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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장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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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으로) 橫行天下하야 侵暴諸侯하며 하며 貪得忘親하야 不顧父母兄弟하며 不祭先祖하더니
孔子 謂柳下季하야
夫爲人父者 하고 爲人兄者 必能敎其弟하나니
若父 不能詔其子하며 不能敎其弟인댄어니따녀
今先生 世之才士也로대 弟爲盜跖하야 爲天下害어늘 而弗能敎也하다니 竊爲先生하야 羞之하노니
請爲先生하야 往說之호리라
柳下季曰호대
先生호대 爲人父者 必能詔其子하며 爲人兄者 必能敎其弟라하시나니
若子 不聽父之詔하며 弟不受兄之敎하면 雖今先生之辯인들 將柰之何哉리오
順其心則喜하고 逆其心則怒하야 하나니
孔子不聽하고 하야 往見盜跖한대
盜跖 乃方休卒徒太山之陽하야 러니
孔子 下車而前하야
魯人孔丘 聞將軍 高義하고 敬再拜謁者하노라
謁者 入通한대 盜跖 聞之하고 大怒하야 目如明星이오 하야
此 夫魯國之巧僞人孔丘
非邪
하야 擅生是非하야 而迷天下之主하야
使天下學士 不反其本하며
疾走歸하라
孔子 復通하야
謁者 復通한대 盜跖 曰
使來前하라
來前하라
所言 順吾意則生하고 逆吾心則死하리라
孔子 曰
聞之호라 凡天下 有三德하니
生而長大하야 美好無雙하야 少長貴賤 見而皆悅之 此上德也
知維天地하며 能辯諸物 此中德也
勇悍果敢하야 聚衆率兵 此下德也
將軍 兼此三者하시고
而名曰盜跖이라호니 하노이다
인댄 請南使吳越하며 北使齊魯하며 東使宋衛하며 西使晉楚하야 使爲將軍하야 造大城數百里하야 立數十萬戶之邑하고 尊將軍爲諸侯하고 케호리니
此聖人才士之行 而天下之願也니이다
盜跖 大怒하고
來前하라
長大美好하야 見而悅之者 此 吾父母之遺德也 丘 雖不吾譽 獨不自知邪
且吾 聞之호라 好面譽人者 亦好背而毁之라호라
丘 告我以大城衆民하나니
安可久長也리오
城之大者 莫大乎天下矣
하며 湯武 立爲天子호대 而後世 絶滅하니
非以其利大故邪
且吾 聞之호라
於是 皆巢居하야 以避之하야 晝拾橡栗하고 暮栖木上하더니
命之曰有巢氏之民이라하니라
古者 不知衣服하야
夏多積薪이라가 冬則煬之하더니
命之曰知生之民이라하니라
하야 知其母 不知其父하며 與麋鹿으로 共處하야 耕而食하고 織而衣하야 無有相害之心하니 此 至德之隆也니라
然而黃帝 不能致德하야 하니라
하고 放其主하고 武王 殺紂하니 自是之後 以强으로 陵弱하며 以衆으로 暴寡하니
子 脩文武之道하야 掌天下之辯하야 以敎後世하고 矯言僞行하야 以迷惑天下之主하야 而欲求富貴焉하나니
盜 莫大於子어늘 天下 何故 不謂子 爲盜丘 而乃謂我 爲盜跖
天下 皆曰 孔丘 能止暴禁非라하더니
子 自謂才士聖人邪인댄
子之道 豈足貴邪리오
世之所高 莫若黃帝로대 黃帝 上不能全德하야 而戰涿鹿之野하야 流血百里하며
하며 禹 偏枯하며 放其主하며 武王 伐紂하며 文王 拘羑里하니
로대 컨댄 皆以利 惑其眞하야 而强反其情性하니 其行 乃甚可羞也로다
世之所謂賢士 伯夷 叔齊
伯夷叔齊 辭孤竹之君하고 而餓死於首陽之山하야 骨肉 不葬하고 鮑焦
世之所謂忠臣者 莫若王子比干 伍子胥로대
子胥 沈江하고 比干 剖心하니 此二子者 世謂忠臣也로대이나 卒爲天下笑하니라
自上觀之컨댄 至于子胥比干 皆不足貴也로소니
上壽 百歲 中壽 八十이오 下壽 六十이나 하고 其中 開口而笑者 一月之中 不過四五日而已矣니라
丘之所言 皆吾之所棄也
亟去 走歸하야 無復言之하라
子之道 狂狂伋伋하니 詐巧虛僞事也
孔子 再拜하고 趨走出門하야 上車하야 執轡三失하고 芒然無見하고 하야 하야
歸到魯東門外하야 適遇柳下季하니
柳下季曰
今者闕然하야 數日 不見이러니
孔子 仰天而歎하야
曰 然하다
柳下季曰
得無逆汝意 若前乎
孔子曰
하라
所謂로니


공자孔子유하계柳下季는 서로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유하계의 아우는 이름을 도척盜跖이라 하였다.
도척은 9천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에 횡행하면서 제후들의 영토를 침략하고 포악한 행동을 일삼으며, 남의 집에 구멍을 뚫어 문 지도리를 떼어내고 들어가 남의 소나 말을 떼로 몰아 훔쳐내며, 남의 부녀를 납치 탈취하며, 도적질하여 얻는 이득을 탐하느라 친척도 잊었으며, 부모형제도 돌보지 않았고,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도척盜跖의 무리가 지나가는 성읍은, 큰 나라는 성벽을 닫아 굳게 지키고, 작은 나라는 보루堡壘에 들어가 지켜서 만백성들이 그를 고통스럽게 여겼다.
공자가 유하계柳下季에게 말하였다.
“남의 아버지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아들을 훈계하여 이끌 수 있어야 하고, 남의 형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아우를 가르쳐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로서 그 자식을 훈계하여 이끌 수 없고, 형으로서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없다면, 부자와 형제 같은 친척을 귀하게 여길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선생은 세상이 알아주는 재사才士이면서, 그 아우는 도척이라는 큰 도적으로 천하의 가 되고 있는데도 가르쳐 깨우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적이 선생을 위해서 이 일을 부끄러이 여깁니다.
