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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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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之末也 賞罰利害 敎之末也
治之末也
하며 父先而子從하며 兄先而弟從하며 長先而少從하며 男先而女從하며 夫先而婦從하나니
夫尊卑先後
하시니라
하니 春夏 先하고 秋冬하니
하니 盛衰之殺 變化之流也
호대 而有尊卑先後之序이온 而況人道乎따녀
語道而非其道者 리오
是故 古之明大道者 하고 하고 하고 分守 已明而刑名 次之하고 하고 하고 原省 已明而是非 次之하고 하고 賞罰 已明而하며 하야 이니 하며 以此 治物하며 以此 修身호대 知謀 不用이오 必歸其天하니
이라하니 形名者 古人 有之 而非所以先也
古之語大道者 五變하야야 而形名 可擧 九變하야야 而賞罰 可言也
而語形名이면 不知其本也 驟而語賞罰이면 不知其始也 倒道而言하며 而說者 人之所治也어니 安能治人이리오
驟而語形名賞罰하면
下之所以事上이라 非上之所以畜下也니라


근본(無爲‧천도天道)은 위에 있는 사람에게 있고 말절末節(末端‧유위有爲인도人道)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있으며 요점은 군주가 맡고 세세한 일은 신하에게 맡긴다.
삼군三軍을 동원하고 오병五兵을 운용하는 전쟁은 가운데서도 말절末節에 해당하고 상벌賞罰을 시행하고 이해득실을 따지고 오형五刑으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교화 가운데서도 말절에 해당한다.
예법禮法을 신분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일과 관리의 성적을 엄격하게 조사하여 평가하는 일은 정치 가운데서도 말절에 해당한다.
종치고 북 치는 음악과 새깃이나 짐승의 털로 장식한 화려한 춤은 중에서도 말절에 해당한다.
곡읍哭泣상복喪服, 수질首絰, 요질腰絰 등을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상례 제도는 슬픔의 표현 중에서도 말절에 해당한다.
이 다섯 가지 말절은 정신이 운행되고 심술이 작용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따라가는 것이다.
이 같은 말절을 배우는 사람이 옛사람 가운데에도 있기는 했지만 〈이 말절의 학문은〉 다른 것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군주가 앞서고 신하는 뒤따르며 아버지가 앞서고 자식은 뒤따르며 형이 앞서고 아우는 뒤따르며 연장자가 앞서고 어린 사람은 뒤따르며 남자가 앞서고 여자는 뒤따르며 지아비가 앞서고 지어미는 뒤따른다.
존비尊卑의 차별과 선후先後의 순서가 있는 것은 천지자연의 운행 법칙이다.
그 때문에 성인聖人이 본보기를 취한 것이다.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은 것은 신명神明의 위계이고 봄과 여름이 먼저 오고 가을과 겨울이 뒤에 오는 것은 사시四時의 차례이다.
만물이 변화 발생함에 싹이 트고 순이 나는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피었다가 시드는 차례가 있는 것은 변화의 흐름이다.
천지자연은 지극히 신묘한데도 존비선후尊卑先後의 서열이 있는데 하물며 인도人道이겠는가.
종묘宗廟에서는 관계가 가까운 친척을 숭상하고 조정에서는 관작이 높은 이를 숭상하고 고을에서는 나이 많은 이를 숭상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는 현인을 숭상하나니 이것이 대도大道의 서열이다.
에 대해 논하면서 그 차례에 맞지 않으면 마땅한 가 아니다.
