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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장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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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道 不怒하며 又好學而博不異하나 不與先王으로하야 毁古之禮樂하니
古之喪禮 貴賤 有儀하며 上下 有等하며
天子 棺槨 七重이오 諸侯 五重이오 大夫 三重이오 再重이어늘
今墨子 獨生不歌하며 死不服하고 하니
大聖也로대 而形勞天下也
不能如此 非禹之道也 不足謂墨이라하니라
하야 冀得爲其後世하야 至今不決하나니
墨翟禽滑釐之意則是 其行則非也
將使後世之墨者 必自苦하야 以腓無胈 脛無毛
亂之上也 治之下也
將求之不得也 하니 才士也夫인저


후세 사람들에게 사치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만물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법도를 번드레하게 내걸지 아니하여 엄격한 계율을 만들어 스스로를 규제하여 세상의 위급에 대비하니 옛날의 도술道術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학술이 있었다.
묵적墨翟금골리禽滑釐는 그 학문의 기풍을 듣고 기뻐하여 실천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추구했고 절제하기를 너무 지나칠 정도로 따라서, 비악非樂편을 짓고, 절용節用편이라는 이름을 붙여 살아서는 노래하지 않고 죽어서는 상복을 입는 일이 없었다.
묵자墨子는 널리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어야 하며 싸움은 그르다고 말했다.
남이 모욕해도 성내지 않는 것을 도리로 여겼으며 또 학문을 좋아하여 널리 배우는 것만은 선왕의 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학문은 선왕의 와 같지 않아서 옛날의 예와 악을 비난하였다.
황제黃帝에게는 함지咸池가 있었고, 임금에게는 대장大章이 있었고, 임금에게는 대소大韶가 있었고, 임금에게는 대하大夏가 있었고, 임금에게는 대호大濩가 있었고, 문왕文王에게는 벽옹辟雍이라는 태학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있었고, 무왕武王주공周公라는 음악을 지었다.
고대古代상례喪禮는 귀천에 따른 의례가 있었으며, 상하의 사이에 차등이 있었다.
천자는 을 합쳐 일곱 겹이고 제후는 다섯 겹이고 대부는 세 겹이고 는 두 겹이었다.
그런데 유독 묵자墨子만은 살아서는 노래하지 아니하고 죽어서는 상복喪服을 입지 않고, 오동나무 관을 세 치 두께로 만들고, 외관은 만들지 아니하고 그것을 법식으로 삼았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면 아마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런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면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묵자의 를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렇지만 흥겨워 노래하고 싶은데 노래를 비난하며, 울고 싶은데 우는 것을 비난하며, 음악을 연주하여 즐기고 싶은데 음악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인정人情에 가까운 것인가.
살아서는 노동에 지치고, 죽어서는 허술하게 떠나니, 그 는 너무 인정머리가 없다.
세상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을 슬프게 할 뿐이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니 아마도 그것을 성인의 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하 사람들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인지라 천하 사람들이 그것을 감내하지 못할 것이니 묵자가 비록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한들 천하 사람들을 어쩌겠는가.
천하 사람들로부터 유리遊離되어 버린지라 왕자의 에서 멀리 벗어나 버린 것이다.
묵자墨子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옛날 임금이 홍수를 막고 장강과 황하의 수로를 터서 사방의 이적夷狄구주九州의 교통로를 소통하게 하였는데 그때 천하天下에는 커다란 하천이 3백 개였고, 지류가 3천 개였으며, 그 밖에 작은 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우임금이 친히 삼태기와 보습을 손에 들고 천하의 내를 규합할 때 우임금의 장딴지에는 살이 빠졌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어지고 장맛비에 얼굴 씻고 모진 바람에 빗질한 끝에 만국萬國을 건설하였다.
우임금은 대성인大聖人인데도 이처럼 천하를 위해 자기 몸을 혹사했다.”
그리하여 후세의 묵가墨家로 하여금 거친 옷을 입고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자기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최고의 규율로 삼게 하고는 말하기를,
“능히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우임금의 도리가 아닌지라 묵가라 하기에 부족하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묵가의 제자로는〉 상리근相里勤의 제자들과 오후五侯의 무리와 남방南方묵가墨家고획苦獲이치已齒등릉자鄧陵子의 무리들이 모두 묵가의 경서를 독송하고 있는데, 그 해석이 서로 배반하고 대립하여 같지 않아서 서로 상대방을 별묵別墨이라 하여
견백론堅白論동이론同異論으로 서로 비난하고 기수奇數우수偶數처럼, 짝이 맞지 않고 어긋나는 말로 서로 응수하여 ‘거자巨子’를 성인聖人이라고 하면서
모두 자기가 주인이 되기를 원하여 자기가 묵자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묵적墨翟금골리禽滑釐의 뜻은 옳았으나 실천 방법은 잘못되었다.
