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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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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有庚桑楚者 하야 하더니 하며 하고 하며 하야 居三年 이어늘 畏壘之民 相與言曰
庚桑子聞之하고 이어늘
弟子異之러니 庚桑子曰
弟子 何異於予
夫春氣發而百草生하며 하나니리오
以畏壘之細民으로 而竊竊焉欲俎豆予于賢人之間하나니 我其杓之人邪인저
吾是以不釋於老聃之言하노라
弟子曰
不然하니이다
에는 巨魚無所還其體커든하고 에는 巨獸無所隱其軀커든하나니라
且夫尊賢授能하며 先善與利 自古堯舜으로 以然이온 而況畏壘之民乎따녀
夫子 亦聽矣니라
庚桑子曰
小子하라
鳥獸不厭高하며 魚鼈 不厭深하나니니라
하나니 竊竊乎 又何足以濟世哉리오
하나니 之數物者 不足以厚民이니라
하야 子有殺父하며 臣有殺君하며 正晝爲盜하며 日中穴阫하나니 吾語汝호리라
大亂之本 必生於堯舜之閒하야 其末存乎千世之後하니 千世之後 其必有人與人 相食者也하리라
南榮趎蹴然正坐하야
若趎之年者 已長矣로니
庚桑子曰
하야 이어니 若此三年이면 則可以及此言矣리라
南榮趎曰
하며 耳之與形 吾不知其異也로대 而聾者 不能自聞하며 心之與形 吾不知其異也로대 而狂者 不能自得하나니 로대리로소이다
今謂趎曰 全汝形하며 抱汝生하야 勿使汝思慮 營營이라하시니 니이다
庚桑子曰
辭盡矣로다
鷄之與鷄 其德 非不同也로대 有能與不能者 其才固有巨小也니라
南榮趎贏糧하야 七日七夜 至老子之所하니
老子曰
南榮趎曰
老子曰
老子曰
不知吾所謂乎
南榮趎俯而慙하고 仰而歎하야
今者 吾忘吾答하야 因失吾問이니이다
老子曰
何謂也
南榮趎曰 하리며 不仁則害人 仁則反愁我身하리며 不義則傷彼 義則反愁我己하리로소니 我安逃此而可잇고
此三言者 趎之所患也 願因楚而問之하노이다
老子曰
汝欲反汝 情性而無由入이로소니 可憐哉
南榮趎請入就舍하야 하야서 十日自愁라가 復見老子한대
老子曰
南榮趎曰
里人 有病 里人 問之어든 이어니와
若趎之聞大道 로소니
趎願聞衛生之經而已矣로이다
老子曰
衛生之經 能勿失乎 能無卜筮而知吉凶乎 能止乎 能已乎 인저
兒子終日嘷而嗌不嗄 和之至也 終日握而手不目掜 共其德也 終日視而目不瞚 偏不在外也니라
行不知所之하며 居不知所爲하며 與物 委蛇而同其波 是衛生之經已니라
南榮趎曰
然則是 至人之德已乎
非也
不以人物利害 相攖하며 하며 不相與爲謀하며 不相與爲事
하나니 是謂衛生之經已니라
然則是至乎
未也
吾固告汝하야 曰 能兒子乎인저하니 하야
若是者 禍亦不至하며 福亦不來하나니
禍福 無有 惡有人災也리오


노담老聃의 제자 중에 경상초庚桑楚라는 이가 있었는데 노담의 도를 일부 얻어서 북쪽으로 가서 외루산畏壘山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신하 중에서 분명히 긋는 것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기는 자를 내보내고 첩 중에서 〈인자하게〉 이끌어 주는 것을 어진 것으로 여기는 자를 멀리하고 법도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이와 함께 하고 용모를 꾸미지 않는 이를 부려서 삼 년 동안 머물러 외루畏壘가 크게 번성하자 외루의 백성들이 서로 이렇게 말했다.
경상자庚桑子가 처음 왔을 때에 우리가 놀랍도록 기이하다 여겼더니만 지금 하루하루 헤아려 보면 부족하고 일 년 동안 헤아려 보면 넉넉하니 아마도 성인인가 보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함께 그를 시축尸祝으로 받들고 사직社稷을 세워 모시지 않는가.”
경상자庚桑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남쪽을 바라보며 기뻐하지 않았다.
제자가 이상하게 여기자 경상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자는 무엇 때문에 나를 기이하게 여기는가.
