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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장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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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日夜 相擊於前하야 死傷者 歲百餘人이로대 하더니
如是 三年커늘
하더니
患之하야 募左右하야
賜之千金호리라
左右 曰
莊子 當能하리이다
太子 及使人하야 以千金으로 奉莊子하야늘 莊子弗受하고 與使者하야 往見太子하야호대
太子 何以敎周완대 賜周千金
太子 曰
호니 夫子弗受하시니 尙何敢言호리오
莊子曰
聞太子 所欲用周者 欲絶王之喜好也라호니
使臣으로 上說大王하고 下當太子 趙國 何求 而不得也리오
太子曰
莊子曰
善爲劍하노라
太子曰
王乃說之하시나니 하리라
莊子曰호대
호리라
治劍服三日 乃見太子하야늘 太子 乃與見王한대
脫白刃하야 待之하더니 한대
王曰 子
欲何以敎寡人이완대 使太子
曰 臣
聞大王喜劍하고 以劍으로 見王하노이다
王曰
子之劍 何能禁制
大悅之하여오대
天下 無敵矣로다
莊子曰
願得試之하노이다
王曰
夫子
就舍하야 待命하라
令設戲하고 請夫子호리라
하고야 乃召莊子러니
王曰
莊子曰
望之久矣러이다
王曰
皆可하니
이나 臣有三劍호니 唯王所用이시니 請先言而後試하노이다
王曰
願聞三劍하노라
有天子劍하며 有諸侯劍하며 有庶人劍하니라
王曰
天子之劍 何如
此劍 直之無前하고 擧之無上하고 案之無下하고 運之無旁이라
上決浮雲하고 下絶地紀하나니
此劍 一用하면 匡諸侯하며 天下 服矣나니
此 天子之劍也니라
文王 芒然自失하야호대
諸侯之劍 何如
曰諸侯之劍 以知勇士 爲鋒하고 以淸廉士 爲鍔하고
此劍 直之 亦無前이며 擧之 亦無上이며 案之 亦無下 運之 亦無旁이라
上法圓天하며 以順三光하고 下法方地하야 以順四時하고 하나니
此劍 一用이면 如雷霆之震也하야 나니
諸侯之劍也니라
王曰
庶人之劍 何如
庶人之劍 蓬頭突鬢 垂冠이오 曼胡之纓 短後之衣 瞋目而語難하야서 相擊於前하야 上斬頸領하고 下決肝肺하나니 庶人之劍이라 無異於鬪鷄하니
一旦 命已絶矣 無所用於國事니이다
大王 有天子之位하시고 而好庶人之劍하시나니 臣竊爲大王하야 薄之하노이다
莊子曰
大王 安坐定氣하소서
劍事 已畢奏矣니이다
於是 文王 不出宮 三月 하니라


옛날에 나라 문왕文王은 칼싸움을 좋아하였는데, 검사劍士로서 왕궁의 문을 사이에 끼고 양쪽에 객으로 초청된 이가 3천여 명이나 되었다.
밤낮으로 문왕 앞에서 서로 칼싸움을 하여 사상자가 1년에 100여 명이나 되었는데도, 문왕은 조금도 싫증 내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하기를 3년이 지나자 나라가 매우 쇠퇴하였다.
그러자 다른 나라 제후들이 토벌할 것을 도모하게 되었다.
태자太子 가 이를 걱정하여 좌우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누가 왕의 뜻을 기쁘게 하고서 간하여 검사들 칼싸움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그 상으로 천금을 줄 것이다.”
좌우의 신하들이 말했다.
장자莊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자太子가 이에 사람을 시켜 천금을 가지고 가서 장자에게 바치게 하였는데 장자는 받지 않고 사자와 함께 가서 태자를 만나 보고 말했다.
“태자께서는 무엇을 나에게 명령하시려고 천금을 저에게 내리셨는지요?”
태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총명성지聰明聖知한 분이시라 듣고 삼가 천금을 받들어 선생의 종자從者에게 예물로 바친 것인데 선생께서 받지 않으시니 저는 그 이상 무엇을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듣건대 태자께서 저를 쓰고자 하시는 까닭은 임금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더이다.
