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莊子(2)

장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장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第11章
11章
南遊於楚하다가 反於晉할새하야 러라
자공子貢이 남쪽 초나라를 여행하고 나라로 돌아올 때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가 한 노인이 야채밭에서 막 밭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땅을 파서 길을 뚫고 우물에 들어가 항아리를 안고 나와 밭에 물을 대고 있었는데 끙끙대면서 힘은 많이 쓰지만 효과는 적었다.
子貢曰
자공이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有械於此하니 호대
“여기에 기계가 있는데 하루에 백 이랑이나 물을 댈 수 있습니다.
用力甚寡而見功多하니 夫子 不欲乎
힘은 아주 조금 들이고도 효과는 크게 얻을 수 있으니 어르신은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까?”
밭일하던 노인이 얼굴을 들어 자공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奈何
“어떻게 하는건데?”
자공이 대답했다.
鑿木爲機호대 後重前輕하면 하며 하니
“나무에 구멍을 뚫어 기계를 만들되 뒤쪽은 무겁고 앞쪽은 가볍게 하면 잡아당기듯 물을 끌어올리는데 콸콸 넘치듯이 빠릅니다.
그 이름은 두레박이라고 합니다.”
爲圃者
밭일하던 노인은 불끈 얼굴빛을 붉혔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내 스승에게 들으니 ‘기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고,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욕심[機心]이 생기고,
기심機心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신묘한 본성本性[神生]이 안정을 잃게 된다.
신생神生이 불안정하게 된 자에게는 가 깃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내가 〈두레박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쓰지 않을 뿐이다.”
子貢 하야 俯而不對러니 有閒이오 爲圃者曰
자공子貢은 겸연히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밭일하던 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자공이 말했다.
孔丘之徒也
공구孔丘의 문인입니다.”
爲圃者曰
밭일하던 노인은 말했다.
非夫하며 하야서 하야 以賣名聲於天下者乎
“그대는 박학함으로 성인聖人 흉내를 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하여 온 천하에 명성名聲을 팔려는 자가 아닌가.
그대는 지금이라도 그대의 신기神氣를 잊고 그대의 신체를 버려야만 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몸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子 往矣
그대는 이만 가 보시게.
내 일 방해 말고.”
자공子貢이 부끄러워 얼굴이 창백해져서 자신을 잊은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삼십 리나 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其弟子曰
자공의 제자가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夫子 何故 見之하고 하야 잇고
선생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를 만나 보고서는 얼굴빛을 바꾸고 창백해져 종일토록 평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셨습니까?”
자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나는 천하에 우리 선생님 한 분뿐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그 위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吾 聞之夫子호니 하야 用力하고 見功 多者 聖人之道라하니 하야
나는 선생님한테서 듣기로 ‘일은 잘 되기를 구하고, 은 이루어지기를 구하여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많이 얻는 것이 성인聖人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 비로소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하고 德全者 形全하고 하나니 神全者 聖人之道也니라
를 확고하게 잡으면 이 완전하게 갖추어지고, 덕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지니,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것이야말로 성인聖人이다.
〈이 성인聖人은〉 자신의 삶을 세상에 맡겨서 백성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멍한 모습으로 순박함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지라 일의 효과와 이익, 기계와 기교 따위는 반드시 그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같은 사람은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고, 자기의 마음이 원치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아서 비록 온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 옳다 해도 오연傲然히 돌아보지 아니하고, 온 천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면서 그의 생각을 잘못이라 해도 태연히 들은 체하지 않는다.
온 천하가 비난하고 칭찬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익손益損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내면의 이 온전히 갖추어진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 같은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남의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는 인간이다.”
反於魯하야 以告孔子한대 孔子曰彼
자공子貢이〉 노나라에 돌아와 공자孔子에게 이야기했더니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노인은 혼돈씨渾沌氏를 잘못 닦은 사람이니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며, 내면만 다스리고 외양은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다.
하야 하야 하야 以遊世俗之間者라면
대저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가고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키면서 현실의 세속 세계에서 〈특별히 표날 것도 없이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었다면 네가 그런 사람을 보고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
且渾沌氏之術 리오
또 혼돈씨의 도술은 〈상식적인 사람인〉 나나 네가 어찌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인가.”
