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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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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하야 爲修而已矣
學者之所好也니라
語大功하며 立大名하며 하야 爲治而已矣
朝廷之士 致功幷兼者之所好也니라
就藪澤하며 하야 하야
之士 閒暇者之所好也니라
之士 之所好也니라
不刻意而高하며
無仁義而修하며 無功名而治하며 無江海而閒하며 不道引而壽하린 하야
하리니 天地之道 聖人之德也니라
이라하나니 休則平易矣 平易則恬惔矣 平易恬惔則하며 하나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억제하고 행동을 고결하게 하여 속세를 떠나고 세속과 달리 행동하여 높은 이상을 하고 자기의 불우不遇를 원망하거나 세상의 부패를 비난하여 자기를 높이는 일에 몰두할 따름이다.
이 같은 태도는 심산유곡을 방황하는 사람, 세상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말라비틀어진 모습으로 연못에 몸을 던지는 자들이 좋아하는 태도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의충신仁義忠信을 말하며 공손, 검약, 추천, 양보를 실천하여 도덕수양에 몰두할 따름이다.
이 같은 태도는 평화로운 시대의 선비들,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로 밖에 나가 유세遊說하거나 들어앉아 남을 가르치는 학자들이 좋아하는 태도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천하를 다스리는 큰 공을 말하며, 역사에 남을 큰 이름을 세우며, 군신君臣 간의 를 제정하며 상하上下의 신분질서를 엄정하게 하여 다스리는 일에 몰두할 따름이다.
이 같은 태도는 조정의 선비들,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고 나라를 강대하게 하려는 사람들, 공을 이루어 다른 나라까지 겸병하려는 자들이 좋아하는 태도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초목이 무성한 못가에 나아가고 한적하고 비어 있는 땅에 살면서 조용한 곳에서 물고기나 낚으며 무위無爲할 따름이다.
이 같은 태도는 큰 강과 바닷가의 은일자隱逸者,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로 한가한 자들이 좋아하는 태도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숨을 급히 쉬거나 천천히 쉬고, 숨을 토하거나 숨을 들이마시면서 호흡하여, 묵은 를 토해내고 새로운 를 받아들이며 곰처럼 직립直立하거나 새처럼 목을 펴면서 장수하는 일에 몰두할 따름이다.
이 같은 태도는 도인道引(호흡법을 가미한 유연한 굴신체조屈伸體操)하는 사람, 육체를 기르는 사람들로 팽조彭祖와 같은 장수자長壽者(長壽追求者)들이 좋아하는 태도이다.
〈그런데 이들 다섯 유형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를 넘어선 천지天地성인聖人이란 어떠한 것인가?〉
뜻을 새기지 않고서도 저절로 고결해지고, 인의仁義를 내세우는 일이 없어도 저절로 마음이 닦이고, 무리하게 공명功名을 세우는 일이 없어도 나라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고, 은둔隱遁명소名所라 할 큰 이나 바닷가로 숨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이 한적하고, 굳이 도인道引을 하지 않아도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는 이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잊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그리하여 담담히 끝없는 작용을 이루면 모든 아름다움이 따르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천지자연의 이고 성인聖人에게 갖추어진 이다.
그래서 “염담적막恬淡寂漠(無欲, 담백淡白, 조용하고 고요함)과 허무무위虛無無爲(無心, 무작위無作爲)는 천지의 근본이고 의 본질적 형태이다.”라고 말하고,
또 그래서 “성인聖人은 이러한 경지에서 휴식한다.”고 하는 것이니, 성인聖人이 이 경지에서 몸을 쉬면 그의 마음이 평이하게 되고 평이하게 되면 무욕담백無欲淡白하게 되고, 이처럼 평이염담平易恬淡(平靜, 안온安穩하고 무욕담백無欲淡白)하게 되면 어떤 근심 걱정도 그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으며, 어떤 사악한 도 밖에서 들어올 수 없다.
그 때문에 성인聖人은 완전하고 마음(精神)은 손상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刻意尙行 : 뜻을 새기고 행동을 고결하게 함. 뜻을 새긴다는 것은 곧 마음을 억제한다는 뜻. 刻은 새긴다는 뜻으로 司馬彪는 “깎아서 새김이니 자기의 뜻을 높이 세움이다[削也 峻其意也].”고 풀이했고, 陸德明도 “살펴보건대 뜻을 깎아서 새기고 높게 함이다[案謂削意令峻也].”고 풀이했다. 林希逸은 “조각함이다[彫刻也].”고 풀이했고, 褚伯秀는 “자기의 뜻을 갈고 새김이다[刻礪其意].”고 풀이했는데 비슷한 풀이이다. 意는 뜻. 陸德明은 “《廣雅》에는 志라 했다[廣雅云 志也].”고 풀이했다. 尙行은 ‘高尙其行’의 줄임으로 행동을 고상하게 한다는 뜻.
