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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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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 雖多 雖衆이나 其主 君也니라
하나니
하니는 無爲也라하노니 니라
하고 하고 以道 觀能하면 而天下之官하고 以道 汎觀이면하리라
하고 事兼於義하고 義兼於德하고 德兼於道하고 道兼於天하니라
曰 古之畜天下者 無欲而天下 足하며 無爲而萬物하며 이라하노라


천지가 비록 광대하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만물의 생성 변화는 평등하며, 만물이 비록 잡다하지만 그것이 질서 정연하게 다스려지는 것은 동일하며, 민중의 수가 비록 많지만 그 주인은 한 사람의 군주이다.
군주는 에 근거하고 자연[天] 속에서 성취된다.
그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 천하에 군림한 임금은 아무것도 함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천덕天德의 실천일 따름이다.
도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말을 살펴보면 천하의 군주들이 올바르게 될 것이고, 도를 기준으로 상하의 신분 질서를 살펴 조정하면 군신 간의 의가 밝혀지고, 도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재능을 살펴 헤아리면 천하의 모든 관직이 잘 다스려지고, 도를 기준으로 널리 모든 사물을 관찰하면 모든 사물에 대한 대응이 완비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 사이에 널리 하는 것은 이고 만물 가운데에서 널리 작용하는 것은 천지자연의 도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정사에 지나지 않고 재능이 많은 것을 유능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기술에 지나지 않으니, 기술은 정사政事포섭包攝되고, 정사는 에 포섭되고, 에 포섭되고, 에 포섭되고, 는 자연[天]에 포섭된다.
그래서 고인古人의 말에 이르기를 “옛날 천하를 다스렸던 군주는 스스로 무욕無欲하여 천하 인민의 삶이 충족되었으며, 스스로 무위無爲하여 만물이 저절로 화육化育되었으며 스스로 깊은 못처럼 고요히 침묵하여 천하 만민의 삶이 안정安定되었다.”라고 하였다.
전해 오는 기록에도 이르기를 “근원根源에 통달하면 만사가 모두 잘 되었으며 무심無心의 경지에 도달하면 귀신鬼神들까지도 감복感服한다.”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天地雖大 : 천지가 비록 크다 하나. 《經典釋文》에서는 天地에 대해 “《釋名》에 이르기를 ‘天은 드러남이니 높이 드러나 위에 있음이다. 또 드넓음이니 드넓게 고원함이다. 땅은 낮음이니 그 형체가 아래에 있으면서 만물을 실어 준다.’고 했다[釋名云 天顯也 高顯在上也 又坦也 坦然高遠也 地 底也 其體底下 載萬物也].”라고 풀이했다(池田知久).
역주2 其化均也 : 만물의 생성 변화는 평등함. 均은 均等 또는 平等無差別의 뜻. 천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만물의 생성 변화가 균등하다는 뜻. 化는 천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만물의 생성 변화.
역주3 其治一也 : 질서 정연하게 다스려지는 것은 동일함. 一은 郭象과 成玄英이 均一하다, 똑같다[一樣]고 풀이한 것을 따른다. 林希逸과 宣穎은 각각 一元과 專一로 해석했지만 적절치 않다(池田知久).
역주4 人卒 : 일반 백성. ‘爲人之卒者(남의 졸도가 된 자)’의 줄임말. 人主에 상대되는 말로 여기서는 바로 뒤의 主와 대비된다. 成玄英의 疏를 참조할 것.
역주5 原於德而成於天 : 德에 근거하고 자연 속에서 성취된다. 덕에 근거함이란 만물 본래의 生得의 作用[德]에 근거[原]함이고, 자연 속에서 성취한다는 것은 天 속에서, 즉 天理自然에 의해 〈군주로〉 완성되어 간다는 뜻이다. 《經典釋文》에서는 原을 “근본함이다[本也].”라고 풀이했다. 王敔는 “덕이 있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으니 하늘이 그에게 명령한다[有德乃可君天下 天命之].”라고 했는데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지나치게 儒家的인 해석이다.