무릇 봄기운이 움직이면 백 가지 초목이 자라나며 가을이 되면 만 가지 보배가 이루어지는데 저 봄과 가을이 어찌 아무 것도 얻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천도天道가 이미 운행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들으니 ‘지인至人은 담으로 빙 둘러쳐진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백성들은 마음대로 행동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고 자유롭다.’고 했는데
지금 외루畏壘에 사는 어린 백성들로 하여금 사사로이 논의하면서 나를 현인 사이에 두고 제사 지내고자 하게 했으니 나는 남의 본보기가 되려는 사람인가.
내 이 때문에 노담老聃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작은 도랑에는 큰 물고기가 몸뚱이를 돌릴 곳이 없지만 미꾸라지 따위의 작은 물고기는 몸을 돌리기에 적당하다 여기고, 몇 걸음에 오를 수 있는 작은 언덕에는 큰 짐승이 몸뚱이를 숨길 곳이 없는데 작은 여우는 그것을 좋게 여깁니다.
하물며 어진 사람을 높이고 능력 있는 자에게 일을 시키며 훌륭한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옛날 요순堯舜시절부터 그렇게 해 온 것인데 하물며 외루畏壘의 백성들이겠습니까.
선생께서는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경상자庚桑子가 말했다.
“어린 제자야 이리 오너라.
무릇 수레를 삼켜버릴 정도로 큰 짐승이라도 홀로 산을 떠나게 되면 그물에 걸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라도 퉁겨나가 물을 잃어버리게 되면 땅강아지나 개미 따위가 괴롭힐 수 있게 된다.
그 때문에 새나 짐승은 높은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물고기나 자라가 깊은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타고난 모습을 온전하게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감출 때 깊고 어두운 것을 싫어하지 않을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저 두 사람이야 어찌 칭양稱揚하기에 족하겠는가.
그들은 사람들을 까다롭게 구별하여 장차 함부로 담장을 파고 쑥을 심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가려서 빗질하며 쌀알을 헤아리면서 밥을 지을 것이니 그렇게 비교하고 따지면서 또 어찌 세상을 다스리기에 충분하겠는가.
어진 사람을 등용하면 백성들이 서로 다투고 지혜로운 이에게 맡기면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할 것이니 이 몇 가지 일은 백성들을 풍요롭게 하기에 부족하다.
백성들은 이익이라면 심하게 추구하여 자식으로 어버이를 죽이는 이가 있고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는 이가 있으며 한낮에 도둑질을 하며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담에 구멍을 뚫을 것이니 내 너에게 일러 주겠다.
큰 어지러움의 근본은 반드시 요순堯舜의 시대에 생겨서 그 말폐末弊가 천 년 뒤에도 남아 있게 될 것이니 천 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남영주南榮趎가 깜짝 놀라 자리를 바로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저 만큼 나이를 먹은 자는 이미 성장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만 이 말에 미칠 수 있을까요?”
경상자庚桑子가 말했다.
“너의 몸을 온전히 지키고 너의 삶을 끌어안아서 너의 생각이 움직이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 같이 하기를 삼 년 동안 하면 이 말에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남영주南榮趎가 말했다.
“눈의 모양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나는 알지 못하겠는데 장님은 스스로 보지 못하며 귀의 형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줄 나는 모르겠는데 귀머거리는 스스로 듣지 못하며 마음의 모양이 다른 사람과 다른 줄 나는 알지 못하겠는데 미친 자는 스스로 알지 못하니, 형체가 다른 형체와 또한 같을 뿐인데 사물이 간혹 끼어들면 서로 구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이르시길 ‘너의 몸을 온전히 지키고 너의 삶을 끌어안아서 너의 생각이 움직이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하시니 제가 힘써 도를 들어도 귀에만 도달할 뿐입니다.”
경상자가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전했다.
재빨리 날아다니는 작은 벌은 커다란 콩 벌레를 부화시키지 못하고 작은 닭은 큰 고니의 알을 품지 못하지만, 큰 닭은 본디 그것을 할 수 있다.
닭이란 점에서 비교하자면 그 덕이 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닭은 할 수 있고 어떤 닭은 할 수 없는 것은 그 재능에 본디 대소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재능이 작은지라 그대를 교화시킬 수 없으니 그대는 어찌하여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만나 뵙지 않는가.”
남영주南榮趎가 양식을 짊어지고 일곱 날 일곱 밤을 걸어 노자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노자老子가 말했다.
