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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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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說齊桓公한대 桓公 說之하야 而視全人호대 其脰肩肩이러라
聖人 有所遊하며 하며 하며 하나니
天鬻者
旣受食於天이어니이리오
有人之形이론 하고 無人之情이론 하나니라
眇乎小哉
謷乎大哉


인기지리무신闉跂支離無脤위영공衛靈公에게 유세遊說하자 영공이 기뻐하였는데 그 이후로 온전한 사람들을 보면 목이 가늘고 길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옹앙대영甕㼜對癭제환공齊桓公에게 유세하자 환공이 기뻐하였는데 그 이후로 온전한 사람을 보면 목이 가늘고 길어 이상하게 느껴겼다.
그 때문에 덕이 뛰어나면 외형 따위는 잊어버리는데 세상 사람들은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니 이것을 일러 정말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성인은 자유롭게 노닐어서 지식을 잉여물로 여기며, 사람을 구속하는 예의를 아교풀로 여기며, 세속의 덕을 기워 붙이는 것으로 여기며, 기술을 장삿속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은 억지로 도모하지 않으니 어디에 지식을 쓰겠으며, 깎아 장식하지 않으니 어디에 아교풀을 쓰겠으며, 본래의 자기[道]를 잃어버리지 않으니 어디에 세간의 덕을 쓰겠으며, 팔지 않으니 어디에 장삿속을 쓰겠는가.
이 네 가지는 자연이 길러주는 것이니, 자연이 길러준다는 것은 하늘이 먹여주는 것이다.
이미 자연에서 먹을 것을 받았으니 또 어디에다 인위적인 것을 쓰겠는가.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희노애락의 감정은 없다.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무리지어 살고, 희노애락의 감정이 없기 때문에 시비의 분별이 몸에 침입하지 못한다.
아득히 작은 존재로구나!
인간에게 속한 것이여.
놀랄 만큼 크구나!
홀로 자연의 덕을 이룸이여.


역주
역주1 闉跂支離無脤(인기지리무순) : 인명. 절름발이에다 곱사등이에다 언청이인 가공의 인물. 宣穎이 “여러 가지 추한 형상을 총괄해서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總其諸般醜形以爲之號].”라고 풀이한 것처럼 전체적인 신체 장애를 이름처럼 부른 것이다. 闉은 구부러지다는 뜻(司馬彪), 跂는 肢의 假借(馬敍倫)로 다리의 뜻(林雲銘), 따라서 崔譔이 절름발이[偃者]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支離는 四肢가 支離滅裂하다는 뜻으로 그 형용은 〈人間世〉편의 본문에 자세하다. 羅勉道는 ‘육체가 온전하지 않은 모습[形不全之貌]’이라고 풀이했고, 崔譔과 임희일은 곱추[傴]라고 했다. 脤은 脣과 같다(崔譔). 따라서 無脤은 林希逸의 설명처럼 ‘입술이 없는 것[無脣也]’, 곧 언청이를 의미한다.
역주2 說(세)衛靈公 : 위령공에게 유세함. 說는 유세하다, 설득하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道에 관하여 말하다는 뜻.
역주3 靈公說(열)之 : 영공이 기뻐함. 영공이 闉跂支離無脤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는 뜻.
역주4 全人 : 온전한 사람. 곧 신체장애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
역주5 其脰(두)肩肩 : 목이 가늘고 김. 脰는 목. 陸德明, 羅勉道 모두 목[頸]으로 풀이했다. 李頤는 肩肩을 ‘야위고 작은 모양[羸小貌]’이라 하였지만, 羅勉道는 《周禮》 〈梓人〉의 鄭玄注를 引用하여 ‘肩과 顅은 같다[蓋肩與顅同]’고 풀이하여 ‘가늘고 긴 모양[細長之貌]’이라고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른다. 宣穎, 李楨, 朱桂曜, 馬叙倫 등도 같은 견해. 福永光司는 이 闉跂支離無脤을 아래에 나오는 甕㼜大癭과 함께 지상최대의 그로테스크라고 하였다.
