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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1)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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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어늘 與仲尼 하더니
問於仲尼曰
王駘 兀者也로대
從之遊者與夫子 中分魯하야
호대 虛而往하야 實而歸하나니
是何人也
仲尼曰
夫子 聖人也
而況不若丘者乎따녀
이리오
常季曰
兀者也로대하니 로소이다
若然者 잇고
仲尼曰
하야도 亦將하며 하야이오 하야하나니라
常季曰
何謂也잇고
仲尼曰
夫若然者하고하니니라
하고하야 視喪其足호대 하나니라
常季曰
仲尼曰
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하나니
하고 唯〈堯〉舜 獨也正하시니 〈在萬物之首〉 하시니라
이니라
리니
人則從是也하나니 彼且何肯以物 爲事乎리오


나라에 발 잘리는 형벌[刖刑]을 받은 왕태王駘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따라 배우는 제자의 수가 중니仲尼와 같았다.
상계常季가 중니에게 물었다.
“왕태는 절름발이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따라 배우는 이가 선생님과 함께 노나라를 반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서도 가르치지 않고 앉아서도 토론 한 번 하지 않는데도 〈배우는 이들은〉 텅빈 채로 가서는 가득 채워서 돌아옵니다.
참으로 말하지 않는 가르침과 겉으로 드러남이 없으면서도 마음으로 이루는 것이 있는 것이겠지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중니가 말했다.
“그분은 성인이다.
나는 다만 때를 놓쳐서 아직 가지 못했을 뿐이다.
나도 그를 스승으로 삼으려 하는데 하물며 나만 못한 사람들이겠는가.
어찌 다만 노나라 사람뿐이겠는가?
나는 온 천하 사람을 이끌고 그를 따라 배울 것이다.”
상계常季가 말했다.
“그는 절름발이인데도 선생님보다 더 훌륭하다고 하니, 저희 같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시겠습니다.
그 같은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도대체 어떠합니까?”
중니가 말했다.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중대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다.
비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하더라도 또한 그와 함께 떨어지지 않으며, 거짓 없는 참된 도를 잘 살펴서, 사물事物과 함께 옮겨 다니지 않고, 만물의 변화를 으로 받아들여 근본인 를 지킨다.”
상계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니가 말했다.
“다른 것을 기준으로 보면 간과 쓸개도 〈그 차이가〉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고, 같은 것을 기준으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이다.”
“이 같은 사람은 또한 이목耳目 등의 감각기관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을 초월하여, 마음을 덕의 융화 속에서 노닐게 한다.
만물을 동일한 견지에서 바라보며, 발 하나 잃어버린 것에 얽매이지 않아서, 자기 발 잃어버리는 것을 마치 흙덩어리 하나 내다 버리는 것과 같이 여긴다.”
상계常季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를 위해 공부를 한 것입니다.
자기의 를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터득하고, 자기의 마음을 가지고 변하지 않는 마음[常心]을 터득한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에게 몰려듭니까?”
중니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멈추어 있는 물을 거울로 삼는다.
오직 멈추어 있는 존재만이 멈춤을 구하는 여러 사물을 멈출 수 있다.
땅에서 생명을 받은 것 중에서는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올바르니, 홀로 사철 푸르디 푸르고, 하늘에서 생명을 받은 무리들 중에서는 오직 요임금과 순임금만이 홀로 올바르니, 만물의 으뜸이라, 다행히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 중생들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사람에게 시원始源가 보존되어 있다는 징험徵驗은 두려워하지 않는 실제로 나타난다.
용사 한 사람이 적의 대군 속으로 용감하게 쳐들어가 명성을 바라고 그것에 집착하는 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천지를 마음대로 부리고 만물을 어루만져서, 육체를 단지 잠깐 머물다 가는 거처로만 여기며, 이목耳目의 감각을 허상으로 여기며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대상을 모두 하나로 여겨서, 마음이 한 번도 사멸된 적이 없는 사람이겠는가.
그는 또 언젠가 날짜를 가려서 도의 경지에 올라갈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따르는 것이니, 그가 또 굳이 어찌 제자 모으는 일 따위를 일삼겠는가.”


