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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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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하사 이어시늘
공자가 서쪽으로 가서 나라 왕실에 〈자기가 편수編修한〉 서적을 소장시키려고 했다.
謀曰
제자 자로子路가 이렇게 상의했다.
호니 라호니 夫子 欲藏書신댄하소서
“제가 들으니 나라의 징장사徵藏史 중에 노담老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향리鄕里에 돌아가 살고 있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저서著書수장收藏케 하고자 하신다면 시험 삼아 그에게 가서 소개를 부탁하시지요.”
孔子曰 善하다하시고 하시니하야늘
공자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 가서 노담을 만나 보았는데 노담이 허락하지 않았다.
於是 하야 하다
이에 공자는 가지고 간 십이경十二經을 펴놓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老聃
노담이 중간에 그 말을 끊고 말했다.
이로(소)니하노라
“너무 번거로우니 그 요점을 듣고 싶소.”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要 在仁義하니라
“요점은 인의仁義에 있습니다.”
老聃曰
노담이 말했다.
請問하노라 仁義 人之性邪
“묻겠는데 인의仁義는 사람의 본성本性인가요?”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하니라
“그렇습니다.
군자가 불인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불의하면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으니 인의는 참으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又將奚爲矣리오
이것 말고 또 무엇을 하겠습니까.”
老聃曰
노담이 말했다.
請問하노니 何謂仁義
“묻겠는데 무엇을 인의라 합니까?”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마음에서부터 만물을 즐거워하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인의의 실정입니다.”
老聃曰
노담이 말했다.
인저
“아! 위태롭구나.
거듭해서 다시 또 겸애兼愛를 말하는 것은 또한 우활迂闊하지 않은가.
사심私心을 없애려 하는 것이 바로 사심私心이다.
若欲使天下 인댄
선생이 만일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길러짐[牧]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려 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日月 固有明矣 星辰 固有列矣
천지는 본래 일정한 질서가 있으며, 해와 달은 본래 저절로 밝음이 있으며, 별들은 본래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으며, 금수는 본래 무리 지어 살고 있으며, 수목은 본래 대지 위에 서 있으니
夫子 已至矣 又何揭仁義 이리오
선생도 또한 본래 갖추어진 에 따라 행동하고 를 따라 나아간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할 것인데 또 무엇 때문에 애써 인의仁義를 내걸고 마치 북을 두드리며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합니까?
아!
夫子 亂人之性也리로다
선생은 사람의 참다운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역주
역주1 孔子 : 池田知久의 조사에 따르면, 《莊子》 중에서 공자가 老子와 문답한 것은 모두 여덟 차례이다. 그중에서 공자에게 仁義 등의 유교 도덕이나 十二經 등의 유가 고전을 논하게 하고 있는 것은 이곳 말고는 〈天運〉편 제6장과 제7장뿐이다. 따라서 이 셋은 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이므로 동일한 사상을 가진 인물들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주2 藏書於周室 : 周나라 왕실에 〈자기가 編修한〉 서적을 소장시키려 함. 司馬彪는 藏書를 “자신의 저서를 소장시킴이다[藏其所著書也].”라고 풀이했다. 姚鼐는 “이 또한 漢代의 말이다. 藏書란 성인이 秦의 焚書坑儒가 있을 것을 알고 미리 감춤을 말한다[此亦漢人語 藏書者 謂聖人知有秦火 而預藏之].”라고 풀이했다(池田知久).
역주3 子路 : 공자 제자 仲由의 字. 成玄英은 “성은 仲이고 이름은 由이며 字는 子路이다. 공자의 제자이다[姓仲 名由 字子路 仲尼弟子也].”라고 풀이했다.
