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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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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2章
子將奚之
將之大壑하노라
奚爲焉
夫大壑之爲物也 注焉而不滿하며 酌焉而不竭하나니
호리라
苑風曰
願聞聖治하노라
諄芒曰
하며 하며 하면 하야 四方之民 莫不俱至하나니 此之謂聖治니라
願聞德人하노라
願聞神人하노라


12章
순망諄芒이 동방의 대해大海로 가려고 하다가 마침 동해의 바닷가에서 원풍苑風과 만났다.
원풍苑風이 말했다.
“선생은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해大海(大壑)로 가려고 하네.”
원풍이 말했다.
“거기에 가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해大海라는 물건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며,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
내 거기서 노닐까 한다.”
원풍이 말했다.
“선생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지요?
성인의 정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순망이 말했다.
“아, 성인의 정치 말인가?
그거야 관직을 설치하되 마땅함을 잃어버리지 않고, 인재를 발탁하되 능력 있는 자를 놓치지 않고, 신하들의 사정을 다 살펴보고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시행토록 하면 행동과 말이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서 비롯되어 천하가 교화되어 손가락을 까닥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만으로도 사방의 백성들이 다 찾아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런 것을 성인의 정치라 한다.”
덕인德人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순망이 말했다.
덕인德人이란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는 생각함이 없고 돌아다닐 때에도 헤아림이 없으며 마음속에 옳고 그름과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품지 않는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이롭다고 여기는 것을 자신의 기쁨이라 여기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을 자신의 편안함으로 여기면서도 구슬프게 기운 없는 모습으로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잃은 것 같고, 멍한 모습이 마치 길을 가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고, 재용財用이 넉넉한데도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며, 음식을 충분히 먹으면서도 그 소종래所從來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덕인의 모습이라 한다.”
신인神人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순망이 말했다.
“신인은 자기의 정신을 하늘 위로 올라가게 하여 해나 달의 빛을 타고 형체와 함께 완전히 로 돌아가나니 이것을 일러 조광照曠(밝은 공허)이라 한다.
천명을 극진히 하고 자신의 성정을 다하면 천지자연의 질서가 즐겁게 보전되고 인간 사회의 모든 재앙이나 불상사가 다 소멸되어 없어지며 만물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이것을 일러 혼명混冥이라 한다.”


역주
역주1 諄芒 : 寓意의 人名. 諄은 淳과 통하는 글자로 淳朴함을 뜻하고, 芒은 茫과 통하는 글자로 멍하니 어리석은 모습을 뜻한다. 세속을 초월한 사람으로 無爲의 有道者를 비유한 것이다.
역주2 將東之大壑 : 동방의 大海로 가려고 함. 之는 가다. 東之는 동쪽으로 가다는 뜻. 大壑은 大海.
역주3 適遇苑風於東海之濱 : 마침 동해의 바닷가에서 苑風과 만남. 適은 때마침.
역주4 苑風 : 역시 寓意의 人名. 바람의 의인화. 앞의 순망과 대비되는 有爲의 사람. 주석가에 따라서는 세속에 노니는 작은 사람이라고도 하고, 超越의 哲學에는 관심이 없고 작은 일에 관심을 품고 있는 有爲의 인간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5 大壑之爲物也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吾將遊焉 : 大海라는 물건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며,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음. 大海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 모든 존재에게 주면서도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는 廣大無邊한 존재로 道의 상징이다. 李頤는 大壑을 東海라고 했는데 위의 東之大壑으로 미루어 볼 때 일리가 있다. 注는 물을 들이붓는다는 뜻이고 酌은 물을 퍼낸다는 뜻이다. 陸德明은 酌이 取로 된 판본이 있다고 했고, 取로 된 인용문도 있다(王叔岷). 大壑은 大道를 비유한 것이고 大壑에 노닌다는 표현은 大道에 노니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方勇‧陸永品).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에 대하여는 《老子》의 제4장‧제15장‧제45장과 〈齊物論〉‧〈秋水〉편을 참조할 것. 특히 〈秋水〉편 제1장의 “천하의 물에는 바다보다 큰 것이 없다. 모든 강물이 이리로 흘러들어 언제 그칠지 모르는데도 넘치는 일이 없다. 尾閭로 바닷물이 새어 나가 그것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데도 텅 비는 일이 없다. 봄가을로 변하는 일도 없고 洪水나 旱魃도 알지 못한다[天下之水 莫大於海 萬川歸之 不知何時止而不盈 尾閭泄之 不知何時已而不虛 春秋不變 水旱不知].”라고 있는 것을 반드시 참조할 것.
역주6 夫子 無意於橫目之民乎 : 선생은 〈초월자로서 道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도 좋습니다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人間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지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을 가진 사람들이란 뜻의 橫目之民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을 말한다. 民은 人과 같음. 成玄英은 “오행의 부류 안에는 오직 사람만이 옆으로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橫目之民이라고 말한 것이다[五行之內 唯民橫目 故謂之橫目之民].”라고 풀이했다.
역주7 聖治乎 : 성인의 정치 말인가? 의문사 乎를 붙여 마치 묻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성인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울 것 없다는 표현이다.