그러하니, 나는 선생을 대신하여 가서 그를 설득해 보겠소.”
유하계柳下季가 말하였다.
“선생이 말씀하시길, ‘남의 아비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을 훈계하여 이끌 수 있어야 하고, 남의 형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아우를 가르쳐 깨우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만일 자식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아우가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비록 지금 선생의 웅변으로 설득한다 한들 장차 그것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도척盜跖이란 녀석의 사람됨은 마음은 용솟음치는 샘물처럼 끝이 없고, 의기意氣는 격렬한 회오리바람처럼 사나우며, 육체의 강건함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며, 언변은 자기 잘못을 꾸며대어 변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상대가 제 마음에 들면 기뻐하지만, 제 마음에 거슬리면 욕지거리로 남을 어렵지 않게 욕보입니다.
선생께서는 절대 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공자孔子유하계柳下季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안회顔回더러 수레를 몰라 하고 자공子貢을 오른편에 앉힌 뒤 도척盜跖을 만나 보러 갔다.
도척은 이때 마침 졸개들을 태산太山의 남쪽 기슭에서 쉬게 하고, 사람의 으로 를 쳐서 그것을 간식으로 먹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서 알자謁者를 보고 말했다.
나라 사람 공구孔丘는 장군의 높은 의리를 듣고 알자謁者에게 삼가 재배합니다.”
알자謁者가 들어가 도척에게 전하였더니, 도척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눈은 번쩍거리는 별과 같고, 갓을 찌를 듯 머리카락을 위로 솟구치면서 말했다.
“이자가 저 노나라의 위선자 공구孔丘인가?
아닌가?
내 말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전하라.
‘너는 말을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내어, 함부로 문왕文王이다 무왕武王이다 하며 칭송하고, 머리에는 나뭇가지처럼 장식이 많은 갓[冠]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옆구리 뱃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차고 다니면서, 수다스레 잘못 투성이의 유설謬說을 지껄여대고, 농사짓지 않으면서 밥 먹으며, 베를 짤 줄도 모르면서 옷을 입고 다닌다.
게다가 입술을 놀리고 혀를 움직이면서 제멋대로 선악시비善惡是非의 기준을 만들어 천하의 군주들을 미혹시킨다.
그리하여 천하에서 학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함부로 니 하는 덕목을 만들어 놓아 제후에 봉해지고 부귀하게 되는 요행을 바라게 하는 자이다.
그러니 너의 죄는 커서 무겁게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빨리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의 간으로 점심식사의 반찬에 보탤 것이다.’ ”
그런데도 공자는 다시 알자謁者를 통해서 말했다.
“저는 장군의 형님이신 유하계柳下季와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부디 장군의 신발이나마 군막軍幕 아래에서라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알자謁者가 다시 전하였더니 도척盜跖이 말했다.
“내 앞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라.”
공자는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자리를 피해서 도척에게 두 번 절했다.
도척은 크게 노하여 양다리를 떡 벌리고 앉은 채로 칼자루를 손에 잡고 눈을 부릅뜨고서, 마치 젖먹이는 어미 호랑이와 같이 사나운 소리로 말하였다.
는 앞으로 나오라.
네가 하는 말이 내 마음에 들면 살려줄 것이고, 내 마음에 거슬리면 죽여버리겠다.”
공자가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천하에는 세 가지 미덕美德이 있다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키가 크고 체격이 장대해서, 용모의 아름다움이 뛰어나 누구도 비길 수 없고, 젊은이도 늙은이도, 귀한 이도 천한 이도 모두 그를 보고 좋아하게 되는 것, 이것이 상덕上德입니다.
지식은 천지天地 만상萬象을 다 싸안아서 모르는 것이 없고, 능력이 모든 사물을 두루 다 처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중덕中德입니다.
용맹하고 결단력이 있어 많은 사람을 모아서 군대를 인솔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덕下德입니다.
사람 중에 누구라도 이 가운데 한 가지 덕이라도 갖추고 있으면, 충분히 군주의 자리에 앉아 제후로 일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전부 갖추고 계십니다.
키는 여덟 자 두 치나 되고, 얼굴에서는 빛이 나며, 입술은 선명한 붉은 빛깔을 하고 있으며, 치아는 모양이 아름다운 조개껍질처럼 정돈되어 아름다우며, 목소리는 육률육려六律六呂의 기본음인 황종黃鍾의 음률에 들어맞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장군을 이름하여 도척이라 하고 있으니 저는 적이 장군을 위하여 이를 부끄럽게 여겨 따르지 않습니다.
장군께서 제 말을 따를 뜻이 있으시다면, 저는 남쪽으로는 나라와 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북쪽으로는 나라와 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동쪽으로는 나라와 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서쪽으로는 나라와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들로 하여금 장군을 위하여 사방 수백 리 되는 커다란 성곽城郭을 만들어서 수십 만 호의 성읍城邑을 건립하게 하고 장군을 제후의 한 사람이 되어 존경받게 하고 온 천하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개혁하고 난세를 일신一新하여 전쟁을 그만두고 병졸들을 쉬게 하고, 장군의 형제들을 거두어 양육하며 공손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聖人재사才士의 행동이고 또한 천하 만민의 소원입니다.”
도척盜跖은 더욱 크게 노하여 말했다.
여!
내 앞으로 더 가까이 나오라.
이익利益을 가지고 행동을 고칠 수 있고 말로 충고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 상대는 모두 어리석은 보통 사람이라고 일컬을 뿐이다.
지금 〈나의 체격과 용모가〉 장대하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보고서 나를 좋아하는 것, 이것은 나의 부모가 물려준 미덕이니, 그대가 나를 칭찬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유독 그것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인가.