역주
역주1 子貢 : 인명. 孔子의 제자. 衛나라 출신. 姓은 端木, 이름은 賜. 子貢은 字. 子貢에 대한 기록은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자세하다. 〈大宗師〉편에 이미 나왔다.
역주2 漢陰 : 漢水의 남쪽. 陰은 산의 북쪽, 물의 남쪽을 가리킨다.
역주3 一丈人 : 한 명의 노인. 丈人은 연장자에 대한 존칭이다(方勇‧陸永品). 우리말 ‘어르신’에 해당한다.
역주4 方將爲圃畦 : 바야흐로 막 밭일을 시작함. 圃와 畦는 모두 채마밭을 뜻하고 그중에서도 畦는 50畝 면적의 밭(《說文解字》)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모두 밭일을 의미한다. 爲圃畦는 밭일을 한다는 뜻. 成玄英은 “圃는 채소를 심은 것이고, 밭두둑 한가운데를 畦라 한다[種蔬曰圃 埒中曰畦].”라고 풀이했다.
역주5 鑿隧而入井 : 땅을 파서 굴을 뚫고 우물로 들어감. 隧는 隧道로 여기서는 우물로 통하는 굴을 뜻한다. 成玄英은 ‘隧는 地道’라고 풀이했다. 入井을 우물물을 끌어들인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方勇‧陸永品)가 있지만 바로 뒤에 항아리를 이용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노인이 우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역주6 抱甕而出灌 : 항아리를 안고 나와 물을 댐. 항아리에 물을 담아 그것을 안고 나와 밭에 물을 준다는 뜻. 阮毓崧이 “抱甕以取井水 出而灌畦”라 함을 取한 해석이다(池田知久).
역주7 搰搰然用力甚多而見功寡 : 끙끙대면서 힘은 많이 쓰지만 효과는 적음. 搰搰은 애쓰는 모양. 成玄英은 “搰搰은 힘쓰는 모양이다[搰搰 用力貌].”라고 풀이했다. 見功寡는 효과를 봄이 적다는 뜻.
역주8 一日 浸百畦 : 하루에 백 이랑이나 물을 댈 수 있습니다. 하루에 백 이랑의 토지에 물을 댈 수 있다는 뜻. 《說文解字》에 의하면 畦는 50畝 면적의 밭이다. 여기서는 번역의 편의상 ‘이랑’으로 통일했다. 浸은 물을 댄다는 뜻으로 앞의 灌과 같은 뜻이다(司馬彪).
역주9 爲圃者 : 밭일하던 사람. 곧 노인.
역주10 卬而視之 : 얼굴을 들어 子貢을 봄. 卬자가 仰으로 된 판본(道藏本, 趙諫議本, 覆宋本)이 있으며 仰의 뜻으로 읽는 것이 옳다.
역주11 挈水若抽 : 잡아당기듯 물을 끌어올림. 挈은 끌다[提]는 뜻(王叔岷). 抽는 잡아당긴다는 뜻(李頤).
역주12 數(삭)如泆湯 : 콸콸 넘치듯이 빠름. 빠르기가 뜨거운 물이 끓어 넘치듯 함. 數은 빠르다[疾]는 뜻(成玄英). 李頤는 “빠르기가 마치 뜨거운 물이 끓어 넘치는 것과 같다[疾速如湯沸溢也].”라고 풀이했다. 數은 삭으로 읽고 泆은 일로 읽는다(陸德明). 司馬彪본에는 泆湯이 佚湯으로 되어 있다(陸德明).
역주13 其名爲橰 : 그 이름이 두레박임. 成玄英은 橰를 “요즘 쓰는 桔橰이다[今之所用桔橰也].”라고 풀이했는데 桔과 橰는 모두 두레박이다.
역주14 忿然作色而笑 : 불끈 얼굴빛을 붉혔다가 웃음. 막 화를 내려다가 이내 웃어 버리는 모양. 忿然은 성난 모양.