“그대는 경상초庚桑楚가 있는 곳에서 왔는가?”
남영주가 말했다.
“예.”
노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 여러 사람과 함께 왔는가?”
남영주南榮趎는 두려워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노자老子가 말했다.
“그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구먼.”
남영주南榮趎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다가 우러러 탄식하면서 말했다.
“저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를 잊어버려서 다시 뭐라고 물어야 할지도 잃어버렸습니다.”
노자老子가 말했다.
“무슨 말인가?”
“제가 지혜롭지 못하면 사람들은 제가 어리석다고 할 것이고 지혜로우면 도리어 제 몸을 괴롭힐 것이며 어질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해칠 것이고 어질면 도리어 제 몸을 괴롭힐 것이며 의롭지 못하면 저들을 해칠 것이고 의로우면 도리어 제 자신을 괴롭힐 것이니 제가 어떻게 해야 이런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제가 걱정하는 것이니 그 때문에 경상초庚桑楚를 통해 선생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그대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는데 지금 다시 그대가 하는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을 확신할 수 있겠다.
자네는 허둥지둥 정신없는 모습이 마치 부모를 여읜 듯하고 장대를 들고 바다의 깊이를 재려는 듯하니 그대는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멍하니 그대의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나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 가련한 일이로군.”
남영주南榮趎는 간청하여 학사에 들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밝히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버려서 열흘 동안 혼자서 근심하다가 다시 노자老子를 뵈었다.
노자가 말했다.
“자네는 스스로 깨끗이 씻어내서 무엇인가 빛나는 듯하지만 마음에서 스며 나오는 것은 아직도 나쁜 것이 남아 있다.
무릇 바깥의 사물에 얽매인 자는 마음이 번거로워 붙잡을 수가 없는지라 안에서 닫아걸 것이고, 안에서 닫아걸게 되면 이리저리 얽혀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없는지라 밖에서 잠그게 될 것이니 안팎에서 잠그게 되면 도덕을 지닌 사람도 지킬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도덕을 따라 움직이는 자이겠는가.”
남영주가 말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동네 사람이 병의 차도를 물었는데 병든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병을 병으로 여기는 그 사람은 아직 병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에게 대도大道에 관해 들은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약을 먹고 병이 더 심해진 것과 같습니다.
저는 생명을 보위保衛하는 법칙을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생명을 보위하는 법칙이란 하나를 끌어안을 수 있는가, 또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점을 쳐보지도 아니하고 길흉을 알 수 있는가, 멈출 줄 아는가, 그만둘 줄 아는가, 다른 사람은 놔두고 자기에게서 찾을 줄 아는가, 홀가분하게 떠나갈 줄 아는가, 멍한 모습으로 찾아올 줄 아는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줄 아는가를 말함이다.
어린아이가 종일토록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가 지극하기 때문이고 종일토록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본성과 합치되기 때문이고 종일토록 눈을 뜨고 보아도 깜빡이지 않는 것은 집착하는 대상이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길을 떠나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머물러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며 다른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물결치는 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 생명을 보위하는 법칙이다.”
남영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지인至人의 덕이라는 말씀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아니다.
이것은 바로 얼음을 녹이고 언 것을 풀 줄 아는 이 정도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지인至人은 사람들과 함께 땅에서 나는 것을 먹기를 바라고 하늘의 운행을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이나 사물과의 관계나 이익, 손해 따위로 사람들과 서로 다투지 아니하며 서로 괴이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서로 모략을 일삼지 않으며 서로 일을 꾸미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홀가분하게 떠나가고 멍한 모습으로 찾아오니 이것이 바로 생명을 보위保衛하는 법칙이다.”
남영주南榮趎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지극한 덕입니까?”
노자老子가 말했다.
“아직 아니다.
내가 본디 그대에게 일러 주기를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느냐.’고 했으니 어린아이는 움직일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며 길을 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서 몸뚱이는 시든 나뭇가지와 같고 마음은 불 꺼진 재와 같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면 도 이르지 않고 도 이르지 않는다.
화와 복조차 없는데 어찌 인간의 재앙이 있을 것인가.”


