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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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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0章
仲尼之楚어늘 할새
丘也 聞不言之言矣
未之嘗言이라니 於此乎 言之호리라
市南宜僚 하고 孫叔敖 하니
하노라
彼之謂不道之道 此之謂不言之辯하나니
道之所一者 不能同也 知之所不能知者 不能擧也
是故 生無爵하며 死無諡하며 實不聚하며 名不立하나니 此之謂大人이니라
不以善吠 爲良하고 不以善言으로 爲賢이온
而況爲大乎따녀
夫爲大 不足以爲大 而況爲德乎따녀
夫大備矣 莫若天地
이나 奚求焉 而大備矣리오
無失無棄하야 不以物 易己也하며


10章
중니仲尼나라에 갔는데, 초나라 왕이 중니를 위해 주연을 베풀었다.
〈환영하는 쪽에서〉 재상인 손숙오孫叔敖는 잔을 잡고 섰는데 용감한 사람으로 이름이 났던 시남의료市南宜僚는 술을 받아 땅에 부어 신에게 제사 지냈다.
〈이렇게 주연이 시작되었는데〉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옛사람이라면 이런 때에 무엇인가 좋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중니仲尼가 말했다.
“저는 말하지 않는 말(不言之言)이야말로 참다운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아는 체하고 입을 열어 이야기한 일이 없었습니다만, 지금처럼 좋은 때가 되었으니 한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있는 시남의료市南宜僚 같은 이는 〈일찍이 백공승白公勝이 모반을 일으켜 영윤令尹 자서子西를 죽일 것을 강요하였을 때〉 구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의 요구에 겁을 먹지 않고 그들을 깨우쳐〉 백공白公자서子西 두 집안의 재난災難을 해결하였고, 손숙오孫叔敖 같은 이는 마음 편히 잠을 자거나 우선羽扇을 잡고 여유작작하는 무위無爲를 실천하여 초나라 서울 땅의 사람들이 무기를 내던져버리고 평화를 즐기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분들 앞이기는 하나, 저도 길이가 세 척이나 되는 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시남의료市南宜僚의 행동은 ‘라고 말하지 않는 ’라 할 수 있고 손숙오孫叔敖의 행동은 ‘말하지 않는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은 가 가지런히 하는 대상 속에 통합되고 말은 인간의 로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한계에 멈추는 것이 최상입니다.
가 가지런히 하는 대상은 으로는 통합할 수 없고, 인간의 로는 알 수 없는 한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재주로 이름이 알려지기를 유가儒家묵가墨家처럼 한다면 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다가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의 극치이니 〈이와 마찬가지로〉 성인은 천지를 아울러 싸안고 은택이 천하에 미치더라도 〈인민은〉 그가 누구인지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성인은〉 살아서는 존작尊爵이 없고 사후에도 시호가 없으며 실리實利(財貨)가 몸에 모이지 아니하며 명성도 확립되지 아니하나니 이런 사람을 일러 대인大人이라 합니다.
개가 잘 짖는다고 해서 훌륭한 개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말을 잘한다고 해서 현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대인大人이라고 하기엔 무리입니다.
무릇 대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한 오히려 대인이라 하기에 부족한데, 하물며 유덕자有德者가 되려고 노력하는 경우이겠습니까.
무릇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는 천지에 미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천지가 무엇인가를 구해서 그렇게 크게 갖추어진 것이겠습니까.
크게 갖추어짐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달리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거나 내다버리지도 아니하여, 외물에 이끌려서 자기 본성을 변질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 본성으로 돌아감에 다함이 없으며 옛날 소박한 를 따라 그것을 훼손시키지 않으니, 이 같은 ‘삶’이 바로 대인의 진실된 모습입니다.”


역주
역주1 楚王觴之 : 초나라 왕이 주연을 베풂. 觴은 술잔의 총칭. 觴之는 술잔으로 대접함. 곧 주연을 베풀었다는 뜻이다.
역주2 孫叔敖 執爵而立 市南宜僚受酒而祭 : 재상인 孫叔敖는 잔을 잡고 섰는데 용감한 사람으로 이름이 났던 市南宜僚는 술을 받아 땅에 부어 신에게 제사 지냄. 孫叔敖는 춘추시대 楚나라 출신으로 《春秋左氏傳》과 《史記》에 전기가 전하며 〈田子方〉편에 이미 나왔다. 市南宜僚는 인명으로 〈山木〉편에 이미 나왔는데 姓은 熊이고, 이름은 宜僚(司馬彪, 李頤)이며, 〈則陽〉편에도 나온다. 陸德明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 두 사람은 공자보다 훨씬 훗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寄言일 뿐이다(安東林).
역주3 古之人乎 於此言已 : 옛사람이라면 이런 때에 무엇인가 좋은 말을 했을 것임. 陳壽昌, 馬其昶, 赤塚忠 등은 이 말을 초왕의 말이라 하고, 陳景元, 方勇․陸永品 등은 市南宜僚가 제사를 지내면서 말한 축사라고 했는데, 아래에 공자가 市南宜僚와 孫叔敖의 이름을 직접 부르고 있으므로 君前臣名의 禮에 비추어 볼 때 楚王이 공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마디 해달라고 말하고 다시 공자가 초왕에게 대답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古之人이 공자를 지칭한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도 견해가 엇갈리지만 공자가 대답하는 내용이 뒤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초왕이 공자를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공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만은 분명하다.