역주15 聞之吾師 : 나의 스승에게서 들음. 陸德明은 “나의 스승은 노자를 일컬음이다[吾師 謂老子也].”라고 풀이했는데, 池田知久는 스승을 老子라고 지목함은 부적당하다고 하고 있다.
역주16 有機械者 必有機事 : 기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일이 생김. 機事는 기계로 인한 일, 곧 기계가 없으면 하지도 않을 인위적인 일을 조장하게 된다는 뜻.
역주17 有機事者 必有機心 : 기계에 의한 교묘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욕심[機心]이 생김. 機心은 기계로 인한 마음으로 과도한 욕심을 뜻한다.
역주18 機心 存於胸中 則純白不備 : 機心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함. 《淮南子》 〈原道訓〉편에는 “기계의 마음이 가슴속에 간직되면 순백이 유지되지 않는다[機械之心 藏于胸中 則純白不粹].”라고 되어 있는데 본래 《莊子》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역주19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 순수 결백함이 없어지면 신묘한 본성[神生]이 안정을 잃게 됨. 吳汝綸은 神生의 生을 性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고 奚侗과 馬叙倫도 같은 견해인데 이들의 견해를 따랐다. 池田知久도 生은, 王先謙이 말하는 것처럼 性의 뜻일 것이다(吳汝綸, 奚侗, 阮毓崧, 赤塚忠도 같다)라고 하고 있다.
역주20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 神生이 불안정하게 된 자에게는 道가 깃들지 않음. 林希逸은 “道를 실을 수 없음을 말한 것[謂不能載道].”이라고 풀이했고, 陸西星은 “神性이 불안한 자는 道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道가 실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神不定者 不可以居道 故曰道之所不載也].”라고 풀이했다. 또한 載를 乘으로 보아 道가 그 위에 올라타지 않는다, 즉 道에 의해 버림받는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의에 큰 차이는 없다.
역주21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쓰지 않을 뿐임. 그런 기계가 있다는 걸 몰라서 쓰지 못하는게 아니라 알고 있지만 부끄럽게 여겨서 쓰지 않는다는 뜻. 羞는 恥로 된 引用이 있으며(王叔岷) 馬叙倫은 醜의 假借라고 한다(池田知久).
역주22 瞞然慙 : 겸연히 부끄러워함. 李頤는 瞞을 ‘부끄러워하는 모양[慙貌]’이라고 풀이했고 司馬彪본에는 ‘憮’로 되어 있고 崔譔본에는 ‘撫’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혹 《論語》 〈微子〉편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라고 池田知久는 말하고 있다.
역주23 子 奚爲者邪 :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子는 2인칭. 邪는 의문사.
역주24 博學以擬聖 : 박학함으로 聖人 흉내를 냄. 擬는 비슷하게 흉내 내다는 뜻(成玄英).
역주25 於于以蓋衆 :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림. 於于는 허튼소리. 司馬彪는 於于를 자랑하고 과장하는 모양[夸誕貌]으로 풀이했고, 馬其昶은 華誣와 같다고 했다. 章太炎은 於于를 烏盱와 같다고 보고 큰소리치는 모양으로 풀이했다. 蓋衆의 蓋는 덮는다는 뜻. 곧 민중을 위로부터 압도하여 혼란에 빠뜨린다는 뜻이다.
역주26 獨弦哀歌 :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함.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스스로 자신의 학설을 암송한다는 뜻. 林希逸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스스로 자신의 말을 암송함을 말함이다[言人不己知 而自誦自說].”라고 풀이했다. 원문은 이 ‘獨弦哀歌’의 다음에 ‘以賣名聲於天下者乎’로 이어지는데 ‘子非……’이하로 ‘天下者乎’까지를 바로 子貢에게 “그대는 …… 온 천하에 名聲을 팔려는 자가 아닌가.”라고 한 말로 번역된다. 그러나 여기 博學以擬聖에서 賣名聲於天下者까지를 바로 子貢을 지칭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자공의 스승 孔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그대는 저 박학함으로 聖人 흉내를 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하여 온 천하에 명성을 팔려는 그대의 스승[孔子]과 한패가 아닌가.”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역주27 汝 方將忘汝神氣 墮汝形骸 而庶幾乎 : 그대는 지금이라도 그대의 神氣를 잊고 그대의 신체를 버려야만 道에 가까워질 것이다. 神氣는 곧 욕심에 따라 움직이는 정신 작용의 分別知 즉 機心을 뜻하며 墮汝形骸는 자신의 신체, 곧 육체를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庶幾는 道에 가까워진다는 뜻.