역주
역주1 老聃之役 : 노담의 제자. 役은 노담의 부림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林希逸이 “役은 徒이니 문인 제자이다[役 徒也 門人弟子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2 偏得老聃之道 : 노담의 도를 일부 얻음. 偏得은 일부를 얻었다는 뜻. 林希逸은 “偏得은 홀로 얻음이다[偏得 獨得也].”라고 풀이했는데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한편 王叔岷은 偏이 徧으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음을 들어 徧과 통한다고 했는데 그럴 경우 偏得은 모두 터득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는 경상초가 노담의 도를 모두 터득한 것은 아니고 일부만 얻은 것으로 보고 번역하였다.
역주3 以北居畏壘之山 : 북쪽으로 가서 외루산에서 삶. 畏壘는 산 이름. 王念孫은 《說文解字》에 “鍡鑸는 평평하지 않음이다[鍡鑸 不平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라 鍡鑸의 가차로 보았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역주4 其臣之畫然知者去之 : 그 신하 중에서 분명히 긋는 것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기는 자를 내보냄. 畫然은 분명하게 긋는 모양. 林希逸은 “臣은 종복이고 畫然은 분명하다는 뜻이다[臣 僕也 畫然 分明之意].”라고 풀이했다.
역주5 其妾之挈然仁者遠之 : 첩 중에서 〈인자하게〉 이끌어 주는 것을 어진 것으로 여기는 자를 멀리함. 挈자가 絜로 표기된 판본이 있다. 林希逸은 “絜然은 인자하고 부드럽게 대한다는 뜻이다[絜然 慈柔之意].”라고 풀이했다.
역주6 擁腫之與居 : 법도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이와 함께 함. 우둔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뜻. 林希逸에 의하여 “擁腫은 외모가 우둔함이다[擁腫 鈍外也].”라고 풀이했다. 〈逍遙遊〉편 제5장에 “나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直線을 그릴 수가 없고 그 잔가지는 비비 꼬이고 구부러져 동그라미나 네모꼴을 그릴 수가 없다[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라고 한 대목에 擁腫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逍遙遊〉편에는 나무줄기가 울퉁불퉁하여 곱자나 그림쇠를 댈 수 없는 모양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여기서는 ‘울퉁불퉁하게 행동하는 것’ 곧 법도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7 鞅掌之爲使 : 용모를 꾸미지 않는 이를 부림. 林希逸은 “鞅掌은 지리함과 같다[鞅掌 猶支離也].”라고 풀이했다.
역주8 畏壘大壤 : 외루가 크게 번성함. 大壤은 크게 번성했다는 뜻으로 壤은 穰(풍성할 양)의 가차자이다. 林希逸은 “大壤은 풍성함이다[大壤 豐也].”라고 풀이했다.
역주9 庚桑子之始來 吾洒(수)然異之 : 경상자가 처음 왔을 때에 우리가 놀랍도록 기이하다 여겼음. 洒然은 놀라는 모양. ‘洒’은 ‘물뿌릴 쇄’, ‘씻을 세’, ‘놀라는 모양 수’, ‘높고 험한 모양 최’, ‘공손할 선’ 등으로 읽는데 여기서는 向秀의 音을 따라 놀라는 모양이라는 뜻인 ‘수’로 읽는다.
역주10 日計之而不足 歲計之而有餘 : 하루하루 헤아려 보면 부족하고 일 년 동안 헤아려 보면 넉넉함. 林希逸은 “오래될수록 보태짐이다[久而有益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1 子胡不相與尸而祝之 社而稷之乎 : 그대들은 어찌하여 함께 그를 尸祝으로 받들고 사직을 세워 모시지 않는가. 林希逸은 “尸祝社稷은 단지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사 지낸다는 뜻이다[尸祝社稷 只是敬祀之意].”라고 풀이했다.
역주12 南面而不釋然 : 남쪽을 바라보며 기뻐하지 않음. 釋然은 기뻐하는 모양.
역주13 正得秋而萬寶成 : 가을이 되면 만 가지 보배가 이루어짐. 兪樾은 得자를 잘못 끼어든 글자로 보았는데 앞의 春氣發而百草生과 대구가 되므로 得자가 있는 것이 옳다. 다만 正秋得而萬寶成으로 바꾸는 것이 옳다. 한편 方勇‧陸永品의 지적처럼 《周易》 〈說卦傳〉에 正秋而萬寶成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得자가 빠져 있으므로 得자가 잘못 끼어든 글자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역주14 春與秋 豈無得而然哉 : 봄과 가을이 어찌 아무 것도 얻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林希逸은 “봄과 가을이 그럴 수 있는 것은 하늘이 그렇게 운행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찌 아무 것도 얻지 않고 그럴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春秋之所以得而然者 天爲之也 故曰 豈無得而然哉].”라고 풀이했다.