역주6 甕㼜大癭(영) : 인명. 항아리만한 큰 혹이 붙어 있는 가공의 인물. 甕과 㼜은 모두 항아리[瓦器]를 뜻한다(陳壽昌). 崔譔과 李頤는 ‘큰 혹의 모양[大癭貌]’이라고 풀이했다. 癭은 혹. 林雲銘은 “목 아래 혹이 생겼는데 크기가 마치 항아리 같다[項下生癭 大如甕盎也].”고 풀이했다.
역주7 德有所長 而形有所忘 : 덕이 뛰어나면 외형 따위는 잊어버림. 내면의 덕이 훌륭하면 외형을 잊게 된다는 뜻. 而는 則과 같다.
역주8 人不忘其所忘 而忘其所不忘 : 세상 사람들은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림. 잊어버려야 할 外形에 얽매어 그것을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내면의 덕은 잊어버린다는 뜻. 其所忘은 마땅히 잊어버려야 할 것, 곧 外形이고, 其所不忘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곧 내면의 德이다. 〈人間世〉편에 “그 몸을 지리하게 한 사람도 충분히 자기 몸을 잘 기르고 천수를 마치는데, 또 하물며 그 덕을 지리하게 한 사람이겠는가[夫支離其形者 猶足以養其身 終其天年 又況支離其德者乎].”라는 구절이 있어 장자가 德을 부정적인 의미로 파악한 경우가 있지만 그 구절은 이 구절과는 맥락이 다르다. 〈人間世〉편의 德은 莊子가 말하는 內面의 德이 아니라, 儒家的 의미의 德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德에 대한 理解의 혼란 때문에 이 구절의 주석은 異說이 분분하다.
역주9 此謂誠忘 : 이것을 일러 정말 잊어버렸다고 함. 救濟不能의 자기상실에 빠졌음을 의미한다(福永光司). 따라서 여기서는 誠忘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곳의 誠忘은 〈大宗師〉편의 ‘坐忘’과 같은 의미로 취할 수는 없다. 成玄英이 “이것이 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斯德不形之義也].”라 하여 誠忘을 肯定的으로 파악한 이래로 呂惠卿, 陳景元, 陸西星, 赤塚忠이 이것을 따르고 있으나 적당치 않다(池田知久).
역주10 知爲孼(얼) : 지식을 재앙으로 여김. 孼은 원래 嫡子가 아닌 庶子로 재앙을 의미하지만, 정확하게는 부산물, 또는 잉여물 정도의 의미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 萌蘖에서 萌은 싹이고, 蘖은 싹 중에서 곁으로 나온 것[萌芽也 蘖芽之旁出者也]을 의미(朱熹, 《孟子集註》)하기 때문이다. 洪頤煊 또한 “孼은 마땅히 萌蘖의 蘖로 읽어야 한다[孼當讀如萌蘖之蘖].”고 지적했다.
역주11 約爲膠 : 사람을 구속하는 예의를 아교풀로 여김. 約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禮儀. 林希逸은 “約은 예로써 스스로 검속하는 것이다[約以禮自檢束].”라고 풀이했다. 膠는 아교풀로 여기서는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얽매는 인위적인 강제를 의미한다. 宣穎은 “사람을 얽매고 구속하는 예는 바로 아교칠과 같으니 자연스럽게 부합되는 것이 아니다[約束之禮 乃膠漆也 非自然而合者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2 德爲接 : 세속의 덕을 기워 붙이는 것으로 여김. 여기서의 德은 세속적인 의미의 德으로 世間의 道德, 常識的인 道德價値 등을 가리킨다. 接은 成玄英이 “덕을 수립하여 蒼生과 접한다[樹德以蒼生].”고 풀이한 이래, 다른 사람과 接見한다는 뜻으로 보고 세속적인 덕을 교제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宣穎이 “바로 接續이니 마치 중간에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 것과 같다[乃接續也 如中斷而復續者].”고 풀이한 것을 따라 억지로 기워 붙이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야 위의 孼, 膠와 같이 부정적인 맥락으로 일관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庚桑楚〉편의 ‘知者 接也’도 같은 의미이다. 한편 池田知久는 《說文解字》에서 “椄은 나무를 잇는 것이다[椄續木也].”라는 풀이를 따라 接을 椄의 假借로 보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3 工爲商 : 기술을 장삿속이라고 생각함. 司馬彪는 “기술이 교묘해져서 장사가 일어난다[工巧而商賈起].”고 풀이했다. 福永光司는 “聖人은 形骸를 잊은 萬物齊同의 세계에 자기의 自由를 逍遙한다. 그리하여 모든 偏見의 근원인 知的分別을 生命의 剩餘物(孼)로 여기고 인간의 건강한 생명을 속박하는 世俗的規範을 作爲的强制(膠)로 여기고 상식적 도덕가치를 妥協的虛飾(接)으로 여기고 모든 技藝 技巧를 자기를 팔아먹는 수단[商]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역주14 不謀惡用知 : 억지로 도모하지 않으니 어디에 지식을 쓰겠는가. 〈庚桑楚〉편의 ‘至知不謀’, ‘知者謨也’ 등도 같은 맥락이다(王叔岷, 劉武). 不謀는 결국 無思, 無爲를 의미한다.