역주4 周之徵藏史 : 周나라의 徵藏史. 司馬彪는 “徵藏은 藏名이다[徵藏 藏名也].”라고 했는데 藏名이 도서관의 명칭이란 의미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 분명치 않다. 陸德明은 史를 ‘藏府之史’로 풀이했다. 《史記》 〈老子列傳〉에는 老子의 官職을 “周守藏室之史”라고 기록하고 있다. 池田知久에 의하면, 이런 관직은 先秦시대에는 없었던 것으로 漢代 武帝期를 前後하여 考案된 말이라고 추정된다. 또한 노자가 柱下史였다는 주장도 약간 뒤늦게 세상에 나왔는데 柱下史는 圖書 및 書記를 맡은 周代의 官名으로 秦의 御史와 漢의 侍御史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徵藏史를 알기 쉽게 간단히 정리하면, 徵은 典(맡아 함)이고 史는 史官‧書記 또는 司書이니, 곧 서적 수집‧收藏을 담당하는 도서관의 司書라고 봄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역주5 有老聃者 : 老聃이라는 사람이 있음. 陸德明은 或說을 인용하여 “老聃은 공자시대의 노자에 대한 호칭이다[老聃是孔子時老子號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免而歸居 : 지금은 그만두고 鄕里에 돌아가 머뭄. 陸德明은 “노자가 주나라의 말기에 다시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음을 보았기 때문에 사양하고 떠났음을 말한 것이다[言老子見周之末 不復可匡 所以辭去也].”라고 풀이했다.
역주7 試往因焉 : 시험 삼아 그에게 가서 소개를 부탁함. 因은 통한다, 의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소개받다는 의미로 쓰였다. 試往因焉이 當試焉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劉文典). 《論語》 〈學而〉편 제13장의 ‘因不失其親’의 朱子 注에서는 “因은 依다[因 依也].”라고 하고 있다.
역주8 往見老聃 : 가서 노담을 만남. 往자가 性자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는데(馬叙倫) 오류인 듯하다. 이 句 전체를 ‘至老聃之門’으로 표기하고 있는 인용문이 있다(劉文典).
역주9 老聃不許 : 노담이 허락하지 않음. 소장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소장하도록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許자 아래에 也가 붙어 있는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역주10 繙十二經 : 十二經을 펼침. 繙은 司馬彪가 “번민함이다[煩冤也].”라고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 成玄英은 ‘繙覆’으로 반복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林希逸도 成玄英의 견해를 따라 “반복해서 말함이다[反覆言之也].”라고 풀이했고 대부분 이 견해를 따르지만 맥락상 미흡하며, 王敔가 “풀어냄이다[繹也).”라고 풀이한 것과 馬叙倫이 《說文解字》에서 “譒(파)는 폄이다[譒 敷也].”라고 풀이한 것을 근거로 敷의 假借字로 보았는데 이들의 견해를 따라 공자가 十二經을 죽 펼쳐 놓고 노담을 설득하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經의 原義는 織物의 세로실인데 경전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전국시대의 《墨子》나 《韓非子》 등의 제자백가서에서 항구불변의 진리를 기록한 책을 이렇게 부른 데서 시작한다. 儒家에서 經書의 관념은 戰國 末의 荀子에서 시작되고 詩‧書‧禮‧樂‧春秋의 다섯을 꼽고 있는데 이것이 정착하는 것은 漢武帝때에 五經博士를 설치하고부터일 것이다. 또 이 책의 〈天運〉편 제7장을 포함하여 漢代에는 六經을 드는 일이 극히 많아서 賈誼의 《新書》 〈六術〉편과 《禮記》 〈經解〉편, 《漢書》 〈司馬遷傳〉과 〈藝文志〉 등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의 十二經도 그것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陸德明은 “詩, 書, 禮, 樂, 易, 春秋의 六經에다 또 六經을 보태서 십이경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春秋十二公의 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說者云 詩書禮樂易春秋六經 又加六經爲十二經 又一云 春秋十二公經也].”라고 풀이했다. 또한 한참 뒤 唐의 開成石經도 十二經이다(池田知久).
역주11 以說 : 설득함. ‘세’로 읽는다. 陸德明의 견해를 따라 여기서 絶句한다.