그러니 가령 제가 위로는 대왕을 설득하다 왕의 뜻에 거슬리고 아래로는 태자의 의향에 합당하게 하지 못하면 저는 몸이 형벌에 처해져 죽게 될 것이니, 제가 그러고도 어디에 천금을 쓸 곳이 있겠습니까.
또 가령 이 위로 대왕을 설득하고 그래서 아래로 태자의 의향에 합당하게만 한다면 나라에서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우리 왕께서 만나는 상대는 오직 검사劍士뿐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저도 칼을 잘 다룹니다.”
태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왕께서 만나는 검사들은 모두 쑥대처럼 풀어헤친 머리, 길게 뻗친 양 뺨의 구레나룻에 깊이 눌러쓴 철모에다 장식 없는 거친 투구 끈과 뒤가 짧은 전투복으로, 눈 부릅뜨고 거친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래야만 왕께서 비로소 기뻐하시니 이제 선생께서 꼭 유복儒服을 하고서야 왕을 뵙는다고 할진댄 일이 반드시 크게 어긋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임금께서 좋아하는 검객은 모두 더벅머리에 살쩍은 불끈 치솟고, 낮게 기울어진 관을 쓰고, 장식이 없는 끈으로 관을 매고,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거립니다. 임금께서는 그래야만 좋아하십니다. 지금 선생께서 유복을 입고 임금을 뵈려 한다면 일을 반드시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그러면 나에게 검복劍服을 갖추어 주십시오.”
검사劍士의 옷을 3일 걸려 만들자 마침내 장자莊子태자太子를 만났더니, 태자는 이에 장자와 함께 왕을 뵈었다.
왕이 흰 칼날을 뽑아 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장자는 궁전의 문안에 들어가 잰걸음으로 걷지 아니하고 왕을 보고서도 절하지 않았다.
왕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과인에게 가르치려고 태자로 하여금 앞장서게 하였는가?”
장자莊子가 말했다.
“신이 듣건대 대왕께서는 칼싸움을 좋아하신다 하기에 그 까닭에 제 검술을 가지고 왕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그대의 검은 어느 정도의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가?”
장자가 말했다.
의 검은 십 보 나아갈 적마다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그렇게 하여 천리를 나아가는 동안 가로막을 자가 없습니다.”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천하에 무적無敵이로다!”
장자가 말했다.
“대저 〈제가〉 칼을 쓰는 방법은, 상대에게 허점을 보이고, 내 몸을 열어 상대를 유리하게 하고, 상대보다 늦게 칼을 쓰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보다 먼저 칼을 상대의 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시험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잠시 쉬시오.
객사에 가서 명령을 기다리시오.
시합하는 자리를 갖추게 하고 다시 선생께 청하리다.”
그리고는 왕이 마침내 〈나서서 싸울〉 검사를 7일 동안 겨루어 선발하였는데 그 때문에 죽거나 다친 이가 60여 명이었다.
그 가운데 5, 6명을 선발해서 그들에게 궁전 아래 모여 각각의 무기를 손에 받들게 하고서 마침내 장자를 불렀다.
이 말했다.
“오늘 시험 삼아 이들 검사劍士들로 하여금 검술을 닦게 하도록 하시오.”
장자莊子가 말했다.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런데 선생이 사용할 칼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좋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신이 가지고 쓸 칼은 어느 것이든 모두 좋습니다.
그러나 신에게는 세 가지 칼이 있는데 오직 왕께서 쓰고자 하시는 것을 따를 것이니 먼저 칼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나중에 시합하고 싶습니다.”
왕이 말했다.
“세 가지 칼이 무엇인지 듣고 싶소.”
장자가 말했다.
천자天子이 있고, 제후諸侯의 검이 있고, 서인庶人의 검이 있습니다.”
이 말했다.
천자天子이란 어떠한 것인지요?”
장자莊子가 말했다.
“천자의 검은 연계燕谿석성石城을 칼날 끝으로 삼고, 나라와 대산岱山을 칼날로 삼고, 서북의 나라와 나라를 칼의 등마루로 삼고, 나라와 나라를 칼자루의 테로 삼고, 나라와 나라를 칼자루로 삼습니다.
