반적인 용법 그대로 어지럽다는 뜻이고, 《論語》 〈泰伯〉편과 《書經》 〈泰誓 中〉편에 보이는 ‘予有亂臣十人’이라 할 때의 亂臣의 亂은 治, 즉 治亂(난을 다스림)의 뜻으로 여기의 亂과 같은 뜻으로 쓰인 예이다.
역주29 弊弊焉 : 지친 모습. 애씀, 심신을 피로하게 하여 일을 함(安東林). 째째한 모습으로 풀이한 견해(李基東)도 있다.
역주30 物莫之傷 : 어떤 사물도 그를 손상시키지 못함. 그 무엇도 그를 손상하지 못한다는 뜻. 〈秋水〉편에는 ‘知道者…不以物害己’라 있고, 〈達生〉편에도 ‘故莫之能傷也’라 있고, 〈知北遊〉편에는 ‘聖人處物不傷物 不傷物者 物亦不能傷也’라는 글이 보인다(池田知久).
역주31 大浸稽天而不溺 : 큰 홍수가 나서 하늘에까지 닿을 지경이 되어도 물에 빠지지 아니함. 大浸은 홍수. 稽는 至와 같다(成玄英, 司馬彪, 林希逸 등).
역주32 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熱 : 크게 가물어 金石이 녹아 흐르고 土山이 타 버리더라도 불에 타지 아니함. 〈齊物論〉편 제3장에 보이는 ‘至人神矣 大澤焚而不能熱 河漢洹而不能寒 疾雷破山風振海而不能驚’을 참조하여 볼 것. 〈秋水〉편, 〈達生〉편, 〈大宗師〉편, 《老子》 제50장 등도 참조할 것. 大旱은 큰 가뭄, 大旱魃. 不熱은 데지 않음, 타지 않음.
역주33 是其塵垢粃穅將猶陶鑄堯舜者也 : 이 神人은 〈먼지‧때‧쭉정이‧겨〉와 같은 자기 몸의 발톱에 낀 때 정도를 가지고서도 요임금이나 순임금 따위를 빚어낼 수 있음. 塵垢粃穅은 먼지와 때와 쭉정이와 겨와 같은 자기 몸의 찌꺼기 정도의 뜻. 陶鑄는 陶器의 匠人이나 鑄物의 장인이 진흙이나 금속으로 器物을 만들어 내는 것. 유교에서 존숭하는 옛 聖王 堯舜을 神人과 비교해 하찮은 존재로 貶下한 것은, 〈則陽〉편에 魏의 賢人 戴晉人을 대피리에서 나는 낭낭하게 크게 울리는 소리로 비유한 데 비해, 堯舜을 칼자루의 작은 구멍에서 나는 둔탁하고 가는 ‘픽’소리에 비유하여 폄하한 설화가 있음을 참조할 것.
역주34 孰肯以物爲事 : 누가 세상일 따위를 기꺼이 일삼으려 하겠는가. 《淮南子》 〈俶眞訓〉에는 ‘孰肯分分然以物爲事也’로 分分然(紛紛然)의 세 글자가 보충되어 있다(王叔岷, 池田知久, 安東林).
역주35 : 국명. 周나라 초기에 殷나라 紂王의 庶兄인 微子啓가 처음으로 책봉된 나라. 지금의 河南省 商丘縣에 도읍하였고 B.C.286년에 齊‧楚‧魏에 의해 멸망당했다. 《孟子》 〈公孫丑 上〉의 ‘揠苗助長’과, 《韓非子》 〈五蠹〉편의 ‘守株待兎’는 모두 宋人이 주인공인데, 《莊子》의 이 문장에서도 章甫를 短髮文身한 越나라에 팔러 갔다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 바보스런 위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주36 資章甫 : 章甫를 장만함. 李頤는 資를 貨로 풀이했는데, 장사 밑천으로 장만하다의 뜻이다. 章甫는 역시 李頤가 은나라 관[殷冠]으로 풀이했는데, 殷의 후예인 宋人이 조상 전래의 章甫라는 갓을 존중한 데서 성립된 說話이다. 朴世堂은 “林希逸은 장보는 관이라고 했다[林云 章甫 冠也].”고 풀이하여 특별히 殷나라의 관임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이는 《論語》 〈先進〉편에 보이는 章甫라는 말을 朱子가 ‘禮冠’이라고만 풀이하여 특별히 殷나라의 갓으로 지칭하지 않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번역문에서도 章甫라는 갓이라 하지 않고 그냥 갓이라고만 하였다.