역주6 故曰 玄古之君天下 : 그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 천하에 군림한 임금은 …라고 말하는 것이다. 呂惠卿, 褚伯秀, 朱得之, 王敔, 林雲銘, 宣穎, 陸樹芝, 蘇輿 등은 故曰玄에서 絶句했지만 成玄英이 玄을 遠의 뜻으로 보고 “아주 오랜 옛날의 성군들은 무위로 천하를 다스렸음을 말한 것이다[言玄古聖君 無爲而治天下也].”라고 풀이한 것이 옳다. 福永光司, 池田知久 등이 모두 成玄英 疏를 택하고 있음. 林希逸도 “玄은 遠이다. 玄古는 오랜 옛날과 같다[玄 遠也 玄古 猶邃古也].”라고 풀이했다.
역주7 天德而已矣 : 〈이것이 바로〉 天德일 따름이다. 天德은 천지자연의 本來的 作用을 말하는데 赤塚忠이 말하는 것처럼 위 문장 ‘原於德 而成於天’을 압축한 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天德而已矣는 故曰의 인용 속에 포함된 말이 아니라 (인용은 無爲也에서 끝남), 장자가 평가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故曰의 내용을 ‘天德而已矣’까지로 보는 讀法도 있다. 天德은 이 책의 〈天道〉편과 〈刻意〉편, 《荀子》 〈不苟〉편 등에 보인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8 以道觀言而天下之君正 : 도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말을 살펴보면 천하의 군주들이 올바르게 됨. 道는 앞에 설명된 天地自然의 理法을 말하고, 言은 사람들의 發言 또는 言論을 말함. 天下之君正의 君은 名의 譌라고 하는 설(錢穆)이 있으나 이에 대하여는 無知의 愚說이라고 하는 혹평(池田知久)이 있기도 하다. 오히려 福永光司는 言을 名과 같다고 하고 있다. 天下之君正은 천하의 군주들이 올바르게 됨, 즉 잘못을 저지를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而天下之君正의 而는 접속사가 아니고 ‘곧’이라는 정도의 語詞. 아래에 세 번 보이는 而도 마찬가지임.
역주9 以道觀分而君臣之義明 : 도를 기준으로 상하의 신분 질서를 살펴 조정하면 군신 간의 의가 밝혀짐. 成玄英의 견해를 따라 군주는 無爲하고 신하는 有爲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成玄英은 “군도는 하는 일이 없고 신도는 담당하는 일이 있다. 신분의 존비와 수고롭게 일하고 편안함이 이치상 본디 같지 않다. 비유하자면 머리는 스스로 위에 있고 발은 스스로 아래에 있는 것과 같아서 도를 가지고 관찰하면 분의 의리가 분명해진다[夫君道無爲而臣道有事 尊卑勞逸 理固不同 譬如首自居上 足自居下 用道觀察 分義分明].”라고 풀이했다.
역주10 萬物之應備 : 모든 사물에 대한 대응이 완비됨. 郭象은 萬物之應을 만물의 君主에 대응하는 뜻으로 보았고, 成玄英은 만물의 자기 자신의 用에 對應하는 뜻으로, 林希逸은 만물 내부에 對應하는 뜻으로 보았지만, 만물의 군주에 대응하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池田知久의 설을 따름.
역주11 故通於天地者德也 行於萬物者道也 : 그러므로 천지 사이에 널리 通하는 것은 德이고 만물 가운데에서 널리 작용하는 것은 천지자연의 도임. 陳景元이 《莊子闕誤》에서 인용하고 있는 江南古藏本에는 “故通於天者道也 順於地者德也 行於萬物者義也”로 되어 있고 劉文典과 王叔岷은 이것이 옳다고 주장했고, 이보다 앞서 淸의 宣穎 또한 “여기의 道자는 마땅히 義자의 잘못일 것이다[此道字當是義字之訛].”라 했고, 陳壽昌도 “道는 義와 같다[道猶義也].”라고 한 바도 있으나 원문을 그대로 두고도 번역이 가능하므로 굳이 원문을 고칠 것까지는 없다. 日本의 주석에서도 福永光司가 글자를 고치자는 쪽에 찬성하여 그것을 근거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나 赤塚忠과 池田知久는 改作에 반대하고 있다.
