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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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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 살면서 본성을 닦아서 학문으로 원초原初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구하거나 세속에 살면서 욕심에 골몰하면서 사려思慮를 통해 밝은 지혜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을 일러 몽매한 백성이라고 한다.
古之治道者 以恬으로하니 謂之以知 養恬이라하나니
옛날 를 잘 다스린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혜를 길렀고, 지혜가 생겨나더라도 그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함이 없었으니, 이것을 일컬어 지혜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지혜와 편안한 마음이 서로 길러주면 (인간 사회의 조화)와 (인간 사회의 질서)는 본성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다.
은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것이고, 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이다.
만민萬民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이고, 만물萬物을 다스려 질서 지우지 아니함이 없는 이다.
가 분명해지고 만민萬民이 서로 친애親愛하는 것은 이고, 마음속[忠]이 순수독실純粹篤實해져 본래의 모습[情]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고, 이 용모와 태도에 베풀어져 문리에 맞는 것은 이다.
그런데 〈을 놓아둔 채〉 예악禮樂에만 치우쳐 행하면 천하天下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저 위정자들이 예악으로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여 〈예악으로〉 자기 본래의 덕을 덮어버리면 덕은 만민萬民을 덮을 수 없게 될 것이니, 그런 으로 만물을 억지로 덮어 화육하려 하면 만물萬物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역주
역주1 繕性於俗 : 세속에 살면서 본성을 닦음. 繕은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修齊治平과 같은 의미로, 여기서는 〈본성을〉 ‘닦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崔譔은 “다스림이다[治也].”고 풀이했다. 陸德明은 “어떤 이는 선하게 함[善也]이라고 했다.”고 풀이한 내용을 소개했다. 底本에는 俗자가 俗俗 두 글자로 重複되어 있다. 그러나 두 글자로 겹치지 않은 판본이 많고(王先謙, 武延緖, 馬叙倫, 王叔岷), 특히 陳景元의 《莊子闕誤》와 《南華眞經章句音義》에서 인용하고 있는 張君房본에는 한 글자만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褚伯秀, 劉文典) 한 글자는 끼어든 문자로 보는 것이 다수 견해이며 문의도 한 글자로 풀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羅勉道, 褚伯秀, 蘇輿, 王先謙, 吳汝綸, 章炳麟, 劉師培, 武延緖, 奚侗, 馬叙倫, 劉文典, 王叔岷 등). 또 繕性於俗으로 絶句하는 것은 褚伯秀, 朱得之, 陳壽昌, 王先謙 등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역주본 중 安東林의 《莊子》에서는 ‘繕性於俗學 以求復其初’라 絶句하고 있으나 따르지 않는다. 이 편의 뜻에 대한 좀 더 상세한 穿鑿은 池田知久의 注說을 더 참조할 것.
역주2 學以求復其初 : 학문으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구함. 비슷한 표현으로 〈在宥〉편 제4장에 “만물이 성대하게 자라나고 각기 근본으로 돌아간다[萬物云云 各復其根].”고 한 내용이 보인다. 또 《老子》 제16장에도 “만물이 함께 일어나는 데 나는 그것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 성대하게 자라나고 각기 근본으로 돌아가는데,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고 하며 이를 일러 復命이라 하니 復命을 일정함이라 한다[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고 한 내용이 있고, 제28장에도 “떳떳한 덕을 떠나지 않아서 갓난아기의 상태로 복귀하며……떳떳한 덕을 어기지 않아 무극으로 복귀하며……떳떳한 덕이 충족되어 樸으로 복귀한다[常德不離 復歸於嬰兒……常德不忒 復歸於無極……常德乃足 復歸於樸].”고 한 내용이 보이는데, 이 부분은 《老子》 제28장과 가까운 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池田知久). 한편 宋代의 朱熹는 자신이 정리한 《大學章句》의 經1章 첫 구절을 주석하면서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본체가 드러나는 곳을 따라 마침내 그것을 밝혀서 처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고 하여 ‘復其初’라는 말을 유가적 맥락으로 이해하였는데 바로 《莊子》 이 편의 이 구절을 유가의 수양론으로 끌어들여서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편이 유가를 포섭하려는 도가에 의해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池田知久의 견해와는 달리 아예 유가의 지식인들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역주3 滑欲於俗 : 세속에 살면서 욕심에 골몰함. 滑은 汨沒하다는 뜻. 汨과 통한다. 滑欲은 욕심에 빠져서 어지러워짐을 말한 것인데 陸德明은 滑을 “어지러움이다[亂也].”라고 풀이했다. 반면 兪樾, 馬叙倫, 李勉 등은 앞의 맥락상 繕性과 같은 뜻으로 보고 “다스림이다[治也].”라고 풀이했지만 이 경우는 맥락보다 우선 滑자의 의미를 충실하게 이해해야 하므로 따르지 않는다.