또 내가 듣건대, ‘남의 면전에서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뒤돌아서 헐뜯고 욕하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지금 그대가 나에게 커다란 성곽城郭과 많은 백성들을 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나를 이익으로 규정規正해서 범속한 인간으로 취급해서 나를 먹이고 길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큰 성곽과 많은 백성을 소유함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곽의 크기로 치자면 천하보다 큰 것이 없다.
은 천하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였지만 그 자손들은 송곳 하나 세워놓을 좁은 땅조차 없었으며,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은 스스로 서서 천자가 되었지만 그 자손은 모두 끊어지고 멸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들이 손에 넣은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또한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아주 옛날에는 새와 짐승은 많았고 인류는 숫자가 적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짐승의 를 피했고, 낮에는 도토리나 밤을 줍고 날이 저물면 나무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명명命名하여 유소씨有巢氏의 백성이라고 하였다.
또 옛적에 사람들은 옷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여름이면 땔나무를 쌓아두었다가 겨울에는 이것으로 불을 때면서 지냈다.
그래서 이들을 명명하여 삶의 지혜를 아는 지생知生의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신농씨神農氏의 세상이 되어서는 〈사람들은〉 누워 잠자고 있을 때는 편안했고 일어나 깨어 있을 때에는 무심한 모양으로 한가로이 지내면서, 사람들이 자기의 어머니는 알아도 자기의 아버지는 알지 못하며, 크고 작은 사슴 무리들과 함께 살면서, 스스로 밭갈아 농사지어 먹고 스스로 베틀에 베짜서 옷을 입고서 서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않고 지냈으니, 그 때가 지덕至德이 잘 시행된 최융성기最隆盛期였다.
그런데 시대가 내려와 황제黃帝의 세상이 되어서는 지덕至德을 시행하지 못하여 치우蚩尤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싸워 사상자死傷者가 흘린 피가 사방 백 리에 미쳤다.
요와 순이 천자가 되자 여러 신하의 지위를 만들어 상하차별을 확립했고, 탕왕湯王은 그 주군인 걸왕桀王을 추방했고 무왕武王은 은의 폭군인 주왕紂王을 죽였으니 이 이후부터는 그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난폭하게 학대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탕왕과 무왕 이후로는 모두 난폭자의 무리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그대는 그러한 문왕 무왕의 도를 닦고서 천하의 언론을 장악하여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고, 쿨렁쿨렁한 큰 옷에 넓은 폭의 얕은 띠를 매고 말을 비뚜로하고 행동을 거짓으로 하여 천하 군주들의 머리를 혼란에 빠뜨려서 자기의 재산과 지위를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도적질이 그대보다 큰 것이 없는데 천하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대를 일러 도적놈 라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일러 도척이라고 하는가.”
“그대는 달콤한 말로 자로子路를 설득해서 그대의 추종자가 되게 하여, 자로로 하여금 〈용자勇者의 상징인〉 높은 관을 벗어 던지고 〈그가 차고 있던〉 긴 칼을 풀어 던지고 그대에게 가르침을 받게 하였다.
그래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구孔丘는 난폭한 행동을 누르고 악행을 금지시킬 수 있다.’고 하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자로는 나라 임금 괴외蒯聵를 죽이려 하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그 몸은 위나라의 동문 가까이에서 소금에 절여지는 형벌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것은 너의 가르침이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재사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럴진댄 어찌하여 나라에서 두 번이나 축출되었고, 나라에서는 그대가 떠난 뒤 발자취를 삭제당할 정도로 미움받았고, 나라에서 궁지에 몰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군대에 포위되어 천하에 몸을 용납할 데가 없었는가?
그대는 자로로 하여금 그 같은 환난을 당하게 하였으니, 위로는 자기 몸을 편안히 지키지 못했고, 아래로는 남을 편안히 살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대의 도를 어찌 높이기에 충분하겠는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로는 황제黃帝만 한 이가 없는데 그 황제조차도 오히려 그 미덕美德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어서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치우蚩尤와 전쟁하여 피가 흘러 사방 백 리까지 미쳤다.
그리고 임금은 자식에 대하여 자애롭지 않았으며, 임금은 어버이에게 불효하였으며, 는 〈치수를 한답시고 몸을 돌보지 않아〉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은 그 주군인 걸왕桀王을 추방하였으며, 무왕武王은 역시 그 주군인 주왕紂王을 정벌하였으며, 문왕文王유리羑里 땅에 감금되었다.
그러니 이 일곱 사람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들이었으나 자세히 따져본다면 모두 이익 때문에 참다운 진실을 잃어버려 무리하게 본성을 거슬렀으니, 그들의 행동은 〈높이 존숭되기는커녕〉 도리어 매우 부끄러워할 만하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현인賢人백이伯夷숙제叔齊이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지위를 사양하고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어, 그들의 시체는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산속에 버려졌다.
춘추시대의 은자隱者 포초鮑焦는 고결하게 행동하고 세상을 그르다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로 말라 죽었고,
은대殷代의 은자 신도적申徒狄은 임금에게 간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짊어지고 황하의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되었으며,
문공文公의 신하인 개자추介子推는 지극히 충성스러웠는지라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는데 문공이 뒤에 그를 배반하였더니, 자추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나무를 껴안은 채 불에 타 죽고 말았으며,
노나라 사람 미생尾生은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가 여자가 오지 않았는데 한편 물이 자꾸 불어올라 오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죽었다.
그러니 이 여섯 선생들은 제사에 쓰려 찢어발긴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 아니면 바가지를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다를 것이 없다.
모두 명예에 걸려 죽음을 경시하여, 삶의 근본을 생각하고 수명을 잘 기르지 못한 자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충신은 왕자王子 비간比干오자서伍子胥만 한 이가 없다.