사방 오랑캐로 그 둘레를 안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의 추이로 그것을 감싸며 발해渤海로 주위를 둘러치며 상산常山을 띠로 삼아 칼을 허리에 찹니다.
오행五行으로 통제하며 형벌과 은덕으로 휘두르는 법을 논하며 음양으로 칼을 칼집에서 뽑으며 봄 여름에는 칼을 가지고만 있으며 가을 겨울에는 칼로 내려칩니다.
이 칼은 곧장 앞으로 뻗으면 더 이상 앞이 없는 우주의 끝에까지 이르고, 위로 쳐들어 올리면 더 이상 위가 없는 무한의 높이를 가르고, 아래로 내리치면 더 낮은 데가 없는 아래를 치고, 휘두르면 사방 어디고 한정된 방향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뜬구름을 절단하고 아래로는 대지를 묶은 굵은 밧줄을 끊습니다.
이 칼은 한번 쓰면 제후들의 옳지 못함을 바로잡고, 온 천하의 만백성이 복종합니다.
이것이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文王이 멍하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가 말했다.
제후諸侯이란 어떠한 것인가요?”
장자莊子가 말했다. “제후의 검은 지혜와 용기 있는 사람을 칼날 끝으로 삼고, 욕심이 없는 사람을 칼날로 삼고,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칼등으로 삼고, 충의와 성덕이 있는 사람을 칼자루의 테로 삼고 재지才知가 뛰어난 호걸을 칼자루로 삼으니
이 칼도 앞으로 곧장 뻗으면 또한 더 이상 앞이 없는 끝까지 나아가며, 위로 쳐들어 올리면 또한 더 위가 없는 무한의 높이를 스치고, 아래로 내리치면 또한 더 아래가 없는 낮은 데까지 치고, 휘두르면 또한 사방四方 어디고 한정된 방향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따르고, 아래로는 네모난 땅을 본받아 사계절의 추이推移를 따르고, 중간으로는 백성들의 의향意向을 살펴 알아서 나라의 사방을 안정시킵니다.
이 칼을 한번 사용하면 마치 천둥 번개의 진동과 같아서 사방 국경 안의 모든 백성들이 그 누구도 공물을 들고 와서 복종하여 임금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후諸侯입니다.”
이 말했다.
서인庶人은 어떠한 것입니까?”
장자莊子가 말했다.
“서인의 칼은 쑥대처럼 풀어헤친 머리, 길게 뻗친 양 뺨의 구레나룻에 깊게 눌러쓴 철모에다 장식 없는 거친 투구 끈과 뒤가 짧은 전투복으로, 눈 부릅뜨고 거칠게 소리 지르며 왕 앞에서 서로 칼을 휘둘러대고서 위로는 상대의 목을 베고 아래로는 상대의 간과 폐를 칼로 도려내나니, 이것이 서인의 검이니 투계鬪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이 이미 끊어지게 되고 마니, 그렇게 되고 나면 나라 일에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서인의 검을 좋아하시니 저는 가만히 대왕을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왕이 마침내 장자를 이끌고 궁전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요리사가 요리를 올리자 왕이 〈음식을 먹지 않고〉 요리상 둘레를 세 번 빙빙 돌며 걸을 뿐이었다.
장자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기분을 안정시키십시오.
칼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이것으로 모두 다 아뢰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문왕은 궁중에 들어앉은 채, 석 달 동안을 밖에 나오지 않았더니만, 검사劍士들은 모두 그들이 평소 칼싸움하던 자리에서 〈서로 상대를 칼로 찔러〉 엎드려 죽었다.


역주
역주1 昔趙文王喜劍 : 옛날 조나라 문왕이 칼싸움을 좋아함. 昔은 여기에서 전국시대. 趙文王은 趙惠文王이다. 司馬彪의 지적대로 장자보다 350년 뒤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장자 본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편의 작자는 장자의 후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司馬彪는 “혜문왕이다. 이름은 何이고 무령왕의 아들이다. 장자보다 350년 뒤의 인물이다[惠文王也 名何 武靈王子 後莊子三百五十年].”라고 풀이했다. 成玄英은 “조나라 혜왕으로 이름은 何이고 조나라 무령왕의 아들이다. 칼 쓰는 용사를 좋아하여 3천 명의 검객을 길렀다[趙惠王 名何 趙武靈王之子也 好擊劍之士 養客三千].”라고 풀이했다.
