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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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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聖人 하며 하며 하며 하나니
吾子 以爲奚若
長梧子曰
帝之所聽熒也리오
且女로다
하며 하야 이오 하야 하나니라
이어늘하나니라
惡乎知惡死之非者邪리오
我勝若이오 不吾勝인댄 我果是也
使同乎我者 正之인댄 旣同乎我矣어니 惡能正之리오
使同乎我與若者 正之인댄 旣同乎我與若矣어니 惡能正之리오
何謂和之以天倪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 亦無辯이니라
이니라


구작자瞿鵲子장오자長梧子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우리 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인은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지 아니하며, 이익을 추구하지 아니하며, 해로움을 피하지 아니하며, 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를 〈억지로〉 따르지 않으니,
말이 없지만 말이 있고 말이 있지만 말함이 없어서 세속 밖에 노닌다.’고 말하는데,
선생님은 이를 맹랑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야말로 영묘靈妙한 도를 실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오자長梧子가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경지는 황제黃帝도 듣고 어리둥절할 말인데 공구孔丘 같은 사람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또 그대는 너무 지나치게 속단하고 있다.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요구하며, 탄환彈丸을 보고 새구이를 요구하는 격이다.
내가 시험삼아 그대를 위하여 마음대로 말해 보겠으니 그대도 마음대로 듣기 바란다.
어떠한가.
〈성인은〉 해와 달을 나란히 곁에 놓아두며 우주를 허리에 끼고서 만물과 일체가 되기를 추구하고, 혼돈한 에 머물러 노예와 같은 천한 사람도 〈귀인과 똑같이〉 존중한다.”
“보통사람들은 부지런히 힘쓰는데 성인은 어리석고 둔해서 만년의 세월을 합쳐서 하나로 하고 순수한 세계를 이룩한다.
만물이 모두 그러한데 이로써 서로 감싼다.
내 어찌 (삶)을 좋아하는 것이 미혹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내 어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마치 젊어서 고향을 잃고 고향으로 되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겠는가.
여희麗姬땅 국경 관문지기의 딸이었는데, 나라가 처음 그 여자를 잡아왔을 때에는 눈물로 옷섶을 적시며 울다가, 급기야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함께 으리으리한 침대를 같이 쓰고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먹게 되자 처음에 운 것을 뉘우쳤다.
내 어찌 죽은 사람이 처음에 살기를 바란 것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알 수 있겠는가.”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이 아침이 되면 슬피 울고, 반대로 꿈속에서 슬피 운 사람이 아침이 되면 신나게 사냥하러 나간다.
막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임을 알지 못해서 꿈속에서 꿈속의 꿈을 점치다가 꿈에서 깨어난 뒤에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큰 깨달음이 있어야 그런 뒤에 이것이 큰 꿈이라는 사실을 알 터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해서 똑똑한 체하면서 스스로 지혜롭다 여겨 ‘임금이시여’ 라고 하고 ‘하인들아’ 하고 말을 하니 참으로 고루하다.
공구孔丘와 그대도 모두 꿈이고 내가 그대에게 꿈꾼다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이다.
이 말은 그 명칭을 수수께끼라 한다.
만 세대 뒤에 그 해답을 아는 큰 성인을 한 번 만난다 하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만나는 것과 같〈은 큰 행복이〉다.”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했는데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대는 참으로 옳고 나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참으로 옳고 그대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 옳고 또 다른 한쪽이 그르단 말인가?
아니면 양쪽이 모두 옳거나 양쪽이 모두 그르단 말인가?”
“나와 그대가 서로 알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어둠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니 내가 누구로 하여금 바로잡게 할 수 있겠는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그대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같으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와 그대,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도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니,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 이 부분이 임희일林希逸본에는 ‘何謂和之以天倪 曰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 亦無辯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혜경呂惠卿, 선영宣穎 등의 주장에 근거하여 지전지구池田知久적총충赤塚忠, 진고응陳鼓應 등은 모두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를 ‘何謂和之以天倪 曰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 亦無辯’의 앞에 두었다. 본문의 해석은 여혜경呂惠卿, 지전지구池田知久 등의 의견을 따랐다.
“시비를 따지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자연의 (天倪)로 조화하며, 끝없는 변화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이, 이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이다.”
(天倪)로 조화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세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절대적인〉 옳음이 과연 정말 옳다면 이 절대적인 옳음이 세속 세계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하다.