역주4 弄丸而兩家之難 解 : 市南宜僚 같은 이는 〈일찍이 白公勝이 모반을 일으켜 令尹 子西를 죽일 것을 강요하였을 때〉 구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의 요구에 겁을 먹지 않고 그들을 깨우쳐〉 白公과 子西 두 집안의 災難을 해결함. 陳景元의 《南華眞經章句音義》에 인용된 文如海의 견해를 따르면 “白公勝과 대부 子西 두 집안이 군대를 일으켜 서로 공격하였는데 두 집안의 대부들이 말하기를 ‘시남의료는 뭍에 잠긴 은자이므로 한 사람으로서 5백 명을 감당할 만한 인물이다.’라고 하여 두 집안이 모두 사신을 보내 시남의료를 불렀다. 시남의료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하게 누워서 두 대부가 보낸 사자들을 보면서 두 손으로 구슬을 가지고 놀며 그치지 않다가 잠들어서 다시 일어나지 않자 칼을 갖다 댔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대부의 사신이 각자 자기 집안으로 돌아가 시남의료의 의도를 함께 논의했다. 두 대부가 말하기를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운 것은 우리들에게 無爲해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고 칼을 갖다 댔는데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무력은 믿을 것이 못 됨을 알려준 것이고 두 손은 두 집안을 비유한 것이고 구슬은 모양이 둥글어서 무위에 해당하는 물건인데 두 손으로 구슬을 가지고 놀면서 그치지 않은 것은 두 집안이 모두 곤경에 이를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풀이했는데 文如海의 이 이야기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으나 내용상 맥락이 통하므로 우선 따른다(方勇‧陸永品).
역주5 甘寢秉羽 而郢人投兵 : 孫叔敖 같은 이는 마음 편히 잠을 자거나 羽扇을 잡고 여유 작작하는 無爲를 실천하여 초나라 서울 郢 땅의 사람들이 무기를 내던져버리고 평화를 즐기게 함. 成玄英은 “손숙오는 진실한 앎에 바탕하여 베개를 높이 베고 소요하며 이치를 깨닫고 말을 잊었다. 깃으로 만든 부채를 잡고 文舞의 춤을 추어 스스로 만족함으로써 마침내 적국으로 하여금 침략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천리 밖에서 적의 군대를 꺾어서 초나라 사람들이 아무 일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문덕을 닦아서 그들의 武略을 중지시킨 것이다[叔敖蘊藉實知 高枕而逍遙 會理忘言 執羽扇而自得 遂使敵國不侵 折衝千里之外 楚人無事 脩文德 息其武略].”라고 풀이했다. 投兵은 병기를 던져버림. 곧 전쟁을 중단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投는 쉼이다[投 息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願有喙三尺 : 길이가 세 척이나 되는 긴 이야기를 하고자 함. 喙三尺은 입이 석 자라는 뜻인데 그 만큼 긴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하지 않는 말[不言之言]이야말로 참다운 말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앞으로 하는 말을 길다고 표현한 것이다.
역주7 德總乎道之所一 而言休乎知之所不知 至矣 : 덕은 道가 가지런히 하는 대상 속에 통합되고 말은 인간의 知로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한계에 멈추는 것이 최상임. 德은 도가 가지런히 바라보는 많은 대상 중의 하나일 뿐이고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 말이다.
역주8 名若儒墨而凶矣 : 말재주로 이름이 알려지기를 유가나 묵가처럼 한다면 흉할 것임. 유가나 묵가처럼 말재주로 세상에 이름이 나게 되면 재앙이 초래된다는 뜻. 陳景元은 “말 잘하기를 유가나 묵가처럼 하게 되면 또한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善辯若儒墨 亦所以召禍耳].”라고 풀이했다.
역주9 海不辭東流 大之至也 : 바다가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大의 극치임. 東流는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하천을 지칭한다. 상대와 말로 따지지 않고 포용하는 것이 大의 조건이라는 뜻이다.
역주10 聖人 幷包天地 澤及天下 而不知其誰氏 : 성인은 천지를 아울러 싸안고 은택이 천하에 미치더라도 〈인민은〉 그가 누구인지조차도 알지 못함. 백성들이 통치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뜻. 곧 無爲의 정치를 표현하고 있는 대목이다.
역주11 知大備者 無求 : 크게 갖추어짐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달리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없음. 天地가 크게 갖추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데 저절로 크게 갖추어지는 것처럼 성인은 갖추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12 反己而不窮 循古而不摩 大人之誠 : 자기 본성으로 돌아감에 다함이 없으며 옛날 소박한 道를 따라 그것을 훼손시키지 않으니, 이 같은 ‘삶’이 바로 대인의 진실된 모습임. 誠은 진실함. 郭象은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스스로 얻었기 때문에 진실하다 한 것이다[不爲而自得 故曰誠].”라고 풀이했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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