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이 마땅한 가 아니라면 어떻게 를 터득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옛날 대도大道를 밝게 알고 있었던 사람은 먼저 을 밝히고 그 다음에 이 이어졌고 도와 덕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인의仁義가 이어졌고 인의를 이미 밝히고 난 뒤에 분수分守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을 밝혔고 분수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형명刑名이 이어졌으며 형명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재능才能에 따라 일을 맡기는 일이 이어졌고 재능에 따라 일을 맡기는 일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안팎을 살핌이 이어졌고 안팎을 살피는 일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시비是非가 이어졌고 시비를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상벌賞罰이 이어졌고 상벌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마땅한 평가를 받으며 귀하고 천한 사람이 마땅한 자리를 밟으며 어진 사람과 불초한 사람이 실정에 부합되어 반드시 그 능력에 맞게 일을 하고 반드시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게 되니 이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고 이것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기르며 이것을 가지고 남을 다스리고 이것을 가지고 자신을 수양하되, 지모를 쓰지 않고 반드시 자연의 도[天]에 돌아간다.
이것을 일러 대평大平이라고 하나니 이것이 바로 지극한 정치이다.
그래서 옛 책에도 말하기를 “(實態)이 있으면 (이름)이 있다.”라고 했으니 형명刑名이라고 하는 것(刑과 일치一致의 주장)은 고인古人에게도 있었으나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근본의 는 아니었다.
옛날 대도大道를 말했던 사람은 다섯 번 변화하여야 비로소 형명刑名을(刑과 의 일치를) 거론할 수 있었으며, 아홉 번 변화하여야 (아홉 번째의 변화 추이 끝에) 비로소 상벌賞罰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순서를 밟지 않고〉 갑자기 형명刑名을 말하면 그것은 근본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갑자기 상벌賞罰을 말하면 그것은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처럼 (本末‧선후先後의 서열)를 거꾸로 말하고 를 거슬러 말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아야 할 자이니 어찌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갑자기 형명刑名의 일치를 논하고 그에 따른 상벌을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정치의 도구를 앎이 있을 뿐이고 정치의 도를 아는 것이 아니다.
천하에 쓰일 수는 있을지언정 천하를 부리기에는 부족하니 이런 사람들을 일러 변설가辨說家일부분一部分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예법禮法을 신분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일과 관리의 성적을 엄격하게 조사하여 평가하는 일은 옛사람 중에서도 추구한 사람이 있었으나 이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 本在於上 末在於下 : 근본은 위에 있는 사람에게 있고 末節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있음. 곧 근본은 위에 있는 사람이 장악하고 말절은 下位者가 취급한다는 뜻. 근본은 無爲, 곧 天道를 지칭한다. 말절은 말단, 곧 유위와 인도를 지칭한다. 李頤는 “本은 天道이고 末은 人道이다[本 天道 末 人道也].”라고 풀이했다. 成玄英은 “本은 道德이고 末은 仁義이다[本 道德也 末 仁義也].”라고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 林希逸이 “無爲를 근본으로 삼고 有爲를 말절로 삼음이다[蓋以無爲爲本 以有爲爲末].”라고 풀이한 것이 타당하다.
역주2 要在於主 詳在於臣 : 요점(중요한 것)은 군주가 맡고 세세한 일은 신하에게 맡김. 成玄英은 “要는 간략함이고 詳은 번다함이다. 군주의 도는 편안하면서 간략하고 신하의 도는 수고로우면서 번잡하다. 번잡하기 때문에 有爲하면서 윗사람을 받들고 간편하기 때문에 無爲하면서 아랫사람을 부린다[要 簡省也 詳 繁多也 主道逸而簡要 臣道勞而繁冗 繁冗 故有爲而奉上 簡要故無爲而御下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 三軍五兵之運 : 三軍을 동원하고 五兵을 운용함. 곧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하는 일을 말한다. 阮毓崧은 三軍에 대해 “주나라 제도는 1만2천5백 명이 軍이고 제후의 경우 대국은 삼군을 거느린다[周制 萬二千五百人爲軍 諸侯大國三軍].”라고 풀이했다. 五兵에 대해서는 成玄英이 一弓, 二殳, 三矛, 四戈, 五戟으로 풀이했고, 《周禮》 〈司兵〉의 鄭司農 注에서 “戈, 殳, 戟, 酋矛, 夷矛”라 했고, 《春秋穀梁傳》 莊公 23년조의 范注에서 “矛, 戟, 鉞, 楯, 弓矢”라고 하는 등 諸說이 일치하지 않는다(池田知久). 運은 成玄英이 동원함[動]으로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4 五刑之辟 : 五刑으로 사람을 처벌하는 것. 辟은 罪. 여기서는 죄를 ‘처벌하다’는 뜻이다. 五刑은 成玄英이 “一劓, 二墨, 三刖, 四宮, 五大辟”이라고 풀이했다. 成玄英은 辟을 法이라고 풀이했는데 오형으로 처벌하는 법률의 뜻으로 본 듯하지만 간편하게 죄를 ‘처벌하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역주5 禮法度數 : 禮法을 신분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일. 度數가 數度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數는 成玄英이 ‘계산함[計算]’이라고 풀이했지만 林希逸이 “度數는 차등적 규정이다[度數 等差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天運〉편 제4장에도 ‘禮義法度’가 나온다(福永光司).