역주12 中其說 : 중간에 그 말을 끊음. 역시 陸德明의 견해를 따라 其說에서 絶句한다. 中其說에 대해 成玄英은 “일리가 있음을 인정함이다[許其有理也].”라고 풀이했고 褚伯秀는 “그 말에 합당함을 말함이다[謂當其言].”라고 풀이했는데 옳지 않다. 林希逸이 “공자의 말이 바야흐로 절반에 이르렀는데 노자가 너무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 것이다[言方及半 而老子以爲太學].”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朱得之가 “그 말의 중반에 끼어들다[半其言也].”라고 풀이한 것과 方揚이 《莊子要刪》에서 “말이 바야흐로 절반에 이르렀을 때 노자가 갑자기 중지시킴이다[語方及半 而老子遽止之也].”라고 풀이한 것도 같은 뜻이다. 宣穎, 陸樹芝, 陳壽昌, 王先謙, 阮毓崧, 奚侗, 楊樹達, 嚴靈峯, 陳鼓應 등도 같은 견해이고 赤塚忠, 金谷治, 福永光司, 池田知久 등도 같다.
역주13 大謾(태만) : 너무 번거로움. 大는 너무, 지나치게의 뜻일 때에는 ‘태’로 발음하는데 太로 된 판본도 있으며(王孝魚) 뜻에는 차이가 없다. 謾은 번거로움. 成玄英은 “번거롭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싫어함이다[嫌其繁謾太多].”라고 풀이했다. 林希逸이 “지나치게 흘러넘침을 말함이다[言太汗漫也].”라고 풀이한 것도 대의는 비슷하다. 林雲銘, 陸樹芝, 阮毓崧도 마찬가지. 宣穎은 “속임이다[欺也].”라고 풀이했고, 王先謙도 비슷한데 적절치 않다(池田知久). 楊樹達은 曼과 같다고 보고 “불어남이다[長也].”라고 했다(池田知久).
역주14 聞其要 : 요점을 듣고자 함. 要는 요약된 내용. 要자 아래에 也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역주15 君子不仁則不成 : 군자가 불인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함. 池田知久도 거론하고 있듯이, 成玄英은 “현인군자가 만약 불인하면 이름과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한다[賢人君子 若不仁 則名行不成].”라고 풀이했는데 《論語》 〈里仁〉편에서 “군자가 인을 떠난다면 어디에서 이름을 이루겠는가[君子去仁 惡乎成名].”라고 말한 데서 따온 것이다. 呂惠卿은 “人道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仁은 다만 자기 자신을 이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이루어 주는 것이다[自人道觀之 仁不特成己而已 所以成物也].”라고 풀이했다. 《孟子》 〈離婁 上〉편에 “천자가 불인하면 사해를 보존하지 못하고 제후가 불인하면 사직을 보존하지 못하고 경대부가 불인하면 종묘를 보존하지 못하고 사서인이 불인하면 사지를 보존하지 못한다[天子不仁 不保四海 諸侯不仁 不保社稷 卿大夫不仁 不保宗廟 士庶人不仁 不保四體].”라고 하여 이와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16 不義則不生 : 불의하면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음. 成玄英이 “의롭지 아니하면 삶의 도리가 성립되지 않는다[不義則生道不立].”라고 풀이했다. 역시 池田知久도 지적하고 있듯이 呂惠卿은 “의는 다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세우는 방법이다[義不特利物而已 所以立我也].”라고 풀이했다. 《孟子》 〈公孫丑 上〉편에서 맹자가 浩然之氣를 설명하면서 “그 氣의 성질은 義와 道에 부합되어야 하니 이것이 없으면 주리게 된다[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餒也].”라고 한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宣穎).