역주4 思以求致其明 : 思慮를 통해 밝은 지혜를 이루기를 바람. 思는 앞의 學과 對比되는 글자이다. 明은 밝은 지혜로 명석한 판단력을 의미한다. 내편 〈齊物論〉편에서 강조된 것과 같은 절대의 明知를 말한다(福永光司). 《老子》 제52장에도 “밝음으로 복귀한다[復歸其明].”라는 말이 보이는데 여기 보이는 明이 바로 ‘致其明’의 明과 같다.
역주5 蔽蒙之民 : 몽매한 백성, 곧 도리에 어두운 인간을 말한다. 이상의 문장은 세속적인 생활 속에 埋沒되어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는 표현으로 본래의 모습[初]이나 절대의 밝음[明]은 그런 상식적인 학문이나 상식적인 사색을 통해서 접근할 수 없는 경지임을 나타낸 것이다. 蔽는 가리고 막혔다는 뜻. 成玄英은 “막힘이다[塞也].”고 풀이했다. 蒙은 몽매함. 成玄英은 “어두움이다[暗也].”고 풀이했다. 《荀子》 〈解蔽〉편의 ‘蔽’와 같은 뜻이다(池田知久).
역주6 知生而無以知爲也 : 지혜가 생겨나더라도 그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함이 없었음. 《莊子集釋》에서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본에는 知生의 知자가 없고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張君房본에는 生자 앞에 知자가 놓여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또한 陶鴻慶, 武延緖, 王叔岷, 池田知久의 견해에 근거하여 知字를 보충하였다. 《管子》 〈心術 下〉편에 “무릇 마음의 형벌은 지나친 지혜로 인한 것이니 〈지혜가 지나치면〉 삶을 잃어버리게 된다[凡心之刑 過知失生].”고 하여 이 부분과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赤塚忠, 池田知久).
역주7 知與恬交相養 而和理出其性 : 지혜와 편안한 마음이 서로 길러주면 和와 理는 본성 속에서 저절로 생겨남. 和는 인간 사회의 조화, 곧 人和를 의미하고 理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의미한다.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한 표현으로 知와 恬으로 상호간에 서로 기르면 性에서 仁과 理, 道와 義, 더 나아가 忠, 樂, 禮가 자연히 나와서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는 생각인데, 이와 유사한 사상으로는 《管子》 〈心術 下〉편에서 “마음이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마음이 다스려지면 나라가 다스려진다[心安 是國安也 心治 是國治也].”고 한 내용을 참고할 것(池田知久).
역주8 夫德 和也 : 德은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것임. 물론 이 德은 무위자연의 德을 말하는 것임. 〈德充符〉편 제1장에 “또한 耳目 등의 감각기관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을 초월하여, 마음을 덕의 융화 속에서 노닐게 한다[且不知耳目之所宜 而遊心乎德之和].”고 한 내용이 보이고, 제4장에는 “덕이란 완전한 평정을 닦은 것이다[德者成和之脩也].”라고 하여 이 대목과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赤塚忠, 池田知久).
역주9 道 理也 : 道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임. 池田知久는 〈天地〉편 제8장에서 “物이 이루어져 결[理]이 나타나니 이것을 形[형체]이라 한다[物成生理 謂之形].”고 한 내용이나, 《韓非子》 〈解老〉편에서 “그래서 道는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故曰 道 理之者也].”고 한 내용은 비록 존재론적 차원의 접근으로 이 부분과는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비슷한 표현으로 참고할 만하다고 하고 있다.
역주10 德無不容 仁也 : 德이 萬民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仁인데, 만민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德은 仁이라는 뜻. 德‧道→仁‧義→忠→樂‧禮처럼 道家의 德‧道를 근본으로 하고 儒家의 樂‧禮를 말단으로 하여 諸槪念을 계열화한 문장인데, 〈天地〉편 제1장에서 “義는 德에 포섭되고 德은 道에 포섭되고 道는 자연[天]에 포섭된다[義兼於德 德兼於道 道兼於天].”고 한 언급이나, 〈天道〉편 제5장에서 “옛날 大道를 밝게 알고 있었던 사람은 먼저 天을 밝히고 그 다음에 도와 덕이 이어졌고 도와 덕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인의가 이어졌고……[古之明大道者 先明天 而道德次之 道德已明 而仁義次之……].”라고 한 내용이나, 《老子》 제38장에서 “道를 잃어버린 뒤에 德이 나오게 되었고 德을 잃어버린 뒤에 仁이 나오게 되었고 仁을 잃어버린 뒤에 義가 나오게 되었고 義를 잃어버린 뒤에 禮가 나오게 된 것이니 禮란 忠과 信이 야박해진 것이고 亂을 일으키는 으뜸이다[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고 한 내용과 비교된다. 于鬯을 참고할 것을 제시하고 池田知久가 지적했듯이 이 점은 儒家에 대한 태도가 宥和的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역주11 道無不理 義也 : 道가 만물을 다스리지 아니함이 없는 것은 義인데, 만물을 다스려 질서 지우지 아니함이 없는 道가 義라고 潤文하였다.