후세의 묵가로 하여금 반드시 스스로를 괴롭혀서 장딴지에 살이 다 빠지고 정강이에 털이 닳아 없어지도록 강제함으로써 서로 생명을 다 소진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데는 상책이요 천하를 편안히 다스리는 데는 하책이다.
비록 그러하나 묵자 자신은 참으로 천하를 좋아하였다.
그는 구하던 것을 얻지 못하게 되면 비록 자기 몸이 말라비틀어진다 하더라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不侈於後世 不靡於萬物 不暉於數度 : 후세 사람들에게 사치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만물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법도를 번드레하게 내걸지 아니함. 侈는 사치함, ‘奢’와 같다(成玄英). 靡는 낭비함. 成玄英은 “靡는 화려함이다[靡 麗也].”라고 풀이했다. 不暉는 번드레하게 꾸밈. 成玄英은 “暉는 밝음이다[暉 明也].”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暉는 화려함이니 예악제도 따위로 화려하게 꾸미지 않음이다[暉 華也 不以禮樂制度爲暉華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 以繩墨自矯 而備世之急 : 엄격한 계율을 만들어 스스로를 규제하여 세상의 위급에 대비함. 繩墨은 규율, 엄격한 법칙, 계율. 自矯는 스스로 자기를 규제함. 郭象은 “矯는 엄격히 함이다[矯 厲也].”라고 풀이했다. 急은 急務.
역주3 墨翟禽滑釐聞其風而悅之 : 墨翟과 禽滑釐는 그 학문의 기풍을 듣고 기뻐함. 禽滑釐는 전국 초기의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子夏에게 배우다가 墨翟의 제자가 되었는데, 楚나라가 宋나라를 칠 때 墨翟의 명을 따라 제자 3백 명을 거느리고 가서 宋나라를 도왔다고 하는데, 《墨子》 〈備梯〉편에 그 활약상이 보인다.
역주4 爲之大過 已之大循 : 실천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추구했고 절제하기를 너무 지나칠 정도로 따름. 大過는 너무 지나침. 大는 ‘태’로 발음한다. 已之는 그만둠, 곧 절제한다는 뜻이다. 陳榮選은 “已는 억제하고 막음이다[已 抑遏之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兪樾은 已는 以와 같고 用의 뜻이라고 했는데 또 다른 견해로 참고할 만하다. 大循은 大順과 같다(郭慶藩).
역주5 作爲非樂 命之曰節用 生不歌 死無服 : 비악편을 짓고, 절용편이라는 이름을 붙여 살아서는 노래하지 않고 죽어서는 상복을 입는 일이 없었음. 〈非樂〉과 〈節用〉은 모두 《墨子》의 편 이름(陸德明, 成玄英). 成玄英은 “非樂과 節用은 《墨子》의 편 이름이다. 살아서 노래하지 않기 때문에 음악을 비난했고, 죽어서 상복을 입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재용을 절약한다고 이름을 붙인 것이니 수의나 관곽 따위의 장례물품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곤궁하고 검소하게 살아서 낭비를 애석히 여김을 말한 것이다[非樂節用 是墨子二篇書名也 生不歌 故非樂 死無服 故節用 謂無衣衾棺槨等資葬之服 言其窮儉惜費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墨子氾愛兼利而非鬪 : 墨子는 널리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어야 하며 싸움은 그르다고 말함. 氾愛는 兼愛를 말한다. 《孟子》에 따르면 墨翟은 ‘내 아버지와 남의 아버지의 차별애’를 부정했는데 이 때문에 맹자에게서 ‘어버이를 업신여긴다[無父].’는 비난을 받았다. 또 《墨子》 〈兼愛〉편에서는 ‘兼愛交利’를 주장했는데 모두 氾愛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氾은 泛과 통용한다(方勇‧陸永品). 한편 郭象은 “물자가 부족하면 싸우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 그런데 묵자는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근검절약하게 하여 각자 여유가 있게 하기 때문에 싸움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夫物不足 則以鬥爲是 今墨子令百姓皆勤儉各有餘 故以鬥爲非也].”라고 풀이했는데 독특한 견해로 참고할 만하다.
