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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장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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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七이오
寓言十九
非吾罪也 人之罪也니라
重言十七
人而 無以先人이면 無人道也 人而 無人道 이니라
不言則齊 與言으로 不齊 與齊 不齊也
이라하니
惡乎然
然於然이니라 惡乎不然
不然於不然이니라
惡乎可
可於可니라 惡乎不可
物固有所然하며 物固有所可 無物 不然하며 無物 不可하니
非巵言日出하야 和以天倪인댄 孰得其久리오


〈내가 하는 말은〉 다른 사물에 가탁해서 서술하는 우언寓言이 열 가지 중에 아홉 가지 정도이고,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인물의 말을 빌려 무게를 더한 중언重言이 열 가지 중에 일곱 가지 정도이다.
또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같은〉 치언巵言이 날마다 입에서 나오지만 〈이 치언은 구별을 없애주는 자연의 작용인〉 천예天倪로 조화시킨다.
열 가지 중 아홉 가지를 차지하는 우언寓言이란 밖에서 일어난 일을 빌려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다.
친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중매를 하지 않으니, 친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칭찬하는 것이 아버지 아닌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처럼 우언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언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말하면〉 그것이 자기 의견과 같으면 따르고 자기 의견과 같지 않으면 반대한다.
자기와 같은 의견이면 옳다 하고 자기와 다른 의견이면 그르다고 비난한다.
열 가지 중 일곱 가지 정도를 차지하는 중언重言은 사람들의 말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연로한 사람의 말이다.
그러나 나이는 앞서 있지만 그 말의 줄거리[經緯]와 순서[本末]가 연로자年老者에 합당함이 없는 사람은 참다운 의미의 선인先人이 아니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앞서서 사람들을 인도할 자질이 없으면 사람다운 도리가 없는 것이고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도리가 없다면 이런 사람을 일러 늙어빠진 사람[陳人]이라고 한다.
치언巵言이 매일 나오는데 〈구별을 없애주는 자연의 작용인〉 천예天倪로 조화시켜 경계 없는 도를 따르게 하는 것은 〈제동齊同한 만물과 함께〉 생명을 다 살기 위한 방법이다.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차별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만물이 가지런하고, 가지런한 만물은 〈가지런하다는〉 말 때문에 가지런하지 않게 되고 〈가지런하다는〉 말은 가지런한 만물과 가지런하지 않게 된다.
그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말을 하면서 말이 없으면 평생 말하더라도 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며, 거꾸로 평생 말하지 않더라도 실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근거하는 데가 있어 ‘옳다’고 주장하며, 근거하는 데가 있어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근거하는 데가 있어 ‘그렇다’고 하며, 근거하는 데가 있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그렇다고 하는 데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며, 무엇을 근거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데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옳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옳다고 하는 데서 옳다고 하는 것이며, 무엇을 근거로 옳지 않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옳지 않다고 하는 데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커다란 긍정肯定의 세계에서는〉 모든 은 진실로 그러한 것이 있으며 모든 은 옳은 것이 있으니 어떤 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떤 이든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같지만 구속됨이 없는 자유자재의〉 치언巵言이 날마다 나와 〈자연의 작용인〉 천예天倪로 조화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누가 〈제동齊同의 만물과 일체가 되어〉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하나하나의〉 만물은 모두 자기 안에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씨이다.
각기 모양이 다른 사물에서 사물로 전생轉生하니 사물의 생사生死[始卒]가 둥근 고리와 같아서 그 순환의 도리를 아무도 알 수 없다(一物의 =他物의 , 일물一物=他物의 ).
이를 일러 천균天均이라고 하니 천균은 바로 천예天倪이다.


