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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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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孔子 見老聃한대 老聃 하야 하야
공자孔子노담老聃을 만났는데 노담老聃은 그때 막 새로 머리를 감고 나서 바야흐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햇볕에 말리려 하고 있었다.
이어늘
그런데 꼼짝도 않고 있는 그 모습이 사람 같지가 않았다.
러니 少焉 見曰 丘也 眩與
공자孔子는 물러나 기다리고 있다가 잠시 뒤에 뵙고 말하기를 “제 눈이 먼 걸까요.
其信然與
아니면 참으로 그랬던가요.
아까 선생의 형체는 우뚝 서 있는 마른나무와 같아서 만물萬物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나서 홀로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
老聃曰
노담老聃이 말했다.
遊心於物之初하노라
“나는 만물萬物의 근원에서 노닐고 있었소.”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何謂邪잇고
“무슨 말씀입니까?”
노담이 말했다.
“마음을 아무리 괴롭혀도 알 수 없으며,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嘗爲汝하야 議乎其將호리라
그러니 시험 삼아 그대를 위해 그 대략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至陰 肅肅하고 至陽 赫赫하니 肅肅 出乎天하고 赫赫 發乎地 호대 하며 消息滿虛 一晦一明 日改月化하야 日有所爲而莫見其功하며
순수한 음기는 고요하고 차며 순수한 양기는 밝게 빛나고 뜨거우니, 고요하고 찬 음기는 하늘에서 나와 땅으로 내려오고 밝게 빛나고 뜨거운 양기는 땅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니, 이 지음至陰지양至陽의 두 가 서로 통해서 혼합하여 화합을 이루어 만물이 생기는데, 무엇인가 혹 처음을 이루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으며, 만물이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되풀이하고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함이 날로 바뀌고 달로 변화하여 날마다 작용이 있지만 그 을 볼 수 없습니다.
生有所乎萌하며 死有所乎歸하야 하나니
생성生成되는 사물은 싹트는 바가 있고 사멸死滅해가는 사물은 돌아가는 곳이 있어서, 처음과 마침(生과 )은 끝이 없는 데에서 서로 반전反轉(生은 로, 으로, 으로, 로)하여 그 궁극의 끝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非是也 且孰爲之宗이리오
그러니 이 지음至陰지양至陽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請問遊是하노이다
“여기에 노닌다고 함은 무슨 뜻인지 묻고 싶습니다.”
老聃曰
노담이 말했다.
夫得是 至美至樂也 得至美而遊乎至樂 謂之至人이라하나니라
“무릇 이 지음至陰지양至陽을 얻으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거워지니 지극한 아름다움을 체득하여 지극히 즐거운 경지에 노니는 사람을 일러 지인至人이라 합니다.”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願聞其方하노이다
“원컨대 그 이치를 듣고 싶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하고 하나니 喜怒哀樂 不入於胸次하나니라
“초식동물은 수풀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행동이 조금 변해도 커다란 〈삶의〉 원칙을 잃어버리지는 않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 따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흉중에 침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夫天下也者 萬物之所一也
무릇 천하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일체로 존재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得其所一而同焉이면 則四肢百體 將爲塵垢 而死生終始 將爲晝夜 而莫之能滑이온 而況得喪禍福之所介乎따녀
그러니 일체一體를 얻어서 동화하면 〈나의〉 사지四肢와 온몸은 장차 티끌이나 때와 다를 것이 없는 존재가 되며 사생종시死生終始가 장차 낮과 밤과 같은 자연의 순환으로 여겨져 아무 것도 어지럽힐 수 없게 되는데, 하물며 득실得失이나 화복禍福 따위가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사정이 있어서〉 노예를 버리는 사람이 마치 진흙을 버리듯 함은 자기 몸이 노예보다도 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貴在於我 而不失於變하나니
귀한 것이 나의 마음속에 있으면 변화로 인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且萬化而未始有極也어니 夫孰足以患心이리오
게다가 인간의 육체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해서 애초에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니 대저 무엇이 마음을 괴롭히기에 충분하겠습니까?
이미 를 닦은 지인至人이라야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夫子 德配天地하난대 而猶假至言하야 以修心하시니 古之君子 孰能脫焉이리오
“선생은 덕이 천지와 짝하는데도 오히려 지언至言을 빌려서 마음을 닦고 있으니, 옛날의 군자가 이런 방법을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老聃曰
노담이 말했다.
不然하니라
“그렇지 않습니다.
至人之於德也 不修而物不能離焉하나니라
무릇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은 아무런 작위가 없이 재질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고, 지인至人을 체득함에는 수양이라는 작위가 없어도 만물만민萬物萬民이 〈그를 사모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若天之自高 地之自厚 日月之自明 夫何脩焉이리오
하늘이 저절로 높고 땅이 저절로 두텁고 해와 달이 저절로 밝은 것 같은 것에 무슨 닦음이 있겠습니까.”