역주7 黃帝有咸池 堯有大章 舜有大韶 禹有大夏 湯有大濩 文王有辟雍之樂 武王周公作武 : 黃帝에게는 咸池가 있었고, 堯임금에게는 大章이 있었고, 舜임금에게는 大韶가 있었고, 禹임금에게는 大夏가 있었고, 湯임금에게는 大濩가 있었고, 周 文王에게는 辟雍이라는 태학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있었고, 武王와 周公은 武라는 음악을 지었음. 咸池는 黃帝가 짓고 堯임금이 增修했다는 음악 이름. 大章은 요임금의 음악 이름. 大韶는 순임금의 음악 이름으로 줄여서 韶라고 한다. 大夏는 우임금의 음악. 大濩는 탕임금의 음악으로 濩는 ‘풍류이름 호’로 읽는다. 辟雍은 太學을 말하는데 문왕의 덕을 칭송한 음악을 말한다. 武는 武王이 殷나라의 마지막 임금 紂를 정벌한 무공을 칭송한 음악이다. 成玄英은 “이상은 五帝三王의 음악 이름이다[已上是五帝三王樂名也].”라고 풀이했다.
역주8 桐棺三寸而無槨 以爲法式 : 오동나무 관을 세 치 두께로 만들고, 외관은 만들지 아니하고 그것을 법식으로 삼음. 槨은 외관. 내관을 棺이라 하고 외관은 槨이라 한다. 桐棺三寸은 《墨子》 〈節葬 下〉편에 ‘棺三寸’이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9 以此敎人 恐不愛人 以此自行 固不愛己 :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면 아마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런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면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게 될 것임. 自行은 자기 자신에게 시행한다는 뜻. 실천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여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하지도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10 未敗墨子道 : 墨子의 道를 공격하려는 것은 아님. 未는 非와 같다. 成玄英은 “未는 無이다[未 無也].”라고 풀이했는데 같은 뜻이다. 敗는 훼방함. 攻 또는 伐과 같다. ‘敗케 하다’ ‘비난 공격하다’는 뜻이다.
역주11 歌而非歌 哭而非哭 樂而非樂 是果類乎 : 노래하고 싶은데 노래를 비난하며, 울고 싶은데 우는 것을 비난하며, 음악을 연주하여 즐기고 싶은데 음악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人情에 가까운 것인가. 類는 類似 또는 近思로 가깝다는 뜻이다. 林希逸은 “類는 가깝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과연 인정에 가까운 것인가를 말함이다[類 近也 言如此果與人情相近乎].”라고 풀이했다.
역주12 其生也에 勤하고 其死也에 薄하니 其道 大觳 : 살아서는 노동에 지치고, 죽어서는 허술하게 떠나니, 그 道는 너무 인정머리가 없음. 觳은 ‘인정머리 없을 각’. 郭象과 成玄英은 모두 “觳은 윤기가 없음이다[觳 無潤也].”라고 풀이했는데 家世父의 지적처럼 觳은 薄의 뜻으로 ‘각박함, 인정머리 없음’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역주13 使人憂 使人悲 其行難爲也 恐其不可以爲聖人之道 : 세상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을 슬프게 할 뿐이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니 아마도 그것을 성인의 道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임. 郭象은 “성인의 도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여 백성들을 부린다. 백성들은 자기 본성이 좋아하는 것을 얻으면 기뻐한다. 백성들이 기뻐하면 천하에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夫聖人之道 悅以使民 民得性之所樂則悅 悅則天下無難矣].”라고 풀이했고, 成玄英 또한 郭象의 견해를 이어받아 “성인의 도는 백성들의 환심을 얻는데 지금 백성들로 하여금 걱정하고 슬프게 하여 오랫동안 실행하기 어렵고 또 윤택하게 함도 없기 때문에 세상을 교화할 수 없다[夫聖人之道 得百姓之歡心 今乃使物憂悲 行之難久 又無潤澤 故不可以敎世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4 反天下之心 天下不堪 : 천하 사람들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인지라 천하 사람들이 그것을 감내하지 못할 것임. 反天下之心은 천하 사람들의 마음에 반대가 됨. 堪은 堪耐함.
역주15 墨子雖獨能任 奈天下何 : 묵자가 비록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한들 천하 사람들을 어쩌겠는가. 任은 ‘감내하다, 견뎌내다’는 뜻.
