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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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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대(하나니) 物有餘而形不養者 有之矣니라
悲夫
棄世則無累하고 無累則하고 正平則이니 니라
리오마는 棄事則形不勞하며 하나니 夫形全精復이면 與天으로 爲一하리니
天地者 萬物之父母也


생명生命실정實情에 통달한 사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삶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고, 운명의 실상實相을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명을 벗어나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
육체를 길러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을 먼저 마련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물질이 넉넉함에도 육체가 길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생명生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를 먼저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육체는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
생명이란 찾아오는 것을 물리칠 수 없으며 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를 잘 기르기만 하면, 족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육체를 잘 기르는 것만으로 결코 생명을 보존하기에 부족하다면 세속인들이 육체를 기르려는 노력이 어찌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는가.
비록 해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육체를 기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면 얽매임이 없게 되고 얽매임이 없게 되면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지고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지면 저 육체와 함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니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거의 〈달생達生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의 일이 어찌 족히 버릴 수 있는 것이겠으며 생명이 어찌 족히 잊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마는 세속의 일을 버리면 육체가 피로하지 않게 되고 생명生命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리면 정기精氣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니, 무릇 육체가 완전해지고 정기精氣가 회복되면, (自然)과 그대로 하나가 될 것이다.
천지天地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부모이다.
가 합하면 만물의 형체를 이루고 가 흩어지면 만물의 시작을 이룬다.
육체와 정기精氣가 손상되지 않는지라, 이것을 일컬어 ‘자연과 함께 변화할 수 있다.’고 하니 〈육체와 정기精氣를〉 정묘精妙하게 하고 또 정묘하게 할 수 있다면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가 천지의 작용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達生之情者 不務生之所無以爲 : 生命의 實情에 통달한 사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삶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음. 《淮南子》 〈詮言訓〉편에는 達자가 通으로 표기되어 있고(赤塚忠), 〈泰族訓〉편에는 知로 표기되어 있다(劉文典). 陸德明은 “창달, 통달함이다[暢也 通也].”고 풀이했다. 生은 《淮南子》의 〈詮言訓〉편과 〈泰族訓〉편에 모두 ‘性’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武延緖는 이에 근거하여 性의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劉文典도 같다). 그러나 陸德明이 《廣雅》를 인용하여 “生 出也”로 풀이하고 있으므로 生出의 뜻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陳景元, 赤塚忠을 참조). 之자가 없는 판본도 있고(寺岡龍含), 之情 두 글자가 없는 인용문도 있다(馬叙倫). 情은 宣穎이 實理로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陸樹芝는 本 또는 原으로 풀이했는데 적절치 않다. 無以爲는 池田知久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老子》 제38장에 “上德無爲而無以爲”라 한 대목과 유사하다. 以는 所以의 뜻.
역주2 達命之情者 不務知之所無奈何 : 운명의 實相을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명을 벗어나기 위해 힘쓰지 않음. 不務知의 知는 命의 잘못이다(王叔岷). 〈人間世〉편 제2장에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아 마음을 편안히 하고 천명을 따르니 덕의 지극함이다[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 德之至也].”고 한 내용과 유사한 삶의 태도이다(福永光司).
역주3 養形必先之以物 : 육체를 길러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을 먼저 마련해야 함. 成玄英은 “物이란 財貨와 衣食이니 늘 필요한 것이다[物者 謂資貨衣食 旦夕所須].”고 풀이했다. 養形은 〈刻意〉편 제1장에 이미 나왔다. 之는 阮毓崧이 “之는 어조사이다[之 語助也].”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4 有生必先無離形 形不離而生亡者有之矣 : 生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를 먼저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육체는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음. 無離形은 육체를 떠나서는 생명이 유지될 수 없다는 뜻.