역주15 天道已行矣 : 천도가 이미 운행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천도, 곧 자연의 법칙이 이미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역주16 至人尸居環堵之室 而百姓猖狂不知所如往 : 지인은 담으로 빙 둘러쳐진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백성들은 마음대로 행동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자유로움. 尸居는 시신처럼 고요히 머문다는 뜻. 環堵之室은 사방 一丈 정도 되는 작은 방. 堵는 一丈. 司馬彪는 “一丈을 堵라 한다[一丈曰堵].”라고 풀이했다. 猖狂은 미친 것처럼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뜻으로 〈山木〉편에 ‘猖狂妄行’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不知所如往은 정처 없이 자유로이 방황한다는 의미로 如와 往은 모두 간다는 뜻이다.
역주17 尋常之溝洫 : 작은 도랑. 尋은 8尺. 常은 그 두 배 곧 16尺. 저본에는 尋常之溝로 洫자가 빠져 있지만 馬叙倫이 《太平御覽》의 인용구에는 洫자가 있고, 아래의 步仞之丘陵과 대구가 되므로 洫자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타당하다.
역주18 鯢鰌爲之制 : 미꾸라지 따위의 작은 물고기는 몸을 돌리기에 적당하다 여김. 鯢는 도롱뇽, 鰌는 미꾸라지. 여기서는 모두 작은 물고기라는 뜻. 制는 몸을 구부린다는 뜻으로 折과 같다. 郭慶藩은 制와 折은 옛날에는 통용했다고 풀이했다. 한편 奚侗은 制를 利자로 보았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9 步仞之丘陵 : 몇 걸음에 오를 수 있는 작은 언덕. 앞의 尋常之溝洫은 낮은 곳을 지칭한 것이고 이것은 높은 곳을 지칭한 것으로 서로 상대되는 표현이다.
역주20 㜸狐爲之祥 : 작은 여우는 그것을 좋게 여김. 㜸狐는 들에 사는 여우. 爲之祥은 다행으로 여긴다는 뜻. 崔譔은 “작은 벌레나 여우는 작은 언덕을 좋은 곳으로 여긴다. 祥은 좋다는 뜻이다[蠱狐以小丘爲善也 祥 善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李頤는 “祥은 괴이함이다[祥 怪也].”라고 풀이했고, 王叔之는 “여우가 그곳에 의지해서 요상한 짓을 한다[野狐依之作妖祥也].”고 풀이하여 祥을 凶의 뜻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앞의 鯢鰌爲之制에 특별히 부정적인 묘사가 있는 것이 아닌데 대구가 되는 이 구절만 부정적인 맥락으로 풀이하는 것은 지나친 견해이다.
역주21 函車之獸 介而離山 則不免於罔罟之患 : 수레를 삼켜버릴 정도로 큰 짐승이라도 홀로 산을 떠나게 되면 그물에 걸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음. 函은 삼킨다는 뜻으로 含과 통하는 글자. 介는 홀로의 뜻으로 兪樾은 “짐승이 짝이 없는 것을 介라 한다[獸無偶曰介].”라고 풀이했다. 林希逸은 “函車呑舟의 函 또한 삼킨다는 뜻이다. 介는 홀로이다[函車呑舟 函亦呑也 介 獨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2 呑舟之魚 碭而失水 則〈螻〉蟻能苦之 :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라도 퉁겨나가 물을 잃어버리게 되면 땅강아지나 개미 따위가 괴롭힐 수 있게 됨. 碭(탕)은 퉁겨나감. 蕩과 통한다. 林希逸은 “碭은 흘러나감이다. 이는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면 자신을 해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碭 流蕩也 此喩名見於世 能害其身也].”라고 풀이했다. 螻蟻는 땅강아지와 개미.