역주
역주1 兀(올)者 : 발 잘리는 형벌[刖刑]을 받은 사람, 절름발이. 李頤는 “발뒤꿈치 베는 것을 兀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전서체의 兀과 介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刖足曰兀 案篆書兀介字相似].”고 풀이했고 馬叙倫은 刖이 생략된 글자[省文]라고 했다.
역주2 王駘(왕태) : 人名. 成玄英은 “성은 王이고 이름은 駘이며 노나라 사람이다[姓王 名駘 魯人也].”고 했지만 이 또한 장자가 寓意를 붙여 架空한 인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駘는 노둔한 말로 둔하다, 어리석다는 뜻.
역주3 從之遊者 : 그를 따라 배우는 자. 곧 왕태에게 배우는 제자. 之는 왕태를 가리킨다.
역주4 相若 : 서로 같음. 陸德明은 “若은 如와 같다. 제자의 수가 공자처럼 많았다[若如也 弟子如夫子多少也].”고 풀이했다.
역주5 常季 : 공자의 제자. 成玄英은 “성은 常이고 이름은 季이며 노나라의 賢人이다[姓常 名季 魯之賢人也].”라고 했지만, 이것도 장자가 凡庸한 젊은이라는 寓意를 붙여 創作한 人物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역주6 立不敎 坐不議 : 서서도 가르치지 않고 앉아서도 토론 한 번 하지 않음. 司馬彪는 “서서 가르쳐 주지 않고 앉아서 토의하지 않는다[立不敎授 坐不議論].”라고 풀이했다.
역주7 固有不言之敎 無形而心成者邪 : 참으로 말하지 않는 가르침과 겉으로 드러남이 없으면서도 마음으로 이루는 것이 있는 것이겠지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의 여부를 묻는다기보다는 있는 것임을 확인하는 투로 묻는 말. 그래서 현토본에서도 ‘……邪인저’하고 현토하고 있음. 林希逸은 “常季가 그를 이와 같이 보았기 때문에 의심하여 질문한 것이다[常季見其如此 故疑以爲問].”라고 하였다. 不言之敎는 《老子》 2장에 ‘聖人居無爲之事 行不言之敎’라고 보인다. 林希逸은 無形而心成者를 두고 “無形은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고, 心成은 마음으로 느껴 스스로 변화해서 이루는 것이다[無形無所見也 心成心感之而自化成也].”라고 풀이했다. 乃는 곧, 바로, 도리어.
역주8 丘也直後而未往耳 : 나는 다만 뒤처져 있기 때문에 아직 가지 못했을 뿐임. 直은 다만. 後는 뒤처져 있다, 때를 놓쳤다는 뜻. 李頤는 “스스로 여러 사람들 뒤에 있기 때문에 아직 가서 그를 스승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自在衆人後 未得往師之耳].”라고 풀이했다.
역주9 丘將以爲師 : 나도 그를 스승으로 삼으려 함. 丘는 孔子의 이름. 여기서는 공자의 自稱.
역주10 奚假魯國 : 어찌 노나라 사람뿐이겠는가. 曹礎基는 “假는 다만이며, 奚假는 ‘어찌…뿐이겠는가’이다[假但 奚假何止].”라고 풀이했다. 魯國은 魯國之人.
역주11 丘將引天下而從之 : 나는 온 천하 사람을 이끌고 그를 따라 배울 것임. 天下는 天下之人.
역주12 王先生 : 선생님보다 더 훌륭함. 王於先生의 줄임. 李頤는 王을 더 나음[勝]으로 풀이했다. 暀의 假借字라고 보는 견해(朱駿聲)도 있다. 王敔와 林雲銘 등은 ‘사람들이 王駘를 부르는 호칭’이라고 했지만 맥락을 따져볼 때 적절치 않다.
역주13 其與庸亦遠矣 : 저희 같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분일 것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저희 같은 보통 사람과는 또한 멀겠습니다.”로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훨씬 클 것이라는 뜻이다. 庸은 凡庸으로 평범한 보통 사람. 崔譔과 林希逸은 常人으로 풀이했다.
역주14 其用心也 獨若之何 : 그 마음 씀씀이가 도대체 어떠합니까. 도대체 어떠한 마음가짐의 소유자인지를 묻는 질문. 獨은 유독, 도대체의 뜻. 若之何는 如之何와 같고, 之는 마음 씀씀이를 가리키는 대명사.