역주
역주1 寓言十九 : 寓言이 열 가지 중에 아홉 가지임. 우언은 다른 사물에 가탁해서 서술하는 말. 十九는 열 중 아홉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鴻蒙, 雲將, 肩吾, 連叔 따위가 모두 우언이다[鴻蒙雲將肩吾連叔之類 皆寓言耳].”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열에 아홉이란 이 책 속에서 우언이 열 중에 아홉을 차지한다는 말이니 우언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이를테면 齧缺, 王倪, 庚桑楚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十九者 言此書之中十居其九 謂寓言多也 如齧缺王倪庚桑楚之類是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郭象은 “다른 사람을 빌려 말할 경우 열 번 말하면 아홉 번은 믿음을 얻게 된다[寄之他人 則十言而九見信].”라고 풀이하여 단순히 ‘우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는 뜻으로 풀이한 제가의 이해와는 다소 다른 맥락으로 풀이했지만 뒤에 이어지는 본문의 내용과 일치하므로 郭象의 견해 또한 버릴 수 없다.
역주2 重言 :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인물의 말을 빌려 무게를 더한 말. 重은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중요한 인물을 뜻한다. 林希逸은 “重言이란 옛사람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무게를 더한 말이니 이를테면 黃帝, 神農, 孔子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重言者 借古人之名以自重 如黃帝神農孔子是也].”라고 풀이했다. 成玄英도 重言을 “어른으로서 고을에서 존경받는 자이다. 노인의 말은 열 중에 일곱은 믿는다[長老鄕閭尊重者也 老人之言 猶十信其七也].”라고 풀이했고, 陸德明은 “중언은 사람들이 존중하는 사람의 말을 이름이다[重言謂爲人所重者之言也].”라고 풀이하여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한편 家世父는 重을 重複의 뜻으로 풀이하여 重言復言의 뜻으로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3 巵言日出 : 巵言이 날마다 입에서 나옴. 치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같은 말. 巵는 ‘술잔 치’. 巵言은 술잔이 가득 차면 기울고 텅 비면 위를 보게 되는 것[滿則傾 空則仰]처럼 앞뒤가 맞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말을 뜻한다. 그런데 巵를 둥근 술그릇으로 보는 견해와, 支와 같은 음으로 보고 支離의 뜻으로 보는 견해가 엇갈린다. 陸德明은 巵를 술그릇으로 보고 “둥근 술그릇이다[圓酒器].”라고 풀이했는데, 司馬彪는 이와 달리 巵言은 “지리멸렬하여 두서가 없는 말을 이름이다[謂支離無首尾言也].”라고 풀이했다. 여기서는 일단 陸德明처럼 술잔으로 보는 견해와 司馬彪가 支離라고 말한 것을 종합하여 번역하였다. 郭象은 “巵는 가득 차면 기울고 텅 비면 주둥이가 위를 쳐다보게 된다[夫巵 滿則傾 空則仰].”라고 풀이하여 술그릇으로 보았다. 成玄英도 “巵는 술그릇이다[巵 酒器也].”라고 풀이했다. 日出은 날마다 입에서 나온다는 뜻. 成玄英은 “日出은 日新과 같다[日出 猶日新也].”라고 풀이했다.
역주4 和以天倪 : 天倪로 조화시킴. 天倪는 구별을 없애주는 자연의 작용, 자연의 道로 조화시킨다는 뜻. 天倪는 자연의 道를 뜻하며 道에 의한 구분, 곧 절대적 규정을 의미한다. 郭象은 “天倪란 自然의 分이다[天倪者 自然之分也].”라고 풀이했다. 〈齊物論〉편에 이미 ‘和之以天倪’라고 하여 비슷한 표현이 나왔다.
역주5 藉外論之 : 밖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와 무엇인가를 논의함. ‘藉外’는 ‘밖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림’. ‘論之’는 ‘무엇인가를 논의함’. 郭象은 “자기 입으로 말을 하면 세속인들이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밖에서 빌려오는 것일 뿐이다. 肩吾와 連叔 같은 경우가 모두 빌려온 것이다[言出於己 俗多不受 故借外耳 肩吾連叔之類 皆所借者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李頤는 ‘藉’를 따른다[因]는 뜻으로 보았는데 의미에 큰 차이는 없다.