그러나 오자서는 시체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 의해 장강에 가라앉혀졌고, 왕자 비간은 조카인 주왕紂王에 의해 심장이 갈라졌으니 이 두 선생은 세상에서 충신忠臣이라고 말하지만 마침내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상고로부터 이것을 살펴보건대, 〈저 황제‧요‧순으로부터〉 오자서‧왕자 비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존숭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니, 그대가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만일 내게 귀신의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만일 인간의 일을 가지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면 지금 말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정도는〉 모두 내가 들어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대에게 인간의 참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
〈사람이란〉 눈은 아름다운 빛깔을 보고 싶어하고,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입은 맛있는 것을 맛보고자 하며, 뜻은 만족되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은 최고로 오래 사는 경우라야 기껏 백세이고, 중간 정도로 오래 사는 경우는 80세이고, 낮은 수준으로 오래 사는 경우는 60세인데, 그나마도 병들어 여위거나, 상복을 입거나, 세상사를 근심하거나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그 짧은 인생 속에서 〈목욕目欲이욕耳欲구욕口欲지기욕志氣欲을 만족시켜〉 입을 벌리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것은 한 달 중에 사오일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의 죽음은 일정한 때가 있으니 죽어야 할 때가 정해진 육체를 가지고 무궁한 천지 사이에 의탁하는 것은, 짧음이 마치 와 같은 천리마가 문틈 사이를 달려 지나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데, 마음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그 수명을 기르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한 자가 아니다.
! 그대가 말하려 하는 것은 모두 내가 부정하여 버린 것들이다.
그러니 빨리 떠나고 얼른 달려가서 다시는 나에게 말하지 말라.
그대의 도는 인간의 본성을 잃은 채 급히 달려가는 꼴이니 남을 속이는 거짓투성이이다.
인간의 참된 모습을 완전히 보전保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족히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공자는 두 번 절하고는 잰걸음으로 달려 도척盜跖 진영의 문을 나와 수레에 올라 타 말고삐를 잡으려다가 세 번이나 놓치고,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안색은 불 꺼진 잿빛 같았으며, 수레 앞턱 가로나무에 기대어 고개를 떨군 채 숨을 내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노나라의 도성 동문 밖에 돌아와 마침 도척의 형 유하계柳下季를 만났다.
유하계가 말했다.
“요사이 조용히 아무 소식 없이 며칠을 통 뵙지 못하였는데, 선생이 타신 수레와 말에 어디 여행 다녀오신 자취가 있으니 설마 도척을 가서 만나 보신 것은 아니겠지요?”
공자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유하계가 말하였다.
“제 아우 이 혹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대의 마음에 거스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공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냅다 달려가 호랑이 머리를 건드리고, 호랑이 수염을 얽어댔으니 하마터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했습니다.”


역주
역주1 孔子與柳下季爲友 : 공자와 유하계는 서로 친구 사이였음. 柳下季는 《論語》 《孟子》 등에 보이는 魯의 柳下惠와 동일 인물로 추정. 陸德明은 “유하혜는 성이 展이고 이름은 獲이고 字는 季禽이다. 어떤 사람은 字가 子禽이고 유하에 머물면서 덕혜를 베풀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惠는 시호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유하는 고을 이름이라고 했다. 《春秋左氏傳》을 살펴보면 전금은 노나라 희공 때의 인물로 공자가 태어날 때에 나이가 80여 세에 이르고 자로가 죽은 때에 이르면 나이가 백 오륙십여 세에 달하기 때문에 서로 벗이 될 수 없으니 이는 우언일 뿐이다[柳下惠姓展 名獲 字季禽 一云 字子禽 居柳下而施德惠 一云 惠 諡也 一云 柳下 邑名 案左傳云 展禽是魯僖公時人 至孔子生八十餘年 若至子路之死百五六十歲 不得爲友 是寄言也].”라고 풀이했다. 이 장은 儒家가 유하계를 賢人(《論語》 〈衛靈公〉편), 聖人(《孟子》 〈萬章 下〉편)이라고 칭송한 데 대한 야유를 담고 있다.
역주2 柳下季之弟 名曰盜跖 : 유하계의 아우는 이름을 도척이라 하였음. 盜跖은 도둑의 이름. 陸德明은 “李奇 注의 《漢書》에 이르길 跖은 秦나라의 대도였다[李奇注漢書云 跖 秦之大盜也].”라고 풀이했고, 兪樾은 “《史記》 〈伯夷傳〉 正義에 또 이르길 ‘도척이란 자는 황제 때의 대도의 이름이다.’라고 했으니 결국 도척이 어느 때의 인물인지는 일정한 견해가 없다. 공자와 유하혜는 동시대가 아니었고 유하혜와 도척 또한 동시대가 아니었으니 독자들은 우언을 실제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史記伯夷傳正義又云 蹠者 黃帝時大盜之名 是跖之爲何時人 竟無定說 孔子與柳下惠不同時 柳下惠與盜跖亦不同時 讀者勿以寓言爲實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 盜跖從卒九千人 : 도척은 9천 명의 졸개를 거느림. 從은 동사로 ‘거느리다’, ‘따르게 하다’의 뜻. 卒은 ‘졸개’.
역주4 穴室樞戶 驅人牛馬 取人婦女 : 남의 집에 구멍을 뚫어 문 지도리를 떼어내고 들어가 남의 소나 말을 떼로 몰아 훔쳐내며, 남의 부녀를 납치 탈취함. 室은 人家. 穴은 구멍을 뚫는다는 뜻이고 樞는 문 지도리를 떼어낸다는 뜻이다. 司馬彪는 “남의 집 문 지도리를 부수고 물건을 빼앗음이다[破人戶樞而取物也].”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집에 구멍을 뚫고 문 지도리를 벗겨내고 남의 소와 말을 빼앗음이다[穿穴屋室 解脫門樞 而取人牛馬也].”라고 풀이했다.
역주5 所過之邑 大國守城 小國入保 萬民苦之 : 도척의 무리가 지나가는 성읍은, 큰 나라는 성벽을 닫아 굳게 지키고, 작은 나라는 보루에 들어가 지켜서 만백성들이 그를 고통스럽게 여김. 所過之邑은 도척이 지나간 城邑. 保는 작은 성. 陸德明은 鄭玄 注 《禮記》를 인용하면서 “작은 성을 保라 한다[小城曰保].”라고 풀이했고, 成玄英도 “保는 작은 성이다[保 小城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必能詔其子 : 반드시 그 아들을 훈계하여 이끌 수 있어야 함. 必能은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함’. 詔는 ‘훈계하여 이끌다’.
