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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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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 謂老聃하야
曰 丘 治하야 自以爲久矣로니
이니 論先王之道而明之迹호대 一君에도 호니
甚矣夫
老子曰
幸矣
今子之所言 猶迹也 이니 而迹 豈履哉리오
이며 이니 苟得於道하면 無自而不可커니와 하니라
丘 得之矣로다
久矣夫이로니
不與化 爲人이면 安能化人이리오
老子曰
하다
로다


공자가 노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 , , , , 춘추春秋육경六經을 익힌 지 스스로 오래되었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가지고 72명의 군주에게 나아가 유세하여 선왕의 를 논하고 주공과 소공의 자취를 밝혔지만 한 명의 군주에게도 채택되어 쓰인 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심하다 할 만합니다.
사람을 달래기가 어렵고 도를 밝히기 어려움이.”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당신이 치세의 군주를 만나지 못함이.
무릇 육경이란 선왕이 남긴 자취이니 어찌 그 자취를 남긴 참다운 모습이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자취와 같은 것이고 자취란 발걸음에서 나온 것이니 당신의 자취가 어찌 당신의 발걸음일 수 있겠습니까.
흰 물새가 서로 마주 보면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으며, 벌레가 수컷이 위쪽에서 울면 암컷이 아래쪽에서 호응하여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아서, 같은 부류들은 저절로 상대를 암컷이나 수컷으로 삼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습니다.
본성은 바꾸어서는 아니 되고 운명을 변화시켜서는 안 되며 때를 지체시켜서는 안 되며 도를 막아서는 안 되니 만약 도를 터득하면 무엇을 말미암든 안 될 것이 없겠지만 도를 잃어버리면 말미암아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자가 석 달 동안 외출하지 않다가 다시 노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드디어 를 터득했습니다.
까막까치는 알을 까서 새끼를 낳고, 물고기는 거품을 뿌려 새끼를 낳고 허리 가는 벌레들(벌 종류)은 누에를 키워 자기 자식으로 삼고 〈사람은〉 동생이 생기면 형이 울고불고 합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저는 조화造化와 벗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조화와 벗이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됐소.
여.
당신은 도를 체득하였소.”


역주
역주1 詩書禮樂易春秋六經 : 儒家의 기본 經典. 六經은 ‘六藝’라고도 하며 《史記》 〈滑稽列傳〉에서는 禮‧樂‧書‧詩‧易‧春秋의 순서로 列擧하고 있는데(福永光司), 이 六經의 배열 순서가 詩‧書‧禮‧樂‧易‧春秋로 이것과 완전히 같은 것은 本書 〈天下〉편이다(池田知久).
역주2 孰知其故矣 : 그 일을 잘 알고 있음. 孰은 熟과 같다(羅勉道). 故는 事의 뜻이니, 熟知其故는 그 내용에 精通하였다는 뜻이다.
역주3 以奸者 七十二君 : 그것을 가지고 요구한 대상이 72명의 군주였음. 곧 72명의 군주에게 나아가 유세했다는 뜻인데 72는 數의 많음을 말하는 誇張表現이다(池田知久). 孔子의 제자도 72인이었다고 하는 등(《史記》 〈孔子世家〉) 72라는 숫자는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奸은 干의 뜻으로, 구한다는 뜻.
역주4 周 召 : 周公 旦과 召公 奭. 《史記》에 의하면 周公 姬旦은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동생이자 成王의 숙부였다. 召公 姬奭은 周왕실과 同姓의 사람으로 주공과 함께 주의 대표적인 현신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으로 〈魯世家〉와 〈燕世家〉에 그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周本紀〉에 의하면 둘은 함께 武王의 혁명을 돕고 무왕의 아들 성왕을 보좌하여 천하를 다스렸다고 했으며 “成王은……召公을 保로 삼았고, 周公을 師로 삼았다[召公爲保 周公爲師].”라고 하여 둘을 병칭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을 병칭하는 경우에 대한 자세한 주석은 池田知久를 참조할 것.
역주5 無所鉤用 : 채택하여 쓰인 적이 없음. 鉤는 ‘모은다’는 뜻으로 拘와 통하며 取 또는 聚와 같은 뜻이다. 陸德明은 鉤를 “취함이다[取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甚矣夫 人之難說也 道之難明邪 : 심하다 할 만합니다. 사람을 달래기가 어렵고 도를 밝히기 어려움이. 明邪가 行也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는데(王叔岷)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유세의 어려움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는 《荀子》 〈非相〉편에 “유세의 어려움[凡說之難].”이라 한 데서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고, 《韓非子》에도 유세의 어려움을 논한 〈說難〉편이 있다.