역주2 劍士夾門而客三千餘人 : 검사로서 왕궁의 문을 사이에 끼고 양쪽에 객으로 초청된 이가 3천여 명이었음. 夾門은 문을 사이에 끼고 있다는 뜻. 林希逸은 “문을 끌어안고 있음이다[擁門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 好之不厭 : 좋아하여 싫증 내지 않음. 저본에는 ‘不厭’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陸德明의 《經典釋文》에는 ‘無厭’으로 되어 있고, 盧文弨가 “요즘 책에는 不厭으로 표기되어 있다[今書作不厭].”고 한 것으로 보아 본래 ‘無厭’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가 ‘不厭’으로 표기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뜻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저본을 따라 ‘不厭’으로 표기하였다.
역주4 諸侯謀之 : 제후들이 도모함. 다른 제후들이 조나라를 토벌할 것을 도모했다는 뜻이다.
역주5 太子悝 : 태자 회. 悝는 태자의 이름. 실제 인물에 가탁한 것이 아니라 가공의 인물로 보인다. 兪樾은 “혜문왕의 후계자는 효성왕 단이므로 여기의 태자 悝는 즉위하지 않은 듯하다[惠文王之後爲孝成王丹 則此太子蓋不立].”라고 풀이했는데, 方勇‧陸永品은 “《史記》 〈趙世家〉에 ‘혜문왕 22년에 공자 단을 태자로 세웠다’고 했고 태자 悝의 사적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우언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풀이했다.
역주6 孰能說王之意하야 止劍士者 : 누가 왕의 뜻을 기쁘게 하고서 간하여 검사들 칼싸움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說은 悅과 같은 뜻으로 왕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止劍士는 ‘검사들의 칼싸움을 그치게 한다.’는 뜻.
역주7 聞夫子明聖 謹奉千金以幣從者 : 선생께서 聰明聖知한 분이시라 듣고 삼가 천금을 받들어 선생의 從者에게 예물로 바친 것임. 明聖은 聰明聖知한 분. 從者는 ‘從者에게’라는 의미이며 ‘莊子에게’의 정중한 표현이다. 즉 莊周를 직접 지칭하는 것을 꺼린 표현법으로 상대를 높이는 표현법이다.
역주8 使臣上說大王而逆王意 下不當太子 : 가령 제가 위로는 대왕을 설득하다 왕의 뜻에 거슬리고 아래로는 태자의 의향에 합당하게 하지 못하면. 使는 ‘가령 ~하도록 한다면’. 當은 ‘합당‧합치’.
역주9 身刑而死 周尙安所事金乎 : 형벌에 처해져 죽게 될 것이니, 제가 그러고도 어디에 천금을 쓸 곳이 있겠습니까. 安은 ‘어디에’
역주10 然 吾王所見 唯劍士也 : 그렇습니다만 우리 왕께서 만나는 상대는 오직 검사뿐임. 然은 ‘그러나’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林希逸 현토본 대로 ‘그렇다’로 보아도 좋다.
역주11 皆蓬頭突鬢垂冠 曼胡之纓 短後之衣 瞋目而語難 : 모두 쑥대처럼 풀어헤친 머리, 길게 뻗친 양 뺨의 구레나룻에 깊이 눌러쓴 철모에다 장식 없는 거친 투구 끈과 뒤가 짧은 전투복으로, 눈 부릅뜨고 거친 소리를 질러댐. 鬢은 귀밑털, 구레나룻. 突鬢은 구레나룻이 돌출했다는 뜻이다. 短後는 뒤가 짧은 전투복. 陸德明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爲便於事也].”라고 풀이했다. 瞋은 눈을 부릅뜸. 陳景元은 “눈을 크게 뜸이다[張也].”라고 풀이했다. 語難의 難은 듣고 있기 어려운 말, 거친 말이라는 뜻이다. 語難은 “말로 두렵게 하다.”는 뜻으로 陸德明은 “화내면서 말하고 나면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된다[旣怒而語 爲人所畏難].”라고 풀이했다.