역주6 親父不爲其子媒 親父譽之 不若非其父者也 : 친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중매를 하지 않으니, 친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칭찬하는 것이 아버지 아닌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임. 媒는 仲媒한다는 뜻. 非其父는 아버지가 아닌 사람이 칭찬한다는 뜻. 곧 ‘非其父譽之’를 생략한 표현이다. 成玄英은 “아버지가 자식에 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사람이 칭찬하면 믿는 사람이 많다[父談其子 人多不信 別人譽之 信者多矣].”라고 풀이했다. 가까운 사람을 직접 칭찬하는 것보다는 남이 칭찬하는 효과가 더 큰 것처럼 우언의 효과도 이와 마찬가지로 著者 또는 話者가 일인칭으로 나서서 직접 말하는 直言보다 우화적 표현이 설득력이 있다는 뜻이다.
역주7 與己同則應 不與己同則反 : 〈우언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말하면〉 그것이 자기 의견과 같으면 따르고 자기 의견과 같지 않으면 반대함. 應은 찬성함이고, 反은 반대한다는 뜻이다.
역주8 同於己爲是之 異於己爲非之 : 자기와 같은 의견이면 옳다 하고 자기와 다른 의견이면 그르다고 비난함. 王引之는 “爲는 則과 같다[爲猶則也].”고 풀이했는데 간명한 풀이로 이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9 所以已言也 : 사람들의 말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임. 已는 그만두게 함. 곧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林希逸은 ‘止’로 풀이했는데 이를 따라 시비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福永光司, 金谷治, 安東林)가 유력하다. 한편 赤塚忠은 ‘已=旣=盡’으로 보고 ‘말을 그치게 한다.’는 뜻보다는 ‘말을 완벽하게 다한다.’는 뜻으로 보았는데 池田知久가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역주10 是爲耆艾 : 연로한 사람의 말임. 耆와 艾는 각각 60대 늙은이와 50대 늙은이를 지칭한다. 《禮記》 〈曲禮〉편에 “50세를 艾라고 하니 관리하는 일에 종사하고 60세를 耆라고 하니 지시하고 시키는 일만 한다[五十曰艾 服官政 六十曰耆 指使].” 艾는 ‘쑥’, ‘늙은이’. 여기서는 후자의 뜻이다. 成玄英은 “耆艾는 오래 산 사람을 일컬음이다[耆艾 壽考者之稱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1 年先矣 而無經緯本末以期年耆者 是非先也 : 나이는 앞서 있지만 그 말의 줄거리[經緯]와 순서[本末]가 年老者에 합당함이 없는 사람은 참다운 의미의 先人이 아님. 郭象은 “나이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지만 그 나머지의 본말은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것이 없다면 남보다 앞선 것이 아니다[年在物先耳 其餘本末 無以待人 則非所以先也].”라고 풀이했는데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無는 ‘年耆者’까지 걸리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成玄英이 “연로하여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으면서도 본말에 관한 지식이 없다[年老居先 亦無本末之智].”고 풀이한 이래로 無자가 ‘本末’까지 걸리는 것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以期年耆者’의 해석에 혼란이 생겼다. 이를 馬叙倫, 阮毓崧 등이 바로잡았고, 金谷治, 福永光司, 池田知久 등도 마찬가지. 高山寺古鈔本에는 ‘年耆’ 두 글자가 ‘來’로 되어 있다(郭慶藩).
역주12 是之謂陳人 : 이런 사람을 일러 늙어빠진 사람이라고 함. 陳은 陳腐의 陳과 같다. 따라서 ‘陳人’은 ‘늙어빠진 사람’, ‘진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郭象은 “단지 오래된 사람일 뿐이다[直是陳久之人耳].”라고 풀이하여 ‘나이만 먹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13 巵言日出 和以天倪 因以曼衍 所以窮年 : 치언이 매일 나오는데 〈구별을 없애주는 자연의 작용인〉 天倪로 조화시켜 경계 없는 도를 따르게 하는 것은 〈齊同한 만물과 함께〉 생명을 다 살기 위한 방법임. 因은 ‘따른다’는 뜻. 曼衍은 끝없는 모양. 곧 경계 없는 道를 말한다. 成玄英은 “曼衍은 무심함이다[曼衍 無心也].”라고 풀이했다. 窮年은 天年, 곧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한다는 뜻으로 〈人間世〉편에 나온 ‘終其天年’과 같은 뜻이다.