역주16 離於天下 其去王也 遠矣 : 천하 사람들로부터 유리되어 버린지라 왕자의 道에서 멀리 벗어나 버렸음. 郭象은 “왕자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이 기뻐하는 마음에 부합해야 하니 그런 뒤에 다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다[王者必合天下之懽心而與物俱往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7 墨子稱道曰 : 墨子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함. 稱道曰의 道는 말함(金谷治, 池田知久). 稱道曰의 道를 ‘말하다’는 뜻으로 보지 않고 道術로 보고 ‘道를 일컬어 말하다.’는 뜻으로 풀이한 견해(福永光司, 安東林)도 있다.
역주18 昔禹之湮洪水 決江河而通四夷九州也 名川三百 支川三千 小者無數 :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막고 장강과 황하의 수로를 터서 사방의 夷狄과 九州의 교통로를 소통하게 하였는데 그때 天下에는 커다란 하천이 3백 개였고, 지류가 3천 개였으며, 그 밖에 작은 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음. 湮은 ‘막는다[塞]’는 뜻으로 ‘인’으로 발음한다. 禹湮洪水는 《書經》 〈禹貢〉편 등에도 보인다. 墨子는 이로써 우임금의 근로를 모범으로 세웠다. 四夷는 東夷, 西戎, 南蠻, 北狄을 가리킨다. 名川은 커다란 하천, 大川과 같다(郭慶藩). 名川이 名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馬叙倫). 兪樾이 증명한 것처럼 名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은 名川을 오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19 禹親自操槖耜 而九雜天下之川 : 우임금이 친히 삼태기와 보습을 손에 들고 천하의 내를 규합함. 槖은 ‘흙담을 그릇 탁, 전대 탁’. 耜는 ‘쟁기날 사, 보습 사’. 成玄英은 “橐은 흙을 담는 그릇이고, 耜는 흙을 파는 도구이다[橐 盛土器也 耜 掘土具也].”라고 풀이했다. 九雜은 糾雜과 같다. 九는 鳩(=糾)合의 뜻. 수많은 支川의 물을 大川의 흐름에 모으는 치수사업을 말한다. 九를 ‘여러 차례’의 뜻으로 보고 九雜을 ‘여러 차례 합쳤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역주20 腓無胈 脛無毛 沐甚雨 櫛疾風 置萬國 : 우임금의 장딴지에는 살이 빠졌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어지고 장맛비에 얼굴 씻고 모진 바람에 빗질한 끝에 만국을 건설함. 腓는 ‘장딴지 비’. 脛은 ‘정강이 경’. 崔譔본에는 沐甚雨의 甚자가 湛자로 표기되어 있다(陸德明).
역주21 禹大聖也而形勞天下也如此 : 우임금은 大聖人인데도 이처럼 천하를 위해 자기 몸을 혹사함. 形勞는 ‘육체를 혹사함’. 우임금의 치수에 관한 기록은 《孟子》 〈滕文公 上〉 제4장, 〈離婁 下〉 제29장 등에 보인다. 成玄英은 “우임금은 대성인인데도 오히려 이처럼 고생했는데 하물며 우리처럼 범용한 사람들이 수고롭게 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禹之大聖 尙自艱辛 況我凡庸 而不勤苦]?”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한편 郭象은 “묵자의 무리들은 한갓 우임금이 몸을 수고롭게 한 것만 알고 우임금의 본성이 거기에 꼭 맞았음을 알지 못했다[墨子徒見禹之形勞耳 未睹其性之適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2 使後世之墨者로 多以裘褐로 爲衣하며 以跂蹻으로 爲服하고 日夜에 不休하야 以自苦로 爲極 : 후세의 묵가로 하여금 거친 옷을 입고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자기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최고의 규율로 삼게 함. 服은 ‘신다, 착용하다’는 뜻. 林希逸, 陳景元은 ‘用’으로 풀이했고, 羅勉道, 王敔는 ‘事’로, 阮毓崧은 ‘行’으로 풀이했는데 의미에 큰 차이는 없다. 跂蹻은 ‘나막신, 짚신’. 爲極의 極은 최고의 규율, 가치를 뜻한다.