역주12 今夫子必儒服而見王 事必大逆 : 이제 선생께서 꼭 儒服을 하고서야 왕을 뵙는다고 할진댄 일이 반드시 크게 어긋날 것임. 儒服은 〈田子方〉편 제5장과 〈盜跖〉편 제1장에 ‘쿨렁쿨렁한 큰 옷에 넓은 폭의 얕은 띠[逢衣淺帶]’라고 한 내용을 참조할 것. 여기에 나온 검사들의 전투복과는 상반된 옷이다.
역주13 請治劍服 : 나에게 검복을 갖추어 주십시오. 治가 爲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는데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
역주14 莊子入殿門不趨 見王不拜 : 장자는 궁전의 문안에 들어가 잰걸음으로 걷지 아니하고 왕을 보고서도 절하지 않음. 〈盜跖〉편 제1장에서 공자가 도척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걷고 절한 데서 볼 수 있듯이 不趨, 不拜는 예를 무시한 동작이다(福永光司, 池田知久). 成玄英은 “스스로 만족하는 자는 마음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달리지 않는다[夫自得者 內無懼心 故不趨走也].”라고 풀이했는데 다소 관념적인 해석이다.
역주15 十步一人 千里不留行 : 십 보 나아갈 적마다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그렇게 하여 천리를 나아가는 동안 가로막을 자가 없음. 王叔岷은 ‘十步一人’에서 ‘殺’字를 추가하여 ‘十步殺一人’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대로 두고도 그런 취지의 번역이 가능하다. 司馬彪는 “십 보마다 한 사람과 서로 싸워 바로 죽이기 때문에 천리에 이르도록 막아설 이가 없다[十步與一人相擊輒殺之 故千里不留於行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兪樾은 “십 보 안에서 문득 사람을 죽여서 천리의 먼 길에 이르게 되면 죽인 자가 많을 것인데도 칼날 끝이 무디어지지 않아서 막아서는 것에 구부러지지 않음이니 여기서 십 보 안에 한 사람을 죽이고 천리에 막아설 것이 없다고 한 것은 그 칼이 예리함을 극진히 표현한 것이다. 行자도 칼을 가지고 말한 것이지 사람을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다. 아래 문장에서 이른바 가을과 겨울로 칼을 쓴다고 한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司馬彪는 십 보마다 한 사람과 서로 싸워 바로 죽이기 때문에 천리에 이르도록 막아설 이가 없다고 했는데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十步之內 輒殺一人 則歷千里之遠 所殺多矣 而劍鋒不缺 所當無撓者 是謂十步一人 千里不留行 極言其劍之利也 行以劍言 非以人言 下文所謂行以秋冬是也 司馬云 十步與一人相擊輒殺之 故千里不留於行也 未得其義].”라고 풀이했는데 〈養生主〉편에서 庖丁이 칼날의 예리함을 말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칼의 예리함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탁견이기는 하나, 그 또한 칼 쓰는 이의 기술[道]과 직접 관계된다는 점에서 번역에 채택하지는 않았다.
역주16 示之以虛 開之以利 : 상대에게 허점을 보이고, 내 몸을 열어 상대를 유리하게 함. ‘示之以虛’는 〈應帝王〉편 제5장에서 壺子가 季咸을 만나서 “나는 아직 나의 근본에서 떠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吾示之以未始出吾宗 吾與之虛而委蛇].”라고 한 표현을 이어받은 것이다(池田知久).
역주17 後之以發 先之以至 : 상대보다 늦게 칼을 쓰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보다 먼저 칼을 상대의 몸에 이르게 함. 《老子》 제67장에 “뒤를 놔두고 우선 앞으로 나서면 죽게 될 것이다[舍後且先 死矣].”라고 한 부분과 유사한 맥락이다.
역주18 王乃校劍士七日 死傷者六十餘人 : 왕이 마침내 검사를 7일 동안 겨루어 선발하였는데 그 때문에 죽거나 다친 이가 60여 명이었음. 校는 비교해서 선발한다는 뜻이다. 司馬彪는 “비교해보고 성적을 고찰하여 이긴 자를 뽑음이다[考校取其勝者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9 得五六人 使奉劍於殿下 : 5, 6명을 선발해서 그들에게 궁전 아래 모여 각각의 무기를 손에 받들게 함. 得五六人은 5, 6명을 얻음. 곧 5, 6명을 선발했다는 뜻이다. 奉劍은 ‘칼을 갖게 하고’, ‘칼을 지니고’.
