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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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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이 나라에 갈 때 곡원曲轅에 이르러 에 심어진 상수리나무를 보았는데,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그늘에 가릴 수 있고, 둘레를 헤아려 보면 백 아름이나 되며, 높이는 산을 내려다 볼 정도여서 땅에서 열 길을 올라간 뒤에 비로소 가지가 뻗어 있었으며,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거의 수십 척에 달할 정도였다.
하더라 하고 이어늘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저잣거리처럼 많이 몰려와 있었는데 장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길을 가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弟子하고 하야
장석의 제자는 실컷 그 나무를 보고서 장석에게 황급히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재목이 이토록 아름다운 나무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하시고 行不輟 何邪잇고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보려 하지도 않으시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떠나가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장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만둬라.
그 나무에 대해 말하지 말아라.
니라
쓸모없는 잡목雜木이다.
以爲舟則沈하고 以爲棺槨則速腐하고 以爲器則速毁하고 하고 以爲柱則蠹하나니 是不材之木也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이나 을 만들면 빨리 썪고, 그릇을 만들면 빨리 부서지고, 대문이나 방문을 만들면 나무 진액이 흘러 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벌레가 생기니 이 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이다.
이라 能若是之壽하니라
쓸 만한 데가 없는지라 그 때문에 이와 같은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커늘 하야
장석匠石이 돌아왔는데 의 상수리나무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무엇에다 나를 비교하려 하는가?
그대는 나를 문목文木에 비교하려 하는가?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는 나무 열매와 풀 열매 따위의 과실이 익으면 〈사람들에게〉 잡아 뜯기고, 잡아 뜯기게 되면 욕을 당하게 되어서,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겨지니, 이것은 그 잘난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천수天壽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요절夭折해서 스스로 세속 사람들에게 타격을 받는 것들이니, 모든 사물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다.”
“또한 나는 쓸 데가 없어지기를 추구해 온 지 오래되었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가 비로소 지금 그것을 얻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이다.
가령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는가?
또한 그대와 나는 모두 사물事物인데, 어찌하여 상대방을 사물事物로 대할 수 있겠는가?
그대도 거의 죽어가는 쓸모없는 사람이니 또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 수 있겠는가?”
장석匠石이 꿈에서 깨어나 그 꿈의 길흉吉凶을 점치자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의 뜻이 쓸모 없음을 취하는 데 있었다면 신목神木이 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장석이 이렇게 대답했다.
“쉿!
하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어늘
저 상수리나무는 다만 몸을 에 기탁했을 따름이다.
〈저 나무는 네가 하는 말을 두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의 욕지거리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신목神木이 되지 않았다 한들 어찌 잘림이 있었을 것이겠는가.
또한 저 상수리나무는 〈마음 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데 세속의 도리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또한 멀지 않은가.”
역주
역주1 匠石之齊 : 장석이 제나라로 감. 匠은 工人의 通稱이고 石은 기술자의 이름(成玄英). 之는 動詞로 간다는 뜻.
역주2 至乎曲轅 : 曲轅에 이름. 곡원은 지명.
역주3 櫟社樹 : 社에 심어진 상수리나무. 櫟은 상수리나무로 여기서는 神木으로 심어진 상수리나무. 社는 土地神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
역주4 其大蔽數千牛 : 그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그늘에 가릴 수 있음. ‘其大蔽牛’로 된 판본도 있으나, 뒤에 나오는 ‘商丘之木’이 사천 필의 말을 묶을 수 있다고 했는데 곡원의 나무가 소 한 마리를 가리는 정도에 그칠 리 없다는 成玄英의 지적이 있고, 또 둘레가 백 아름에 달한다는 표현에 비추어 볼 때 其大蔽數千牛로 된 판본을 따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역주5 絜(혈)之百圍 : 둘레를 헤아려 보면 백 아름이나 됨. 絜은 헤아려 본다는 뜻. 百圍는 백 아름. 林希逸은 두 손을 합쳐서 감싸는 것이 一圍라고 했다. 成玄英은 “줄로 묶어 보면 둘레가 대략 백 척에 이른다[以繩束之 圍麤百尺].”고 하여 絜을 끈으로 묶는다는 뜻으로, 百圍를 百尺으로 보았지만 취하지 않았다.