역주23 相里勤之弟子 : 相里勤의 제자. 상리근은 다른 묵가 집단을 지칭한다. 상리근은 묵가의 후학 이름. 《韓非子》 〈顯學〉편에 “묵자가 죽고 난 뒤에 상리씨의 묵가가 있었고 상부씨의 묵가가 있었고 등릉씨의 묵가가 있었다[自墨子之死也 有相里氏之墨 有相夫氏之墨 有鄧陵氏之墨].”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 司馬彪는 “성은 상리이고 이름이 근이다[姓相里 名勤].”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성은 상리이고 이름은 근이다. 남방지역에서 활동한 묵가의 스승이다[姓相里 名勤 南方之墨師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4 五侯之徒 : 오후의 무리. 五侯는 인명. 五는 姓, 侯는 이름. 五는 孫詒讓이 말하듯 伍子胥, 伍被 등의 경우처럼 伍라는 姓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池田知久). 林希逸은 “5국 제후의 무리이다[五國諸侯之徒].”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하지 않다.
역주25 苦獲已齒鄧陵子之屬 : 苦獲과 已齒와 鄧陵子의 무리. 苦獲과 已齒는 두 사람의 인명. 李頤는 “두 사람의 성명이다[二人姓字也].”라고 풀이했다. 鄧陵子는 《韓非子》 〈顯學〉편에 나오는 ‘鄧陵氏’이다.
역주26 俱誦墨經 而倍譎不同 相謂別墨 : 모두 묵가의 경서를 독송하고 있는데, 그 해석이 서로 배반하고 대립하여 같지 않아서 서로 상대방을 別墨이라 배척함. 章學誠의 《文史通義》에 따르면 여기의 墨經은 墨辨(孫詒讓)이 아니고, 《墨子》 전체를 가리킨다(池田知久). 倍譎은 ‘배반하고 어김’. 相謂別墨은 서로 상대를 眞墨이 아닌 別派라고 비난했다는 뜻이다.
역주27 以堅白同異之辯相訾 以觭偶不仵之辭相應 以巨子爲聖人 : 堅白論과 同異論으로 서로 비난하고 奇數와 偶數처럼, 짝이 맞지 않고 어긋나는 말로 서로 응수하여 ‘巨子’를 聖人이라 함. 觭偶는 奇偶. 觭는 奇數로 奇와 같이 홀수라는 뜻으로 쓰였고 偶는 偶數, 곧 짝수를 말한다. 仵는 伍의 假借字로 馬叙倫의 풀이처럼 不仵는 不伍, 不倫과 같이 서로 차례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巨子는 묵가의 지도자. 崔譔본에는 鉅子로 표기되어 있다(陸德明). 向秀는 “묵가에서는 도리를 이룬 사람을 鉅子라고 하는데 마치 유가에서 말하는 碩儒와 같다[墨家號其道理成者爲鉅子 若儒家之碩儒].”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向秀본에도 鉅子로 표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주28 皆願爲之尸 : 모두 자기가 주인이 되기를 원함. 尸는 주인 노릇함. 郭象은 “尸는 주인 노릇함이다[尸者 主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9 相進而已矣 : 서로 생명을 다 소진하게 할 뿐임. 進은 소진함. 盡과 같다(馬叙倫, 福永光司). 成玄英은 “進은 나음이다. 의도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지는 데에 있다[進 過也 意在過人也].”라고 풀이했는데, 成玄英의 견해를 따르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람보다 더 앞서 나아가기[進] 위해 다투었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蔣錫昌이 進을 ‘競’으로 풀이한 것도 成玄英과 같은 맥락이다.
역주30 墨子眞天下之好也 : 묵자 자신은 참으로 천하를 좋아하였음. 天下之好는 好天下와 같다. 郭象은 “그가 참으로 성현을 좋아하고 존중하여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로써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을 뿐이다[爲其眞好重聖賢不逆也 但不可以敎人].”라고 풀이했다. 한편 兪樾은 “眞天下之好는 참으로 천하를 좋아했음을 말함이니 바로 묵자의 겸애를 말한 것이다[眞天下之好 謂其眞好天下也 卽所謂墨子兼愛也].”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라 할 만하다.
역주31 雖枯槁不舍也 : 비록 자기 몸이 말라비틀어진다 하더라도 그만두지 않음. 舍는 止와 같다. ‘버림, 그만둠’의 의미. 《孟子》 〈盡心 上〉 제26장에서 묵자를 두고 “묵자는 겸애를 추구하여 이마부터 갈아 발뒤꿈치까지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한다[墨子兼愛 摩頂放踵利天下爲之].”라고 하여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장자(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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