역주7 無貴父子兄弟之親矣 : 부자와 형제 같은 친척을 귀하게 여길 까닭이 없을 것임. 親은 ‘혈연’.
역주8 心如涌泉 意如飄風 强足以距敵 辯足以飾非 : 마음은 용솟음치는 샘물처럼 끝이 없고, 意氣는 격렬한 회오리바람처럼 사나우며, 육체의 강건함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며, 언변은 자기 잘못을 꾸며대어 변명하기에 충분함. 涌泉은 도척의 욕심이 마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샘과 같음을 형용한 표현이고, 飄風은 도척의 의지를 헤아릴 수 없음을 형용한 표현이다. 距敵은 적을 막아냄. 距는 拒와 통한다(方勇‧陸永品).
역주9 易辱人以言 : 욕지거리로 남을 어렵지 않게 욕보임. 言은 욕보이는 수단, 곧 욕설, 욕지거리를 뜻한다.
역주10 先生必無往 : 선생께서는 절대 가지 마십시오. 必은 ‘절대로’.
역주11 顔回爲馭 子貢爲右 : 안회더러 수레를 몰라 하고 자공을 오른편에 앉힘. 馭는 ‘御者’, 곧 말 모는 마부. 右는 ‘오른쪽의 陪乘者’. 成玄英은 “자공이 곁에 타서 수레의 오른쪽에 있었던 것이다[子貢驂乘 在車之右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2 膾人肝而餔之 : 사람의 간으로 회를 쳐서 그것을 간식으로 먹음. 餔는 새참. ‘간식으로 먹는다.’는 뜻이다.
역주13 見謁者曰 : 謁者를 보고 말함. 謁者는 ‘應接을 맡은 자’. ‘비서’.
역주14 髮上指冠 : 갓을 찌를 듯 머리카락을 위로 솟구침. 上은 ‘위로 치솟음’. 指자가 ‘衝’으로 표기된 판본이 있다(池田知久).
역주15 爲我告之 : 내 말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전하라. 之는 ‘孔子’를 가리킨다.
역주16 爾作言造語 妄稱文武 : 너는 말을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내어, 함부로 문왕이다 무왕이다 하며 칭송함. 言은 이론, 語는 이야기, 說話. 成玄英은 “공자가 문무를 헌장하고 요순을 조술하며 예악을 산정하여 후세에 자취를 남겼음을 말한 것이다[言孔子憲章文武 祖述堯舜 刊定禮樂 遺跡將來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7 冠枝木之冠 帶死牛之脅 : 머리에는 나뭇가지처럼 장식이 많은 갓[冠]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옆구리 뱃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차고 다님, 앞의 冠은 동사로 갓을 쓴다는 뜻이다. 帶는 허리띠를 찬다는 뜻. 脅은 옆구리, 여기서는 옆구리 부위의 가죽을 말한다.
역주18 多辭謬說 : 수다스레 잘못 투성이의 謬說을 지껄여댐. 多辭는 ‘말이 많음’. ‘수다스레’의 뜻. 謬說은 ‘謬說을 지껄인다.’는 뜻이다.
역주19 不耕而食 不織而衣 : 농사짓지 않으면서 밥 먹으며, 베를 짤 줄도 모르면서 옷을 입고 다님. 〈馬蹄〉편 제1장에서는 백성의 常情으로서 “길쌈하여 옷 입고 농사지어 밥먹는다[織而衣 耕而食].”라고 했다.
역주20 搖脣鼓舌 : 입술을 놀리고 혀를 움직임. 鼓는 ‘울리다[鳴]’, ‘놀리다’의 의미.
역주21 妄作孝悌 而儌倖於封侯富貴者也 : 함부로 孝니 悌니 하는 덕목을 만들어 놓아 제후에 봉해지고 부귀하게 되는 요행을 바라게 하는 자임. 封侯富貴는 제후에 봉해져 부귀하게 됨. 儌倖은 바란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儌倖은 바람이다[儌倖 冀望也].”라고 풀이했다. 孝悌의 悌는 弟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
역주22 子之罪大極重 : 너의 죄는 커서 무겁게 처벌받아야 함. 極은 殛과 같은 뜻으로 誅罰, 處罰의 뜻이다. 兪樾은 “極은 마땅히 殛자로 써야 한다. 《爾雅》 〈釋言〉에 殛은 誅라고 했으니 죄가 커서 중벌로 처벌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極과 殛은 古字에서는 통용했다[極當作殛 爾雅釋言 殛 誅也 言罪大而誅重也 極殛古字通].”라고 풀이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역주23 疾走歸 不然 我將以子肝益晝餔之膳 : 빨리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의 간으로 점심식사의 반찬에 보탤 것임. 晝餔는 점심식사. 膳은 ‘반찬’.
역주24 丘得幸於季 願望履幕下 : 丘는 유하계와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장군의 신발이나마 軍幕 아래에서 바라보기를 원함. 幸은 ‘친하게 지냄’. 成玄英은 “감히 의용을 직접 보지는 못하겠고 막하에서 신발이나마 보기를 원함이다[不敢正睹儀容 願履帳幕之下].”라고 풀이했다.
역주25 孔子趨而進 避席反走 再拜盜跖 : 공자가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자리를 피해서 도척에게 두 번 절함. 趨는 ‘종종걸음’. 成玄英은 “趨는 빨리 달려감이다[趨 疾行也].”라고 풀이했다. 避席反走는 자리를 피해 물러남. 成玄英은 “反走는 물러남이다[反走 卻退].”라고 풀이했다.