역주28 而身之不能治 而何暇治天下乎 : 그대의 몸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而는 2인칭으로 汝와 같다(成玄英).
역주29 子往矣 無乏吾事 : 그대는 이만 가 보시게. 내 일 방해 말고. 乏은 廢의 뜻(陸德明)으로 방해한다는 뜻. ‘無乏吾事’는 앞의 제7장에 나오는 ‘無落吾事’와 거의 같다(林希逸). 無는 금지사로 毋와 같다.
역주30 卑陬失色 : 부끄러워 얼굴이 창백해짐. 李頤는 卑陬를 “부끄럽고 두려워하는 모양[愧懼貌].”이라고 풀이했다. 陸德明은 “안색을 차리지 못함[顔色不自得也].”이라는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한편 章太炎은 卑陬를 顰蹙으로 풀이했는데 글자의 모양이나 음으로 볼 때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역주31 頊頊然不自得 : 자신을 잊은 채 정신을 못 차림. 頊頊은 제정신을 못 차린다는 뜻. 李頤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모양[自失貌].”이라고 풀이했다.
역주32 行三十里而後 愈 : 삼십 리나 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림. 30리는 一舍로 舍는 군대가 하루 동안 행군하는 거리이다. 곧 子貢이 하루 종일 걸어간 뒤에 증세가 겨우 나았다[愈]는 뜻이다.
역주33 向之人 何爲者邪 : 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向은 아까. 과거의 어느 시점을 지칭한다.
역주34 變容失色 : 얼굴빛을 바꾸고 창백해짐. 變容은 얼굴을 바꿈. 失色은 본래의 얼굴색, 곧 화기를 잃어버렸다는 뜻.
역주35 終日不自反邪 : 종일토록 평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함. 反은 회복한다는 뜻.
역주36 以爲天下一人耳 : 천하에 우리 선생님 한 분뿐이라고 생각함. ‘以’字 아래에 ‘夫子’ 두 글자가 있는 引用이 있다고 王叔岷은 말하고 있는데, 이 경우 夫子는 말할 것도 없이 子貢의 스승인 공자를 지칭한다. 郭象도 “공자를 일컬음이다[謂孔子也].”라고 풀이했다. 天下一人은 天下之第一人으로 천하에서 첫 번째 가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
역주37 不知復有夫人也 : 다시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음. 夫人은 밭일하던 노인을 지칭한다.
역주38 事求可 功求成 : 일은 잘 되기를 구하고, 功은 이루어지기를 구함. 여기서는 자공으로 대변되는 유가의 주장을 비판하는 맥락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宋學의 집대성자인 朱熹는 자신의 《孟子集註》 〈梁惠王 下〉의 주석에서 楊時의 글을 인용하면서 “무릇 일은 반드시 되기를 기약하고 공은 반드시 이룰 것을 기약하여 지모의 끄트머리에 기필하여 올바른 천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성현의 도가 아니다[凡事求可 功求成 取必於智謀之末而不循天理之正者 非聖賢之道也].”라고 하여 도리어 《莊子》의 이 구절에 유가의 이념을 담았다.
역주39 今徒不然 : 이제 비로소 그렇지 않음을 알았음. 王引之는 徒를 乃로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라 ‘비로소’로 번역했다. 陳壽昌이나 王先謙 등은 모두 徒를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고 ‘이 사람’ 또는 ‘이 무리’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는데 옳지 않다(池田知久).
역주40 執道者 德全 : 道를 확고하게 잡으면 德이 완전하게 갖추어짐. 도를 터득한 사람은 순백의 덕성을 완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뜻(方勇‧陸永品).
역주41 形全者 神全 :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짐. 神全은 정신이 왕성해진다는 뜻(方勇‧陸永品).
