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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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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안연顔淵중니仲尼에게 물었다.
“언젠가 제가 상심觴深의 못으로 불리는 넓고 크고 깊고 물살이 센 곳을 건넌 일이 있었습니다만, 뱃사공이 배를 모는 솜씨가 마치 귀신같았습니다.
吾問焉曰 操舟 可學邪 曰 可하니다
그래서 제가 ‘배 젓는 일은 배워서 되는 겁니까?’ 하고 물었는데, 사공이 말하기를, ‘되지요.
이어니와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배 젓는 것을 빨리 익힐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잠수부 같은 사람은 배를 한 번 보지도 않고 바로 배를 저을 수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까닭을 물어보았지만 저에게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敢問何謂也잇고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만, 그게 무슨 뜻인지요?”
仲尼曰
중니仲尼가 말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若乃夫沒人之未嘗見舟而便操之也
그런데 잠수부 같은 사람이 배를 한 번 보지도 않고 바로 배를 저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깊은 연못을 마치 언덕과 같이 보고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마치 수레가 후진後進하는 정도와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전복顚覆과 퇴각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더라도 그것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니, 어디에 간들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물건을 던져서 승패勝敗를 겨루는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경우에〉 별 가치가 없는 기왓장을 〈경품景品으로〉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승부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아주 잘 던지고, 이보다 가치가 있는, 이나 으로 만든 혁대고리를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마음이 약간 떨려 두려워하고, 황금을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완전히 마음이 어두워져 혼란에 빠져 잘 맞추지 못한다.
이면 則重外也니라
〈그런 까닭은〉 기술은 같은데 놓치면 아깝다고 생각하는 집착심이 있게 되면 외물外物을 중시하여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무릇 외물外物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내면의 마음이 소홀하게 된다.”
역주
역주1 顔淵問仲尼 : 안연이 중니에게 물음. 顔淵은 顔回로 표기되어 있는 인용문이 있는데 淵은 字이고 回는 이름이다. 《列子》 〈黃帝〉편에도 顔回로 표기되어 있다(王叔岷). 問은 問於로 표기되어 있는 인용문이 있으며 《列子》에는 問乎로 표기되어 있다(王叔岷).
역주2 吾嘗濟乎觴深之淵 : 觴深이라는 연못을 건넌 적이 있었음. 濟자가 游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劉文典, 王叔岷). 觴深은 연못 이름. 成玄英은 “연못 이름이다. 그 모양이 잔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니 송나라에 있다[淵名也 其狀似桮 因以爲名 在宋國也].”라고 풀이했다. 李勉, 赤塚忠 등은 觴을 廣大하다는 의미인 湯觴의 뜻으로 풀이했다. 淵자는 泉자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劉文典, 王叔岷).
역주3 津人操舟若神 : 뱃사공이 배를 모는 솜씨가 마치 귀신같음. 津人은 成玄英이 “나루를 건네주는 사람을 말함이다[謂津濟之人也].”고 풀이한 것처럼 뱃사공이다.
역주4 善游者數(촉)能 :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배 젓는 것을 빨리 익힐 수 있음. 數은 嚴復이 “數能은 速成과 같다[數能 猶速成也].”고 풀이한 것을 따라 빠르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다만 ‘數習而後’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으며(馬叙倫, 劉文典, 王叔岷), 劉文典, 王叔岷 등은 그것이 옳다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5 若乃夫沒人 : 잠수부 같은 사람. 若乃는 乃若으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으며(王重民, 寺岡龍含), 《列子》에도 乃若으로 표기되어 있다. 《經傳釋詞》에 따르면 “若乃는 말머리를 돌리는 표현이다[若乃 轉語詞也].”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6 未嘗見舟而便操之也 : 배를 한 번 보지도 않고 바로 배를 저을 수 있음. 便操之는 바로 배를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다. 操之는 操之者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寺岡龍含)과 인용문이 있으며(馬叙倫), 《列子》에도 者자가 붙어 있다.