역주26 盜跖大怒 兩展其足 案劍瞋目 聲如乳虎 曰 : 도척은 크게 노하여 양다리를 떡 벌리고 앉은 채로 칼자루를 손에 잡고 눈을 부릅뜨고서, 마치 젖먹이는 어미 호랑이와 같이 사나운 소리로 말함. 乳虎는 젖먹이는 호랑이. 陳景元은 乳를 “기름이다[育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7 凡人有此一德者 足以南面稱孤矣 : 사람 중에 누구라도 이 가운데 한 가지 덕이라도 갖추고 있으면, 충분히 군주의 자리에 앉아 제후로 일컬을 수 있음. 孤는 제후의 自稱. 이 대목은 《老子》 제39장에서 “제후 왕들이 하나를 얻어서 천하의 올바른 기준이 된다……이 때문에 제후 왕들은 스스로 孤, 寡, 不穀이라 일컫는다[侯王得一以爲天下正……是以侯王自謂孤 寡 不穀].”라고 한 맥락과 유사하다.
역주28 面目有光 脣如激丹 齒如齊貝 音中黃鍾 : 얼굴에서는 빛이 나며, 입술은 선명한 붉은 빛깔을 하고 있으며, 치아는 모양이 아름다운 조개껍질처럼 정돈되어 아름다우며, 목소리는 六律六呂의 기본음인 황종의 음률에 들어맞음. 面目은 ‘顔面, 얼굴’. 激丹의 激은 선명하다는 뜻. 成玄英은 “激은 선명함이다[激 明也].”라고 풀이했다. 齊貝는 가지런한 모양의 조개껍질. 또는 가지런히 정돈된 구슬. 成玄英은 “貝는 구슬이다[貝 珠也].”라고 풀이했다. 黃鍾은 六律의 하나로 기본음에 해당하는 음계. 齊貝가 含貝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陸德明).
역주29 丘竊爲將軍恥不取焉 : 丘는 적이 장군을 위하여 이를 부끄럽게 여겨 따르지 않음. 不取는 不贊, 贊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30 將軍有意聽臣 : 장군이 제 말을 따르실 뜻이 있다면. 聽은 ‘따른다’는 뜻.
역주31 與天下更始 罷兵休卒 收養昆弟 共祭先祖 : 온 천하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개혁하고 난세를 一新하여 전쟁을 그만두고 병졸들을 쉬게 하고, 장군의 형제들을 거두어 양육하며 공손히 조상의 제사를 지냄. 更은 ‘變更’, ‘更張’의 뜻이다. 共은 ‘공손히’라는 의미로 恭과 같다. 다만 ‘供養’의 의미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역주32 夫可規以利而可諫以言者 : 이익을 가지고 행동을 고칠 수 있고 말로 충고하여 바로 잡을 수 있는 상대. 規는 規正, 즉 행동을 고치고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역주33 皆愚陋恒民之謂耳 : 모두 어리석은 보통 사람이라고 일컬을 뿐임. 恒民은 常人, 곧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다. 恒民은 順民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陸德明).
역주34 是는 欲規我以利하야 而恒民으로 畜我也 : 이것은 나를 이익으로 規正해서 범속한 인간으로 취급해서 나를 먹이고 길들이고자 하는 것임. 畜은 飼育, 즉 먹이고 길들임.
역주35 堯舜有天下 子孫無置錐之地 : 堯나 舜은 천하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였지만 그 자손들은 송곳 하나 세워놓을 좁은 땅조차 없었음. 置는 ‘놓는다’, ‘세운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요임금은 순에게 양위하고 단주에게 주지 않았고, 순임금은 우에게 양위하여 상균이 잇지 못했다. 그 때문에 송곳 세워둘 정도의 땅도 없었다[堯讓舜 不授丹朱 舜讓禹而商均不嗣 故無置錐之地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6 古者禽獸多而人民少 : 옛날에는 새와 짐승은 많았고 인류는 숫자가 적었음. 人民은 人으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으며(楊明照, 王叔岷, 安東林), 民으로 표기되어 있는 인용도 있다(馬叙倫). 그러나 楊明照, 王叔岷, 池田知久 등이 말하듯 人民이 옳다.
역주37 神農之世 臥則居居 起則于于 : 신농씨의 세상이 되어서는 누워 잠자고 있을 때는 편안했고 일어나 깨어 있을 때에는 무심한 모양으로 한가로이 지냈음. 居居는 편안한 모양. 成玄英은 “편안하고 고요한 모양이다[安靜之容].”라고 풀이했다. 于于는 ‘스스로 만족해 하는 모양[自得之貌]’이라는 견해(成玄英, 安東林)가 있지만, 司馬彪가 “지각하는 바가 없는 모양이다[無所知貌].”라고 풀이한 것처럼 ‘無心하고 無知한 모양’이라는 해석이 적절하다. 福永光司도 ‘無心한 모양’이라고 풀이했다. ‘臥則居居 起則于于’는 〈應帝王〉편 제1장 “태씨는 누워 잠잘 적에는 느긋했고, 깨어 있을 때에는 어수룩했다[泰氏其臥徐徐其覺于于].”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역주38 與蚩尤戰於涿鹿之野 流血百里 : 치우와 탁록의 들판에서 싸워 死傷者가 흘린 피가 사방 백 리에 미침. 蚩尤는 고대 신화상의 인물로, 황제와의 싸움에 대해서는 《戰國策》 〈秦策〉一, 《史記》 〈五帝本紀〉 등에 보인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39 堯舜作 立群臣 : 요와 순이 천자가 되자 여러 신하의 지위를 만들어 상하차별을 확립함. 作은 興作의 뜻으로 일어나 천자가 됨을 말한다. 立群臣은 여러 신하의 직책을 확립함. 곧 상하의 지위를 만들어 차별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백관을 둠이다[置百官也].”라고 풀이했다.
역주40 湯武以來 皆亂人之徒也 : 탕왕과 무왕 이후로는 모두 난폭자의 무리임. 탕왕과 무왕의 혁명을 찬탈과 시해의 반역으로 규정하는 말이다. 成玄英은 “정벌과 찬탈, 시해는 탕왕과 무왕이 가장 심했다[征伐簒弑 湯武最甚].”라고 풀이했다.
