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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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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아하감妸荷甘신농神農과 함께 노룡길老龍吉에게서 배웠다.
이어늘 妸荷甘 하야 曰 老龍 死矣라하야늘
신농이 책상에 기댄 채 문을 닫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아하감이 한낮에 문을 열고 들어와 “노룡 선생이 돌아가셨소.”라고 말했다.
神農 隱几라가 擁杖而起하야 하야
신농이 책상에 기대어 있다가 지팡이를 잡고 일어나더니, 휙 지팡이를 내던지고 웃으면서 말했다.
知予 僻陋慢訑하사 故棄予而死케다
“하늘 같으신 선생께서는 내가 비뚤어지고 속이 좁으며 거짓말 잘하고 엉터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나를 버리고 돌아가셨다.
이제 그만이로구나!
선생은 나를 계발시켜줄 광언狂言 한 마디 없으신 채 돌아가셨구나.”
라가 聞之하고
엄강弇堈이 조문하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夫體道者 天下之君子 所繫焉이니
“무릇 도를 터득한 이는 천하의 군자들이 귀복歸服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지금 노룡길은〉 에 대해서 가을 짐승의 털끝만큼의 만분의 일조차도 얻지 못했으면서도, 오히려 〈에 관한〉 광언狂言을 간직한 채로 죽을 줄 알았다.
又況夫體道者乎따녀
하물며 저 지도至道를 체득한 사람이겠는가!
는 보아도 형체가 없으며 들어도 소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를 말할 때 어둡다고 말하는데 어둡다고 말하는 것은 도를 논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어두움 자체가 인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 妸荷甘與神農同學於老龍吉 : 妸荷甘은 神農과 함께 老龍吉에게서 배움. 妸荷甘과 神農은 모두 인명. 成玄英은 “성은 妸이고 字가 荷甘이다[姓妸 字荷甘].”라고 풀이했고, 神農에 대해서는 “神農은 三皇의 神農이 아니라 후세 사람이다[神農者 非三皇之神農也 則後之人物耳].”라고 했는데, 오히려 三皇의 神農으로 보는 것이 寓意를 이해하기에 적합하다. 老龍吉은 李頤가 “도를 품은 사람이다[懷道人也].”라고 풀이한 것처럼 道를 터득한 至人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역주2 神農隱几闔戶晝瞑 : 신농이 책상에 기댄 채 문을 닫고 낮잠을 잠. 闔은 문을 닫다는 뜻. 成玄英은 闔을 ‘合’이라고 풀이했는데 다소 거리가 있다. 晝瞑은 낮잠을 말한다. 福永光司는 이 대목을 두고 《論語》 〈公冶長〉편에 宰予가 낮잠을 잤다는 대목을 의식한 표현이라고 했는데 꼭 그렇지 않다고 의심할 이유는 없다.
역주3 日中 奓(차)戶而入 : 한낮에 문을 열고 들어옴. 日中은 해가 중천에 떴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대낮을 의미한다. 奓는 司馬彪가 풀이한 것처럼 열다(開)는 뜻.
역주4 嚗(박)然放杖而笑 : 휙 지팡이를 내던지고 웃음. 嚗然은 李頤가 “지팡이를 버리는 소리이다[放杖聲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王敔는 笑聲이라 했는데 ‘放杖嚗然而笑’의 도치문으로 본다면 그럴 법도 하다.
역주5 天知予僻陋慢訑 故棄予而死已矣 : 하늘 같으신 선생께서는 내가 비뚤어지고 속이 좁으며 거짓말 잘하고 엉터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나를 버리고 돌아가셨음. 天은 하늘 같은 선생, 곧 成玄英이 풀이한 것처럼 老龍吉을 지칭한다.
역주6 無所發予之狂言而死矣夫 : 선생은 나를 계발시켜줄 狂言 한 마디 없으신 채 돌아가셨구나! 狂言은 미친 소리로 여길 정도로 커다란 말. 成玄英은 “至言과 같다[猶至言也].”고 풀이했다. 〈天道〉편 제10장에서 “옛사람도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따름입니다.[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주7 弇堈弔 : 엄강이 조문함. 弇堈은 인명. 弔는 조문하다는 뜻. 李頤는 “弇堈은 도를 체득한 사람으로 弔는 그 이름이다[弇堈 體道人 弔 其名].”라고 풀이했지만 老龍吉의 죽음에 조문한 것으로 보는 맥락이 자연스러우므로 成玄英과 林希逸이 弇을 姓, 堈을 名. 弔를 弔問의 뜻으로 본 견해를 따랐다.
역주8 今於道 秋毫之端 萬分未得處一焉 而猶知藏其狂言而死 : 〈그런데 지금 노룡길은〉 道에 대해서 가을 짐승의 털끝만큼의 만분의 일조차도 얻지 못했으면서도, 오히려 〈道에 관한〉 狂言을 간직한 채로 죽을 줄 알았다. 이 문장의 주어를 신농으로 보는 견해(安東林, 福永光司)가 있지만 老龍吉로 보는 견해(金谷治, 池田知久)가 옳다.
역주9 視之無形 聽之無聲 : 〈道는〉 보아도 형체가 없으며 들어도 소리가 없음. 《老子》 제14장에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希라 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微라 한다[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표현이다.
역주10 於人之論者 謂之冥 : 사람들이 道를 말할 때 어둡다고 말함. 論은 論道의 뜻(羅勉道). 陸樹芝는 “사람들 중에서 도를 말하는 경우이다[在人之論道者].”라고 풀이했고, 赤塚忠은 “者는 거의 則과 같다.”라고 풀이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池田知久). 冥은 아래 구의 冥과 합쳐서 冥冥으로 절구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陶鴻慶과 池田知久의 견해를 따라 謂之冥으로 끊어 읽는 것이 보다 명확하다.
역주11 冥 所以論道而非道也 : 어둡다고 말하는 것은 도를 논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어두움 자체가 道인 것은 아님. 도의 모습이 어두운 것은 맞지만 어둡다는 것은 도를 표현한 것일 뿐이고 그 자체가 도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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