역주6 其高臨山 : 높이는 산을 내려다 볼 정도임. 높이가 산보다 더 높다는 뜻. 臨은 《詩經》 〈小旻〉편의 ‘如臨深淵’이나 《論語》 〈雍也〉편의 ‘以臨其民’의 경우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내려다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본다는 뜻.
역주7 十仞而後有枝 : 땅에서 열 길을 올라간 뒤에 비로소 가지가 뻗어 있음. 仞은 한 길, 당시 사람들의 평균 신장에 해당하는 치수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仞은 주석가들마다 四尺, 七尺, 八尺 등으로 다른데 각자 당시의 척도법을 따른 것이므로 굳이 따르지 않는다. 十仞이 崔譔본에는 ‘千仞’으로 되어 있다. 이 寓話의 규모로 보아 千仞을 따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역주8 其可以爲舟者旁十數 :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거의 수십 척에 달함. 崔譔은 旁을 곁가지[旁枝]로 풀이했고 成玄英 등도 이 입장을 따르고 있지만, 旁을 方의 통용자로 보고 且의 뜻으로 풀이하는 兪樾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거의~에 달한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9 觀者如市 :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저잣거리처럼 많이 몰려 와 있음. 市는 사람이 많음을 비유한 표현.
역주10 匠伯不顧 : 匠伯이 돌아보지 않음. 匠伯은 곧 匠石, 陸德明은 匠石의 字라고 했다. 崔譔본에는 匠石으로 되어 있다.
역주11 遂行不輟 : 그대로 길을 가서 걸음을 멈추지 않음. 不輟은 그만두지 않음. 성현영은 輟을 ‘걸음을 멈춘다[止]’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12 厭觀之 : 그 나무를 싫도록 봄.
역주13 走及匠石 : 달려가 장석에게 미침. 제자가 장석을 따라가다가 장석이 계속 걸어가는 동안 나무를 구경하느라 뒤처졌기 때문에 달려갔다는 뜻.
역주14 自吾執斧斤以隨夫子 :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自는 ~이래로부터.
역주15 未嘗見材如此其美也 : 未嘗見은 본 적이 없다는 뜻.
역주16 先生不肯視 : 선생이 보려 하지 않음. 不肯視는 기꺼이 보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는 의미.
역주17 已矣 : 그만둬라. 입을 다물라[止]는 뜻(成玄英).
역주18 勿言之矣 : 그 나무에 대해 말하지 말라. 쓸데없이 말을 낭비하지 말라는 주의.
역주19 散木 : 쓸모없는 잡목. 郭象은 “쓸 만한 항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산목이라 했다[不在可用之數 故曰散木].”고 했고, 成玄英은 ‘不材之木’으로 풀이했는데, 유용성을 기준으로 분류할 때 뚜렷한 쓰임새가 없어서 분류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雜木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뒤의 ‘文木’과는 반대의 뜻이다.
역주20 以爲門戶則液樠 : 대문이나 방문을 만들면 나무 진액이 흘러 나옴. 門은 두 짝문. 戶는 외짝문.
역주21 無所可用 : 쓸 만한 데가 없음. 無所可用之處의 줄임.
역주22 匠石歸 : 장석이 돌아옴. 집으로 돌아왔다는 뜻.
역주23 櫟社見(현)夢 : 社의 상수리나무가 꿈속에 나타남.
역주24 女將惡乎比予哉 : 그대는 무엇에다 나를 비교하려 하는가. 女는 2인칭.
역주25 若將比予於文木邪 : 그대는 나를 文木에 비교하려 하는가. 文木의 文은 紋理를 뜻하므로 나무조직이 치밀하여 좋은 재목으로 쓰이는 나무(方勇‧陸永品)를 의미하지만, 뒤의 柤‧梨‧橘‧柚가 모두 재목으로 쓰이는 나무가 아니라 有實樹이기 때문에 앞의 散木과 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쓸모 있는 나무 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 若은 2인칭. 予는 일인칭.
역주26 柤(사)梨橘柚 :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 아가위나무는 앵두나무의 일종. 모두 쓸모 있는 有實樹이다.