역주14 故曰無言 : 그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임. 王叔岷은 말을 하되 차별을 가져다주는 보통의 말이 없는 말, 이러한 言而無言의 말이 바로 巵言이라고 풀이하고, 高山寺古鈔本에 근거하여 故曰無言의 無言을 言無言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 言無言이라 나오고 그 아래의 내용이 言無言을 풀이하는 말이므로 일리가 있는 견해로 참고할 만하다.
역주15 言無言 終身言 未嘗言 終身不言 未嘗不言 : 말을 하면서 말이 없으면 평생 말하더라도 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며, 거꾸로 평생 말하지 않더라도 실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님. 未嘗言은 ‘言’위에 ‘不’자가 있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다수이나 이것도 王叔岷의 주장처럼 高山寺古鈔本에 근거하여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王闓運, 馬叙倫, 王叔岷).
역주16 有自也而可 有自也而不可 有自也而然 有自也而不然 :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근거하는 데가 있어 ‘옳다’고 주장하며, 근거하는 데가 있어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근거하는 데가 있어 ‘그렇다’고 하며, 근거하는 데가 있어 ‘그렇지 않다’고 함. 自는 ‘부터’, 여기서는 ‘근거’라는 뜻이다. 郭象은 “自는 由이다[自 由也].” “저와 나의 감정이 치우쳐 있다. 그 때문에 可와 不可가 있게 된다[由彼我之情偏 故有可不可].”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각각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기 때문에 可함과 그러함이 있게 된다[夫各執自見 故有可有然].”라고 풀이했다.
역주17 惡乎然 然於然 惡乎不然 不然於不然 惡乎可 可於可 惡乎不可 不可於不可 : 무엇을 근거로 그렇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그렇다고 하는 데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며, 무엇을 근거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데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옳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옳다고 하는 데서 옳다고 하는 것이며, 무엇을 근거로 옳지 않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 옳지 않다고 하는 데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임. 惡乎는 ‘무엇을 근거로?’, ‘어디에서?’, ‘어떤 점에서’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惡乎는 어디에서[於何]와 같다[惡乎 猶於何也].”라고 풀이했다. 이 구절은 〈齊物論〉에 이미 나온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이 글이 《莊子》 內篇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것임을 확인해주는 부분이다.
역주18 萬物皆種也 : 만물은 모두 씨임. 만물은 모두 자기 안에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씨라는 뜻으로 〈至樂〉편 제6장에도 “씨에는 미묘한 작용이 있고……사람은 또 다시 씨[種]의 미묘한 作用으로 다시 들어가니 이처럼 만물은 모두 機에서 나와 모두 機로 들어간다.[種有幾……人又反入於機 萬物皆出於機 皆入於機].”라고 하여 비슷한 표현이 나왔다.
역주19 以不同形相禪 : 각기 모양이 다른 사물에서 사물로 轉生함. 一物의 生은 또 다른 一物의 死이고, 一物의 死는 또 다른 事物의 生임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郭象은 “비록 변화하여 서로 교대하지만 기를 근원적으로 고찰해보면 한 가지이다[雖變化相代 原其氣則一].”라고 풀이했다. ‘禪’은 轉生. 成玄英은 “禪은 교대함이다[禪 代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0 始卒若環 莫得其倫 : 사물의 生死[始卒]가 둥근 고리와 같아서 그 순환의 도리를 아무도 알 수 없음. 郭象은 “이치가 저절로 그러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理自爾 故莫得].”라고 풀이했다. 倫은 이치, 도리의 뜻. 成玄英은 “倫은 도리이다[倫 理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1 是謂天均 天均者天倪也 : 이를 일러 天均이라고 하니 천균은 바로 天倪임. 天均은 저절로 균등해지는 이치. 成玄英은 “자연히 균등해지는 이치이다[自然均平之理也]”라고 풀이했다. 〈齊物論〉편 제2장과 〈庚桑楚〉편 제4장에는 天鈞으로 나왔다. 天倪는 ‘자연의 道’로 이 장 앞부분에서 이미 풀이했다.

장자(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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