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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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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지키고 편안하고 담백하며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천지자연의 기준이며 지극한 도덕이다.
하나니
그 때문에 제왕과 성인이 그곳에서 쉰다.
休則虛하고 이니 니라
쉬면 마음이 비워지고 마음이 비워지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차례가 갖추어질 것이다.
虛則靜하고 靜則動이니 니라
마음을 비우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움직이게 될 것이니 움직이면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靜則無爲하니 니라
고요하면 무위하게 될 것이니 무위하게 되면 일을 담당한 자들이 책임을 완수할 것이다.
無爲則 兪兪者 니라
무위하게 되면 즐겁게 될 것이니 즐겁게 되면 근심 걱정이 머물 수 없는지라 수명이 길어질 것이다.
夫虛靜恬淡하며 寂漠無爲者 萬物之本也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지키고 편안하고 담백하며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만물의 근본이다.
하닌 堯之爲君也 明此하야 以北面하닌
이것을 분명히 알아서 남쪽을 바라보며 천하를 다스린 것이 요의 임금 노릇이었고, 이것을 분명히 알아서 북쪽을 바라보고 임금을 섬긴 것이 순의 신하 노릇이었다.
以此 處上하닌 帝王天子之德也 以此 處下하닌
이것을 가지고 윗자리에 머무는 것이 제왕과 천자의 덕이고, 이것을 가지고 아래에 머무는 것이 깊은 덕을 가진 성인과 왕위 없는 왕자의 도리이다.
이것을 가지고 물러나 머물면서 한가로이 노닐면 강과 바다 산림 속에 숨어 사는 은자들까지 심복할 것이고,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세상 사람들을 어루만지면 공명이 크게 드러나 천하가 통일될 것이다.
이오 無爲也而尊이오 하나니라
고요히 멈추어 있으면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제왕이 되고 무위하면 존중받고 자연 그대로의 소박을 지키면 천하에서 아무도 그와 아름다움을 다툴 수 없을 것이다.
역주
역주1 虛靜恬淡 寂漠無爲者 :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지키고 편안하고 담백하며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 ‘虛靜’은 《老子》 제16장에 나오고, ‘恬淡’은 《老子》 제31장에 나오며, ‘寂漠’은 《老子》 제25장에 나오는 ‘寂廖’와 같은 뜻이다(福永光司). 成玄英은 “네 가지는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四者異名同實者也].”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靜 한 글자를 여덟 자로 부연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바란 것이다[把一靜字 演作八字 要作分曉也].”라고 풀이했다. 朱得之, 林雲銘, 宣穎, 陸樹芝, 陳壽昌 등도 같은 견해. 虛靜은 《老子》 제16장에 “虛를 극진히 이루고 靜을 독실하게 지킨다[致虛極 守靜篤].”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恬淡은 淡자가 澹 또는 惔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胠篋〉편 제4장에도 이미 恬淡과 無爲가 함께 나왔다. 뒤의 〈刻意〉편에도 자주 나온다. 寂漠은 漠자가 寞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呂氏春秋》 〈審分〉편에 “의기가 적막한 곳에서 노닐 수 있게 된다[意氣得遊乎寂寞之宇矣].”는 내용이 보인다. 池田知久에 의하면, 呂惠卿은 여기의 寂은 《周易》 〈繫辭上傳〉에서 “易은 생각함도 없고 행위함도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낌이 오면 마침내 천하의 모든 일을 안다[易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라고 했을 때의 寂과 같은 뜻이라고 했고, 漠은 〈應帝王〉편 제3장의 “그대가 마음을 담담한 곳에 노닐고, 기를 적막한 곳에 부합시킨다[汝遊心於淡 合氣於漠].”할 때의 漠과 같은 뜻이라고 했다. 無爲는 〈逍遙遊〉편 제5장 이래로 用例가 많다. 이하의 문장은 〈刻意〉편에도 거듭 나온다(池田知久).