역주5 生之來不能却 其去不能止 : 생명이란 찾아오는 것을 물리칠 수 없으며 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음. 〈養生主〉편에 보이는 安時而處順과 동일한 삶의 태도이다. 또 〈繕性〉편의 “其來不可圉 其去不可止”, 〈田子方〉편의 “其來不可卻也 其去不可止也”, 〈知北遊〉편의 “哀樂之來 吾不能禦 其去 弗能止”도 모두 유사한 의미이다.
역주6 悲夫 世之人以爲養形足以存生 :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를 잘 기르기만 하면, 족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함. 〈知北遊〉편에서 “슬프다. 世人은 다만 물질이 왔다 가는 여관 노릇을 할 뿐이다[悲夫 世人直爲物逆旅耳].”라고 한 표현과 유사하다.
역주7 養形果不足以存生 : 육체를 잘 기르는 것만으로 결코 생명을 보존하기에 부족함. 馬其昶의 《莊子故》에서는 《禮記》 鄭玄 注를 따라 果자를 決로 풀이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역주8 世奚足爲哉 : 세속인들이 육체를 기르려는 노력이 어찌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는가. 해볼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을 완곡히 표현한 대목이다. 世는 세속인들이 행하는 육체를 기르는 방법. 林雲銘은 “세상 사람들이 배우는, 육체를 기르려는 노력과 같은 것[如世人所學 養形之事也].”이라고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른다.
역주9 雖不足爲 而不可不爲者 其爲不免矣 : 비록 해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긍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체를 기른다는 뜻이다.
역주10 夫欲免爲形者 莫如棄世 : 무릇 육체를 기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 爲形은 養形과 같이 육체를 기른다는 뜻이다.
역주11 正平 :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짐. 林雲銘은 “마음과 몸이 본연의 상태를 얻음이다[得心體之本然也].”고 풀이했다.
역주12 與彼更生 : 저 육체와 함께 삶을 다시 시작함. 林希逸, 羅勉道 등은 彼를 ‘造物者’로 보았지만 여기서는 曹礎基와 赤塚忠의 견해를 따라 ‘形’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번역하였다. 池田知久도 마찬가지이다.
역주13 更生則幾矣 :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거의 達生에 가까울 것임. 幾는 ‘거의 ~에 가깝다’는 뜻. 곧 완전한 達生에 가까워짐을 말한다.
역주14 事奚足棄而生奚足遺 : 세상의 일이 어찌 족히 버릴 수 있는 것이겠으며 생명이 어찌 족히 잊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마는. 몇 가지 讀法이 있는데 池田知久처럼 疑問文으로 읽는 방법이 있고 福永光司처럼 反語의 뜻으로 보아 “이런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어찌 버리고 어찌 잊을 것인가. 곧 버리고 잊을 것도 없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福永光司의 견해는 무리한 주장이고, 池田知久처럼 단순한 의문문으로 보는 것도 맥락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리오마는’의 뜻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역주15 遺生則精不虧 : 生命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리면 精氣가 손상되지 않게 됨. 生은 생명에 대한 집착의 뜻이다. 成玄英은 “생애를 잊어버리면 정신이 응집되어 손상당하지 않는다[遺生涯則神凝而不損也].”고 풀이했다.
역주16 合則成體 散則成始 : 〈天과 地가〉 합하면 만물의 형체를 이루고 天과 地가 흩어지면 만물의 시작을 이룸. 成始는 기가 흩어져서 만물이 아직 생성되지 않은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
역주17 形精不虧 是謂能移 : 육체와 精氣가 손상되지 않는지라, 이것을 일컬어 ‘자연과 함께 변화할 수 있다’고 함. 能移는 天, 곧 자연과 함께 추이할 수 있다는 뜻.
역주18 精而又精 反以相天 : 〈육체와 精氣를〉 精妙하게 하고 또 정묘하게 할 수 있다면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가 천지의 작용을 도울 수 있을 것임. 相은 돕는다는 뜻. 郭象은 ‘輔’로 풀이했고 成玄英은 ‘助’로 풀이했는데 같은 뜻이다. 天은 천지자연의 작용을 뜻한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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