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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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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者 왜니라(와이니라)
하야 하야(하면서) 甘其食하며 美其服하며 樂其俗하며 安其居
隣國 相望하며 호대 至老死하도록하더니 러니라
遂至使民으로 延頸擧踵하야 曰某所 有賢者라하야 하니
誠好知而無道하면 則天下 大亂矣리라
何以知其然邪
夫弓弩之知 多則 之知 多則 之知 多則獸 亂於澤矣 知詐 之變 多則俗 惑於辯矣
天下大亂홈이 罪在於好知하니라
天下 皆知求其所不知하고 而莫知求其所已知者하며 皆知非其所不善하고 而莫知非其所已善者
是以 大亂이니라
하며 하며 하야 莫不失其性하나니
甚矣夫
好知之亂天下也
自三代以下者 是已


그대도 지덕至德이 유지되었던 시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용성씨容成氏대정씨大庭氏백황씨伯皇氏중앙씨中央氏율륙씨栗陸氏여축씨驪畜氏헌원씨軒轅氏혁서씨赫胥氏존로씨尊盧氏축융씨祝融氏복희씨伏犧氏신농씨神農氏 등 열두 명의 제왕이 천하를 다스렸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는 백성들이 새끼줄을 묶어서 서로 뜻을 전달하면서 자기들이 먹는 음식을 달게 여겼으며 자기들이 입는 옷을 아름답게 여겼으며 자기들의 풍속을 즐거워했으며 자기들이 사는 집을 편안하게 여겼다.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였는데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가지 않았으니 이 시대야말로 지극히 잘 다스려진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마침내 백성들로 하여금 목을 길게 빼고 발뒤꿈치를 들고서 “어디 어디에 현자賢者가 있다.”고 해서 식량을 짊어지고 달려가게 함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결국 안으로는 어버이를 버리고 밖으로는 군주에 대한 의무를 내던져 발자취가 다른 제후국의 영토까지 미치고 수레바퀴 자국이 천 리 밖에까지 연결되게 되었으니 이것은 윗사람이 지혜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비롯된 과실이다.
윗사람이 참으로 지혜를 좋아하고 도를 무시하게 되면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질 것이다.
어떻게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무릇 활과 쇠뇌, 새그물과 주살 따위의 도구를 이용하는 지혜가 많아지면 새들은 하늘에서 어지러움에 빠지고, 낚싯바늘과 미끼, 크고 작은 그물, 삼태그물과 통발 따위를 이용하는 지혜가 많아지면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어지러움에 빠지고, 목책木柵과 새잡는 그물, 토끼그물, 짐승잡는 그물 따위의 도구가 많아지면 짐승들이 늪에서 어지러움에 빠지고, 남을 속이는 못된 지혜, 매끄러운 말재주와 견백론堅白論 따위의 그릇된 언변과 동이同異의 궤변이 많아지면 세속의 사람들이 이 같은 말다툼으로 인해 어지러움에 빠진다.
그 때문에 천하가 캄캄해져 크게 어지러워지는 것은 그 죄가 지혜를 좋아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고만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추구할 줄 모르며, 모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난할 줄만 알고 이미 좋다고 생각한 것을 그르다고 할 줄은 모른다.
그 때문에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에 어긋나고, 아래로는 산천의 정기精氣를 태워 버리고, 중간에서는 사계절의 자연스런 운행을 파괴하여 땅 위를 꿈틀거리는 벌레와 나비나 벌 같은 작은 곤충까지도 모두 그 자연스런 본성을 잃고 만다.
심하구나.
지혜를 좋아함이 천하를 어지럽힘이여.
, , 삼대 이하의 세상이 바로 이런 시대에 해당한다.
저 소박한 민중들을 버리고 곰상스러운 말재간꾼이나 좋아하며, 편안하고 담백하며 작위가 없는 무위를 버리고 어지러이 말재주를 부리는 인위적 욕망을 좋아하니 말이 많아지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역주
역주1 子獨不知至德之世乎 : 그대만 홀로 至德이 유지되었던 시대를 알지 못하는가. 곧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뜻. 世자가 時자로 쓰인 인용이 있지만 唐 太宗 李世民의 諱를 피한 것일 뿐 같은 뜻이다(池田知久).