역주15 死生亦大矣 而不得與之變 :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중대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동요하지 않음. 不得與之變의 之를 死生으로 보는 견해(方勇‧陸永品)를 따라 “死生과 함께 변화하게 할 수 없다.”는 맥락으로 번역했다. 之를 王駘로 보고 “死生이 그(왕태)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식의 번역도 가능하지만, 뒤의 ‘不與之遺 不與物遷’과 같은 구조로 보고 앞의 견해를 따랐다. 어떤 견해를 따르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死生의 변화조차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의미는 같다.
역주16 天地覆(복)墜 :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짐. 天崩地解와 같은 말로, 天崩地解는 黃宗羲의 《明夷待訪錄》에 보인다.
역주17 不與之遺 : 그와 함께 떨어지지 않음. 之는 天地覆墜를 가리킨다. 羅勉道는 遺를 떨어지다[落也]로 풀이했다.
역주18 審乎無假 : 거짓 없는 참된 도를 잘 살핌. 審은 잘 살펴서 안다는 뜻. 林希逸은 ‘분명히 아는 것[見之盡也]’이라고 풀이했다. 無假는 거짓이 없음, 곧 眞實無妄의 道를 지칭한다. 한편 郭慶藩은 《淮南子》 〈精神訓〉에 ‘審乎無瑕’로 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假를 瑕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여기의 假는 〈在宥〉편 ‘以觀無妄’의 妄과 같이 眞의 반대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朱桂曜, 曹受坤, 王叔岷, 劉武, 安東林 등도 모두 같은 해석을 따랐다.
역주19 不與物遷 : 事物과 함께 옮겨다니지 않음. 物은 實相이 아닌 假象의 事物로 無假의 道와 상대되는 말. 곧 사물에 의해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
역주20 命物之化 : 만물의 변화를 命으로 받아들임. 郭象은 “변화를 命으로 여겨 거스름이 없다[以化爲命 而無乖迕].”고 풀이했고, 林希逸은 “만물의 변화가 모두 나에게서 명령을 받는다[萬物之變化 皆受命於我].”고 달리 풀이하였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장자 사상에 대한 이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곽상의 경우는 莊子의 道를 ‘변화의 흐름 그 자체’라고 보는 입장이다. 福永光司는 ‘일체의 만물이 생성 변화하는 모습[相]을 命으로 삼는 것, 만물의 변화를 天(自然)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풀이했는데 역시 곽상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반면 林希逸의 해석은 莊子의 道를 ‘萬物의 主宰者’로 보는 입장이다. 宣穎 또한 林希逸의 견해를 따라 ‘만물의 변화를 주재하는 것[主宰物化]’으로 풀이하였고, 曹礎基, 池田知久, 方勇‧陸永品 등이 이런 입장이다. 그러나 《장자》의 일부 내용 중에 비록 道를 主宰者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역자는 장자 사상 전체를 그런 맥락에 국한시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앞의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21 守其宗也 : 근본인 도를 지킴. 여기서 宗은 근원, 곧 道를 가리킨다. 宗(道)의 내용 역시 앞의 ‘命物之化’를 해석하는 두 가지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莊子의 道를 만물의 운동변화 자체로 이해하는 郭象의 경우는 “지극히 마땅한 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不離至當之極].”로 풀이하지만, 道를 만물의 주재자로 이해하는 林雲銘의 경우는 “그 주재를 지킨다[而守其主宰].”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역주22 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 다른 것을 기준으로 보면 간과 쓸개도 〈그 차이가〉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다. 王先謙은 “하나의 몸에 있는데 세속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본다[本一身 而世俗異視之].”고 풀이했는데 簡易 直截하다.
역주23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 : 같은 것을 기준으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임. 王先謙은 “모두 천지 사이의 一物이다[皆天地間一物].”라고 풀이했다. 池田知久는 이 구절에서 인식의 주관성에 대한 강조로 말미암아 萬物齊同의 철학이 後退하여 거의 없어져 가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 사상은 뒤의 〈天下〉편에서 惠施가 “만물은 物로서는 모두 같고 개개의 一物로서는 모두 다르다. 이러한 큰 규모의 同異의 관계를 大同異라 한다[萬物畢同畢異 此之謂大同異].”고 한 명제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物視其所一’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萬物齊同의 입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주24 不知耳目之所宜 : 耳目 등의 감각기관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을 알지 못함. 곧 耳目 등의 감각기관이 저마다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을 초월한다는 뜻. 不知는 의식하지 않고 뛰어넘는다는 뜻. 곧 구애되지 않고 초월한다는 의미이다. 耳目之所宜는 ‘耳目 등의 감각기관에 의해 각기 다르게 인식되는 差別的 知識으로 각기 다른 소리, 다른 형태 등으로 파악되는 物의 差別的 속성’을 가리키며, 나아가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美醜好惡의 감정’ 또는 ‘감각을 매개로 한 일체의 주관적 價値判斷’을 가리킨다.