〈만물제동에 입각하여〉 그렇다고 한 것이 과연 정말 그런 것이라면 그렇다고 한 것이 세속 세계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이를 잊어버리고 마음 속의 편견을 잊어버려서 경계 없는 경지에서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움직인다.
그 때문에 경계 없는 세계에 맡긴다.”


역주
역주1 瞿鵲子 : 인명. 까치처럼 경망하고 깜짝깜짝 놀라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寓化‧創作한 가공의 인물. 兪樾은 필경 공자의 제자였던 七十子의 後人일 것이라 했다.
역주2 長梧子 : 인명. 큰 오동나무처럼 道를 깨달은 인물을 우화‧창작한 가공의 인물. 李頤는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호칭으로 삼았다고 했다. 崔譔은 長梧子의 이름이 丘라 했고, 簡文帝는 국경 관문지기[封人]라 했다. 兪樾은 뒤의 ‘丘也與汝 皆夢也 予謂汝夢 亦夢也’에서 丘와 予(長梧子 자신)를 각각 달리 말한 것으로 보아 장오자의 이름을 丘라 한 崔譔의 주장이 틀린 것이며 丘는 孔丘, 곧 孔子를 빗댄 것이라 했다.
역주3 吾聞諸夫子 : 내가 선생님에게서 그것을 들음. 여기의 夫子는 《釋文》에서 向秀가 ‘瞿鵲의 스승[瞿鵲之師]’이라 했는데, 공자를 빗댄 것이라는 兪樾의 주장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朴世堂은 “상하의 夫子는 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위의 부자는 자기 스승을 말하고 아래의 부자는 공자를 말한 것이다[上下夫子疑非一人 上夫子謂其師 下夫子謂孔子].”라고 하여, 여기의 夫子와 아래의 夫子以爲孟浪之言의 夫子를 다른 사람으로 보고 여기의 부자는 구작의 스승이고 아래의 부자는 공자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양쪽의 夫子를 모두 瞿鵲子의 스승 孔子로 보았다. 따라서 ‘聖人不從事於務’ 이하의 말은 공자가 어떤 사람의 말을 끌어댄 말.
역주4 不從事於務 : 일에 종사하지 아니함. 곧 聖人은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뜻. 곧 無爲를 말하는 것임.
역주5 不就利 不違害 : 이익을 추구하지 아니하며, 해로움을 피하지 아니함. 위의 ‘不從事於務’와 마찬가지로 역시 세속적인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
역주6 不喜求 : 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함. 곧 함부로 도를 追求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 求는 妄求(方勇‧陸永品).
역주7 不緣道 : 道를 따르지 않음. 道를 얻기 위해 억지로 붙잡고 매달리지 않는다는 뜻. 蔣錫昌은 “道는 마땅히 無心으로 터득해야지 억지로 매달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道者 當以無心合之 非攀援可得].”라고 하였다.
역주8 無謂有謂 有謂無謂 : 말이 없지만 말이 있고 말이 있지만 말함이 없음. 말 한 마디 없이 침묵을 지키지만, 그러면서도 그 속에 무엇인가 말[不言之敎]이 있으며 말을 해도 언어에 얽매이는 일이 없음. 곧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의 목적(의미의 전달)이 이루어지고 말을 해도 언어에 얽매여 道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는 뜻. 林希逸은 “‘無謂有謂는 말하지 않는 말이고 ‘有謂無謂’는 말을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다[無謂有謂 不言之言也 有謂無謂 言而不言也].”라고 풀이했고, 屈復은 이 구절을 ‘無言而有言’으로 보고 “비록 말이 있지만 말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雖有言而不異無言也]이며, 外篇(〈寓言〉편)에서 ‘言無言 終身言 未嘗言 終身不言 未嘗不言’이라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다.”고 했다.
역주9 遊乎塵垢之外 : 세속 밖의 세계에서 노닒. 塵垢之外는 위의 ‘四海之外’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이해를 초월하여 절대의 세계에 노닒을 비유.
역주10 夫子以爲孟浪之言 : 선생님은 이를 孟浪한 말이라고 함. 여기의 夫子는 瞿鵲의 스승, 곧 孔子를 지칭한다. 孟浪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며(朱得之), 孟浪之言은 荒唐無稽한 말을 뜻한다(釋德淸). 허튼 소리.