역주6 刑名比詳 : 관리의 성적을 엄격하게 조사하여 평가하는 일. 池田知久에 따르면, 刑자는 形으로 된 판본이 있으나(王叔岷) 두 글자는 통용되므로(劉文典) 고칠 것(奚侗)까지는 없다. 刑名의 의미에 관해서는 《韓非子》 〈主道〉편에 “말을 하는 자는 저절로 이름이 있게 되고 일을 하는 자는 저절로 일의 실적이 있게 된다[有言者自爲名 有事者自爲刑].”라고 했으며(奚侗), 《史記》 〈萬石張叔列傳〉의 ‘刑名言’의 《史記集解》 韋昭 注에 “형명에 관한 책이 있었으니 명실이 상부하기를 바란 것이다[有刑名之書 欲令名實相副也].”라고 했으며, 《史記索隱》에 인용된 劉向의 《別錄》에는 “申不害의 학문을 刑名家라고 불렀으니 명칭을 따라 실질을 요구한 것이다[申子學號曰 刑名家者 循名以責實].”라고 한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比詳은 비교해서 자세히 따져 본다는 뜻이다. 陸德明은 “비교해서 자세하게 살핌이다[比較詳審].”라고 풀이했다. 成玄英도 같은 견해.
역주7 鐘鼓之音 羽旄之容 樂之末也 : 종 치고 북 치는 음악과 새깃이나 짐승의 털로 장식한 화려한 춤[羽旄로 장식한 舞樂의 아름다운 모습]은 樂 중에서도 말절에 해당함. 羽旄는 成玄英이 “羽는 새깃이고 旄는 짐승의 털이다. 새와 짐승의 깃과 털을 채취하여 도구를 장식함을 말한 것이다[羽者 鳥羽 旄者 獸毛 言采鳥獸之羽旄以飾其器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林希逸은 《論語》 〈陽貨〉편에서 “음악이다 음악이다 말들 하지만 종 치고 북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는가[樂云樂云 鐘鼓云乎哉].” 하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로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8 哭泣衰絰 隆殺(쇄)之服 : 哭泣과 喪服, 首絰, 腰絰 등을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상례제도. 衰자가 縗로 표기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馬叙倫은 衰는 縗자를 생략한 글자라 했고 殺는 差의 가차자라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成玄英은 隆殺를 “상례에 참최, 자최, 대공, 소공, 시마의 다섯 등급이 있음을 말한 것이니 곡읍하고 옷을 갖추어 입을 때 각기 차등적으로 낮춤이 있다[言禮有斬衰‧齊衰‧大功‧小功‧緦麻五等 哭泣衣裳 各有差降].”라고 풀이했다.
역주9 哀之末也 : 슬픔의 표현 중에서도 말절에 해당함. 林希逸은 《論語》 〈八佾〉편에서 공자가 “상례는 절차가 잘 지켜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喪與其易也寧戚].”라고 한 것이나 〈陽貨〉편에서 “예다 예다 말들하지만 옥이나 폐백을 말하는 것이겠는가[禮云禮云 玉帛云乎哉].” 하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라고 부연했다.