역주2 離世異俗 : 속세를 떠나고 세속과 달리 행동함. 馬叙倫은 異자는 冀자를 생략한 글자로 背의 뜻이라 했는데 異→冀→背로 이어지는 가차의 중복은 지나치게 번거로운 해설일 뿐더러 聲韻으로 따져 보아도 離世의 離와 異俗의 異가 같기 때문에 異자를 그대로 두고 풀이하는 간명함만 못하다.
역주3 高論怨誹 : 높은 이상을 論하고 자기의 不遇를 원망하거나 세상의 부패를 비난함. 怨誹는 자신을 원망하고 세상을 비난한다는 뜻. 《經典釋文》의 李頤가 “세상이 무도함을 비난하고 자신이 때를 만나지 못함을 원망함이다[非世無道 怨己不遇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역주4 爲亢而已矣 : 자기를 높이는 일에 몰두할 뿐임. 爲亢은 자신을 높인다는 뜻인데 높은 체하는 행동을 조소하는 뉘앙스가 있다. 李頤는 “높임을 끝까지 하는 것을 亢이라 한다[窮高曰亢].”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池田知久).
역주5 山谷之士 非世之人 : 심산유곡을 방황하는 사람과 세상을 비난하는 사람. 山谷之士는 산이나 골짜기에 은거한 사람들을 말한다. 非世之人은 세상을 비난하는 사람인데 非자가 誹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으나(馬叙倫) 두 글자는 통용하기 때문에 의미의 차이는 없다(王叔岷). 非世는 세상을 비난한다는 뜻.
역주6 枯槁赴淵者之所好也 : 말라비틀어진 모습으로 연못에 몸을 던지는 자들이 좋아하는 태도임. ‘枯槁赴淵者’는 〈外物〉편에 나오는 ‘湯임금의 양위를 피하기 위해 窾水에 빠져 죽은 紀他’, ‘河水에 빠져 죽은 申徒狄’, 〈讓王〉편에 나오는 ‘순의 양위를 피해 淸泠淵에 빠져 죽은 北人無擇’, ‘湯의 양위를 피해 椆水에 빠져 죽은 卞隨’와 역시 ‘탕의 양위를 피해 廬水에 빠져 죽은 務光’, 〈盜跖〉편에 나오는 ‘나무를 끌어안고 죽은 鮑焦와 介子推’,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죽은 尾生’ 등이 있고, 가장 유명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은 楚나라의 屈原이다(池田知久). 枯槁는 말라비틀어진 모습으로 《楚辭》 〈漁夫〉편에도 “굴원이 이미 쫓겨난 뒤에 강담에서 방황하다가 못가에서 읊조리고 있었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고 한 내용이 보인다. 林希逸은 枯槁를 “적막함이다[寂寞也].”고 풀이했는데 〈齊物論〉편의 ‘槁木死灰’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인 듯하지만 다소 빗나간 견해이다(池田知久도 불충분한 해석이라고 비판하고 있음). 赴淵은 연못에 몸을 던진다는 뜻. 司馬彪는 “枯槁는 포초나 개자추 같은 사람이고 赴淵은 신도적 같은 사람이다[枯槁 若鮑焦介推 赴淵 若申徒狄].”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말라비틀어진 모습의 사람은 鮑焦와 介子推 같은 부류이고, 연못에 몸을 던진 사람은 신도적이나 변수 같은 부류이니 이들은 모두 한쪽의 가치만 아는 사람들이니 어찌 지극한 도를 말하기에 충분하겠는가[枯槁則鮑焦介推之流 赴淵則申狄卞隨之類 蓋是一曲之士 何足以語至道哉].”라고 풀이했다.
역주7 語仁義忠信 : 仁義忠信을 말함. 仁義忠信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뜻. 仁義忠信은 《孟子》 〈告子 上〉편에 보인다.