역주25 遊心乎德之和 : 마음을 덕의 융화 속에서 노닐게 함. 곧 일체의 차별적 규정을 넘어서 萬物齊同의 世界 속에서 노닌다는 뜻. 德之和는 德의 調和, 德의 渾然한 融和의 경지로 앞의 감각적 차별지와 상대되는 만물의 동일성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의미한다.
역주26 物視其所一 : 만물을 동일한 견지에서 바라봄. 일체의 차별상을 넘어서 萬物을 萬物齊同의 경지에서 본다는 뜻. 物視는 視物의 倒置形[物視猶視物也](成玄英).
역주27 不見其所喪 : 발 하나 잃어버린 것을 보지 않음. 곧 절름발이인 왕태는 자신이 발 하나 잃어버린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다는 뜻. 不見 또한 앞의 ‘不知’와 마찬가지로 초월하다, 뛰어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所喪은 잃어버린 것 곧 왕태가 잃어버린 발 하나.
역주28 猶遺土也 : 흙덩어리 하나 내다 버리는 것과 같음. 土는 土芥로 흙덩어리나 지푸라기 등의 하찮은 물건을 비유.
역주29 彼爲己 : 그는 자기를 위해 공부를 한 것임. 郭象, 成玄英, 林希逸 등은 彼爲己와 以其知를 연결하여 ‘彼爲己以其知 得其心以其心 得其常心’으로 絶句하였으나, 여기서는 兪樾이 彼爲己를 독립구로 간주하고 ‘以其知 得其心 以其心 得其常心’을 彼爲己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 견해를 따라 번역했다. 褚伯秀, 呂惠卿 등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또 成玄英은 爲를 수양하다[修]는 뜻으로 보았지만 이에 따르지 않고, 朱得之가 《莊子通義》에서 《論語》 〈憲問〉편의 “옛날 학자들은 자기를 위해 공부했는데, 요즈음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공부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는 내용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 “彼爲己란 그 학문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데도 남들이 그를 존경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말한 것이다[彼爲己 言其學非爲人 而人乃尊之 何也].”라고 풀이한 견해를 따랐다. 池田知久의 補注를 참조. 그런데 儒家의 爲己와 道家의 爲己를 구별하고자 한다면 유가의 爲己는 倫理實踐의 주체로서 自主自律의 나[己]를 확립하는 것이고 도가의 爲己는 道와 一體[己]가 되는 것[爲]이라고 할 수 있다.
역주30 以其知得其心 以其心得其常心 : 자기의 知를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터득하고, 자기의 마음을 가지고 변하지 않는 마음[常心]을 터득함. 陳鼓應은 “자신의 지혜를 써서 마음을 깨닫고 다시 이 마음에 근거해서 상심으로 돌아간다[用他的智慧去領悟心 再根據這個心返回到常心].”고 풀이했다. 劉武는 常心을 “항상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앞에 나온 ‘죽음과 삶에도 동요되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리킨다[常恒不變之心 指上死生不變 天地覆墜不遺之心也].”고 풀이했고, 郭嵩燾는 ‘거짓이 없는 본체[無妄之本體]’라고 했는데 이 견해를 따른다. 知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分別智(池田知久).
역주31 物何爲最之哉 : 다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에게 몰려듭니까. 物은 人物로 다른 사람을 뜻한다(林希逸). 最는 聚로 모인다는 뜻(司馬彪).