역주10 此五末者 須精神之運 心術之動 : 이 다섯 가지 말절은 정신이 운행되고 심술이 작용하기를 기다림. 須는 기다린다는 뜻으로 待와 같은데 須자가 없는 판본이 있다. 없어도 뜻은 통한다. ‘心術’은 《荀子》 〈非相〉편, 〈解蔽〉편, 〈成相〉편과 《管子》의 〈七法〉편, 〈心術 上〉편 등에도 보이는 말이다(福永光司).
역주11 然後從之者也 : 그런 뒤에야 따라가는 것임. ‘從之者也’의 ‘之’자가 없는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역주12 末學者 古人有之 而非所以先也 : 말절을 배우는 사람이 옛사람 가운데에도 있기는 했지만 〈이 말절의 학문을〉 다른 것에 우선했던 것은 아님. 곧 근본의 학문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古人은 古之人으로 된 인용문이 있는데(馬叙倫, 王叔岷) 王叔岷은 古之人이 옳다고 하지만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역주13 君先而臣從 : 군주가 앞서고(먼저이고) 신하는 뒤따른다. 無爲와 有爲 사이의 本末관계(무위는 本, 유위는 末)는 유위의 세계, 현실의 인간 사회 속에서도 본말 관계가 있다. 君先而臣從 이하의 본말 관계가 그 예이다.
역주14 天地之行也 : 천지자연의 운행 법칙임. 천지자연의 운행의 모습이라 하여도 可하다. 〈德充符〉편 제4장에서 “사물의 변화이며 천명이 유행하는 것이다[是事之變 命之行也].”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의미이다(池田知久).
역주15 聖人取象焉 : 聖人이 본보기를 취함. 성인이 천지자연의 모습을 본떠서 인간 사회의 서열을 세운 것을 의미한다. 《周易》 〈繫辭上傳〉에 “하늘이 象을 드리워서 길흉을 나타냈는데 성인이 그것을 본받았다[天垂象 見吉凶 聖人象之].”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맥락이다(福永光司).
역주16 天尊地卑 :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음. 《周易》 〈繫辭上傳〉에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그것을 따라 건괘와 곤괘가 결정되고 높고 낮은 것을 진술하여 貴와 賤이 자리를 잡는다[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라고 했고, 《禮記》 〈樂記〉편에서도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그것을 따라 군주와 신하가 결정되고 높고 낮은 것을 진술하여 貴한 사람과 賤한 사람이 자리를 잡는다[天尊地卑 君臣定矣 卑高已陳 貴賤位矣].”라고 한 내용이 있다.
역주17 神明之位 : 신명의 위계. 神明은 人知를 초월한 靈妙한 진실의 세계를 의미한다.
역주18 四時之序 : 사계절의 차례. 《周易》 〈乾卦 文言傳〉에 “대인은 천지와 덕이 합치되고 일월과 밝음이 부합하며 사시와 차례가 부합하고 귀신과 길흉이 부합한다. 하늘보다 앞서 움직이면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을 뒤따라 움직이면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조차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이겠는가[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라고 한 것과 유사한 의미이다(馬叙倫). 이 외에 《管子》 〈版法解〉편과 《淮南子》 〈本經訓〉편, 〈泰族訓〉편 등에도 유사한 맥락이 보인다. 한편 馬叙倫은 《說文解字》에서 “叙는 차례이다[叙 次序也].”라고 한 것을 따라 序자를 叙의 假借字로 보았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9 萬物化作 : 만물이 변화 발생함. 만물이 生成變化한다는 말이다. 池田知久는 이와 관련한 문장으로 《老子》 제37장에 “萬物將自化 化而欲作”이라는 글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萬物將自化의 自化에 대하여는 이것을 여기 《莊子》 〈天道〉편의 이 ‘萬物化作’과 같은 만물의 생성 변화의 뜻으로 취하는 주석도 있으나 ‘化’를 생성 변화보다는 德化, 感化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는 주석도 있어, 이 경우에는 萬物化作과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역주20 萌區有狀 : 싹이 트고 순이 나는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음. 萌區는 모두 싹. 번역의 편의를 위해 萌은 싹, 區는 순으로 번역하였다. 池田知久에 의하면 《禮記》 〈樂記〉편에서는 “초목이 무성해지고 싹이 자라난다[草木茂 區萌達].”라고 했고, 〈月令〉편에는 “순이 다 나오고 싹이 다 자라났다[句者畢出 萌者盡達].”라고 했다. 區萌과 句萌은 같다(顧炎武). 馬叙倫은 區를 “초목이 땅 속에 있는 것을 말함이다[謂草木之在地中者].”라고 풀이했다. 《管子》 〈五行〉편에도 “초목의 순과 싹[草木區萌].”이라는 내용이 보인다(楊樹達).