역주2 容成氏 : 고대의 제왕. 이하 열두 사람은 모두 고대의 제왕이다. 司馬彪는 “이 열두 사람은 모두 옛날 제왕이다[此十二氏皆古帝王].”라고 풀이했다. 容成氏는 《呂氏春秋》 〈勿躬〉편이나 《世本》 〈作篇〉에는 曆을 만든 사람이라 했고, 본서 〈則陽〉편에도 보이는데 옛날 帝王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이 편뿐이다(池田知久).
역주3 大庭氏 : 《漢書》 古今人表에는 大廷氏로 되어 있고 《帝王世紀》에도 보인다(池田知久).
역주4 伯皇氏 : 《漢書》, 《帝王世紀》에서는 相皇氏로 되어 있고, 또 栢皇氏로 표기한 인용도 있다(馬叙倫, 池田知久).
역주5 中央氏 : 《漢書》, 《帝王世紀》 등에 보인다. 中皇氏로 표기된 引用도 있다(王叔岷). 본서의 〈應帝王〉편에 나오는 ‘中央之帝’와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池田知久).
역주6 栗陸氏 : 《漢書》, 《帝王世紀》 등에 보인다. 《鄧析子》 〈轉辭〉편에는 “栗陸氏가 東里子를 죽였다[栗陸氏殺東里子].”는 내용이 나온다(池田知久).
역주7 驪畜氏 : 陳景元은 《莊子音義》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에는 驪運氏로 되어 있고, 그 외에 驪運氏로 표기한 인용도 있다(馬叙倫). 《漢書》, 《帝王世紀》 등에도 나온다(池田知久).
역주8 軒轅氏 : 흔히 황제를 軒轅氏라고 하지만 여기의 軒轅氏가 바로 黃帝를 지칭하는지는 분명치 않다(池田知久).
역주9 赫胥氏 : 〈馬蹄〉편 제3장의 赫胥氏 이야기를 擴大하여 모두 12人으로 한 것이 이 편의 記述이다. 《漢書》, 《帝王世紀》 등에도 보인다(池田知久).
역주10 尊盧氏 : 《漢書》, 《帝王世紀》 등에도 보인다(池田知久).
역주11 祝融氏 : 《呂氏春秋》 〈勿躬〉편이나 《世本》 〈作篇〉에는 저자[市]를 만든 文化英雄으로 나와 있고, 《呂氏春秋》 孟‧仲‧季夏記에는 여름[夏]의 神으로 되어 있다(池田知久).
역주12 伏犧氏 : 伏을 虙으로 표기한 인용(淸末 吳汝綸), 犧를 戱 또는 羲로 표기한 판본(寺岡龍含)과 引用(馬叙倫)이 있다. 〈人間世〉편 제1장과 〈大宗師〉편 제1장에 이미 나왔다. 〈繕性〉편이나 〈田子方〉편과 다르게 ‘至德之世’의 제왕으로 나온 것을 주목할 만하다. 삼황(伏犧, 神農, 燧人)의 한 사람으로 처음으로 팔괘를 만들고 수렵, 어업, 목축 등을 백성에게 가르쳤다고 한다(池田知久).
역주13 神農氏 : 《周易》 〈繫辭傳 下〉에 인류에게 농업과 상업을 가르쳐 준 神으로 나온다. 본서의 〈至樂〉‧〈讓王〉‧〈盜跖〉 등의 편에서도 여기서처럼 ‘至德之世’의 제왕과 비슷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池田知久).
역주14 當是時也 : 이 때를 맞이하여. 이 시대에는. 馬叙倫은 時也가 之時로 표기된 인용을 소개하고 있다.