역주41 縫衣淺帶 : 쿨렁쿨렁한 큰 옷에 넓은 폭의 얕은 띠를 맴. 縫衣는 쿨렁쿨렁한 큰 옷. 向秀는 “유복은 헐렁하고 크다[儒服寬而長大].”라고 풀이했고, 王引之는 “큰 옷이다[大衣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成玄英은 《禮記》 〈儒行〉편을 인용하여 “겨드랑이를 꿰맨 옷이다[縫掖之衣].”라고 풀이했는데 정확하지 않다. 淺帶는 폭이 넓은 띠. 허리띠의 폭이 넓으면 의복을 묶는 부분이 〈깊이 패이지 않고〉 얕게 된다고 풀이한 方勇‧陸永品의 풀이가 적절하다.
역주42 以甘辭로 說子路하야 而使從之 : 달콤한 말로 자로를 설득해서 추종자가 되게 함. 甘辭는 달콤한 말. 說는 ‘설득한다’는 뜻이다.
역주43 使子路去其危冠 解其長劍 : 자로로 하여금 〈勇者의 상징인〉 높은 관을 벗어 던지고 〈그가 차고 있던〉 긴 칼을 풀어 던지게 함. 危冠은 ‘높은 冠’. 李頤는 “危는 높음이다[危 高也].”라고 풀이했다. 成玄英은 “높은 관과 커다란 장검은 용자의 복장이다[高危之冠 長大之劍 勇者之服也].”라고 풀이했다.
역주44 其卒之也 子路欲殺衛君而事不成 身菹於衛東門之上 : 결국 자로는 위나라 임금 蒯聵를 죽이려 하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그 몸은 위나라의 동문 가까이에서 소금에 절여지는 형벌을 당함. 衛君은 衛나라 莊公인 蒯聵. 菹는 ‘사람 죽여 젖 담글 저, 사람 죽여 소금에 절일 저’로 菹戮, 菹醢(저해) 등의 뜻으로 쓰인다.
역주45 則再逐於魯 削跡於衛 窮於齊 圍於陳蔡 不容身於天下 : 어찌하여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축출되었고, 위나라에서는 그대가 떠난 뒤 발자취를 삭제당할 정도로 미움받았고, 제나라에서 궁지에 몰리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군대에 포위되어 천하에 몸을 용납할 데가 없었는가? 則은 ‘어찌하여 곧’→‘어찌하여’의 의미. 逐은 ‘추방당하여’. 공자의 수난과 관련된 고사는 〈山木〉편과 〈秋水〉편 등에 이미 나왔다.
역주46 子敎子路菹此患 上無以爲身 下無以爲人 : 그대는 자로로 하여금 그 같은 환난을 당하게 하였으니, 위로는 자기 몸을 편안히 지키지 못했고, 아래로는 남을 편안히 살게 하지도 못함. 金谷治는 子敎子路菹와 此患 사이에 ‘身遭’ 두 글자가 빠졌다고 보고 子敎子路菹身遭此患으로 두 글자를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견해는 王先謙의 脫文說을 이어받은 것인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47 堯不慈 舜不孝 : 요임금은 자식에 대하여 자애롭지 않았으며, 순임금은 어버이에게 불효함. 堯不慈는 요가 맏아들을 죽였다는 아래의 설화를 지칭한 것으로, 《韓非子》 〈說疑〉편에도 “요가 단주를 죽였다[堯誅丹朱].”는 이야기가 보이는데 이는 《孟子》를 비롯한 유가 문헌의 ‘舜大孝說’과는 정반대의 진술로 편협한 가족주의적 경향이 보이는 부분이다.
역주48 此六[七]子者 世之所高也 : 이 일곱 사람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들임. 황제, 요, 순, 우, 탕, 문, 무를 합치면 모두 7인이다. 따라서 陳景元이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을 따라 六子를 七子로 고치는 것이 옳다(方勇‧陸永品).
역주49 孰論之 : 자세히 따져봄. 孰은 熟과 통한다, ‘상세하게, 자세하게’의 뜻.
역주50 鮑焦는 飾行非世하야 抱木而死 : 춘추시대의 隱者 포초는 고결하게 행동하고 세상을 그르다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로 말라 죽음. 鮑焦는 춘추시대의 隱者. 成玄英은 “姓은 鮑이고 이름은 焦이다. 주나라 시대의 은자이다[姓鮑 名焦 周時隱者也].”라고 풀이했다. 飾은 飭(삼갈 칙, 다스릴 칙)의 뜻(丁展成).
역주51 申徒狄諫而不聽 負石自投於河 爲魚鼈所食 : 殷代의 은자 신도적은 임금에게 간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짊어지고 황하의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됨. 신도적에 관한 고사는 〈大宗師〉편과 〈外物〉편에 이미 나왔다.
역주52 介子推至忠也 自割其股以食文公 文公後背之 子推怒而去 抱木而燔死 : 晉 文公의 신하인 개자추는 지극히 충성스러웠는지라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는데 문공이 뒤에 그를 배반하였더니, 자추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나무를 껴안은 채 불에 타 죽음. 割其股는 《韓非子》 〈用人〉편, 東方朔의 〈七諫〉 등에 보이고, 燔死는 《楚辭》 〈惜往日〉, 《新序》 〈節士〉편 등에 보인다. 개자추는 진 문공을 따라 19년 동안 망명하였는데, 문공이 즉위한 후 다른 공신에게는 상작을 내렸으나 그는 누락되었으므로 어머니와 함께 綿山으로 은거하였는데 문공이 뒤늦게 깨닫고 그를 찾으려고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타나지 않고 마침내 불에 타 죽었다고 함. 《國語》와 《春秋左氏傳》 등에는 介之推라고 표기되어 있고, 成玄英의 注에는 介推로 표기되어 있다.