역주21 天地至神 : 천지자연은 지극히 신묘함. 陳景元의 《莊子闕誤》에 인용하는 張君房본에는 神의 아래에 矣가 있다. 또 也가 있는 인용도 있으나(王叔岷) 經文을 고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둔다(池田知久).
역주22 宗廟尙親 : 宗廟에서는 관계가 가까운 친척을 숭상함.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에서는 친소 관계를 기준으로 상하를 결정한다는 뜻.
역주23 朝廷尙尊 鄕黨尙齒 行事尙賢 : 조정에서는 관작이 높은 이를 숭상하고 고을에서는 나이 많은 이를 숭상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는 현인을 숭상함. 《孟子》 〈公孫丑 下〉편에서 “조정에서는 작위만 한 것이 없고 향당에서는 연치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德만 한 것이 없다[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주24 語道而非其序者 非其道也 : 道에 대해 논하면서 그 本末‧先後의 차례에 맞지 않으면 마땅한 道가 아님. ‘語道’처럼 도를 말한다는 표현은 〈在宥〉편 제3장에서 “至道에 대해 말한다[語至道].”라고 한 경우가 이미 나왔고, 〈秋水〉편 제1장에도 “일부분만 아는 선비와는 도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曲士不可以語於道].”라고 표현한 부분이 보인다(池田知久). 福永光司는 〈秋水〉편의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大學》에서 “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종이 있으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알면 道에 가깝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고 한 내용과 그 취지가 유사하다(赤塚忠, 池田知久).
역주25 安取道 : 어떻게 道를 터득할 수 있겠는가. “道를 어디서 취할 수 있겠는가.”도 可함. 陳景元의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文如海본에는 道자 아래에 哉자가 붙어 있으며, 奚侗과 劉文典은 이것을 기준으로 哉자를 보충하고 있으나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林希逸이 “이미 그 차례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도를 지닐 수 있겠는가[言旣不知其序 又安得有道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역주26 先明天而道德次之 : 먼저 天을 밝히고 그 다음에 도와 덕이 이어짐. 이하는 〈天地〉편 제1장의 “義는 德에 포섭되고 德은 道에 포섭되고 道는 자연[天]에 포섭된다[義兼於德 德兼於道 道兼於天].”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맥락이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27 道德已明而仁義次之 : 도와 덕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인의가 이어짐. 《老子》 제38장에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라 있음(福永光司). 《管子》 〈心術 上〉의 “虛無無形謂之道 化育萬物謂之德 君臣父子人間之事謂之義 登降揖讓 貴賤有等 親疏之體 謂之禮”도 이 사상에 가깝다(池田知久).
역주28 仁義已明而分守次之 : 인의를 이미 밝히고 난 뒤에 분수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을 밝혔음. 分守는 成玄英 疏의 “各守其分”이라는 뜻이다. 職分의 遵守를 말한다.