역주12 義明而物親 忠也 : 義가 분명해지고 萬民이 서로 親愛하는 것은 忠임. 陳景元의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에는 忠자가 中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忠자를 그대로 둔다. 林雲銘이 “마음속에서 인의가 모두 극진한 것이 忠이 된다[仁義交盡其心 所以爲忠].”고 풀이했고, 宣穎이 “義와 仁이 모두 극진해지면 비로소 실제로 도덕이 갖추어진다[義盡仁至 乃爲實有道德].”고 풀이한 것을 따르기로 한 池田知久의 주석을 취했음.
역주13 中純實而反乎情 樂也 : 마음속[忠]이 純粹篤實해져 본래의 모습[情]으로 돌아가는 것이 樂임. 中은 위 문장과의 연결을 고려할 때 宣穎의 견해를 따라 忠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純은 純粹함. 反乎情은 본래의 모습[情]으로 돌아간다는 뜻. 林雲銘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본성으로 복귀하는 것이 樂이 되는 것이다[反乎情以歸性 所以爲樂].”고 풀이한 것과, 宣穎이 “본성을 얻음이다[得其本性].”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池田知久). 《禮記》 〈樂記〉편에는 “군자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뜻을 조화시키고 음악을 널리 반포하여 교화를 이룬다[君子反情以和其志 廣樂以成其敎].”고 한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陳治安, 池田知久).
역주14 信行容體而順乎文 禮也 : 信이 용모와 태도에 베풀어져 문리에 맞는 것이 禮임. 용모와 몸뚱아리[容體]는 용모와 태도의 뜻. 宣穎이 “이 忠을 용모와 태도에 베풀면 자연스러운 節文이 있게 된다[以此忠行於容體 而有自然節文].”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역주15 禮樂偏行 則天下 亂矣 : 禮樂에만 치우쳐 행하면 天下가 어지러워질 것임. 道와 德을 놓아둔 채 예악만 시행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는 뜻. 底本에는 偏자가 徧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兪樾의 고증에 따라 禮樂偏行으로 고치고 ‘치우치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奚侗, 王叔岷, 池田知久 등 참조. 林希逸도 “밖으로 예악만 추구하고 근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쪽만 치우쳐 행한다고 말한 것이니 단지 절반만 보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外求禮樂而不知其本 故曰偏行 猶言只見得一半也].”고 하여 ‘치우치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역주16 彼正而蒙己德 德則不冒 冒則物必失其性也 : 저 위정자들이 예악으로 천하를 바로 잡으려 하여 〈예악으로〉 자기 본래의 덕을 덮어버리면 덕은 萬民을 덮을 수 없게 될 것이니, 그런 德으로 萬物을 억지로 덮어 화육하려 하면 萬物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저들 곧 세상의 위정자들이 인의예악의 규범에 의해 정치를 시행하려고 하여 자기 본래의 德을 감추어버리면 그의 덕은 萬民을 화육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할 수 없는데 무리하게 萬民 萬物을 덮어 化育하고자 한다면, 만물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뜻. ‘不冒’의 ‘冒’는 만물을 감싸고 덮어서 화육한다는 뜻. 林雲銘이 “천하가 어지러운 까닭은 저 위정자들이 사람들을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먼저 자신의 덕을 덮어 가렸으니 그 덕이 만물을 덮기에 부족하게 되었는데 덮기에 부족한 것을 가지고 억지로 덮으려고 하기 때문에 만물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言天下之所以亂者 以彼欲正人而先蔽蒙其德 則其德不足以蓋冒乎物 以不足蓋冒之德而蓋冒之 物之所以失其性也].”고 풀이한 것이 훌륭하다. 이 부분은 異說이 매우 많아 그 때문에 오히려 난해한 구절이 되기 쉽다. 池田知久도 林雲銘의 주석을 거의 정확하다고 하면서도 그 後半部의 해석은 부적당하다고 하고 있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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