역주8 恭儉推讓 : 공손, 검약, 추천, 양보를 실천함. 《論語》 〈學而〉편에는 “溫良恭儉讓”이 있다. 따라서 여기의 恭儉推讓은 《孟子》에 나오는 앞의 仁義忠信과 함께 孔孟을 염두에 두고 譏弄한 듯하다.
역주9 平世之士 敎誨之人 : 평화로운 시대의 선비들,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 ‘平世’는 亂世와 상대되는 말로 《孟子》 〈離婁 下〉에서 “禹와 稷이 平世(治世)를 만나 세 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공자께서 현자로 칭송하셨다[禹稷當平世 三過其門而不入 孔子賢之].”고 했을 때의 ‘平世’와 같다. 한편 成玄英은 平世之士를 “평시에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다[平時治世之士].”고 하여 ‘平世’를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보았는데 이 견해도 참고할 만하다.
역주10 遊居 : 遊說와 安居. 밖에 나가 遊說하거나 들어앉아 남을 가르친다는 뜻. 成玄英이 “어떤 경우는 나가서 논의하고 어떤 경우는 들어앉아 강설한다[或遊行而議論 或安居而講說].”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11 禮君臣 正上下 : 君臣 간의 禮를 제정하며 上下의 신분질서를 엄정하게 함. 禮君臣은 군신관계의 禮制化를 통해 군주와 신하가 서로 예로 대한다는 뜻. 正上下는 상하의 신분을 엄정하게 한다는 뜻.
역주12 尊主强國之人 :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고 나라를 강대하게 하려는 사람들. ‘尊主安國’이라는 문장이 《荀子》 〈成相〉편, 《韓非子》 〈姦劫弑臣〉편과 〈定法〉편, 《管子》 〈參患〉편 등에 보이며, 《荀子》에는 〈彊國〉이라는 이름의 편도 있다. 또 〈讓王〉편에서 務光에 의해 “강한 힘을 가지고 굴욕을 참고 견딘 사람이다[强力忍垢].”고 평가받은 伊尹 같은 인물이 이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池田知久).
역주13 處閒曠 : 한적하고 비어 있는 땅에 머묾. 閒은 閑으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陸德明은 “음은 한이니 아래도 같다[音閑 下同].”고 풀이했다.
역주14 釣魚閒處 : 조용한 곳에서 물고기나 낚음. 陸德明은 釣를 魡자로 표기하여 釣자와 같다고 풀이했다. 池田知久는 馬叙倫을 참조하여 魡자가 俗字일 것이라고 하였다. 閒은 閑으로 인용한 것이 있고(馬叙倫), 隱으로 표기된 인용문도 있다.
역주15 無爲而已矣 : 無爲할 따름임. 奚侗은 無爲를 爲無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說文解字》에서 無를 ‘亡’으로 풀이한 것을 따라 無를 ‘逃亡’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馬叙倫, 金谷治 등이 奚侗의 견해에 동의했지만 적절치 않다(陳鼓應‧池田知久). 成玄英이 “한가로이 살면서 낚시질이나 하고 세상을 피해 무위에 머문다[閒居而事綸釣 避世而處無爲].”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역주16 江海 : 강과 바닷가. 〈天道〉편 제2장에 “강과 바닷가 산림 속에 은거하는 선비[江海山林之士].”라는 표현이 있으며 〈讓王〉편에도 “몸이 강과 바닷가에 있다[身在江海之上].”고 한 표현이 있는 것처럼 은둔하기에 적당한 장소[隱遁의 名所]를 말한다. 成玄英의 疏와 池田知久의 註解를 참고할 것.
역주17 避世之人 : 成玄英은 “산이나 늪지에 은거하고 연못 등지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한가로이 살면서 낚시질이나 하고 세상을 피해 무위에 머무는 사람이니 천자가 신하로 삼지 못하고 제후가 벗으로 사귀지 못하니 이런 사람이 바로 조용하고 한가한 사람이니 바로 소보, 허유, 공열휴의 무리이다[栖隱山藪 放曠皐澤 閒居而事綸釣 避世而處無爲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斯乃從容閒暇之人 卽巢父許由公閱休之類].”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세상을 피해 한가로이 노니는 은자이다. 세상에서 도망쳐 멀리 떠나가서 시비의 밖으로 초월했다. 그 때문에 자신을 높이는 일에 몰두한 사람과는 같지 않다[避世閑暇 隱者也 逃世遠去 超出是非之外 故與爲亢非世者不同].”고 풀이했는데 모두 참고할 만하다.