역주29 刑名已明而因任次之 : 형명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재능에 따라 일을 맡기는 일이 이어짐. 刑名은 職分 또는 主張과 그것을 실천한 實續과의 합치 여부를 따지는 것. 因任에 대해서는 王雱이 《南華眞經新傳》에서 “親疎와 貴賤을 따라 그가 의당 해야 할 일을 맡긴다[因親疎貴賤 而任之以其所宜爲].”라고 풀이한 것이 따를 만하고, 呂惠卿이 “그 능력은 따를 만하고 그 재주는 맡길 만하다……따를 때에는 그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맡길 때에는 그 재주를 잃지 않는다[其能可因 其材可任矣……因之不失其能 任之不失其材].”라고 풀이한 것도 무난하다(池田知久). 역시 池田知久에 의하면, 明代의 張四維는 《莊子口義補注》에서 “因任은 바로 〈在宥〉편에서 보잘것없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물건이고 낮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백성들이라고 한 것과 같다[因任 卽在宥篇賤而不可不任者 物也 卑而不可不因者 民也].”라고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30 因任已明而原省次之 : 재능에 따라 일을 맡기는 일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안팎을 살핌이 이어짐. 原과 省은 모두 고찰하고 살핀다는 뜻이다. 陸德明은 “原은 없앰이고 省은 버림이다[原 除 省 廢也].”라고 풀이했고 郭象과 成玄英, 林希逸 등이 이 견해를 따르지만 옳지 않다(池田知久). 王雱이 “반드시 그 실정을 고찰하고 반드시 그 일을 살펴야 하니 이것을 두고 原省이라 한다[必原其情 必省其事 此之謂原省].”라고 풀이한 것이 제대로 된 설명이다. 呂惠卿이 “안으로는 그 마음을 고찰하고 밖으로는 그 행적을 살핀다[內之則原其心 外之則省其迹].”라고 풀이한 것도 적절하다. 더 간단히 설명하면 原省은 任命한 관리의 성적을 살핀다는 뜻이다.
역주31 是非已明而賞罰次之 : 시비를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상벌이 이어짐. 賞罰은 《韓非子》 〈主道〉편에서 “신표를 맞춰 보는 것이 상벌이 생긴 유래이다[符契之所合 賞罰之所生也].”라고 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역주32 愚智處宜 貴賤履位 :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마땅한 평가를 받으며 귀하고 천한 사람이 마땅한 자리를 밟음. 《荀子》 〈榮辱〉편에서 “선왕이 그것을 위해 예의를 제정해서 나누어 백성들로 하여금 귀천의 등급과 장유의 차이와 지우와 능불능의 구분이 있게 했다[先王案爲之制禮義以分之 使有貴賤之等 長幼之差 知愚能不能之分].”라고 한 언급과 유사하다. 또 《韓非子》 〈有度〉편에도 “귀천이 서로 넘지 아니하고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걸맞는 위치에 올바로 서는 것이 다스림의 지극함이다[貴賤不相踰 愚智提衡而立 治之至也].”라고 했는데 모두 法家系列의 이상 사회에 대한 묘사이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33 仁賢不肖襲情 : 어진 사람과 불초한 사람이 실정에 부합됨. 武延緖는 仁자를 衍文이라 했지만 근거가 박약하다(池田知久). 襲은 옷을 껴입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부합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王先謙이 襲을 ‘因’으로 풀이한 것이 제일 참고가 된다.