역주15 民結繩而用之 : 새끼줄을 묶어서 사용함. 곧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끼줄을 묶어서 서로 뜻을 전달한다는 뜻. 이 구절에 以爲政 세 글자가 붙어 있는 인용이 있다(馬叙倫). 《周易》 〈繫辭傳 下〉에 “상고시대에는 새끼줄을 묶어서 다스렸는데 후세에 성인이 서계문자로 바꾸었다[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라고 한 내용이 보이며, 《老子》 제80장에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줄을 묶어서 서로의 뜻을 전달하게 하고 자신들의 음식을 맛있게 여기고 자신들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신들의 거주지를 편안하게 여기고 자신들의 풍속을 즐기게 해서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이어져 들릴 정도로 사람 수가 많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게 한다[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라고 했는데 본서의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赤塚忠은 後者에 使字가 머리에 쓰이고 있음을 들어 《老子》에서는 法律‧文書‧學問 등을 배척하고 素朴主義를 취하게 하는 정책의 하나로 나타나고 있고, 이 편에서는 이것도 인민의 素朴自足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轉用한 것이라고 해석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6 鷄狗之音相聞 :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림. 곧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이어져 들릴 정도로 거주하는 백성들의 수가 많다는 뜻. 狗가 犬으로 표기된 판본과 인용이 있다(馬叙倫, 王叔岷). 마왕퇴 帛書 《老子》에도 甲本은 狗, 乙本은 犬으로 표기되어 있다. 《老子》에는 音이 聲으로 표기되어 있다(池田知久).
역주17 不相往來 : 서로 왕래하지 않음. 不相與往來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陸德明).
역주18 若此之時則至治已 : 이 시대야말로 지극히 잘 다스려졌음. 唐寫本에는 之자가 없고(羅振玉), 없는 인용도 있다(王叔岷). 已자가 也자로 된 인용도 있고(劉文典, 王叔岷), 也已로 된 인용도 있다(王叔岷).
역주19 贏糧而趣之 : 식량을 싸 짊어지고 달려감. 崔譔은 贏을 “싸다[裹也].”는 뜻으로 풀이했는데 王念孫의 견해처럼 ‘메다’는 뜻인 攍자로 풀이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馬叙倫은 《廣雅》 〈釋言〉에 짊어지다[負也]라고 풀이한 것을 들고 齊楚陳宋 지역의 方言이라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庚桑楚〉편에도 嬴糧이라는 표현이 나오며 古逸叢書本에는 糧이 粮으로 되어 있다. 또 趣자가 赴자로 된 인용이 있다(劉文典, 池田知久).
역주20 外去其主之事 : 밖으로는 군주에 대한 의무를 내던짐. 去자가 棄로 표기된 인용이 있다(劉文典).
역주21 足跡接乎諸侯之境 : 발자취가 다른 제후국의 영토까지 미침. 乎자가 빠져 있는 판본이 있다(馬叙倫).
역주22 車軌結乎千里之外 : 수레바퀴 자국이 천 리 밖에까지 연결됨.
역주23 則是上好知之過也 : 이는 윗사람이 지혜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비롯된 과실임. 唐寫本에는 上자 아래에 之자가 붙어 있다(羅振玉). 古逸叢書本에는 之過가 也過로 되어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劉文典). 이 부분은 《老子》 제65장에 보이는 “지혜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것이다[以智治國 國之賊].”라고 된 부분과 관련이 있다.
역주24 畢弋機變 : 새그물과 주살 등 속임수를 써서 짐승을 잡는 도구. 畢은 罼로 된 인용이 있다(馬叙倫). 李頤는 “토끼그물을 畢이라 한다[兎網曰畢].”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뒤의 鳥亂於上矣라는 구절에 따라 새그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成玄英은 “그물이 작으면서 빛나고 모양이 필성처럼 생겼기 때문에 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網小而炳 形似畢星 故名爲畢].”이라고 풀이했다. 弋은 李頤가 “실을 묶어서 쏘는 것을 익이라 한다[繳射曰弋].”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機變에 대해서는 機와 變을 각각 기계나 그물 따위의 도구로 보고 기를 쇠뇌의 방아쇠를 말한다[弩牙曰機]고 풀이한 李頤와 변을 羉의 잘못이라고 한 奚侗의 견해가 있지만, 《孟子》 〈盡心 上〉에 “爲機變之巧者”라고 나오는 맥락을 고려할 때 林希逸이 “機變은 속임수를 쓰는 것[機變 變詐也].”이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25 鳥亂於上矣 : 새들은 하늘에서 어지러움에 빠짐. 上은 上天. 武延緖는 上을 山의 잘못이라고 했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다(池田知久).