역주11 我以爲妙道之行也 : 나는 이 말을 妙道를 실천한 것이라고 생각함. 妙道는 神妙한 道.
역주12 皇(黃)帝之所聽熒也 : 黃帝도 듣고 어리둥절함. 곧 황제도 듣고 의심스러워한다는 뜻. 皇은 黃이어야 한다. 釋德淸은 “황제도 들으면 의심하여 이해하지 못한다[黃帝聽之 亦熒惑而不悟].”고 풀이했다. 熒은 疑惑과 같은 뜻이다. 司馬彪와 向秀는 모두 聽熒을 疑惑으로 풀이했다.
역주13 : 黃
역주14 丘也何足以知之 : 孔丘 같은 사람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곧 黃帝 같은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보다 수준이 낮은 孔子 같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 여기의 丘를 長梧子의 이름이라 한 주석(崔譔, 成玄英 등)도 있지만 취하지 않았다.
역주15 太早計 : 너무 일찍 판단한다는 뜻. 곧 瞿鵲子가 공자를 통해 들은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곧바로 ‘妙道之行’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두고 속단이라고 질책하는 표현이다. 道는 쉽게 설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뜻. 太는 大로 된 판본도 있으나 大의 경우에도 역시 음은 ‘태’.
역주16 見卵而求時夜 :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요구함. 時夜는 司夜로 밤을 담당한다는 뜻으로 닭[司夜之雞]을 지칭한다(崔譔).
역주17 見彈而求鴞(효)炙(자) : 탄환을 보고 새구이를 요구함. 鴞炙는 鴞鳥의 고기를 구운 것. 위의 ‘見卵而求時夜’와 함께 瞿鵲子의 속단을 비유함.
역주18 嘗爲女妄言之 : 시험삼아 그대를 위하여 마음대로 말해 봄. 道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말해 보겠다고 표현한 것이다.
역주19 女以妄聽之 : 그대도 마음대로 듣기 바란다. 말하는 사람이 道를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완전한 설명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
역주20 : 어떠한가. 본문 번역에서는 따르지 않았지만 王敔는 何不로 보았다. 이 주장을 따르면 이 문장 전체를 ‘어찌하여 해와 달을 곁에 두고~서로 존중하지 않는가’로 번역해야 한다.
역주21 旁日月 : 해와 달을 곁에 둠. 司馬彪는 旁을 依로 보아서 해와 달에 의지하여 움직인다는 뜻으로 보았지만 여기서의 旁은 바로 뒤의 挾과 비슷한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따르지 않았다.
역주22 挾宇宙 : 우주를 옆에 낌. 林希逸은 “우주를 자신의 품 속에 둔다[宇宙在其懷內也].”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23 爲其脗合 : 일체가 되기를 추구함. 곧 만물과 일체가 됨을 뜻한다. 脗合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꼭 맞는 것[兩脣之相合]’을 형용한 표현이다(向秀). 成玄英은 ‘분별이 없는 모양[無分別之貌]’이라 했다.
역주24 置其滑涽 : 혼돈한 道에 머묾. 곧 분명하게 알 수 없는 혼돈의 道에 자신을 머물게 한다는 뜻. 여기서 滑涽은 앞의 ‘滑疑之耀’와 같이 분명하게 알기 어려운 도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滑涽을 앞의 ‘樊然殽亂’과 같은 뜻으로 보고 세속의 어지러운 일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돌아보지 않는다고 풀이한 주석도 있다(郭象, 成玄英 등).
역주25 以隷相尊 : 노예같이 천한 사람도 존중한다. 成玄英은 “貴賤을 동일시한다[以隷相尊 一於貴賤也].”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26 衆人役役 : 보통사람들은 부지런히 힘씀. 세속적인 가치를 얻기 위하여 쉬지 않고 수고롭게 일한다는 뜻. 成玄英은 ‘役役은 빨리 움직이는 모양[役役 馳動之容也]’이라고 했다.
역주27 聖人愚芚(둔) : 성인은 우둔함. 芚은 어리석은 모양. 鈍과 같은 뜻이다. 郭象은 愚芚을 ‘無知하여 정직하게 나아가는 모양[無知而直往之貌]’이라 했고 成玄英은 ‘무지한 모양[無知之貌]’이라 했다.