역주17 仁義眞人之性也 : 인의는 참으로 인간의 본성임. 眞은 副詞. 《孟子》 〈告子 上〉편에서 告子가 “性은 버드나무와 같고 義는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다. 인성을 가지고 인의를 실천하는 것은 마치 버드나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性猶杞柳也 義猶桮棬也 以人性爲仁義 猶以杞柳爲桮棬].”라고 한 내용이 나오는데 仁義를 인간의 본성으로 볼 수 있느냐를 주제로 논쟁한 것으로 이 부분의 주제와 유사하므로 참고할 만하다. 《孟子》 〈盡心 上〉편에도 “군자가 타고난 본성은 인의예지로서 마음 속에 근거하고 있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
역주18 中心物愷 : 마음에서부터 만물을 즐거워함. 愷자는 즐길 개 자인데, ‘中心物愷’는 마음에서부터 만물을 즐거워한다, 마음속으로부터 만물과 함께 즐거움을 같이한다, 마음에서부터 만물과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근거로 呂惠卿과 林希逸의 해석을 소개한다. 呂惠卿은 《孟子》에 나오는 浩然之氣에 대한 설명을 활용하여 “밖에서 나를 엄습해 오는 것이 아니다. 만물을 즐겁게 여기면 어떤 사물도 즐겁지 않음이 없게 된다[非外鑠我者也 物愷 則無物而不樂也].”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만물을 즐거움으로 여겨 만물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以物爲樂 與物爲一之意也].”라고 풀이했다. 宣穎이 “만물과 함께 즐긴다[與物同樂].”라고 풀이한 것도 비슷한 견해이다. 이 밖에 馬其昶은 物愷를 “樂愷와 같다[猶樂愷也].”라고 풀이했고, 吳汝綸, 章炳麟, 奚侗, 馬叙倫 등은 物을 易의 잘못이라 했고, 武延緖는 物을 慷의 와전이라 하고, 李勉은 物을 和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등 諸說이 분분하다(池田知久).
역주19 兼愛無私 此仁義之情也 :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인의의 실정임. 사심이 없다는 것은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池田知久는, 兼愛는 墨家의 普遍的 相互愛(相互愛의 普遍化)인데, 이것과 儒家의 親疎에 근거한 差別愛를 혼동하는 것은 先秦시대에는 적고 漢代 이후로 많이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 하고 있다.
역주20 : 아! 탄식하는 소리. 司馬彪는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소리[不平聲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1 幾乎 : 거의 위태로움. 幾는 위태롭다는 뜻. 危나 殆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成玄英은 “가깝다[近]”는 뜻으로 풀이했는데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통설이기는 하나 적당하지 않다. 林希逸이 “幾乎는 위태로울 것이라는 뜻이다[幾乎 危乎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褚伯秀와 馬其昶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陶鴻慶이 “殆”로 풀이한 것도 같은 뜻이다.
역주22 復言夫兼愛 : 거듭 兼愛를 말함. 復言은 底本에 後言으로 되어 있는데 陶鴻慶과 馬叙倫의 견해를 따라 復言으로 고쳤다. 後言으로 풀이하는 경우는 成玄英처럼 앞의 幾乎를 後言과 연결시켜서 “뒤에 하는 말은 거짓에 가깝다[後發之言 近乎浮僞].”는 뜻으로 풀이하거나 羅勉道나 方揚처럼 “낙후된 이야기에 가깝다[近乎落後底說話].”라고 풀이하게 되겠지만 옳지 않다. 또 陶鴻慶은 “復의 의미는 반복함이다[復之義爲反復].”라고 하여 復言의 復를 ‘복’으로 읽고 있다. 하지만 ‘부언’으로 읽고 뒤의 夫兼愛와 연결하여 ‘復言夫兼愛’로 구두하고 “거듭 兼愛를 말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
역주23 不亦迂乎 : 또한 迂闊하지 아니한가. 迂는 도와 거리가 멀다는 뜻. 成玄英은 “迂는 굽음이다[迂 曲也].”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이것은 왜곡되어 시행하기 어려운 말이다[此迂曲難行之說也].”라고 풀이했지만, 그것보다는 方揚이 “도를 떠남이 이미 멀다. 그 때문에 迂闊하다고 말한 것이다[去道已遠 故謂之迂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역주24 無私焉乃私也 : 私心을 없애려 하는 것이 바로 私心이다. 成玄英은 “다른 사람을 두루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매우 사사로운 것이니 무슨 공평함이 있겠는가[夫兼愛於人 欲人之愛己也 此乃甚私 何公之有邪].”라고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 朱得之가 “의도적으로 사심이 없기를 바라는데 의도적인 것이 바로 사심이다[意求無私 意卽私也].”라고 풀이한 것이 定說이다(池田知久).