역주42 託生 : 자신의 삶을 세상에 맡김. 宣穎은 託生을 寄生으로 풀이했다.
역주43 與民竝行而不知其所之 : 백성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함. 도를 터득한 사람은 인간 세상에 자신을 의탁하여 보통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지만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따로 정한 것이 없어서 (즉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해서), 사람들이 볼 때도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
역주44 汒乎淳備哉 : 멍한 모습으로 순박함을 온전히 갖춤. 汒은 어리석은 모습으로 茫과 통한다. 王叔岷은 ‘광대한 모습[廣大貌]’으로 풀이했지만 노인의 행동을 광대함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 또한 주석가에 따라서는 얽매임 없는 자유로운 모습으로 번역하기도 한다(金谷治, 安東林).
역주45 功利機巧 必忘夫人之心 : 일의 효과와 이익, 기계와 기교 따위는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 忘은 亡으로 無와 통한다(林希逸).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공리나 기교를 추구하려는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뜻.
역주46 若夫人者 非其志 不之 : 그 같은 사람은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음. 之는 간다는 뜻.
역주47 雖以天下譽之 得其所謂 謷然不顧 : 온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 옳다 해도 傲然히 돌아보지 아니함. 得은 得이라 함, 즉 옳다고 한다는 뜻이며 謷然은 거만하게 굴면서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으로 傲然와 같다. 郭象의 지적처럼 〈逍遙遊〉편에 나온 宋榮子와 같은 부류이다. 〈逍遙遊〉편에는 宋榮子를 두고 “宋榮子는 이런 자기 만족의 인물들을 빙그레 비웃는다. 그리하여 그는 온 세상이 모두 그를 칭찬하더라도 더 힘쓰지 아니하며 온 세상이 모두 그를 비난하더라도 더 氣가 꺾이지 아니한다[宋榮子 猶然笑之 且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라고 했다.
역주48 以天下非之 失其所謂 儻然不受 : 온 천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면서 그의 생각을 잘못이라 해도 태연히 들은 체하지 않음. 失은 失이라 함, 즉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며 儻然은 무심한 모양(方勇‧陸永品). 成玄英도 “儻은 무심한 모양이다[儻是無心之貌].”라고 풀이했다.
역주49 天下之非譽 無益損焉 : 온 천하가 비난하고 칭찬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益損이 없음. 칭찬하건 비난하건 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뜻.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齊物論〉편에는 “그 실상을 알든 알지 못하든 간에 그것이 참다운 존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如求得其情與不得 無益損乎其眞].”라고 하여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왔다.
역주50 是謂全德之人哉 : 이런 사람을 일컬어 내면의 德이 온전히 갖추어진 사람이라 함. 郭象은 “이런 사람은 宋榮子와 같은 무리로 덕이 완전한 사람으로 여기기는 부족한데 자공이 이 사람에게 잘못 빠졌으니 바로 열자가 계함에게 심취한 것과 같다[此宋榮子之徒 未足以爲全德 子貢之迷沒於此人 卽若列子之醉心於季咸也].”라고 하였는데, 이런 사람이 宋榮子와 같은 무리라고 한 것은 정확하지만 뒤에 孔子의 평가에서는 분명히 다르지만 적어도 子貢의 이 극찬의 말을 노인을 폄하하는 쪽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주51 我之謂風波之民 : 나 같은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남의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는 인간임. 宣穎은 “풍파는 쉽사리 시비에 동요됨을 말한 것이다[風波 言易爲是非所動].”라고 풀이했다. 〈人間世〉편에 “바람이 일으킨 물결은 쉽게 움직인다(風波易以動).”라고 하여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왔다.