역주26 鉤餌 : 낚싯바늘과 미끼. 鉤는 낚싯바늘. 餌는 미끼. 王念孫은 鉤자가 釣자로 되어 있는 인용을 들어 釣가 옳다고 했는데 鉤와 釣는 본래 통하는 글자이므로 그대로 두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陸德明 또한 “鉤는 낚시하는 것이고 餌는 물고기 밥이다[鉤 釣也 餌 魚餌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7 罔罟罾笱(망고증구) : 크고 작은 그물, 삼태그물과 통발 따위. 罾은 주살을 뜻하는 矰자로 된 인용이 있으나(馬叙倫) 여기서는 물고기를 잡는 도구이므로 주살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陸德明은 罾을 어망[罾 魚網也]이라 풀이했는데 여기서는 成玄英이 罟와 罾을 모두 그물로 풀이한 것을 따라 罾을 그물의 종류인 삼태그물로 풀이했다.
역주28 魚亂於水矣 :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어지러움에 빠짐. 王叔岷은 水자가 下자로 된 인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위의 이 구절이 鳥亂於上矣와 대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筆寫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역주29 削格 : 그물을 걸어두는 木柵. 이설이 분분하지만 李頤와 林希逸의 견해를 따라 그물을 설치하는 목책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역주30 羅落 : 줄줄이 엮어져 있는 그물. 羅는 그물. 落자가 絡으로 된 인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絡의 假借일 것이라는 견해(王敔, 奚侗, 馬叙倫, 王叔岷 등)가 유력하다. 王敔는 “끈으로 덫을 만들어 여우나 토끼를 잡는 것[以繩爲機而取狐兎者].”이라고 풀이했다.
역주31 罝罘(저부) : 토끼그물과 짐승잡는 그물. 罝는 토끼그물. 罘 또한 짐승을 잡는 데 쓰는 그물. 陸德明은 “토끼그물을 罝라 한다[兎罟謂之罝].”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罝罘를 모두 토끼그물[兎網也]이라고 풀이했다. 罘가 罦로 된 판본도 있는데(武延緖, 馬叙倫) 역시 짐승을 잡는 데 쓰는 그물이다.
역주32 漸毒 : 속임수. 李頤는 漸毒을 “점차 스며드는 독은 모르는 사이에 깊이 중독된다[漸漬之毒 不覺深也].”라고 풀이했고, 崔譔도 “깊이 해침과 같다[猶深害].”라고 하여 점차 깊이 중독되는 것, 또는 조금씩 상대를 해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定說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池田知久에 의하면 漸은 王引之가 말한 것처럼 詐欺의 뜻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郭慶藩, 陶鴻慶도 마찬가지). 한편 漸毒 이하의 여덟 글자가 없는 인용도 있다(劉文典, 池田知久).
역주33 頡滑(힐골) : 매끄러운 말재주. 〈徐无鬼〉편에도 같은 용어가 나온다. 陸德明은 “이해하기 어려움을 말한다[謂難料理也].”라고 풀이하는 한편 “올바르지 못한 말[不正之語].”로 보는 견해를 소개했고, 李頤는 滑稽라 했다. 滑을 어지러울 亂의 뜻으로 취하여 頡滑을 錯亂된 論理의 뜻으로 취하는 설도 유력하나 여기서는 ‘매끄러운 말재주’로 해석하는 쪽을 택하였다.
역주34 堅白 : 견백론. 〈齊物論〉과 〈騈拇〉편에 이미 나왔다.
역주35 解垢 : 궤변. 陸德明은 “속이고 왜곡하는 말[詭曲之辭].”로 풀이했다. 唐寫本에는 垢자가 詬로 되어 있는데(羅振玉) 이 두 글자는 통용한다(王叔岷). 馬其昶은 〈天地〉편 제4장에 나오는 喫詬와 같다고 풀이했다.
역주36 同異 : 〈騈拇〉편에 이미 나왔다.
역주37 每每 : 어두움. 곧 어리석음. 李頤는 “昏昏과 같다[猶昏昏也].”라고 풀이했는데 昏昏은 어두운 모양이다.