역주32 唯止能止衆止 : 오직 멈추어 있는 존재만이 멈춤을 구하는 여러 사물을 멈출 수 있음. 자신의 모습(정지된 모습)을 비추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멈추어 있는 물에 모이는 것처럼, 자신의 참된 모습(멈추어 있는 모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멈추어 있는 사람에게 모여든다는 뜻. 宣穎은 “참으로 멈추어 있기 때문에 멈춤을 구하는 여러 사람들을 멈추게 하여 그들이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다[惟眞止 故能止衆之求止者而不他去也].”고 풀이했다. 唯止의 止는 앞에 나온 죽음과 삶에도 동요되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死生不變 天地覆墜不遺之心], 곧 常心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역주33 受命於地 : 땅에서 생명을 받은 것.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식물 따위를 지칭. 郭象은, 受命於地와 受命於天을 각각 ‘아래로 머리를 둔 것[下首]’과 ‘위로 머리를 둔 것[上首]’으로 풀이했는데, 成玄英은 곽상의 주석을 다시 “사람의 머리는 위에 있기 때문에 위를 자르면 죽고, 나무의 머리는 아래에 있기 때문에 아래를 베어내면 죽는다. 그 때문에 사람을 上首라고 부르고 나무를 下首라고 부른 것이다[人頭在上 去上則死 木頭在下 去下則死 是以 呼人爲上首 呼木爲下首].”라고 풀이했다.
역주34 唯松柏 獨也〈正〉 在冬夏靑靑 受命於天 唯〈堯〉舜 獨也正 〈在萬物之首〉 : 正, 堯, 在萬物之首의 일곱 글자는 陳景元의 《闕誤》에 인용된 張君房 본에 의거하여 보충했는데, 松柏과 堯舜, 두 구절의 獨也正, 在冬夏靑靑과 在萬物之首의 대구가 명확하기 때문에 이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韓元震은 “소나무나 잣나무가 겨울과 여름에 걸쳐 변하지 않음을 인용하여 성인이 생사에 대해 변하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引松柏之冬夏不變 以證聖人之死生不變].”라고 풀이했다.
역주35 在冬夏靑靑 : 사철 푸르디 푸름. 곧 겨울과 여름을 가리지 않고 사철 푸르다는 뜻. 冬夏는 春秋와 마찬가지로 일년 전체를 의미한다. 在는 於와 같다.
역주36 受命於天 : 하늘에서 생명을 받은 것. 여기서는 사람을 지칭한다(郭象, 成玄英).
역주37 幸能正生 以正衆生 : 다행히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 중생들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었음. 林希逸은 “자기가 타고난 것을 바로 세워 중인이 타고난 것을 바르게 함이다. 여기의 生자는 바로 性자이다[能正其所生 以正衆人之所生 此生字只是性字].”고 풀이하였고, 宣穎은 “순임금이 자기의 性을 바르게 세우자 만물의 性이 저절로 모두 바르게 되었다[舜能正己之性 而物性自皆受正].”고 풀이하여 生을 性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性자를 生자로 풀이하는 경우는 많지만, 生자를 性자로 풀이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을 뿐만 아니라, 후세에 성립된 성리학의 개념어를 가지고 이 부분을 해석하는 것은 혼동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따르지는 않았다. 여기의 生은 앞의 ‘受命於地’, ‘受命於天’의 命과 호응하는 글자이므로 본래 글자 그대로 생명의 뜻으로 보고 삶으로 번역하였다.
역주38 保始之徵 : 始源의 道를 보존하고 있다는 徵驗. 곧 사람이 시원의 도를 보존하고 있다는 증거. 始는 시작, 시원의 뜻으로 곧 시원의 道를 지칭. 徵은 징험, 증거. 韓元震은 “保始는 바로 윗글의 守宗을 일컬음이다[保始 卽上文守宗之謂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9 不懼之實 : 두려워하지 않는 실제. 實은 ‘保始之徵’의 徵과 상대되는 말로 실제의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赤塚忠과 池田知久는 實을 충실로 보아 不懼之實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충실로 보고 있다.
역주40 雄入於九軍 : 적의 대군 속으로 용감하게 쳐들어감. 雄은 용감하게 라는 의미의 부사. 九軍은 적의 10만 대군. 一軍은 12,500명. 成玄英은 崔譔, 李頤 등의 주석을 따라, “天子는 六軍을 거느리고 諸侯는 三軍을 거느리기 때문에 九軍이라 했다[天子六軍 諸侯三軍 故九軍也].”고 풀이했고, 簡文帝는 《孫子》 〈形〉편의 ‘善守者 藏於九地之下 善攻者 動於九天之上’이라 한 구절에 근거하여, “병서에서 이렇게 함으로써 九天을 공격하고 九地를 거두어들인다고 했기 때문에 九軍이라 했다[兵書以攻九天 收九地 故謂之九軍].”고 풀이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林希逸이 많은 군사[衆兵]라고 한 간명한 해설을 따랐다.