역주12 上治人者事也 :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정사임. 사람을 잘 다스리는 능력은 정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政事는 道와 德에 견줄 때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하급의 가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上은 다른 일반적인 해석처럼 윗사람‧上位者‧君主 등으로 풀이하는 名詞가 아니다. 爲上 즉 위로 여김,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뜻의 動詞이다. 褚伯秀는 “무릇 남을 다스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형정과 상벌을 뜻대로 하는 것이니 모두 정사일 뿐이다[凡以治人爲上 縱意乎刑政賞罰 皆事而已].”라고 풀이했다. 한편 林希逸은 “윗사람이 다스리는 것은 禮樂이나 刑政과 같은 것이니 모두 다스리는 일이다[上之所以治者 如禮樂刑政 皆治之事].”라고 풀이하여 上자를 군주를 비롯한 통치자, 곧 上之人과 같은 뜻으로 보았는데, 이 견해를 따르면 上治人者는 ‘윗사람인 군주로서 남을 다스리는 것’으로 번역해야 하지만 뒤의 ‘能有所藝者技也’와의 연결을 고려할 때 褚伯秀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역주13 能有所藝者技也 : 재능이 많은 것을 유능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기술임. 재능이 많은 것은 하찮은 기술상의 장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바로 위의 政事와 마찬가지로 세속에서 중시하는 재능[藝]도 道와 德과 견주면 하급의 가치라는 의미이다. 阮毓崧이 “所藝는 所長이라 말한 것과 같다[所藝 猶言所長也].”라고 풀이한 것과, 역시 所藝를 《論語》를 끌어대며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고 註解한 赤塚忠을 근거로 能有所藝者를 “才能에 뛰어난 才藝로서 인정할 만한 점이 있는 것”으로 보는 주석(池田知久)이 여기서는 취하지는 않으나 또한 유력하여 참고로 소개한다. 여기서는 역시 앞의 上治人者를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김”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有所藝者 즉 재능이 많이 있는 것을 能 즉 유능한 것으로 여긴다는 뜻의 동사로 취하기로 한다.
역주14 技兼於事 : 기술은 군주의 政事에 包攝됨. 곧 기술은 예악이나 형정의 구속, 통제를 받는 하위개념에 해당한다는 뜻. 陸樹芝가 “兼은 統과 같다[兼猶統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林希逸이 “둘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한다는 뜻[合二爲一之意].”으로 풀이한 것도 역시 참고가 된다. 福永光司는, 技兼於事 이하로 天을 最上位에 놓고서 그 아래로 道‧德‧義‧事‧技의 순서로 系列化한 것을, 儒家思想에의 타협적인 태도의 표시로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池田知久 등 조금씩 달리 생각하는 주석들이 있으나 참고삼아 소개한다.
역주15 淵靜而百姓定 : 깊은 못처럼 고요히 침묵하여 천하 만민의 삶이 安定됨. 淵靜은 깊은 못처럼 말없이 하는 일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定은 安定의 뜻. 앞의 ‘無欲而, 無爲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淵靜而의 ‘而’는 접속사가 아닌 ‘곧’ 정도의 뜻.
역주16 記曰 : 전해 오는 기록에 이르기를. 陸德明은 “記는 책 이름이다. 老子가 지은 것이라 한다[記 書名也 云老子所作].”라고 했고, 褚伯秀는 “이것은 老子가 지은 《西昇》에서 關尹 喜에게 해 준 말이다[此老君西升 告尹喜之言].”라고 풀이했는데 자세하지 않다. ‘傳曰’과 마찬가지로 전해 오는 기록을 인용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역주17 通於一而萬事畢 : 道에 통달하면 만사가 모두 잘 이루어짐. 여기의 ‘而’도 ‘곧’ 정도의 語辭. 一은 道를 지칭한다. 林雲銘은 “一者는 道일 따름이다[一者 道而已矣].”라고 풀이했다.
역주18 無心得而鬼神服 : 無心의 경지에 도달하면 鬼神들까지도 感服함. 無心得은 무심의 경지를 터득했다는 뜻. 林雲銘은 “無心得은 반드시 얻겠다는 데 마음이 없음이다[無心得 無心於必得也].”라고 풀이했는데(福永光司, 金谷治도 비슷한 생각) 부자연스럽다. 福永光司에 의하면, 《莊子》에서 ‘無心’이란 말이 보이는 것이 여기가 처음이며, 無心得이면 而鬼神도 服하리라는 생각은 內篇 〈人間世〉편 제1장에 “耳目이 전해 주는 것을 따라 외부의 사물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안에 있는 교활한 心知를 버리면 귀신도 와서 머무르려 한다[夫徇耳目 內通 而外於心知 鬼神將來舍].”라고 하고 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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