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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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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생주養生主
[해설]
양생養生에 관한 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 후기에 이르러 어느 학파를 막론하고 널리 제창되고 실천實踐되어 왔는데 도가학파道家學派가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莊子》 중에서도 양생에 관한 논의는 이 편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보인다. ‘양생養生’은 생을 기른다는 뜻으로, 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횡사橫死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생명을 보존하여, 있는 그대로의 을 다하는 것이다. 양생주養生主의 ‘’는 근본, 중심 등을 의미하는데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의 ‘樞機之發 榮辱之主’라고 할 때의 ‘’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편명인 양생주養生主의 의미는 ‘양생養生을 근본적인 것[主]으로 삼는 것’, 또는 ‘양생養生의 근본적인 ’, ‘양생의 중심’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양생주養生主라는 편명을 ‘양생養生’로 풀이해야 할 것인지 ‘생주生主한다’는 식으로 풀이해야 할 것인지 논란이 있지만, 육덕명陸德明이 저술한 《경전석문經典釋文》에서 ‘을 기르는 [養生以此爲主也]’라고 해석한 이래 오늘날도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해석을 따른다.
한편 임희일林希逸, 저백수褚伯秀, 주득지朱得之, 임운명林雲銘, 선영宣穎, 근대의 관봉關鋒 등은 ‘생주生主’를 목적어로 보고 ‘’을 서술어로 보아 양생주養生主를 ‘주인主人(근본원리)을 기른다’는 식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자》 본문에 양생養生이란 말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가 도처에 나오고, 양성養性이나 양심養心 등의 표현이 비슷한 시기의 문헌인 《맹자孟子》 등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의 견해는 옳지 않은 듯하다.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욕망을 낳고 새로운 욕망은 또다시 새로운 지식을 낳아서 인간의 지식이나 욕망은 밖으로 무한히 뻗어 나간다. 분명 인간은 지식과 욕망에 의지하여 높은 수준의 문명을 축조해 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인간에게는 슬픔과 두려움, 의혹과 타락墮落이 발생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방해한다. 장자는 지식과 욕망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그는 ‘끝이 있는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끝이 없는 지식을 추구하게 되면 위태로울 뿐[以有涯 隨無涯 殆已]’이라고 경고警告한 것이다.
이 편에서는 이와 같이 무한히 확대되어 나가는 인간의 지식이나 욕망을 경계하며, 방자放恣로부터 자기自己를 지킬 것, 또는 선악善惡피안彼岸에 서서 만물萬物자연自然명합冥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양생주〉편의 제1장 첫머리는 이 편의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일체의 선악과 시비를 무화無化시키는 의 경지에 따르는 것[緣督]을 삶의 근본원리[經]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수명을 안락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과신過信하지 말고 ‘’, 즉 중허中虛를 따라야 함을 말한 것이다.
또 제2장에서는 포정해우庖丁解牛신기神技를 통해 문혜군文惠君양생養生를 배우는 우화를 소개하면서 양생養生의 비결은 천리天理자연自然을 따르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제3장에서는 현실 생활의 모든 화복禍福자연自然으로 받아들여 그 속에 안주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새장 안의 권세를 거부하는 것이 자유로운 양생養生의 비결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권력의 부자유不自由를 빗대서 풍자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생사生死초연超然안시처순安時處順의 우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안시처순安時處順이란 에 집착하지 않고 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에 서는 것으로, 양생養生의 궁극적인 비결이기도 하다. 요컨대 장자莊子가 말하는 양생養生의 비결은 무위자연無爲自然를 따르는 것이다.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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