역주7 幸矣 子之不遇治世之君也 : 다행입니다. 당신이 치세의 군주를 만나지 못함이. 治世의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한 말이다.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 천하를 다스린다고 하다가 도리어 혼란을 부채질할 뻔하였으니,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은근한 야유로 볼 수도 있다.
역주8 夫六經先王之陳迹也 : 무릇 육경이란 선왕이 남긴 자취임. 〈그대들이 金科玉條처럼 생각하는〉 六經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옛 성왕들이 남긴 낡은 자취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天道〉편 제10장의 “임금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이라 한 것과 이 편 제4장의 “지금 그대의 선생 또한 옛 聖王들이 이미 진설했던 芻狗를 주웠다[今而夫子 亦取先王已陳芻狗].”라고 한 것과 거의 같은 사상의 표현이다(林希逸).
역주9 豈其所以迹哉 : 어찌 그 자취를 남긴 참다운 모습이겠는가. 所以迹은 발자국을 만들어 낸 원인[所以], 즉 근본 그 자체를 말한다. 聖王 그 본인, 또는 그 본인이 지니고 있던 道인 것이다.
역주10 夫迹履之所出 : 자취란 발걸음에서 나온 것임. 履는 실제의 발걸음이고 迹은 발걸음이 남긴 자취. 迹자 아래에 者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역주11 夫白鶂之相視 眸子不運而風化 : 흰 물새가 서로 마주 보면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고 있으면 交尾 없이도〉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음. 白鶂은 鶂을 鷁(새이름 익)으로 표기한 인용문이 있으나(馬叙倫, 王叔岷), 두 글자는 통한다(馬叙倫). 眸子不運은 宣穎이 “눈동자를 고정시켜 주시함이다[定睛注視].”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而風化는 《莊子闕誤》에서 인용하고 있는 張君房본에는 “而感風化”로 표기되어 있고 또 感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도 있다(馬叙倫). 馬叙倫은 風을 衍文이라 하나 오랜 것으로, 郭象도 “흰 물새는 눈동자를 고정시켜 서로 마주 보며 벌레는 우는 소리로 서로 호응하여 모두 육체적 결합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새끼를 친다. 그 때문에 風化라고 한 것이다[鶂以眸子相視 蟲以鳴聲相應 俱不待合而便生子 故曰風化].”라고 한 풀이가 있으므로 風을 끼어든 글자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風化의 의미는 郭象의 견해를 따라 交尾 없이 새끼 밴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可하다. 林希逸은 “무릇 모든 생물은 풍기가 만든 것이다. 바람 풍 자에는 벌레 충 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바로 물을 생성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風化라고 한 것이니 새끼를 낳음을 말한 것이다[凡物皆風氣所生 風字從虫 便有生物之義 故曰風化 言生子也].”라고 풀이했다. 또 司馬彪는 “풍기를 기다려 변화 발생함이니 서로 보기만 하고 음양의 일을 이룬다[相待風氣而化生也 相視而成陰陽].”라고 풀이했는데(池田知久) 참고할 만하다. 다시 한 번 風化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 風은 암수가 서로 유혹함이고 化는 感通하여 새끼 밴다는 뜻이다.
역주12 蟲雄鳴於上風 雌應於下風而風化 : 벌레가 수컷이 위쪽에서 울면 암컷이 아래쪽에서 호응하여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음. 上風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 즉 위쪽을 말하고 下風은 바람이 가는 쪽 즉 아래쪽을 말한다. 雌應於下風而風化의 ‘而風化’는 底本(《莊子集釋》)에 있는 그대로인데, 다른 通行本에서는 風자가 빠져 ‘而化’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敦煌 唐寫本 또는 古逸叢書本에 근거하거나 兪樾에 의거하여 ‘風’자를 보충해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風化는 앞의 注에서도 말했듯이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 밴다는 뜻.
역주13 類自爲雌雄 : 같은 부류들은 저절로 상대를 암컷이나 수컷으로 삼음. 同類의 생물들은 저절로 雌雄의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郭象의 注에 근거한 해석인데, ‘類’를 《山海經》 〈南山經〉 등에 보이는 兩性具有의 상상의 동물로 보는 해석도 있다(福永光司).
역주14 故風化 : 때문에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음.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張君房본에는 ‘故曰風化’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劉文典은 이상 여덟 글자를 注의 문장이 잘못 끼어든 것이라고 보았는데(池田知久) 일리는 있지만 따르지는 않는다.
역주15 性不可易 命不可變 : 본성은 바꾸어서는 아니 되고 명은 변화시켜서는 안 됨. 性과 命은 〈騈拇〉편과 〈在宥〉편에서 ‘性命之情’이라고 한 것을 나누어 쓴 것이다. 〈達生〉편 제1장에는 “生命의 실정에 통달한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에 힘쓰지 아니하고 運命의 실정에 통달한 사람은 자기의 지혜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을 힘쓰지 않는다[達生之情者 不務生之所無以爲 達命之情者 不務知之所無奈何].”라고 한 표현과 유사하다.