역주52 假修渾沌氏之術者也 : 渾沌氏의 道를 잘못 닦은 사람이다. 여기 假는 郭象 注‧成玄英 疏와 呂惠卿이나 朱得之 등의 說에 따라 眞假의 假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渾沌은 내편 〈應帝王〉편에 보이는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거기서는 일체의 감각기관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혼돈은 未分化의 종합체로서 자연 그 자체를 비유한 것이며 道의 존재 양식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 보이는 假字에 대해서는 異說이 자못 많고, 자못 심각하게 대립되는 학설이 그에 뒤따르고 있다. 林希逸이 假를 大로 풀이한 것과 羅勉道가 託으로 이해한 것과 楊樹達이 遐의 假借로 본 것 등의 異說은 그냥 놔두고라도, 李勉의 假를 假借 즉 빌린다는 뜻으로 보는 說은 看過할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주석이다. 李勉은 “假는 빌림이니 저 사람은 渾沌氏의 道術을 빌려 자기 몸을 닦은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혼돈씨의 도술은 바로 위 문장에서 말한 神氣를 잊고 신체를 버리고 機心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은 본래 공자와 자공의 말을 빌려 丈人을 찬양하고 자공과 공자를 나무란 것인데, 郭象의 注는 假를 眞假의 假로 잘못 이해하여 마침내 공자가 장인을 비웃는 말로 여겼다[假 借 言彼借渾沌氏之術以修身者 渾沌氏之術 卽上文忘神氣 墮形骸 不用機心者 此原借孔子子貢之言以讚揚丈人 而譏子貢與孔子 郭象之注 誤假爲眞假之假 遂以爲孔子嗤丈人之詞].”라고 하였는데 뒤에 나오는 ‘識其一 不知其二’ ‘治其內 而不治其外’가 걸려서 여기서는 이 李勉의 주목할 만한 卓說을 버리고 郭象 注‧成玄英 疏의 通說을 따랐지만 두고두고 吟味해 볼 만한 說이다.
역주53 識其一 不知其二 :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함. 王叔岷은 不知의 위에 ‘而’가 있어야 한다고 하나 그대로 둔다(池田知久). 知를 識으로 한 引用도 있다(王叔岷).
역주54 治其內 而不治其外 : 내면만 다스리고 외양은 다스리지 않음. 內와 外에 대하여는 〈達生〉편에 보이는 內面(정신)만 기르고 外面(육체)을 소홀히 하다가 호랑이에게 그 육체[外]가 잡혀 먹힌 單豹(선표)의 이야기와 그 外面(사회생활)에만 신경을 쓰고 內面을 소홀히 하다가 병에 걸려 죽은 張毅의 이야기를 참고할 것.
역주55 明白入素 :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감. 밝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소박한 경지로 돌아간다는 뜻. 楊樹達은 入자를 太자로 보았지만 王叔岷의 지적처럼 여기의 入素는 바로 이어지는 無爲復朴의 復朴과 대구가 되므로 그대로 두는 것이 옳다(池田知久).
역주56 無爲復朴 :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감. 무위를 지켜 순박함을 회복한다는 뜻.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역주57 體性抱神 :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킴. 참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킨다는 뜻. 《淮南子》에는 體本抱神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뜻이다(王叔岷).
역주58 汝將固驚邪 : 네가 그런 사람을 보고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 莊子 哲學의 亞流 같은 爲圃老人(밭일하던 노인). 그 노인처럼 渾沌氏의 道를 잘못 닦은 사람을 보면 놀랄지 몰라도 “대저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가고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키면서 현실의 세속 세계에 〈특별히 표날 것도 없이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을 만나 보았더라면 어찌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라는 뜻임. 우리가 가까이 대해 볼 주석서들 가운데 赤塚忠, 金谷治, 池田知久, 安東林 같은 주석가들의 번역이 대체로 이와 같은 해석을 취하고 있다. 이때 汝는 물론 ‘너’이고 將은 be going to가 아니라 여기서는 强調의 助字이고 固는 반드시[必]의 뜻(郭象, 成玄英)이다. 꼭 맞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兪樾은 固를 胡(어찌)의 假借로까지 보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하여는 爲圃老人 같은 亞流를 보고서도 놀란 너는 〈明白入素하야 無爲復朴하야 體性抱神하야 以遊世俗之間〉한 사람을 만났다면 반드시 크게 놀라 기절초풍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번역하는 학자도 있다(福永光司).
역주59 予與汝 何足以識之哉 : 나나 네가 어찌 충분히 알 수 있겠는가. 나나 너 같은 속인이 어찌 그런 渾沌氏의 術을 알 수 있겠는가의 뜻.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