역주18 吹呴呼吸 吐故納新 熊經鳥申 : 숨을 급히 쉬거나 천천히 쉬고, 숨을 토하거나 숨을 들이마시면서 호흡하여, 묵은 氣를 토해내고 새로운 氣를 받아들이며 곰처럼 直立하거나 새처럼 목을 폄. 吹는 숨을 급히 쉼, 呴는 숨을 천천히 쉼. 呼는 숨을 吐함이고 吸은 숨을 吸入하는 것임. 곧 吹呴呼吸 吐故納新은 일종의 呼吸法이고 熊經鳥申은 일종의 보건체조이다. 《淮南子》 〈精神訓〉편에도 보다 상세하게 “숨을 급히 쉬거나 천천히 쉬면서 호흡하여, 묵은 기[故]를 토해내고 새로운 기[新]를 받아들이며 곰처럼 곧게 서거나 새처럼 목을 펴며, 오리처럼 목욕하고 원숭이처럼 뛰며 소리개처럼 살피고 범처럼 돌아봄과 같은 것, 이것이 자신의 육체를 기르는 사람이다[若吹呴呼吸 吐故內新 熊經鳥伸 鳧浴蝯躩 鴟視虎顧 是養形之人也].”라고 한 내용이 나오며, 《漢書》 〈王吉傳〉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이 보인다(池田知久). 《淮南子》에는 이밖에도 〈齊俗訓〉편에 “숨을 급히 쉬거나 천천히 쉬면서 호흡하여, 묵은 기를 토해내고 새로운 기를 받아들이며 육체를 떠나고 지혜를 버리며 소박을 품고 참된 세계로 돌아가 현묘한 세계에서 노닐어 구름 위의 하늘과 통한다[吹嘔呼吸 吐故內新 遺形去智 抱素反眞 以遊玄眇 上通雲天].”고 한 내용이 있고, 〈泰族訓〉편에도 “숨을 내뱉을 때에는 묵은 기를 배출하고 들이쉴 때에는 새로운 기를 마신다[呼而出故 吸而入新].”고 한 내용이 있는데, 池田知久가 지적하였듯이 前漢 초기의 道家가 이 같은 양생법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熊經은 곰처럼 똑바로 선다는 뜻. 司馬彪는 “마치 곰이 나무를 붙잡고 기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若熊之攀樹而引氣也].”고 풀이했고, 宣穎은 “곰이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것을 배움이다[學熊之懸掛於枝].”고 풀이했는데 곰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곰의 직립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鳥申은 새처럼 목을 편다는 뜻. 王敔가 “마치 새가 목을 펴는 것과 같이 함이다[如鳥之申頸].”고 풀이한 것을 따라서 번역하였다. 鳥申을 사람이 모방할 때에는 허리를 펴는 운동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吳汝綸은 이상의 세 구절을 《淮南子》 〈精神訓〉편에서 취한 것이라 했지만 赤塚忠과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오히려 그 반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19 道引 : 道引術을 함. 호흡법과 보건체조를 통합해서 일컫는 말이다. 李頤는 “기를 인도하여 조화롭게 하고 몸을 끌어당겨 부드럽게 함이다[導氣令和 引體令柔].”고 풀이했다. 《史記》 〈留侯世家〉에 “留侯는 본래 병이 많아서 도인술을 하면서 곡식을 먹지 않았다[留侯性多病 卽道引不食穀].”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漢의 功臣 張良도 도인술을 익힌 것으로 추정된다. 道자가 導자로 표기된 판본과 인용문이 있는데(劉文典, 王叔岷), 두 글자는 통한다(馬叙倫).
역주20 養形之人 : 육체를 기르는 사람들. 養形은 제3장의 養神과 대비되는 개념이다(陸樹芝, 池田知久). 뒤의 〈達生〉편에는 養形에 대한 상세한 비판이 있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21 彭祖壽考者 : 팽조와 같은 長壽者 또는 팽조처럼 장수하려고 하는 長壽追求者를 지칭한다. 彭祖는 전설적인 長壽者. 내편의 〈逍遙遊〉편 제1장과 〈齊物論〉편 제1장에 旣出. 《詩經》 〈秦風 終南〉, 〈大雅 行葦〉 등에 보인다(福永光司).
역주22 若夫…… : ‘저……와 같은 사람은’ ‘……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의 뜻이 되는데 不道引而壽까지 걸린다.