역주27 果蓏之屬 : 과실과 열매. 果는 나무에 열린 것이고, 蓏는 땅에서 자라는 것(方勇‧陸永品)이다.
역주28 實熟則剝 : 과실이 익으면 〈사람들에게〉 잡아 뜯김. 剝은 과실이 사람들에 의해 따지는 것을 뜻한다.
역주29 大枝折 小枝泄(예) :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겨짐. 泄은 抴로 잡아당겨져서 찢겨진다는 뜻(兪樾).
역주30 以其能苦其生 :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괴롭힘. 자신이 지닌 유용성 때문에 도리어 귀한 생명이 손상된다는 뜻.
역주31 不終其天年而中道夭 : 天壽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요절함.
역주32 自掊擊於世俗 : 스스로 세속 사람들에게 타격을 받음. 掊는 打와 같은 뜻(成玄英).
역주33 物莫不若是 : 모든 사물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음. 成玄英은 “세속의 사람들이 모두 유용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해친다[世俗人物 皆以有用傷夭其生].”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34 予求無所可用久矣 : 나는 쓸 데가 없어지기를 추구해 온 지 오래되었음. 求는 추구한다는 뜻. 予는 일인칭.
역주35 幾死乃今得之 : 거의 죽을 뻔했다가 비로소 지금 그것을 얻음. 장석의 제자가 훌륭한 재목이라고 생각하여 싫도록 바라보았을 때는 베여 죽임을 당하는 줄 알았다가 장석의 확인을 통해 비로소 쓸모없는 나무로 인정받았다(成玄英)는 뜻. 韓元震은 “幾死乃今得之는 내가 쓸만한 것이 없게 되기를 바란 지 오래되었지만, 세상사람들이 반드시 내가 쓸모없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내가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할 뻔 했는데, 지금 그대를 만나서 내가 쓸모없음이 밝혀졌으니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쓸 만한 것이 없게됨을 이제 비로소 얻게 되어 나의 大用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幾死乃今得之 言予之求無所可用 久矣 而世人未必知予之無用 故予幾不免於死矣 乃今遇汝而明予之爲無所用 則予之久於求無所可用者 於今乃得之 而爲予之大用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6 爲予大用 : 나에게는 大用이 됨. 大用은 無用之用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 大用이라는 말이 보여 無用之用은 無用之大用으로도 흔히 일컬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 無用之用이나 無用之大用은 어디까지나 세속적 쓸모에 집착하는 세속의 迷妄을 깨우치는 데 그 主眼点이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山木〉편에서는 쓸모없음(不材) 때문에 天壽를 누리게 되는 큰나무의 이야기에서 一轉하여 잘 울지 못하기 때문에 즉 쓸모없음(不材) 때문에 먼저 죽게 되는 거위의 이야기가 보인다.
역주37 使予也而有用 : 가령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더라면. 使는 假使로 假令의 뜻. 也는 주격조사. 而는 《論語》 〈述而〉편의 ‘富而可求’의 而와 마찬가지로 若과 같은 뜻.
역주38 且得有此大也邪(야) : 그러고서도 이처럼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는가? 且는 그렇게 하고서도[況且]의 뜻. 邪는 의문사.
역주39 且也若與予也 皆物也 : 뿐만 아니라 그대와 나는 모두 사물임. 匠石이 자신보다 우월한 본질적인 근거가 없음을 들어 동등한 사물임을 나타낸 내용이다. 且也는 《莊子》에만 보이는 독특한 부사로 뿐만 아니라의 뜻. 뒤의 〈大宗師〉편을 비롯하여 수차례 나온다. 予也의 也는 주격조사. 物也의 也는 종결사.
역주40 奈何哉 其相物也 : 어찌하여 상대방을 事物로 대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주체로 여기고 상대를 객체로 삼아 상대의 有用, 無用을 멋대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
역주41 而幾死之散人 : 그대도 거의 죽어가는 쓸모없는 사람임. 而는 2인칭. 散人은 쓸모없는 사람.
역주42 又惡知散木 : 또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 수 있겠는가? 산목의 有用, 無用을 규정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뜻.