역주38 上悖日月之明 :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에 어긋남. 悖자가 倍자로 된 인용이 있다(王叔岷).
역주39 下爍山川之精 : 아래로는 산천의 精氣를 태워 버림. 爍을 櫟으로 풀이하는 崔譔과 向秀의 주장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馬叙倫이 《說文解字》에 근거하여 쇠를 녹인다는 뜻인 鑠의 가차로 본 것이 적절하다.
역주40 中墮四時之施(이) : 중간에서는 사계절의 자연스런 운행을 파괴함. 墮는 陸德明의 풀이대로 훼손하다[毁也]는 뜻. 施는 馬叙倫이 《說文解字》를 인용하여 옮겨간다[遷徙]는 뜻인 迻의 가차로 본 것이 적절하다.
역주41 惴耎之蟲 : 땅 위를 꿈틀거리는 벌레. 惴耎은 발 없는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양. 惴耎은 陸德明과 王叔岷 등이 지적한 것처럼 虫耑 蝡으로 된 판본이 있으므로 虫耑 蝡의 가차로 보고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
역주42 肖翹之物 : 나비나 벌 따위의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들. 李頤는 “날아다니는 종류[翾飛之屬也].”라 했고, 成玄英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들을 肖翹라 하는데 모두 작고 가벼운 것들[飛空之類曰肖翹 皆輕小物也].”이라고 풀이했다. 또 林希逸은 “肖는 작다는 뜻이고 翹는 가볍다는 뜻인데 날아다니는 것들로 벌이나 나비 따위이다[肖 小也 翹 輕也 飛物也 蜂蝶之類].”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한편 崔譔은 肖翹를 식물[植物也]로 풀이했는데 적절치 않다.
역주43 舍夫種種之民 : 소박한 민중들을 버림. 民자가 機자로 된 판본이 있기 때문에 機자로 보고 《說文解字》에서 “機는 치밀하게 삼가는 것[機 精謹也].”이라고 풀이한 것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견해(馬叙倫)가 있지만 奚侗과 王叔岷의 견해를 따라 民으로 보는 것이 옳다. 種種은 순박한 모양. 李頤는 삼가는 모양[謹懿貌]으로 풀이했다. 池田知久에 의하면, 淸代 中期 胡文英의 《莊子獨見》에서는 種種은 소박함[朴]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역주44 悅夫役役之佞 : 곰상스러운 말재간꾼을 좋아함. 役役은 곰상스러운 모양. 林希逸이 “밖으로 꾸미는 데 힘쓰는 모양[務外作爲之貌].”이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45 釋夫恬淡無爲 : 편안하고 담백하며 작위가 없는 무위를 풀어 버림. 〈天道〉편 제2장에도 ‘虛靜恬淡 寂漠無爲’라는 표현이 나온다.
역주46 悅夫啍啍之意 : 어지러이 말재주를 부리는 인위적 욕망을 좋아함. 啍啍은 말이 많은 모양. 郭象은 啍啍을 “자기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모양[以己誨人之貌].”이라 했고, 司馬彪는 “하찮은 지혜를 부리는 모양[小智貌].”이라고 풀이했지만, 奚侗이 諄자와 같이 보고 “자세하게 일러 준다[告曉之孰也].”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한편 馬叙倫은 啍啍을 訰訰으로 보고 《爾雅》 〈釋訓〉을 인용 “訰訰은 어지러움이다[訰訰 亂也].”라고 풀이했는데 (福永光司도 이것을 따르고 있지만) 맥락상 적절치 않다.
역주47 啍啍已 亂天下矣 : 말이 많아지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그런데 여기 啍啍已는 세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已를 ‘이미’로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已를 ‘심하게, 몹시’의 뜻으로 보는 해석이다. 첫째의 해석은 물론 부적당하고 둘째의 해석은 이것을 택하여 ‘말재주를 부리는 인위적 욕망을 몹시(甚하게) 좋아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이 있다. 그러나 굳이 已字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순한 助字로 보아 ‘啍啍已면 亂天下矣니라’라고 읽는 셋째의 해석이 더 좋은 것 같다.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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