역주23 無不忘也 無不有也 : 모든 것을 잊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음. 郭象은 “잊어버리기 때문에 가질 수 있다[忘 故能有].”고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랐다. 한편 林希逸은 《老子》 제37장을 활용하여 “바로, 함이 없는 것이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卽無爲無不爲也].”라고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24 澹然無極而衆美從之 : 담담히 끝없는 작용을 이루면 모든 아름다움이 따르게 됨. 澹然은 담담함, 담박함. 澹은 淡과 통한다. 陸德明은 澹然이 澹而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고 했다. ‘衆美’는 앞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추구했던 온갖 아름다운 가치, 곧 高, 修, 治, 閒, 壽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衆美從之’는 얼핏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을 듯한 담박함 속에 온갖 아름다움이 들어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呂惠卿은 ‘衆美從之’를 “이른바 高, 修, 治, 閒, 壽 등이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所謂高修治閒壽者 不召而自來].”고 풀이했는데 정곡을 찌른 해설이라 할 만하다.
역주25 夫恬惔寂漠 虛無無爲 此天地之平 而道德之質也 : 恬惔寂漠(無欲, 淡白, 조용하고 고요함)과 虛無無爲(無心, 無作爲)는 천지의 근본이고 道와 德의 본질임. 恬惔寂漠은 無欲, 淡白 등으로 표현되는 조용하고 고요한 상태를 의미하며 虛無無爲는 無心과 無作爲의 상태를 의미한다. 거의 같은 문장이 〈天道〉편 제2장에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지키고 편안하고 담백하며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천지자연의 기준이며 지극한 도덕이다[夫虛靜恬淡寂寞無爲者 天地之平而道德之至].”라고 하여 이미 나왔는데 그것을 밑그림으로 삼아 작성한 글인 듯하다. 惔은 淡으로 표기된 판본과 인용문이 있고(羅振玉, 王叔岷, 楊明照), 恬惔을 澹泊으로 표기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王叔岷은 憺의 가차자로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漠자가 莫으로 표기된 판본이 있고(羅振玉), 寞으로 표기된 판본과 인용문이 있는데 통용하는 글자이다(王叔岷). 또 平자가 本으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고(馬叙倫), 質자가 篤 또는 至자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으며(馬叙倫, 王叔岷), 〈天道〉편에도 至로 표기되어 있는데, 兪樾은 이것을 근거로 質자를 至의 가차라고 주장했다. 또 陸德明은 “올바른 모습이다[正也].”고 풀이했지만 宣穎이 “근본이다[本].”고 풀이한 것이 가장 적절한 견해이다. 陳壽昌이 “실질이다[實也].”라고 풀이한 것도 비슷한 견해이다(池田知久).
역주26 聖人休焉 : 聖人은 이러한 경지에서 휴식함. 底本에는 “聖人休休焉 則平易矣”로 표기되어 있는데 兪樾이 〈天道〉편을 근거로 하여 고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고, 奚侗도 陳景元이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張君房본을 근거로 ‘聖人休焉’으로 고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곧 ‘聖人休休焉’은 ‘聖人休焉’으로 고치고 한 字 남은 休자는 아래 句로 이어져 ‘休則平易矣’가 된다. 休의 뜻은 陸德明이 “쉼이다[息也].”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陶鴻慶은 바로 위의 曰자를 잘못 끼어든 문자[衍文]라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27 憂患不能入 : 근심 걱정이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음. 〈天道〉편 제2장에 “우환이 머물 수 없다[憂患不能處].”고 하여 비슷한 표현이 있으며 〈養生主〉편 제4장과 〈大宗師〉편 제3장에도 “슬픔과 즐거움이 들어오지 못한다[哀樂不能入也].”는 표현이 있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28 邪氣不能襲 : 사악한 氣가 밖에서 들어올 수 없음. 襲은 밖에서 안으로 엄습해 온다는 뜻. 敦煌본에는 ‘襲也’ 두 글자로 표기되어 있고(羅振玉), 襲也로 표기된 인용문도 있다(王叔岷). 成玄英은 “들어옴과 같다[猶入也].”고 풀이했다.
역주29 其德全而神不虧 : 德은 완전하고 마음(精神)은 손상되지 않음. 德全은 〈天地〉편 제11장에 이미 나왔다(池田知久). 虧는 ‘이지러지다, 손상되다’는 뜻. 敦煌본에는 ‘虧矣’ 두 글자로 표기되어 있고(羅振玉), 矣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과, 虧也로 표기된 인용문도 있다(王叔岷).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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