역주23 全其形生之人 藏其身也 不厭深眇而已矣 : 타고난 모습을 온전하게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감출 때 깊고 어두운 것을 싫어하지 않음. 林希逸은 “타고난 모습을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길게 살면서 오래 보는 것이고 몸을 감춤에 깊고 어두운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을 피해서 이름이 없기를 바람이다[全其形生 長生久視者也 藏身不厭深眇 欲避世而無名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4 且夫二子者 又何足以稱揚哉 : 저 두 사람이야 어찌 칭양하기에 족하겠는가. 두 사람은 요임금과 순임금을 지칭한다. 林希逸은 “두 사람은 요순을 지칭한다[二子 指堯舜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5 是其於辯也 將妄鑿垣牆而殖蓬蒿也 : 그들은 사람들을 까다롭게 구별하여 장차 함부로 담장을 파고 쑥을 심을 것임. 辯은 辨과 같다. 林希逸 “담장 위에 풀을 심으려 함이니 이런 이치는 없다. 마땅함을 잃어버렸음을 말한 것이다[垣牆之上 將欲種草 無此理也 謂引證失其宜也].”라고 풀이하였다. 成玄英은 辯을 ‘別’로 풀이했다. 한편 馬叙倫은 辯을 治의 뜻으로 풀이했는데 池田知久, 福永光司, 金谷治 등이 따르고 있다.
역주26 簡髮而櫛 數米而炊 : 머리카락을 가려서 빗질하며 쌀알을 헤아리면서 밥을 지음. 까다롭게 따진다는 뜻.
역주27 擧賢則民相軋 任知則民相盜 : 어진 사람을 등용하면 백성들이 서로 다투고 지혜로운 이에게 맡기면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할 것임. 《老子》 제3장에 나오는 “어진 사람을 숭상하지 않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중시하지 않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하지 않게 한다[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고 한 구절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역주28 民之於利甚勤 : 백성들은 이익을 심하게 추구함. 勤은 慇懃의 뜻으로 몹시 바란다는 뜻이다.
역주29 將惡乎託業以及此言邪 :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만 이 말에 미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林希逸은 “託業은 수학함을 말함이다. 이 말에 미친다는 것은 경상자가 가르쳐 준 것에 미치기를 바람이다[託業 言受學也 及此言者 欲及庚桑子之所誨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0 全汝形 抱汝生 : 너의 몸을 온전히 지키고 너의 삶을 끌어안음. 抱는 保와 같다(兪樾). 生을 性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生의 뜻으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에 일단 본래 글자를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31 無使汝思慮營營 : 너의 생각이 움직이게 하지 말아야 함. 營營은 사물을 끊임없이 좇아가는 모양.
역주32 目之與形 吾不知其異也 而盲者不能自見 : 눈의 모양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나는 알지 못하겠는데 장님은 스스로 보지 못함. 成玄英은 “눈이 멀거나 귀가 먹은 사람은 보통 사람과 눈이나 귀의 생김새는 다를 것이 없지만 눈이 먼 사람은 색을 보지 못하고 귀 먹은 사람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盲聾之士 與凡常之人耳目無異 而盲者不見色 聾者不聞聲].”라고 풀이했다.
역주33 形之與形亦辟(비)矣 : 형체가 다른 형체와 또한 같음. 辟는 같다는 뜻. 譬와 같다. 王敔는 “譬와 같다. 균등해서 다름이 없다고 말함과 같다[與譬同 猶言均是而無異也].”고 풀이했다. 馬叙倫은 譬의 가차자로 ‘친근’하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34 物或間之邪 欲相求而不能相得 : 사물이 간혹 끼어들면 서로 구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임. 사물이 끼어들어 방해하면 서로 상대를 찾더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35 趎勉聞道達耳矣 : 제가 힘써 도를 들어도 귀에만 도달할 뿐임. 귀로 듣기만 하고 마음으로 듣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崔譔은 “겨우 귀에만 도달하고 아직 마음속에 통하지 못함이다[僅達於耳 未徹入於心也].”라고 풀이했다. 勉자가 晩으로 표기된 판본이 있지만 오류인 듯하다.
역주36 奔蜂不能化藿(곽)蠋 : 재빨리 날아다니는 작은 벌은 커다란 콩 벌레를 부화시키지 못함. 奔蜂은 바삐 날아다니는 벌. 藿蠋은 콩 벌레.
역주37 越鷄不能伏鵠卵 魯鷄固能矣 : 작은 닭은 큰 고니의 알을 품지 못하지만, 큰 닭은 본디 그것을 할 수 있음. 越鷄는 작은 닭. 司馬彪는 ‘小鷄’로 풀이했다. 鵠卵은 고니의 알. 魯鷄는 大鷄(向秀). 魯는 크다는 뜻으로 路와 통하는 글자.
