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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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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하니 至矣 盡矣 弗可以加矣로다
將以生으로 爲喪也하고 以死 爲反也 니라
其次 曰 始無有 孰知有無死生之一守者
吾與之爲友호리라


옛사람들은 그 지혜가 지극한 곳까지 이르렀다.
어디에까지 이르렀는가.
처음에 사물이 아직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극하고 극진하여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그 다음은 사물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태어나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여기고 죽는 것을 돌아가는 것으로 여겼으니 이것은 아직 삶과 죽음을 구분한 것이다.
그 다음은 처음에는 있는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얼마 있다가 삶이 있게 되고 삶이 이윽고 죽게 되었으니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 삼고 삶을 몸체로 삼고 죽음을 꽁무니로 삼았으니 누가 죽음과 삶이 한 가지임을 아는가.
나는 그와 벗이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입장은 비록 생각이 다르지만 같은 혈통에서 나온 왕공의 동족同族이다.
〈같은 공족公族이지만〉 소씨昭氏경씨景氏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직책으로 드러낸 이고 갑씨甲氏는 그가 소유한 영지領地를 기준으로 을 드러낸 것인지라 〈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니다.


역주
역주1 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盡矣 弗可以加矣 其次 以爲有物矣 : 옛사람들은 그 지혜가 지극한 곳까지 이르렀다. 어디에까지 이르렀는가. 처음에 사물이 아직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극하고 극진하여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그 다음은 사물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의 내용은 〈齊物論〉에도 똑같이 나온다.
역주2 是以分已 : 삶과 죽음을 구분한 것임. 以는 ‘아직도, 여전히’의 뜻. 猶와 같다.
역주3 旣而有生 生俄而死 : 얼마 있다가 삶이 있게 되고 삶이 이윽고 죽게 됨. 俄는 ‘이윽고, 얼마 있다가’.
역주4 以無有爲首 以生爲體 以死爲尻 :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 삼고 삶을 몸체로 삼고 죽음을 꽁무니로 삼음. 無를 머리로 생명을 몸뚱이로 죽음을 꼬리로 비유한 것으로 삶의 전후는 모두 無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역주5 是三者雖異 公族也 : 이 세 가지 입장은 비록 생각이 다르지만 같은 혈통에서 나온 왕공의 同族이다. 宣穎은 “세 가지 말이 모두 도를 볼 수 있으니 물결은 다르지만 근원은 같다[三說皆能見道 異派同源也].”라고 풀이했다.
역주6 昭景也 著戴也 甲氏也 著封也 : 昭氏와 景氏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직책으로 드러낸 성이고 甲氏는 그가 소유한 領地를 기준으로 성을 드러낸 것임. 戴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직책, 封은 封邑, 곧 영지를 말한다. 羅勉道는 “戴는 직책이고 封은 封邑이다[戴 職任也 封 封邑也].”라고 풀이했다. 王應麟은 《楚辭》 王逸 注의 서문에 楚나라의 왕족인 三姓을 昭‧屈‧景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들어 甲氏는 바로 屈氏일 것이라고 했는데 참고할 만한 견해이다.
역주7 非一也 : 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님. 곧 어떤 경우는 직책을 기준으로 성을 표기하고 어떤 경우는 봉읍을 기준으로 성을 표기하지만 모두 왕족의 동성인 것처럼 도를 말할 때에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사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도를 표현한 것이라는 뜻이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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