역주28 參萬歲而一成純 : 만년의 세월을 합쳐서 하나로 하고 순수한 세계를 이룩함. 參은 參糅로 뒤섞는다는 뜻. 곧 만년에 이르는 수많은 변화와 차별을 통일하여 純粹不雜의 세계, 萬物齊同의 세계를 이룩한다는 뜻이다. 異說이 있으나 여기서는 우선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29 萬物盡然 : 만물이 다 그러함. 곽상은 “모든 사물이 그렇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無物不然].”라고 했다.
역주30 以是相蘊 : 이로써 서로 감쌈. 곧 萬物齊同의 세계에서는 시비나 이해를 따져 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고 공격하지 않는다는 뜻. 朴世堂은 “이 몇 가지로 자기 본성을 가린다[以此數者 蘊蔽其本性也].”고 풀이했다.
역주31 予惡乎知說(열)生之非惑邪 : 사람들이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태도가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님을 지적하는 내용.
역주32 弱喪而不知歸 : 젊어서 고향을 잃고 고향으로 되돌아갈 줄 모름. 죽음은 삶의 고향과 같다는 비유를 통해 죽음을 싫어하는 태도는 마치 고향을 떠나서 고향으로 되돌아갈 줄 모르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지적하고 있는 내용. 郭象은 “어렸을 때 고향을 잃어버린 것을 弱喪이라 한다[少而失其故居 名爲弱喪].”고 했다.
역주33 麗(리)之姬 : 麗의 여자. 곧 앞의 麗姬. 之는 어조사. 인명에 之가 어조사로 쓰이는 용례는 《孟子》 〈離婁 下〉의 ‘庾公之斯’와 ‘尹公之他’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주34 艾封人之子也 : 艾땅 국경 관문지기의 딸. 艾는 지명. 封人은 ‘국경을 담당하는 관리[掌封疆之官] (朱熹 《論語集註》 〈八佾〉편). 子는 딸자식. 《論語》 〈公冶長〉의 ‘以其子妻之’, ‘以其兄之子妻之’ 등에서 같은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역주35 晉國之始得之也 : 晉나라가 처음 붙잡아 왔을 때. 《國語》 〈晉語〉와 《禮記》 〈檀弓 上〉의 기록에 의하면 晉 獻公이 驪戎國을 공격하자 驪戎國이 驪姬(麗姬)를 바쳤다고 한다.
역주36 涕泣沾襟 : 눈물을 흘려 옷섶을 적심. 涕泣은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뜻이고, 沾襟은 옷섶을 적신다는 뜻.
역주37 : ~에 미침. 뒤의 ‘食芻豢’까지 걸린다.
역주38 至於王所 與王同筐牀 :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침상을 함께함. 晉 獻公은 麗姬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다(《禮記》 〈檀弓 上〉). 筐牀은 安牀.
역주39 悔其泣也 : 처음에 운 것을 뉘우침. 곧 처음에 싫어했던 것을 나중에는 도리어 좋아하게 된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 것이다.
역주40 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 : 내 어찌 죽은 사람이 처음에 살기를 바란 것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알 수 있겠는가. 위의 麗姬가 처음에는 싫어했다가 나중에 그것을 후회한 것처럼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살기를 바랬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뜻. 蘄는 바란다는 뜻.
역주41 夢飮酒者 旦而哭泣 : 꿈속에서 술을 마셨던 사람이 아침이 되면 슬피 욺. 곧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진탕 노닌 자가 아침이 되면 슬픈 현실에 부딪쳐 곡하며 운다는 뜻. 꿈속의 즐거움이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허망함을 사례로 들어 인생의 즐거움이 무상함을 비유함.
역주42 夢哭泣者 旦而田獵 : 꿈속에서 슬피 운 사람이 아침이 되면 신나게 사냥함. 꿈속의 슬픔이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님을 사례로 들어 삶의 즐거움과 슬픔이 실재가 아님을 비유.
역주43 方其夢也 不知其夢也 : 꿈 속에서는 꿈을 自覺하지 못한다는 뜻.
역주44 夢之中 又占其夢焉 : 꿈속에서 꿈속의 꿈을 점침. 꿈을 꿀 때는 꿈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꿈속의 꿈을 점쳐서 길흉을 예측하는 부질없는 짓을 한다는 뜻.
역주45 覺(교)而後 知其夢也 : 꿈에서 깨어난 뒤에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됨.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꿈임을 알게 된다는 뜻. 覺는 꿈을 깬다는 뜻으로 音 교.