역주20 今日試使士敦劍 : 오늘 시험 삼아 이들 검사들로 하여금 검술을 닦게 하도록 함. 敦은 돈독하게 함. 修와 같은 뜻으로 敦劍은 검술, 또는 검을 닦는다는 뜻이다. 宣穎은 “닦음이다[治也].”라고 풀이했는데 역시 같은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兪樾과 郭嵩燾 등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다만 成玄英은 “敦은 판단함이다. 시험 삼아 검사들을 진열하게 해 놓고 그들을 비교하게 하여 나은 자와 못한 자를 판단함이다[敦 斷也 試陳劍士 使考校敦斷以定勝劣].”라고 풀이했는데 정확하지 않다.
역주21 夫子所御杖 長短何如 : 선생이 사용할 칼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좋겠습니까? 所御杖은 ‘사용하는 칼의 길이’. 御는 쓴다는 뜻. 成玄英은 “御는 씀이다[御 用也].”라고 풀이했다. ‘杖’자가 ’仗‘으로 표기된 판본이 있는데 王叔岷은 仗은 杖의 俗字라고 풀이했다.
역주22 臣之所奉 : 신이 가지고 쓸 칼. 奉은 ‘휘두른다’, ‘들어 올린다’는 뜻으로 捧과 통한다(方勇‧陸永品). 한편 《經典釋文》에 의하면 司馬彪본에는 ‘所奉’이 ‘所奏’로 표기되어 있다고 했는데, 〈養生主〉편에서 庖丁이 칼 쓰는 것을 ‘奏刀’라 하여 일종의 예술적 행위로 묘사한 부분이 있으므로 이 편의 이 부분이 포정의 칼 쓰기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것이라면 司馬彪본에 ‘所奏’로 표기된 것이 옳을 가능성이 있다.
역주23 以燕谿石城爲鋒 齊岱爲鍔 : 연계와 석성을 칼날 끝으로 삼고, 제나라와 태산을 칼날로 삼음. 燕谿는 燕나라의 지명. 陸德明은 “지명이다. 燕나라에 있다[地名 在燕國].”라고 풀이했다. 石城도 지명. 陸德明은 “새외에 있다[在塞外].”라고 풀이했다. 鋒은 칼끝. 鍔은 칼날. 成玄英은 “鋒은 칼끝이고 鍔은 칼날이다. 燕谿는 燕나라에 있고 石城은 塞外의 山이다. 이 지역은 북쪽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칼끝으로 삼은 것이고 제나라의 岱岳은 동쪽에 있기 때문에 칼날로 삼은 것이다[鋒 劍端也 鍔 刃也 燕谿 在燕國 石城 塞外山 此地居北 以爲劍鋒 齊國岱岳在東 爲劍刃也].”라고 풀이했다. 齊岱는 齊國의 岱岳(成玄英). 岱는 岱宗으로 태산의 다른 이름이다. 《書經》 〈舜典〉에 “동쪽으로 순수하여 대종에 이르렀다[東巡守至于岱宗].”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24 晉衛로 爲脊하고 周宋으로 爲鐔 : 晉나라와 衛나라를 칼의 등마루로 삼고, 周나라와 宋나라를 칼자루의 테로 삼음. 衛는 저본과 林希逸 현토본에는 魏로 표기되어 있는데 아래의 魏와 중복되기 때문에 衛로 고치는 것이 옳다. 高山寺古鈔本에는 ‘魏’가 ‘衛’로 표기되어 있고 馬叙倫의 견해 또한 衛로 고치는 것이 옳다고 했다. 脊은 등뼈. 여기서는 칼의 등마루를 뜻한다. 鐔은 칼자루와 칼날 부분을 나누어주는 테. 司馬彪는 ‘劍珥’라 했고, 陸德明은 ‘劍口’라 했는데 간편하게 칼자루의 테로 번역했다.