역주34 必分其能 必由其名 : 반드시 그 능력에 맞게 일을 하고 반드시 이름에 걸맞게 행동함. 郭象은 “서로 일을 바꿈이 없다[無相易業].”라고 풀이했다. 呂惠卿은 “관직은 모두 틀림없이 그 일을 잘할 사람에게 주어지고……이름은 모두 단연코 실제의 공적에 합당한 사람에게 주어짐이다[官之所施皆確乎能其事者也…名之所加皆斷焉當其實者也].”라고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35 以此事上 以此畜下 : 이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고 이것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기름. 畜下는 제3장의 ‘畜天下’와 비슷하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36 知謀不用 必歸其天 此之謂大平 治之至也 : 지모를 쓰지 않고 반드시 자연의 도[天]에 돌아간다. 이것을 일러 大平이라고 하나니 이것이 바로 지극한 정치이다. 成玄英은 “지극한 침묵으로 무위하여 여러 아랫사람들에게 맡기고 총명과 지혜를 막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태평의 군주라 할 만하니 지극한 정치의 아름다움이다[至黙無爲 委之群下 塞聰閉智 歸之自然 可謂太平之君 至治之美也].”라고 풀이했다. 《荀子》 〈榮辱〉편에도 “이것을 일러 지극한 다스림이라 한다[夫是之謂至平].”라고 하여 이와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
역주37 故書曰 有形有名 : 그래서 옛 책에도 말하기를 “刑(形)이 있으면 名이 있다.”라고 함. 故를 古로 읽어 故書를 古書로 보는 해석도 있으나(林希逸, 金谷治) 잘못일 것이다(池田知久). ‘故로 書曰’로 읽으면서 ‘그러므로 書에 이르기를’로 訓讀하고 번역을 ‘그러므로 옛 책에 이르기를’로 함은 可함. 刑(形)이 있으면 名이 있다고 함은 實態(實質)가 있으면 名目(槪念)이 있다는 뜻이며 이는 또한 實態와 名目은 一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역주38 : 대번에. 갑작스런 모양. 成玄英은 ‘數’ 또는 ‘速’으로 풀이했고, 馬叙倫은 《說文解字》에서 “趀는 갑작스러움이다[趀 倉卒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라 趀의 假借字라고 하였다(池田知久).
역주39 迕道 : 도를 거스름. 司馬彪는 迕를 “가로막음이다[橫也].”라고 풀이하였으며, 成玄英은 “거스름이다[逆也].”라고 풀이하였다. 여기서는 成玄英 疏를 따랐다.
역주40 有知治之具 : 정치의 도구를 앎이 있을 뿐임. 有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정치의 도구[治之具]를 앎[知]이 있을[有] 뿐이라고 해석해 둔다.
역주41 非知治之道 : 정치의 도를 아는 것이 아님. 陳景元이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에는 ‘道’자 아래에 ‘者也’ 두 글자가 붙어 있다(池田知久).
역주42 可用於天下 不足以用天下 : 천하에 쓰일 수는 있을지언정 천하를 부리기에는 부족함. 用은 使役의 뜻. 제4장에서 “윗사람은 반드시 무위해서 천하의 사람들을 부리고 아랫사람은 유위해서 천하를 위해 일한다[上必無爲而用天下 下必有爲爲天下用].”라고 언급한 것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福永光司, 池田知久).
역주43 一曲之人 : 一部分밖에 모르는 사람. 一曲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지만 池田知久에 의하면 “〈天下〉편에서 ‘포괄하지 못하고 두루 망라하지 못하는 일부분만 아는 사람[不該不徧 一曲之士也].’이라 한 표현을 보면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秋水〉편에도 ‘曲士에게는 道를 일러 줄 수 없다[曲士不可以語於道].’라고 한 내용이 있다(福永光司). 《荀子》 〈解蔽〉편의 “무릇 사람들의 문제는 일부분에 가리워 커다란 이치에 어두운 것이다[凡人之患, 蔽於一曲, 而闇於大理].”라고 한 표현이 있다. 《淮南子》 등 漢代의 문헌에 자주 나온다. 《淮南子》 〈繆稱訓〉편에는 ‘일부분만 살피는 자와는 함께 변화를 말할 수 없고 한때만 살피는 자와는 大를 말할 수 없다[察一曲者 不可與言化 審一時者 不可與言大].’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라고 하였다.
역주44 禮法數度 : 禮法을 신분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일. 위 문장에 나온 “禮法度數”와 같다.
역주45 形名比詳 古人有之 : 관리의 성적을 엄격하게 조사하여 평가하는 일은 옛사람 중에서도 추구한 사람이 있음. 古人은 古之人으로 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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