역주46 且有大覺(각)而後 知此其大夢也 : 큰 깨달음이 있어야 그런 뒤에 이것이 큰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 지금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또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치려면 大覺이 있어야 한다는 뜻. 현실의 인생을 한바탕 큰 꿈에 비유한 것.
역주47 愚者自以爲覺(교) :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함. 현실이 한바탕 꿈처럼 허망한 것임을 알지 못함을 비유.
역주48 竊竊然知之 : 똑똑한 체하면서 스스로 지혜롭다 여김. 司馬彪는 “竊竊은 察察과 같다[竊竊 猶察察].”고 했다. ‘察察’은 세밀하게 따지는 모양으로 똑똑한 체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역주49 君乎牧乎 : ‘임금이시여’ 하고 ‘하인들아’ 하고 말함. 君과 牧은 각각 貴하고 賤한 사람(林希逸)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임금이시여’ 하고 자신이 천시하는 사람에게는 ‘하인들아’ 하고 거만을 떤다는 의미. 愛憎好惡의 偏見으로 차별의식을 갖는다는 뜻.
역주50 丘也與女 皆夢也 : 지금의 현실도 大覺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역주51 予謂女夢 亦夢也 : 내가 그대에게 꿈꾼다고 말하는 것 역시 꿈임.
역주52 是其言也 其名爲弔(적)詭 : 이 말은 그 명칭을 수수께끼라 한다. 弔詭는 지극히 이상한 말, 곧 보통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말이라는 뜻. 章炳麟은 弔詭는 〈天下〉편의 ‘諔詭’와 같다고 했고, 陸德明은 《釋文》에서 “弔는 讀音이 적(的)이고 ‘지극하다’[至]고 풀이했다.
역주53 萬世之後 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 만 세대 뒤에 그 해답을 아는 큰 성인을 한 번 만난다 하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것과 같음. 곧 30만 년 뒤에 이 말을 이해할 줄 아는 성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만난 것처럼 행운이라는 의미. 결국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만 세대에 한 명이 나오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萬世는 30만 년. “부모와 자식이 이어가는 것이 一世이며 통상 30년을 一世라 한다[父子相繼爲一世 三十年亦爲一世].” 《孟子集註》 〈離婁 下〉
역주54 旣使我與若辯矣 :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했다면. 使는 가령의 뜻.
역주55 若勝我 我不若勝 :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함. 若은 2인칭.
역주56 若果是也 我果非也邪 : 그대는 참으로 옳고 나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果는 참으로, 정말.
역주57 而果非也邪 : 그대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而는 2인칭.
역주58 其或是也 其或非也邪 : 어느 한쪽이 옳고 또 다른 한쪽이 그르단 말인가. 곧 두 사람이 논쟁할 때 한 사람이 옳으면 또 다른 사람은 반드시 그르다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정당한 것인지를 의심하는 내용이다.
역주59 其俱是也 其俱非也邪 : 양쪽이 모두 옳거나 양쪽이 모두 그르단 말인가. 두 사람이 논쟁할 때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확정할 수 없다면 논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두 사람 모두 옳거나 두 사람 모두 그르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함으로써 시비의 판단이 상대적인 것임을 밝힌 내용.
역주60 我與若 不能相知也 : 나와 그대가 서로 알 수 없음. 논쟁의 당사자가 시비를 판단하지 못한다는 뜻.
역주61 人固受其黮闇(탐암) :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어둠 속에 빠짐. 논쟁의 결과를 기다리는 제3자는 더더욱 시비를 알 수 없게 된다는 뜻. 人은 他人을 지칭한다. 郭象과 林希逸은 모두 人을 논쟁의 당사자인 나와 그대라고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方勇‧陸永品). 王先謙은 “곁에 있는 사람도 그 때문에 분명히 알지 못하게 된다[旁人亦因之不明].”고 풀이했다. 黮闇은 분명하지 못한 모양(李頤).
역주62 吾誰使正之 : 내가 누구로 하여금 바로잡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에게 시비를 판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뜻. 결국 시비를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저와 나 두 사람이 각각 편견을 가지고 모두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서로 알지 못한다[彼我二人 各執偏見 咸謂自是 故不能相知].”고 풀이했다.