역주53 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 : 노나라 사람 미생은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가 여자가 오지 않았는데 한편 물이 자꾸 불어올라 오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죽음. 陸德明은 尾生을 두고 “어떤 판본에는 微生으로 되어 있고 《戰國策》에는 尾生高로 되어 있고 高誘는 노나라 사람이라고 했다[一本作微生 戰國策作尾生高 高誘以爲魯人].”라고 풀이했다. 《戰國策》 〈燕策〉1, 《史記》 〈蘇秦列傳〉 등에 나온다. 《論語》 〈公冶長〉편에는 微生高로 나온다.
역주54 此六子者는 無異於磔犬流豕와 操瓢而乞者 : 이 여섯 선생들은 제사에 쓰려 찢어발긴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 아니면 바가지를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다를 것이 없음. 磔犬은 사지가 찢어발겨 진 개. 流豕는 강물에 흘려보내는 돼지. 成玄英은 “여섯 사람은 伯夷, 叔齊, 鮑焦, 申徒, 介推, 尾生을 말한다[六子者 謂伯夷叔齊鮑焦申徒介推尾生].”라고 풀이했다. 六이 底本에는 四로 되어 있고, 林希逸 현토본에도 四로 되어 있지만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에 의거하여 六으로 고쳤다.
역주55 皆離名輕死 不念本養壽命者也 : 모두 명예에 걸려 죽음을 경시하여 삶의 근본을 생각하고 수명을 잘 기르지 못한 자들임. 離는 걸림. 麗(리), 罹(리)와 같다.
역주56 丘之所以說我者 若告我以鬼事 則我不能知也 若告我以人事者 不過此矣 皆吾所聞知也 : 丘가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만일 내게 귀신의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만일 인간의 일을 가지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면 지금 말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정도는〉 모두 내가 들어 알고 있는 것임. 《戰國策》 〈齊策〉에 “맹상군이 말하기를 인간의 일은 내가 이미 다 알고 있고 내가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은 귀신의 일일 뿐이다[孟嘗君曰 人事者 吾已盡知之矣 吾所未聞者 獨鬼事耳].”라고 한 내용을 답습한 부분이다(林雲銘, 池田知久).
역주57 今吾告子以人之情 : 이제 나는 그대에게 인간의 참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음. 人之情은 ‘사람에 관한 사실’, ‘인간의 참된 實相’이라는 뜻이다.
역주58 目欲視色 耳欲聽聲 口欲察味 志氣欲盈 : 눈은 아름다운 빛깔을 보고 싶어하고,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입은 맛있는 것을 맛보고자 하며, 뜻은 만족되기를 바라는 존재임. 察은 ‘맛볼 찰’, 志氣는 ‘의욕’, ‘뜻’, ‘욕심’. 志氣欲盈은 욕심을 마음껏 채우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역주59 除病瘦死喪憂患 : 병들어 여위거나, 상복을 입거나, 세상사를 근심하거나 하는 시간을 제외함. 王念孫은 “瘦는 마땅히 瘐자가 되어야 하니 오자이다. 瘐 또한 병이다. 병들어 여윈 것이 한 종류이고, 사람이 죽어서 상복을 입는 것이 또 다른 한 종류이고, 근심 걱정이 또 한 종류이다. 瘐는 瘉자로 된 판본도 있다[案瘦當爲瘐 字之誤也 瘐 亦病也 病瘐爲一類 死喪爲一類 憂患爲一類 瘐字本作瘉].”라고 풀이했다.
역주60 天與地無窮 人死者有時 :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의 죽음은 일정한 때가 있음. 時는 ‘죽지 않을 수 없는 時限’.
역주61 操有時之具而託於無窮之間 忽然無異騏驥之馳過隙也 : 죽어야 할 때가 정해진 육체를 가지고 무궁한 천지 사이에 의탁하는 것은, 짧음이 마치 騏나 驥와 같은 천리마가 문틈 사이를 달려 지나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음. 具는 ‘도구, 곧 사람의 육체’. 隙은 ‘문틈 사이’.
역주62 子之道 狂狂伋伋 詐巧虛僞事也 非可以全眞也 奚足論哉 : 그대의 도는 인간의 본성을 잃은 채 급히 달려가는 꼴이니 남을 속이는 거짓투성이이다. 인간의 참된 모습을 완전히 保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족히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狂狂은 본성을 잃고 미친 모습을 나타낸다. 成玄英은 “狂狂은 본성을 잃음이다[狂狂 失性也].”라고 풀이했다. 伋伋은 朱駿聲이 “彶은 급히 감이다[彶 急行也].”라고 하여 彶의 假借字로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馬叙倫, 王叔岷, 池田知久).
역주63 色若死灰 : 안색은 불 꺼진 잿빛 같았음. 이곳의 死灰는 단순한 의미의 부정적 표현으로 〈齊物論〉편 제1장의 枯木死灰와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역주64 據軾低頭 不能出氣 : 수레 앞턱 가로나무에 기대어 고개를 떨군 채 숨을 내쉬지 못함. 軾은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安東林). 成玄英은 “軾은 수레 앞쪽의 가로나무이니 기대어 앉는 곳이다[軾 車前橫木 憑之而坐者也].”라고 풀이했다. 出氣는 숨을 내쉰다는 뜻.
역주65 車馬有行色 得微往見跖邪 : 거마에 어디 여행 다녀오신 자취가 있으니 설마 도척을 가서 만나 보신 것은 아니겠지요? 行色은 여행한 흔적. 微는 無와 같다. 成玄英은 “微는 無이다[微 無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6 無病而自灸也 :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함. 스스로 곤욕을 자초했다는 뜻이다.
역주67 疾走料虎頭 編虎須 幾不免虎口哉 : 냅다 달려가 호랑이 머리를 건드리고, 호랑이 수염을 얽어댔으니 하마터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함. 料는 건드림, 도발함. 馬叙倫은 料를 싸움을 걸다는 뜻인 撩의 假借字라 했고, 成玄英은 犯觸의 뜻이라 했고, 福永光司는 挑弄(도발, 조롱)의 뜻으로 풀이했는데 대체로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한 것이다. 編은 ‘엮다’, ‘만지다’의 뜻.

장자(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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