역주38 今吾才小不足以化子 子胡不南見老子 : 지금 나는 재능이 작은지라 그대를 교화시킬 수 없으니 그대는 어찌하여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만나 뵙지 않는가. 庚桑楚는 자신을 奔蜂과 越鷄에 비유하고 鵠卵과 魯鷄를 각각 남영주와 노자에 비유함으로써 남영주에게 노자를 뵙고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대도를 깨우치도록 인도한 것이다(方勇‧陸永品).
역주39 子自楚之所 來乎 : 그대는 경상초가 있는 곳에서 왔는가? 楚는 庚桑楚를 지칭한다.
역주40 子何與人偕來之衆也 : 그대는 어찌 여러 사람과 함께 왔는가? 여러 사람이란 뒤에 南榮趎가 말하는 知‧不知, 仁‧不仁, 義‧不義의 三言을 두고 여러 사람과 같다는 뜻으로 비유한 것이다.
역주41 南榮趎懼然顧其後 : 남영주는 두려워하면서 뒤를 돌아봄. 노자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로 자신을 따라온 사람이 있는지 의심했다는 뜻이다.
역주42 不知乎 人謂我朱愚 知乎 反愁我軀 : 제가 지혜롭지 못하면 사람들은 제가 어리석다고 할 것이고 지혜로우면 도리어 제 몸을 괴롭힐 것임. 朱愚는 어리석은 모양. 成玄英은 “무지한 모양이다[無知之貌也].”라고 풀이했는데, 王念孫이 朱자를 무디다는 뜻인 銖의 가차자로 본 견해가 보다 정확하다.
역주43 向吾見若 眉睫之間 吾因以得汝矣 : 아까 나는 그대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음. 向은 아까, 지난번에. 得汝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南榮趎가 세 가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는 의미이다.
역주44 今汝又言而信之 : 지금 다시 그대가 하는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을 확신할 수 있음. 信之의 之는 노자 자신의 짐작을 가리킨다.
역주45 若規規然若喪父母 揭竿而求諸海也 : 자네는 허둥지둥 정신없는 모습이 마치 부모를 여읜 듯하고 장대를 들고 바다의 깊이를 재려는 듯함. 앞의 若은 이인칭. 規規然은 허둥지둥하는 모양. 정신없는 모양. 揭竿而求諸海也는 장대를 들고 바다의 깊이를 재려 한다는 뜻. 宣穎이나 楊樹達 등은 揭竿而求諸海를 두고 장대를 표지 삼아 들고 바다에서 부모를 찾는다는 뜻으로 풀이했는데 喪父母와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취하지 않는다.
역주46 女 亡人哉 : 그대는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女는 이인칭으로 汝와 통한다.
역주47 惘惘乎 : 멍한 모습. 무엇인가 잃어버린 모습을 나타낸다.
역주48 召其所好 去其所惡 :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밝히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버림. 所好는 道. 所惡는 인간의 욕심.
역주49 汝自洒濯 熟哉 鬱鬱乎 : 자네는 스스로 깨끗이 씻어내서 무엇인가 빛나는 듯함. 洒濯은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냄을 비유. 鬱鬱乎는 빛나는 모양. 郁郁乎와 통한다. 熟은 누구. 孰과 통한다.
역주50 然而其中津津乎 猶有惡也 : 마음에서 스며 나오는 것은 아직도 나쁜 것이 남아 있음. 津津은 스며 나오는 모양. 林疑獨은 “津津은 여전히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음이다[津津 猶有發見於外者].”라고 풀이했다.
역주51 外韄者 不可繁而捉 將內揵 : 바깥의 사물에 얽매인 자는 마음이 번거로워 붙잡을 수가 없는지라 안에서 닫아걸 것임. 韄은 묶는다는 뜻. 林希逸은 “가죽으로 물건을 묶음이다[以皮束物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52 內韄者 不可繆(무)而捉 將外揵 : 안에서 닫아걸게 되면 이리저리 얽혀서 바로잡을 수 없는지라 밖에서 잠그게 될 것임. 繆는 이리저리 얽히는 모양.
역주53 外內韄者 道德不能持 而況放道而行者乎 : 안팎에서 잠그게 되면 도덕을 지닌 사람도 지킬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도덕을 따라 움직이는 자이겠는가. 道德不能持의 道德은 도덕을 지닌 사람. 放道而行者는 도덕을 따라 배우는 초학자를 지칭한다. 宣穎은 “외물이 밖에서 붙들어 매고 욕망이 안에서 구속하면 비록 도를 가진 이라 하더라도 힘써 지키지 못할진댄 하물며 초학자이겠는가[物錮於外 欲㬵於內 雖有道者不能强持 況初學乎].”라고 풀이했다.