역주2 天地之平 : 천지자연의 기준. 馬叙倫은 “살펴보건대 平字는 〈刻意〉편에는 本자로 표기되어 있다. 요즘의 판본에는 잘못 平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마땅히 〈刻意〉편을 따라야 할 것이다. 하문에 ‘夫虛靜恬寂漠無爲者 萬物之本也’라고 된 것이 그 증거이다. 平자와 本자는 글자의 모양과 발음이 비슷해서 잘못 전해진 것이다[案平刻意篇作本 今本誤作平當從之 下文曰 夫虛靜恬寂漠無爲者 萬物之本也 是其證 平本形聲相近而譌].”라고 했고 陳鼓應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하지만 池田知久의 주장처럼 앞장의 ‘平中准(準)’을 이어서 말한 것(焦竑)이므로 平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3 道德之至 : 도덕의 지극함. 지극한 도덕, 최상의 도덕이라는 뜻. 郭慶藩은 “至는 質과 같다. 至는 實質이라는 뜻이니 〈刻意〉편에는 올바르게 質자로 표기되어 있다[至與質同 至 實 刻意篇正作道德之質].”라고 하여 至자를 質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王念孫, 奚侗, 馬叙倫, 王叔岷, 陳鼓應 등이 이 견해를 따르고 있지만 呂惠卿이 “至는 다시 더 보탤 수 없음을 말함이다[至則無以復加之謂也].”라고 한 것처럼 최상의 도덕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池田知久도 이것을 定說로 보고 있다. 역시 池田知久에 의하면, 張君房본에는 至자 아래에 也자가 있으며 이 밖에도 也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이 있다(劉文典, 王叔岷).
역주4 帝王聖人休焉 : 제왕과 성인이 그곳에서 쉼. 成玄英은 “생각을 쉬고 마음을 쉬게 한다[休慮息心].”라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休는 머문다는 뜻이다. 제왕과 성인의 마음이 이곳에 머묾을 말한 것이니 《大學》에서 ‘止於至善’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休 止也 言帝王聖人之心止於此也 亦猶曰止於至善也].”라고 풀이했는데 특이한 견해로 참고할 만하다.
역주5 虛則實 : 마음이 비워지면 채워짐. 林希逸은 “비워지면 채워진다는 말은 바로 선가에서 이른바 참으로 빈 뒤에 有가 실재하게 된다고 한 것과 같다[虛則實 卽禪家所謂眞空而後實有].”라고 풀이했고, 陳鼓應도 같은 견해를 지지했다. 또 〈人間世〉편 제1장에 “道는 오직 마음을 비우는 곳에 응집된다[唯道集虛].”고 한 내용과 “비어 있는 방에 햇살이 비치니 吉祥은 고요한 곳에 머문다[虛室生白 吉祥止止].”라고 한 내용은 모두 비움과 도의 상관성에 관해 논의한 부분으로 참고할 만하다. 아울러 《老子》 제16장의 “허를 극진히 이루고 고요함을 독실하게 지킨다[致虛極 守靜篤].”라고 한 내용도 참고할 만하다.
역주6 實者倫矣 : 채워지면 차례가 갖추어짐. ‘者’는 우리말의 ‘…하면’에 해당한다. 馬叙倫은 “者는 則으로 읽어야 한다[者 讀爲則].”라고 했는데 앞뒤의 맥락이 조건과 결과에 해당하는 내용이므로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다. 奚侗은 “요즘 판본에는 備자가 倫자로 표기되어 있고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 古藏本에는 倫자가 備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備자로 보는 것이 의미상 더 좋다[備今本作倫 闕誤引江南古藏本倫作備 於義爲長].”라고 풀이했다. 또 劉文典은 “ ‘實者備矣’는 아래의 ‘動則得矣’와 협운이다. 備자가 모양이 비슷해서 倫자로 와전되었다[實者備矣 與下動則得矣爲韻 備以形近譌爲倫].”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한편 池田知久는 倫자가 陳景元의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에 備로 표기되어 있고 奚侗, 馬叙倫, 劉文典, 王叔岷 등이 지지하지만 잘못이라 하고 郭象이 ‘理’의 뜻으로 풀이한 것이 옳으며, 또 者자도 奚侗은 則의 誤字라 하고 馬叙倫은 則의 假借라 하고 王叔岷은 者는 則과 같다고 했지만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는데 참고로 밝혀 둔다.