역주37 適諸越 : 월나라로 감. 諸는 之於의 줄임말로 대명사와 어조사의 결합으로 볼 수도 있다. 越은 나라 이름. 春秋時代, 江南의 원주민이 세운 나라. 浙江省의 會稽에 도읍하였으며 B.C.306년경 楚에 의해 멸망되었다.
역주38 斷髮文身無所用之 :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文身을 하고 있어서 갓을 쓸 필요가 없음. 朴世堂은 “갓〈을 쓰는 문화적인 행동〉은 천하의 美風인데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을 한 越人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章甫天下之美 而斷髮文身者無所用之].”을 “至德은 천하의 盛德인데 知的 귀머거리와 知的 장님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至德天下之盛 而聾瞽乎知者所不能識].”라고 비유하여, 不知者에 대한 풍자를 위해 설정된 이 說話에서 不知者를 越나라 사람으로 보고 있다. 풍습이 다른 越나라에 갓을 잔뜩 장만하여 팔러 간 宋人을 풍자한 것으로 보는 일반적인 해석과 다르다. 朴世堂처럼 해석하여야 越人斷髮文身의 이 節이 이 第3章의 말미에 붙어 있는 까닭이 분명해진다.
역주39 四子 : 네 사람. 네 명의 신인. 《釋文》의 司馬彪와 李頤는 〈天地〉편을 근거로 王倪, 齧缺, 被衣, 許由의 네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고 있으나 전혀 무리한 比定으로 보는 견해(池田知久)도 있다. 朴世堂도 ‘四子 亦所謂至人者’라고만 하여 四子를 누구라고 지정하지는 않고 있다.
역주40 藐姑射之山汾水之陽 : 막고야산과 분수의 북쪽. 현토본에서나 朴世堂本에서는 藐姑射之山과 汾水之陽을 연속해서 읽어 두 句 사이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藐姑射之山汾水之陽에하고’로 되어 있는 것을 池田知久의 주장을 참고하여 ‘藐姑射之山하고 汾水之陽하야’로 현토하였다. 池田知久에 의하면 “汾水는 山西省 寧武縣 부근의 山中에서 發源하여 太原市를 거쳐 山西省의 거의 中央部를 南下하여 河津縣의 서쪽에서 黃河와 合流하는 大河이다. 《說文解字》에도 ‘汾水 出太原晉陽山 西南入河’라고 하고 있다. 堯의 도읍은 그 汾水沿岸의 平陽(臨汾縣)에 있었다고 한다(《史記》 〈五帝本紀〉의 《正義》등). 또한 《隋書》 〈地理志〉에 의하면 ‘臨汾……有姑射山’이라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는 후세 사람들이 《莊子》의 이 부분에 의거해서 그 지방의 山에 이 이름을 붙인 것(李楨)이라는 說이 있고, 다른 한편 藐姑射山이 그렇게 가까이 있을 수는 없다고 하여 汾水之陽은 堯가 막고야산에 갔다가 돌아와 분수의 북쪽에 이르러서의 일로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陳壽昌 《南華眞經正義》)는 說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이 부분을 ‘어느 날 막고야산으로 가서 4명의 신인을 만나 보고는 〈돌아와〉 분수의 북쪽에 와서……’로 번역하였다. 汾水之陽의 陽은 ‘山南水北’으로 山의 경우는 남쪽이고 물(江이나 河)의 경우는 북쪽에 해당한다.
역주41 窅(요)然喪其天下 : 멍하게 얼이 빠져 천하를 잊어버림. 窅는 실의에 빠져 멍하다의 뜻. 《莊子》에는 窅然이 세 차례 보인다. 첫째는 이 부분으로 실의에 빠져 멍하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知北遊〉편의 ‘大道窅然難言哉’로 이때의 窅然은 심오하고 어두운 모양이고, 또 하나는 역시 〈知北遊〉편의 ‘窅然空然’으로 이때의 窅然은 심오한 모양, 空然은 허무한 모양이다. 喪은 忘과 같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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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3장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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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3장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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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3장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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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3장 205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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