孔子 出하야 以告顔回曰
공자가 나와서 안회顔回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에 대해 아는 수준은 아마도 항아리 속의 초파리와 같다고 할 것이다.
노담 선생이 나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지자연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新沐 : 새로 머리를 감음. 저본에는 沐자가 沫자로 표기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판본에 沐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따라 沐자로 고쳤다. 沐浴의 沐은 머리를 감는 것이고 浴은 몸을 씻는 것.
역주2 方將被髮而乾(간) : 바야흐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햇볕에 말리려 함. 被는 披와 통용한다. 乾은 햇볕에 말림.
역주3 慹然似非人 : 꼼짝도 않고 있는 그 모습이 사람 같지 않음. 慹然은 움직이지 않는 모습. 胡文英은 “慹然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다[慹然 心不動也].”고 풀이했는데 慹의 글자 모양에 근거한 풀이이지만 굳이 ‘마음’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역주4 孔子 便而待之 : 공자가 물러나 기다림. 便은 屛의 가차자(章炳麟). 여기서는 물러난다는 뜻. 方勇‧陸永品에 의하면 徐廷槐의 《南華簡鈔》에서는 便을 소변(小便)의 便(변)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다소 엉뚱한 견해이다.
역주5 形體 掘若槁木 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 : 형체가 우뚝 서 있는 마른나무와 같아서 萬物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나서 홀로 서 계신 듯함. 掘若은 우뚝 솟은 모양. 遺物離人은 만물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남. 이 장의 시작부분부터 여기까지는 〈齊物論〉 제1장에 보이는 南郭子綦와 顔成子游의 대화와 유사한 전개방식이다.
역주6 心困焉而不能知 口辟焉而不能言 : 마음을 아무리 괴롭혀도 알 수 없으며,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말할 수 없음. 마음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고 아무리 말로 표현하려 해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막측함을 뜻한다. 困은 ‘피곤하게 하다, 고민하다’의 뜻. 辟은 입을 열다는 뜻으로 闢과 같다(胡文英).
역주7 兩者 交通成和而物生焉 : 兩者는 陰氣와 陽氣를 지칭한다. 成和는 음기와 양기가 조화된 상태를 이름. 至陰과 至陽의 두 氣가 서로 통해서 혼합하여 화합을 이루어 만물이 생김.
역주8 或爲之紀而莫見其形 : 혹 처음을 이루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음. 紀는 사물의 시초. 劉鳳苞는 “암암리에 眞宰를 가리킨 것이다[暗指眞宰].”라고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9 始終相反乎無端而莫知乎其所窮 : 처음과 마침(生과 死)은 끝이 없는 데에서 서로 反轉(生은 死로, 死는 生으로, 始는 終으로, 終은 始로)하여 그 궁극의 끝을 아무도 알지 못함. 삶과 죽음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지만 한편 서로 연속된 것임을 지적하고 그런 과정이 끊임없이 순환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역주10 草食之獸 不疾易藪 : 초식동물은 수풀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함. 수풀을 옮겨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 삶과 죽음을 초식동물이 수풀을 바꾸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易(역)은 바꾸다는 뜻.
역주11 水生之蟲 不疾易水 :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않음. 역시 삶과 죽음을 물속에 사는 동물들이 물속을 헤엄쳐 이리저리 다니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역주12 行小變而不失其大常也 : 행동이 조금 변해도 커다란 〈삶의〉 원칙을 잃어버리지는 않음. 삶과 죽음의 변화를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 속에서 존재의 영속성이 이어지고 있다는 암시를 포함하고 있는 부분이다.
역주13 棄隷者 若棄泥塗 知身 貴於隷也 : 노예를 버리는 사람이 마치 진흙을 버리듯 함은 자기 몸이 노예보다도 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임. 노예가 귀중하지만 자기 몸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主와 客에 대한 가치의 결정적 차이를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역주14 已爲道者 解乎此 : 이미 道를 닦은 至人이라야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음. 已爲道者는 이미 도를 터득한 사람.
역주15 水之於汋也 無爲而才自然矣 :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은 아무런 작위가 없이 재질이 저절로 그러함. 汋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 인공적으로 만든 샘이 아님을 의미한다. 王先謙은 “汋은 자연스럽게 솟아 나오는 물로 아무런 작위 없이 오직 그 재질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汋 乃水之自然涌出 無所作爲 唯其才之自然也].”라고 풀이했다. 才는 才質.
역주16 丘之於道也 其猶醯鷄與 : 내가 道에 대해 아는 수준은 아마도 항아리 속의 초파리와 같음. 醯鷄는 초파리, 술파리. 醯鷄甕이라고 하면 초파리가 항아리 안을 하늘로 여긴다는 뜻이다.
역주17 微夫子之發吾覆也 吾不知天地之大全也 : 선생이 나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지자연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을 것임. 發吾覆은 나를 덮고 있는 천박한 지식을 의미한다. 微는 非와 같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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