역주25 韓魏爲夾 : 韓나라와 魏나라를 칼자루로 삼음. 夾은 칼자루를 쥔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칼자루라는 뜻. 鋏과 통한다. 鋏은 칼자루. 成玄英은 “鋏은 쥐는 부분이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칼자루로 삼은 것이다[鋏 把也 韓魏二國在趙之西 故以爲把也].”라고 풀이했고, 司馬彪는 “어떤 판본에는 鋏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같은 뜻이다[一本作鋏 同].”라고 풀이했다.
역주26 包以四夷 裹以四時 繞以渤海 帶以常山 : 사방 오랑캐로 그 둘레를 안고, 춘하추동 사시의 추이로 그것을 감싸며 발해로 주위를 둘러치며 상산을 띠로 삼아 칼을 허리에 참. 成玄英은 “사방의 오랑캐를 도덕으로 품고 사계절을 따라 교화를 베풂이다. 渤海는 滄洲이고 常山은 北岳이다[懷四夷以道德 順四時以生化 渤海 滄洲也 常山 北岳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7 制以五行 論以刑德 : 오행으로 통제하며 형벌과 은덕으로 휘두르는 법을 논함. ‘制以五行’은 오행의 변화에 맞춰서 칼을 조작한다는 뜻이다. 論은 ‘천자의 칼을 휘두르는 법을 논한다.’는 뜻이다. 刑德은 형벌과 은덕. 成玄英은 “刑은 형벌이고 德은 덕화이다[刑 刑罰 德 德化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8 開以陰陽 持以春夏 行以秋冬 : 음양으로 칼을 칼집에서 뽑으며 봄 여름에는 칼을 가지고만 있으며 가을 겨울에는 칼로 내려침. 開以陰陽은 ‘음양의 발동과 함께 칼을 뽑는다.’는 뜻이다. 行以秋冬은 陸德明이 “천도를 따라 운행하고 정지함이다[隨天道以行止也].”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역주29 以賢良士爲脊 以忠聖士爲鐔 以豪桀士爲夾 :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칼등으로 삼고, 충의와 성덕이 있는 사람을 칼자루의 테로 삼고 才知가 뛰어난 호걸을 칼자루로 삼음. 趙諫議본에는 賢良이 賢聖으로 표기되어 있고, 世德堂본과 趙諫議본에는 忠聖이 忠勝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世德堂본에는 豪桀이 豪傑로 표기되어 있다.
역주30 中知民意以安四鄕 : 중간으로는 백성들의 의향을 살펴 알아서 나라의 사방을 안정시킴. 中知民意의 知자가 和자로 표기된 판본(林希逸 현토본, 赤塚忠 《莊子》, 安東林 《莊子》 등)이 있다.
역주31 四封之內 無不賓服而聽從君命者矣 : 사방 국경 안의 모든 백성들이 그 누구도 공물을 들고 와서 복종하여 임금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음. 四封의 封은 封疆으로 국경을 뜻한다. 따라서 四封은 四方의 국경 안을 뜻한다.
역주32 王乃牽而上殿 : 왕이 마침내 장자를 이끌고 궁전 위로 올라감. 牽은 ‘이끌고’. ‘上殿’은 궁전 위로 올라감.
역주33 宰人上食 王三環之 : 요리사가 요리를 올리자 왕이 요리상 둘레를 세 번 빙빙 돌며 걸을 뿐이었음. 三環之는 ‘세 번이나 그 둘레를 맴돌 뿐이었다.’는 뜻. 成玄英은 “環은 싸고돎이다[環 繞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4 劍士皆服斃其處也 : 검사들은 모두 그들이 평소 칼싸움하던 자리에서 〈서로 상대를 칼로 찔러〉 엎드려 죽음. 服이 伏으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고(狩野直喜, 劉文典) 伏으로 표기된 인용문도 있다(馬叙倫). 林希逸은 “服은 伏과 같다[服 與伏同].”라고 풀이했다. 司馬彪는 “예우를 받지 못한 데 격분하여 모두 자살한 것이다[忿不見禮 皆自殺也].”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다시 상을 받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스러워 모두 목숨을 바친 것이다[不復受賞 故恨而致死也].”라고 풀이했다. 斃는 ‘넘어지다’ ‘넘어뜨리다’는 뜻. 服斃는 伏斃와 같다. 곧 엎드려 죽었다는 뜻이다.

장자(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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