역주25 夫子 : 선생, 또는 그대. 여기서는 선생이라 번역하였는데, 공자를 가리킨다.
역주26 無失其牧乎 : 길러짐[牧]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함. 牧은 司馬彪가 “길러 줌이다[養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成玄英 疏본에 의하면 放으로 된 판본이 있다 하나 馬叙倫의 지적처럼 牧자의 와전일 것이다. 馬叙倫은 한 걸음 더 나아가 〈天運〉편 제6장의 ‘吾子使天下無失其朴’으로 된 문장이 이와 유사함에 착안하여 牧자를 朴의 가차자라고 보고 無失其朴乎로 보았는데, 그럴 경우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이 장의 逆說的 풍자의 맛이 소멸되기 때문에 따르기 힘들다.
역주27 天地固有常矣 : 천지는 본래 일정한 질서가 있음. 前後의 趣旨는 林希逸이 “천하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길러 줌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천지 사이의 사물들이 모두 자연의 조화를 지니고 있는데 어찌 힘을 쓰는 것을 용납하겠는가. 다만 자연의 덕에 의지하고 자연의 도를 따라 움직이기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이미 지극한 경지이다[欲使天下無失其所養 則天地之間 物物皆有自然之造化 何可容力 但當依放自然之德 循行自然之道 能如此 已爲極矣].”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大宗師〉편 제1장에 “죽고 사는 것은 명이다. 〈죽고 사는 것에〉 밤낮처럼 일정함이 있는 것은 자연이다[死生 命也 其有夜旦之常 天也].”라고 한 내용과 관련이 있다(赤塚忠). 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荀子》 〈天論〉편에도 “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함이 있다[天行有常].”는 표현이 보인다.
역주28 禽獸固有羣矣 樹木固有立矣 : 금수는 본래 무리 지어 살고 수목은 본래 대지 위에 서 있음. 〈馬蹄〉편 제2장에서 “금수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초목이 마음껏 자랄 수 있었다[禽獸成群 草木遂長].”라고 한 내용을 답습한 것(赤塚忠).
역주29 放德而行 循道而趨 : 본래 갖추어진 德에 따라 행동하고 道를 따라 나아감. 放은 依放의 뜻. 〈天運〉편 제6장에 “바람 따라 움직이고 덕을 총괄해서 똑바로 선다[放風而動 摠德而立矣].”라고 한 내용이 나오고 放風의 放을 司馬彪가 “의지함이다[依也].”라고 풀이했는데 여기의 放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荀子》 〈天論〉편에 “도를 따라 의심하지 않으면 하늘도 화를 내릴 수 없다[循道而不貳 則天不能禍].”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
역주30 偈偈(걸걸)乎 : 표 나게 내다 건 모양. 陸德明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힘쓰는 모양이다[或云 用力之貌].”라고 或說로서 풀이한 것이 적절함. 〈天運〉편에는 ‘傑然’으로 나오는데 같은 뜻이다. 偈는 여기서는 ‘걸’로 발음하며 ‘힘써’, ‘애써’의 뜻이 된다.
역주31 若擊鼓而求亡子焉 : 마치 북을 두드리며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함. 陳鼓應은 “亡子는 길 잃은 사람이다[亡子 失迷的人].”라고 풀이했다. 대의는 成玄英이 “큰 북을 치면서 도망친 자식을 찾는다. 이 때문에 북을 크게 칠수록 도망친 자식은 더욱 멀리 간다. 인의를 드러낼수록 도와의 어긋남은 더욱 멀어진다. 그 때문에 그것을 얻을 방법이 없다[打擊大鼓而求覓亡子 是以鼓聲愈大而亡子愈遠 仁義彌彰而去道彌遠 故無由得之].”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함. 도망친 자식을 찾는다고 북을 치면서 쫓아다니면 북소리를 듣자마자 자식은 더 멀리 도망칠 텐데 무엇 때문에 이런 바보짓을 하느냐는 뜻이다. 《神仙傳》에서는 子자가 羊자로 되어 있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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