역주7 動則得矣 : 움직이면 얻게 됨. 움직이면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 則자가 者자로 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역주8 無爲也則任事者 責矣 : 무위하게 되면 일을 담당한 자들이 책임을 완수할 것임. 군주가 무위하게 되면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고 처리할 것이라는 뜻. 반대로 하면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지 않고 군주에게 떠넘기게 되므로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맥락이다. 成玄英은 “이것은 주상이 무위하면 신하가 일을 담당하여 처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군주는 면류관의 술을 드리우고 바라보기만 할 뿐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斯則主上無爲 而臣下有事 故冕旒垂目而不與焉].”라고 풀이했다. 이 부분의 주장에 대해 池田知久는, 福永光司와 赤塚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韓非子》 〈主道〉편에서 “명군이 위에서 무위하면 여러 신하들이 아래에서 두려워할 것이니 명군의 도리는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생각을 다하게 하고 …… 현자로 하여금 재능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明君無爲於上 群臣竦懼乎下 明君之道 使智者盡其慮……賢者勅其材].”라고 한 내용과 아주 가깝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法家로부터 역수입한 권모술수적인 無爲思想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주9 兪兪 : 즐거운 모양. 愉愉와 같다. 陸德明은 《廣雅》를 인용하여 기뻐하는 모습[喜]으로 풀이했다. 焦竑은 “兪兪는 곧 愉愉이다[兪兪卽愉愉].”라고 했고, 兪樾도 兪를 愉의 假借라 했다. 林雲銘도 마찬가지.
역주10 憂患不能處 年壽長矣 : 근심 걱정이 머물 수 없는지라 수명이 길어질 것임. 〈天地〉편 제6장에서 “세 가지 근심이 이르지 않아 몸이 늘 해로움이 없을 것[三患莫至 身常無殃].”이라 한 것과 유사한 표현이며, 朱得之가 “우환이 그 몸에 들러붙지 못한다[憂患不能沾惹於其身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處는 머문다는 뜻.
역주11 明此以南鄕 : 이것을 분명히 알아서 남쪽을 바라보며 천하를 다스림. 南鄕은 남쪽을 바라봄. 南面과 같다. 鄕은 向과 통하는데 여기서는 面과 같다. 南面은 군주로서 남쪽을 바라보면서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北面과 반대의 뜻으로 北面은 신하로서 군주를 섬긴다는 뜻이다.
역주12 舜之爲臣也 : 舜의 신하 노릇 함이었다. 신하 노릇을 무위로 한다는 것은 군주는 무위를 행하고 신하는 유위한다는 일반적인 원칙과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王叔岷은 ‘舜이 비록 유위해야 하는 신하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또한 무위의 도를 밝혔음을 말한 것’이라고 했는데 본문의 맥락은 신하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기보다는 舜 또한 고대의 제왕으로 간주하고 무위의 도리를 밝힌 주체의 예로 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13 玄聖素王之道也 : 깊은 덕을 가진 성인과 왕위 없는 왕자의 도리임. 玄聖은 깊은 덕을 가진 성인, 여기서는 노자를 지칭한다. 素王은 왕의 지위가 없지만 왕자의 덕을 가진 사람, 여기서는 공자를 지칭한다. 成玄英은 “老子와 孔子가 이에 해당한다[老君 尼父是也].”라고 풀이했다. 王先謙은 “소왕과 십이경 따위의 말은 漢代 사람들의 말이다[素王十二經 是漢人語].”라고 했는데, 王叔岷은 다시 한대의 사람들 또한 근본으로 삼은 것이 있었고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말이라고 추정하면서 《鶡冠子》 〈王鈇〉편에 나오는 “소황과 내제의 법도에 견준다[比素皇內帝之法].”는 말을 인용하면서 素皇이 곧 素王이라고 주장했는데 남다른 견해이기 때문에 밝혀 둔다.
역주14 以此退居而閒游 江海山林之士服 : 이것을 가지고 물러나 머물면서 한가로이 노닐면 강과 바다 산림 속에 숨어 사는 은자들까지 심복할 것임. 江海山林之士는 은자들을 지칭한다. 服은 心服 또는 承服으로 진심으로 복종한다는 뜻이다.
역주15 以此進爲而撫世 則功大名顯而天下一也 :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세상 사람들을 어루만지면 공명이 크게 드러나 천하가 통일될 것임. 進爲는 나아가 벼슬한다는 뜻이다. 天下一은 천하가 통일된다는 뜻이다. 撫世는 세상 사람들을 어루만진다는 뜻으로 곧 백성들을 다스림을 말한다.
역주16 靜而聖 動而王 : 고요히 멈추어 있으면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제왕이 됨. 〈天下〉편에 나오는 ‘內聖外王’의 뜻으로 보는 것이 간명하다. 而자는 모두 則자와 같이 쓰였다. 우리말 ‘…하면’에 해당한다.
역주17 樸素而天下 莫能與之爭美 : 자연 그대로의 소박을 지키면 천하에서 아무도 그와 아름다움을 다툴 수 없음. 《老子》 제32장에 나오는 “樸은 비록 하찮은 것이지만 천하에서 누구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다[樸雖小 天下莫能臣也].”는 내용과 유사한 표현이다(王叔岷).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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