역주15 不斲惡用膠 : 깎아 장식하지 않으니 어디에 아교풀을 쓰겠는가. 斲은 깎거나 쪼개서 장식하는 것. 쪼개거나 깎아서 분열시키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에 억지로 갖다 붙이는 아교풀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老子》 28장의 ‘大制不割’과 유사한 맥락이다.
역주16 無喪惡用德 : 본래의 자기[道]를 잃어버리지 않으니 어디에 세간의 덕을 쓰겠는가. 無喪은 본래의 자기, 즉 도를 잃지 않는다는 뜻. 德은 세간의 道德. 〈秋水〉편의 ‘至德不得’과 유사한 의미이다(劉武).
역주17 不貨惡用商 : 팔지 않으니 어디에 장삿속을 쓰겠는가. 貨는 《孟子》 〈公孫丑 下〉의 ‘無處而餽之 是貨之也’의 貨와 같은 의미로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 成玄英은 不貨를 《노자》 3장의 ‘不貴難得之貨’와 같이 보고 “구하기 어려운 귀한 재물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 힘들게 장사에 종사하지 않는다[不貴難得之貨 無勞商賈].”고 풀이했지만, 商에 대한 해석이 부적절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 여기서는 林希逸이 “不貨란 팔리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니, 예능 따위를 쓰지 않는 것이다[不貨者 不求售也 則不用藝能矣].”라고 풀이한 것을 따랐다.
역주18 四者天鬻(육)也 : 네 가지는 자연이 길러주는 것임. 四者는 不謀, 不斲, 無喪, 不貨의 네 가지. 鬻은 ‘육’으로 읽으며 기른다는 뜻(陸德明).
역주19 天食(사) : 하늘이 먹여 줌. 食는 ‘사’로 읽으며 먹여 준다는 뜻.
역주20 惡用人 : 어디에다 인위적인 것을 쓰겠는가. 人은 인위적인 것. 곧 앞의 知, 膠, 德, 商의 네 가지를 지칭한다.
역주21 有人之形 無人之情 :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희노애락의 감정은 없음. 희노애락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 宣穎은 “모습은 인간이지만 知, 膠, 德, 商의 네 가지를 사용하지 않는다[貌則人也 四者不用].”고 풀이했다.
역주22 羣於人 : 사람들 속에서 무리지어 삶. 羣은 무리지어 산다는 뜻.
역주23 是非不得於身 : 시비의 분별이 몸에 침입하지 못함. 희노애락의 감정에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그 자신에게 옳으니 그르니 하는 분별이나 감정적인 판단이 없게 된다는 뜻. 是非는 是非의 分別 또는 是非의 分裂.
역주24 眇(묘)乎小哉 所以屬於人也 : 아득히 작은 존재로구나! 인간에게 속한 것이여. 眇는 본래 애꾸눈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朱桂曜의 풀이를 따라 《方言》에서 ‘眇는 작음이다[眇 小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른다. 본문의 내용을 보아도 眇가 작은 모양을 표시한 것임은 분명하다. 馬叙倫은 秒의 假借字로 보았다. 所以屬於人은 인간에게 속한 것으로 形骸的 存在를 의미한다.
역주25 謷乎大哉 獨成其天 : 놀랄 만큼 크구나! 홀로 자연의 덕을 이룸이여. 王念孫은 謷를 크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여기서 天은 자연의 도, 또는 본래의 德, 우주적 존재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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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5장(1) 709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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