역주43 匠石覺(교)而診其夢 : 장석이 꿈에서 깨어나 그 꿈의 길흉을 점침. 成玄英은 診을 占친다[診占也]는 뜻으로 풀이했고 司馬彪는 占夢이라고 했다. 王念孫은 뒷구절에 꿈을 점치는 내용]이 없고 꿈에 대해 말하는 내용만 있다는 점을 들어, 診을 畛으로 보고 告의 뜻으로 풀이하여 장석이 깨어나서 그 꿈을 제자에게 일러준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하지만 診을 畛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 하더라도, 《禮記》 〈曲禮 下〉편의 ‘畛於鬼神’의 경우에서 보듯 畛은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라 귀신과의 대화를 뜻하는 글자일 뿐만 아니라, 꿈의 길흉을 점치면서 함께 있던 제자에게 꿈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에 굳이 이 견해를 따르지는 않았다.
역주44 趣取無用 : 뜻이 쓸모없음을 취함. 趣는 志趣. 곧 櫟社樹가 추구하는 가치. 趣를 빠를 ‘촉’으로 읽는 讀法은 취하지 않는다.
역주45 爲社何邪 : 社의 神木이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社에 심어진 신목이 된 것도 일종의 有用性이 아니냐는 반문. 爲社는 爲社之樹의 줄임. 邪는 의문사.
역주46 密若無言 : 쉿!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密은 조용히 하라는 뜻.
역주47 彼亦直寄焉 : 저 또한 단지 자신을 기탁한 것일 뿐임. 彼는 胡文英, 陳壽昌, 池田知久 등이 모두 상수리나무를 지칭한 것으로 보았고, 郭象과 成玄英은 社를 지칭한 것으로 보아 社가 와서 상수리나무 곁에 들어선 것으로 풀이하였다. 뒤의 ‘彼其所保’와 文勢로 볼 때는 전자가 타당하지만, 수령이 수천 년 된 고목이라면 社가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자라고 있었을 것이므로 후자의 해석을 전연 배제할 수는 없다.
역주48 以爲不知己者詬厲也 :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의 욕지거리 정도로 생각할 것임. 곧 제자가 따지는 말을 하찮게 여길 것이라는 뜻. 詬厲는 욕지거리와 비난. 司馬彪는 詬는 욕지거리[辱], 厲는 헐뜯음, 비난[病]으로 풀이했다.
역주49 不爲社者 且幾有翦乎 : 社의 神木이 되지 않았다한들 어찌 잘림이 있었겠는가. 大意는 같으면서도 郭象과 成玄英의 注解에서는 幾를 近의 뜻으로 보아 ‘거의’라고 보았기 때문에 문맥이 명확치 않았는데, 王念孫은 이 幾를 豈로 읽어 그 뜻을 “비롯 社의 神木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翦伐의 害를 당함이 있었겠는가[雖不爲社 亦豈有翦伐之害乎]”라고 풀이하여 문맥을 명확하게 하였다. 반대로 王孝魚, 方勇‧陸永品의 풀이에 따라 ‘만약 社의 신목이 되지 않았더라면 잘림이 있지 않았겠는가(아마도 잘림이 있었을 것이다)’로 읽는 독법도 유력하나 이때는 豈를 ‘아마도’의 뜻으로 읽어야 하고, 또 幾를 그대로 두어 ‘거의 …… 가까울 것이다’로 읽는다 하더라도 모두 현토는 ‘……아’가 아닌 ‘……인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林希逸 《口義》의 우리나라 현토본에서는 ‘不爲社者인들 且幾有翦乎아’로 토를 달고 있어 이것을 따르기로 하였다. 林希逸의 注에서는 “비록 社의 신목이 되지 않았다 한들 또한 어찌 사람에 의해 잘림이 있겠는가[縱不爲社 亦豈有人翦伐之]”라고 하였다.
역주50 彼其所保與衆異 : 저 상수리나무는 보존하고 있는 것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름. 상수리나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뜻. 所保는 所保之心으로 상수리나무가 마음 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 곧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의미한다.
역주51 以義譽之 不亦遠乎 : 세속의 도리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또한 멀지 않은가. 義는 인간 사회의 規範. 譽는 반드시 칭찬한다는 뜻보다는 평가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 상수리나무의 태도를 曰可曰否하는 것은 참다운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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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4장(1)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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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4장(2)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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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4장(3)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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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장(4)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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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4장(5) 242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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