역주7 吾問焉而不吾告 : 내가 그 까닭을 물어보았지만 나에게 말해 주지 않음. 宣穎은 “또 그 까닭을 물음이다[又問其故].”라고 풀이했다.
역주8 善游者數能 忘水也 :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물을 잊어버리기 때문임. 물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빨리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陳景元은 “물을 잊어버리는 자는 배는 그대로 있지만, 배를 보지 않은 자는 물과 배를 모두 잊어버린 것이다[忘水者 猶存舟 未嘗見舟 兼忘之也].”고 풀이했다.
역주9 彼視淵若陵 視舟之覆 猶其車却也 : 그는 깊은 연못을 마치 언덕과 같이 보고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마치 수레가 後進하는 정도와 같이 여김. 宣穎은 “연못이 있는 것이 보이지 않으니 마치 뭍과 같이 보아 빠질까 하는 두려움이 없음이다[不見有淵 如陸然 無沈溺之懼].”라고 풀이했다. 淵은 衆泉으로 표기되어 있는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郭象은 “연못을 언덕과 같이 보기 때문에 배가 연못에서 뒤집히는 것을 마치 수레가 비탈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과 같이 여긴다[視淵若陵 故視舟之覆於淵 猶車之却退於阪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0 覆却萬方陳乎前 而不得入其舍 : 전복과 퇴각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더라도 그것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함. 覆却은 배가 뒤집히는 것과 수레가 후퇴하는 것. 奚侗은 “위의 배와 수레를 이어 말한 것이다[承上舟車言].”고 말했다. 萬方은 林希逸이 풀이한 것처럼 ‘萬端’의 뜻이다.
역주11 惡往而不暇 : 어디에 간들 여유가 없겠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郭象은 “만난 상황마다 모두 겨를이 있다[所遇皆閒暇也].”고 풀이했다.
역주12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 별 가치가 없는 기와를 〈景品으로〉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승부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아주 잘 던지고, 이보다 가치가 있는, 銀이나 銅으로 만든 혁대고리를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마음이 약간 떨려 두려워하고, 황금을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완전히 마음이 어두워져 혼란에 빠져 잘 맞추지 못함. 모두 물건을 던져서 勝敗를 겨루는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경우를 견주어 말한 것이다. 이하의 문장은 《呂氏春秋》 〈去尤〉편, 《淮南子》 〈說林訓〉편 등에도 나온다. 특히 赤塚忠의 지적처럼 《呂氏春秋》에는 ‘莊子曰’이라는 세 글자가 덧붙여져 있으므로, 원래 《莊子》에 있었던 문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장 전체가 《呂氏春秋》 성립 이전의 저작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注는 《呂氏春秋》에서 殶로 표기되어 있고(陳景元), 《淮南子》에는 鉒로 표기되어 있고, 《列子》에는 摳로 표기되어 있다. 江南古藏本에도 殶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陳景元). 洪頤煊, 馬叙倫, 王叔岷이 말하는 것처럼 네 글자는 같은 의미로 ‘던진다’는 뜻이다. 憚은 《呂氏春秋》에는 戰으로 표기되어 있고, 《淮南子》에는 跋로 표기되어 있는데 각각 ‘두려워하다’, ‘비틀거리다’의 뜻으로 의미에 큰 차이가 없다. 陳景元이 “놀람이니 두려워함이다[驚也 懼也].”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殙은 어두워짐. 《說文解字》에서 “어두워짐이다[瞀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3 其巧 一也 而有所矜 : 기술은 같은데 놓치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경품이 있게 되면. 《呂氏春秋》에는 矜자가 ‘殆者’로 표기되어 있다. 成玄英은 “아껴서 애석히 여김이다[矜而惜之].”고 풀이했다.
역주14 凡外重者內拙 : 무릇 外物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내면의 마음이 졸렬하게 됨. 外重은 重外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고(寺岡龍含), 《列子》에는 重外로 표기되어 있다. 拙은 위 문장의 巧와 상대되는 표현이다(池田知久).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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