역주16 時不可止 : 때를 지체시켜서는 안 됨. 시간의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는 뜻. 〈秋水〉편 제1장에 “때는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時無止].”라고 한 표현이 나온다(福永光司).
역주17 道不可壅 : 도를 막아서는 안 됨. 비슷한 표현이 이 편 제5장에 “오직 커다란 변화를 따라 그 흐름을 막는 행위가 없는 자[唯循大變無所湮者].”라고 나왔다(福永光司).
역주18 失焉者 無自而可 : 도를 잃어버리면 말미암아 될 것이 없음. 無自而可는 말미암아 될 것이 없다, 곧 무엇에 의해서도(어떠한 경우에도) 잘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在宥〉편 제7장에 “도를 통달하지 못하는 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不通於道者 無自而可].”라고 하여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역주19 孔子不出三月复見 : 공자가 석 달 동안 외출하지 않았다가 다시 노자를 만남. 复見의 見은 보통 만나 뵈었다는 뜻으로 ‘현’으로 읽음. 앞 장의 ‘孔子見老聃歸 三日不談’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역주20 烏鵲孺 : 까막까치는 알을 까서 새끼를 낳음. 孺는 새끼를 깐다는 뜻. 李頤가 “부화시켜 낳음이다[孚乳而生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馬叙倫은 朱駿聲에 의거하여 乳의 가차자라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이하의 네 구절을 각각 卵生, 濕生, 化生, 胎生(出産의 네 유형)을 말한다고 한 것은 林希逸, 褚伯秀, 唐順之, 林雲銘, 陳壽昌 등이다(池田知久).
역주21 魚傅沫 : 물고기는 거품을 뿌려 새끼를 낳음. 傅沫은 거품 모양의 정자를 뿌려서 수정하는 물고기의 생태를 보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傅沫은 司馬彪가 “거품으로 서로 기른다[以沫相育也].”라고 풀이했고, 陸德明이 一說에 “입 속의 거품을 뿌려 서로 함께 새끼를 낳는다[傅口中沫 相與而生子也].”라고 풀이한 것이 가깝다(池田知久).
역주22 細要者化 : 허리 가는 벌레들(벌 종류)은 누에를 키워 자기 자식으로 삼음. 細要者는 陸德明이 “벌 종류이다[蜂之屬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要는 腰와 같은데, 벌이 허리 부분이 가늘게 되어 있어 그렇게 命名된 것일 것이다. 化는 새끼를 친다는 뜻. 司馬彪에 의거, 벌이 뽕나무 벌레의 幼蟲을 자기 새끼로 기르는 것을 말한다. 司馬彪는 “누에 벌레를 잡아다 기도하여 자기와 닮게 함이다. 살펴보건대 《詩經》 〈小雅 小宛〉편에서 이른바 뽕나무 벌레[螟蛉]가 새끼를 낳았는데 벌[果蠃]이 업어 간다고 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取桑蟲祝使似己也 案卽詩所謂螟蛉有子果蠃負之是].”라고 풀이했는데 《莊子》의 이 부분이나 《詩經》의 詩, 그리고 司馬彪의 기록 모두 실제로 그와 비슷한 생태를 보고 기록한 것일 테지만 자세하지는 않다.
역주23 有弟而兄啼 : 〈사람은〉 동생이 생기면 형이 울고불고 함. 郭象이 “사람들의 본성은 큰 놈은 놔두고 작은 것을 사랑한다. 그 때문에 〈형이〉 우는 것이다[言人之性 舍長而親幼 故啼也].”라고 풀이했다. 이 경우를 인간이 자식을 낳는[生] 것으로 보아, 여기까지의 ‘濡’ ‘沫’ ‘化’ ‘生’을 佛敎의 四生(卵生‧濕生‧化生‧胎生)에 해당시켜 설명하는 주석도 있다.
역주24 與化爲人 : 조화와 벗이 됨. 爲人은 벗이 됨. 人은 벗[友]이다. 〈大宗師〉편 제4장이나 〈應帝王〉편 제3장에 “조물자와 벗이 된다[與造物者爲人].”라고 한 표현이 있다(池田知久). 郭象이 “조화와 벗이 된 사람은 그 스스로 변화하는 것에 맡기니 만약 六經은 버려둔 채 자연에 맡기듯이 유세하면 잘 통할 것이다[夫與化爲人者 任其自化者也 若播六經以說則疏也].”라고 풀이한 것이 좋다(池田知久).
역주25 丘得之矣 : 丘여. 당신은 道를 체득하였소. 丘는 물론 공자의 이름이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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