역주8 官施而不失其宜 : 관직을 설치하되 마땅함을 잃어버리지 않음. 꼭 필요한 관직만 설치한다는 뜻. 官施는 뒤에 나오는 拔擧와 對가 되는데, 이 대목을 여기서는 꼭 필요한 관직만을 설치한다는 뜻으로 읽었으나, 《荀子》 〈王霸〉편에 보이는 “論德使能 而官施之者”의 王先謙 注(官施之者는 官之用之也)에 근거하여 이것을 관직에 임용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읽는 것이 通說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이 대목은 “관직을 주어 등용을 하되 〈그 인재의〉 마땅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마땅한 인재에게 적절하게 관직을 준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역주9 拔擧而不失其能 : 인재를 발탁하되 능력 있는 자를 놓치지 않음. 拔은 拔擢. 擧는 擧用으로 모두 등용한다는 뜻. 能은 유능한 인재.
역주10 畢見其情事 而行其所爲 : 신하들의 사정을 다 살펴보고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시행토록 함. 情事는 신하들의 事情, 곧 實情. 其所爲는 마땅히 실천해야 할 일. 情事를 만물의 실정으로 보고 “만물의 실정을 분명하게 살펴서 자연의 본성을 따라 일을 처리한다.”라고 풀이한 견해도 있다(方勇‧陸永品).
역주11 行言自爲 而天下化 : 행동이나 말이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서 비롯되어 천하가 교화됨. 褚伯秀는 “행동이나 말이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서 나옴이다[行者言者 皆出於自爲].”라고 풀이했다.
역주12 手撓顧指 : 손가락을 까닥이고 고개를 끄덕임. 手撓는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뜻이고, 顧指는 고개를 돌려 지시한다는 뜻. 顧指가 頤指로 된 판본이 있는데 턱을 끄덕이다는 뜻으로 대의에 큰 차이는 없다.
역주13 居無思 行無慮 :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는 생각함이 없고 돌아다닐 때에도 헤아림이 없음. 〈知北遊〉편에 “생각이 없고 헤아림이 없어야 비로소 도를 알게 된다[无思无慮始知道].”라고 한 것과 유사한 표현이다(王叔岷).
역주14 不藏是非美惡 : 마음속에 옳고 그름과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품지 않음. 是非와 美惡의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만물을 가지런히 파악한다는 뜻이다.
역주15 四海之內 共利之之謂悅 :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이롭다고 여기는 것을 자신의 기쁨이라 여김. 모든 사람들이 그의 덕으로 이롭게 됨을 뜻한다.
역주16 共給之之爲安 :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을 자신의 편안함으로 여김. 給은 足과 같고 爲는 謂와 같다.
역주17 怊乎若嬰兒之失其母也 : 구슬프게 기운 없는 모습으로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잃은 것 같음. 陸德明은 怊를 悵으로 풀이하여 슬프다는 뜻으로 보았고, 《說文解字》에서는 怊를 失意로 풀이했다.
역주18 儻乎若行而失其道也 : 멍한 모습이 마치 길을 가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음. 儻은 돌아갈 곳이 없는 모양(宣穎).
역주19 財用有餘 而不知其所自來 : 재용이 넉넉한데도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음. 재물을 축적하려는 욕심이 없기 때문에 재물의 所從來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20 飮食取足 而不知其所從 : 음식을 충분히 먹으면서도 그 소종래를 알려고 하지 않음. 역시 욕심을 부리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역주21 上神乘光 與形滅亡 : 신인은 자기의 정신을 하늘 위로 올라가게 하여 해나 달의 빛을 타고 형체와 함께 완전히 無로 돌아감. 육체적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뜻. 上神은 神을 하늘 위로 올라가게 한다는 뜻이고, 乘光은 해와 달의 위에 올라탄다는 뜻이고, 與形滅亡은 형체와 함께 완전히 사라져 無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林希逸은 “上神은 그 정신이 날아올라 천지 밖에 나가서 해와 달의 빛이 도리어 그 아래에 있기 때문에 빛을 탄다고 말한 것이다[上神 言其神騰躍而上也 出乎天地之外 日月之光 反在其下 故曰乘光].”라고 풀이했다. 〈在宥〉편에 나오는 “내가 당신을 위하여 해나 달 같은 커다란 광명이 있는 하늘 위에 올라가겠다[我爲女 遂於大明之上矣].”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方勇‧陸永品).
역주22 此謂照曠 : 이것을 일러 照曠(밝은 空虛)이라 함. 照는 昭의 뜻. 照曠은 밝게 빔. 더 이상 형체에 구속되지 않음을 표현.
역주23 致命盡情 : 천명을 극진히 하고 자신의 성정을 다함. 情은 性과 같다. 곧 자신의 성명을 극진히 한다는 뜻.
역주24 天地樂 而萬事銷亡 : 천지가 즐거워하여 만사가 모두 소멸되어 없어짐. 곧 천지자연의 질서가 즐겁게 보전되고 만사(인간 사회의 모든 재앙이나 불상사)가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역주25 萬物復情 : 만물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감. 復은 돌아간다는 뜻이고, 情은 본래의 性情을 의미한다.
역주26 此之謂混冥 : 이것을 일러 混冥이라 함. 混冥은 混沌한 어두움. 福永光司는 神人이란 이 같은 ‘混冥’된 眞實在와 하나가 되고 ‘照曠’의 廣大無邊한 빛을 발하는 초월자를 말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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