역주63 使同乎若者正之 :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바로잡게 한다면. 同乎若者는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
역주64 旣與若同矣 惡能正之 : 이미 그 사람은 그대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상대와 같은 주관적 편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정하게 판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郭象은 “상대와 의견이 같기 때문에 상대의 의견이 옳다한 것일 뿐이므로 믿을 수 없다[同故是之 未足信也].”고 풀이했다.
역주65 異乎我與若者 :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 곧 나와도 의견이 다르고 그대와도 의견이 다른 사람.
역주66 異乎我與若矣 惡能正之 :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곧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그르다고 할 것이므로 그 또한 참으로 그르다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다(郭象). 成玄英은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시비의 분란을 일으킬 뿐이다[旣異我汝 故別起是非].”라고 풀이했다.
역주67 我與若與人 俱不能相知也 : 나와 그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모두 서로 알 수 없음. 결국 다른 사람에게 정확한 판정을 부탁하더라도 옳은 판정을 내릴 수 없다는 뜻.
역주68 待彼也邪 :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郭象은 “각자가 옳다고 여길 뿐이므로 다른 사람을 기다려도 이 논쟁을 판정할 수 없다[各自正耳 待彼不足以正此].”는 뜻으로 풀이했다. 成玄英은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일어날 뿐이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若別待一人 亦與前何異 待彼也耶 言其不待之也].”라고 풀이했다. 彼를 다음 문장의 ‘天倪’로 보고 ‘天倪를 기다려야 할 것’, 곧 자연의 道에 맡겨야 할 것으로 풀이한 주석도 있지만 취하지 않았다.
역주69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 시비를 따지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음. 化聲은 시비를 따지는 것, 곧 논쟁을 의미한다. 변화하기 쉬운 是非의 소리라는 뜻도 된다. 郭象은 “시비를 따지는 것이 化聲이다[是非之辯 爲化聲].”라고 했다.
역주70 和之以天倪(예) : 天倪(자연의 道)로 조화함. 天倪는 자연의 道를 뜻하며 道에 의한 구분, 곧 절대적 규정을 의미한다. 郭象은 “天倪란 自然의 分이다[天倪者 自然之分也].”라고 했다. 비슷한 구절이 〈寓言〉편에도 ‘和以天倪 因以曼衍 所以窮年……是謂天均 天均者天倪也’라고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天倪는 앞에 나왔던 天鈞과 같은 뜻이다.
역주71 因之以曼衍 : 변화에 자기 자신을 맡김. 曼衍은 變化와 같고 因은 맡긴다는 뜻이다(成玄英). 司馬彪는 曼衍을 無極으로 풀이했다.
역주72 所以窮年也 :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임. 窮은 다한다[盡]는 뜻(成玄英). 年은 天年, 곧 天壽와 같은 뜻.
역주73 是不是 然不然 : 是와 不是, 然과 不然으로 끊어서 보는 견해도 있고, 是가 곧 不是이고 然이 곧 不然이라고 보는 讀法도 있지만, 여기서는 〈天地〉편과 〈秋水〉편의 ‘可不可 然不然’에 근거하여 是不是에서 앞의 是와, 然不然에서 앞의 然을 술어(동사)로 보고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세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74 是若果是也 : 옳음이 과연 정말 옳다면.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옳다고 여기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상대적인 시비를 넘어선 절대적인 是를 가정하는 표현.
역주75 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 이 절대적인 옳음이 세속 세계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함. 無辯은 따질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는 뜻.
역주76 忘年忘義 : 나이를 잊어버리고 마음 속의 편견을 잊어버림. 死生과 是非를 넘어서는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곽상은 “是非와 死生을 통틀어 한가지로 여긴다[是非死生蕩而爲一].”고 풀이했다. 義는 시비를 가리는 편견(成玄英).
역주77 振於無竟 : 경계 없는 경지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임. 振은 逍遙와 같은 뜻(林希逸). 崔譔본에는 竟이 境으로 되어 있다. 《釋文》
역주78 寓諸無竟 : 경계 없는 세계에 자신을 맡김. 바로 이것이 天倪로서 調和를 이루는 것이다. 朴世堂은 “무경은 바로 이른바 용이다[無竟 卽所謂庸也].”고 풀이하여, 앞의 爲是不用而寓諸庸의 寓諸庸과 여기의 寓諸無竟을 같은 뜻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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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4장(1)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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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4장(2)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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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4장(3) 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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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장(4)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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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4장(5)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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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4장(6)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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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4장(7) 372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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