역주54 病者能言其病 然其病病者猶未病也 : 병든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병을 병으로 여기는 그 사람은 아직 병든 것이 아님. 病病의 앞 글자는 병을 병으로 진단하여 치료한다는 뜻이다.
역주55 譬猶飮藥以加病也 : 마치 약을 먹고 병이 더 심해진 것과 같음. 《老子》 제71장에 “알고서도 안다 하지 않는 것은 최상이고, 모르는 주제에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니, 오직 병을 병으로 여기는지라 그래서 병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병을 앓지 않는 것은 그 병을 병으로 자각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들지 않는 것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라고 한 대목과 유사한 내용이다.
역주56 能抱一乎 : 하나를 끌어안을 수 있는가. 抱一은 《老子》 제10장에 “영백을 싣고 하나를 끌어안아서 떠남이 없을 수 있는가[載營魄抱一 能無離乎].”라고 한 대목과 유사하다. 마음을 통일시키는 것이 도를 잘 지키는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57 能舍諸人而求諸己乎 : 다른 사람은 놔두고 자기에게서 찾을 줄 아는가. 《孟子》 〈公孫丑 上〉에 “인을 실천하는 것은 활 쏘는 것과 비슷하니 활 쏘는 이는 자신을 바로하고 화살을 쏜 뒤에 적중하지 않더라도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는다[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라고 한 유가적 수양방법과 유사한 대목이다.
역주58 能翛然乎 : 홀가분하게 떠나갈 줄 아는가. 외물에 얽매이지 않고 깨끗이 떠난다는 뜻. 翛然은 홀가분한 모습.
역주59 能侗然乎 : 멍한 모습으로 찾아올 줄 아는가. 侗然은 무지한 모양. 이리저리 잔신경 쓰지 말고, 무지하고 소박해야 도를 지킬 수 있다는 뜻.
역주60 能兒子乎 :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줄 아는가. 林希逸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음이다[不失赤子之心也].”라고 풀이했는데, 《孟子》 〈離婁 下〉에서 “大人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자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한 대목을 인용한 것으로 유가적 해석이라 할 만하다.
역주61 是乃所謂冰解凍釋者 能乎 : 이것은 바로 얼음을 녹이고 언 것을 풀 줄 아는 이 정도면 할 수 있을 것임. 衛生之經을 터득하는 것은 세상에서 이른바 얼음이 풀리고 얼어붙은 것이 녹은 것, 즉 마음의 미혹이 깨끗이 사라진 초학입문자의 경지를 말하는 것일 뿐이라는 뜻(呂惠卿, 池田知久).
역주62 至人者相與交食乎地 而交樂乎天 : 지인은 사람들과 함께 땅에서 나는 것을 먹기를 바라고 하늘의 운행을 즐기기를 바랄 뿐임. 먹고 즐기는 모든 행위를 자연 그대로 따름을 말함이다. 交는 바라다는 뜻으로 邀와 같다. 郭象, 崔譔, 李頤 등은 모두 交자를 俱 또는 共으로 풀이했지만 兪樾이 《春秋左氏傳》에 ‘邀食乎地 邀樂乎天’이 나오는 구절을 들어 같은 뜻이라고 풀이한 것이 정확하다.
역주63 不相與爲怪 : 서로 괴이한 행동을 하지 않음. 爲怪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뜻. 林希逸은 ‘爲異’로 풀이했다.
역주64 翛然而往 侗然而來 : 홀가분하게 떠나가고 멍한 모습으로 찾아옴. 翛然과 侗然은 앞 문장 ‘能翛然乎 能侗然乎’에 이미 나왔다.
역주65 兒子動不知所爲 行不知所之 : 어린아이는 움직일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며 길을 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함. 물욕이 없기 때문에 생명력이 충일한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역주66 身若槁木之枝 而心若死灰 : 몸뚱이는 시든 나뭇가지와 같고 마음은 불 꺼진 재와 같음. 槁木, 死灰의 비유는 〈齊物論〉편과 〈知北遊〉편에 이미 나왔고, 〈田子方〉편에는 形體掘若槁木으로 나왔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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