역주41 將求名而能自要者而猶若是 : 명성을 바라고 스스로에게 요구할 줄 아는 자(집착하는 자)도 오히려 이와 같음. 宣穎은 “용감하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 반드시 성취할 것을 기약하는 자조차도 生死를 잊는다[將沽勇名 而能期於必成者 尙忘生死].”고 풀이했다.
역주42 官天地 : 천지에 관직을 줌. 천지를 마음대로 부림. 成玄英은 “兩儀를 主宰하는 것을 官天地라고 한다[綱維二儀曰官天地].”고 풀이했다.
역주43 府萬物 : 만물을 어루만짐. 만물을 포용함. 府는 창고 속에 넣어 둔다는 의미. 成玄英은 “만물을 감싸 안는다[苞藏萬物].’고 풀이했고, 羅勉道는 “만물을 나의 창고 속 물건으로 삼는다[萬物爲吾府藏之物也].”고 풀이했다.
역주44 直寓六骸(해) : 다만 육체를 잠깐 머물다 가는 거처로 여김. 宣穎은 “六骸를 내가 잠시 머무는 거처로 여긴다[以六骸爲吾寄寓].”고 풀이했다. 直은 다만. 寓는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 郭象은 逆旅(여행자가 머무는 객사, 여관)라고 풀이했다. 成玄英은 六骸를 몸체와 머리, 사지[身首四肢]로 풀이했는데 여기서는 一身, 곧 육체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45 象耳目 : 耳目의 감각을 허상으로 여김. 곧 耳目 등의 감각기관은 모습만 본뜨는 허상으로 여긴다는 뜻. 宣穎은 “이목을 나의 印象으로 여긴다[以耳目爲吾迹象].”고 풀이했다. 赤塚忠은 《管子》 〈白心〉편과 《韓非子》 〈解老〉편에 근거하여 ‘象은 인상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귀나 눈의 器官에게 감각을 영위하게 한다는 뜻으로 보았다.
역주46 一知之所知 :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대상을 모두 하나로 여김. 知之所知는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것, 곧 차별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대상을 의미하며, 一은 그 대상을 모두 한 가지로 여긴다는 뜻. 결국 일체의 차별을 극복하고 萬物齊同의 경지에서 대상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林雲銘은 앞의 ‘物視其所一 而不見其所喪’과 같은 의미라고 풀이했다.
역주47 心未嘗死者乎 : 마음이 한번도 사멸된 적이 없는 사람이겠는가. 정신적으로 마음이 죽는 일이 없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郭象은 이 부분에 대하여 “마음이 死生과 함께 변화하니, 어느 때이거나 生이 아닌 경우가 없다. 이것이 마음이 아직까지 한번도 죽지 않은 것이다[心與死生順 則無時而非生 此心之未嘗死也].”라고 설명하였고, 林雲銘은 “죽음이나 삶에도 변하지 않고 천지의 붕괴에도 추락하지 않는다[死生不變 覆墜不遺].”라 하고 宣穎은 “이와 같이 그 常心을 터득한 사람이 어찌 오히려 死生에 의해서 변화되겠는가[得其常心如此人 豈猶爲死生所變乎].”라 했다.
역주48 擇日而登假(하) : 날짜를 가려서 아득한 곳에 올라갈 것임. 곧 언젠가는 도의 경지에 올라갈 것이라는 뜻으로, 왕태의 죽음을 도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登假는 昇遐와 같다. 林希逸, 羅勉道, 郭慶藩 등은 《說文解字》의 풀이에 근거하여, 假를 격(格)으로 읽고 이른다[至]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宣穎, 奚侗, 朱桂曜, 聞一多, 王叔岷 등은 《爾雅》에 근거하여, 假를 遐 또는 霞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는 뒤의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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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장(1)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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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장(2)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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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1장(3)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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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1장(4)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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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장(5) 478

장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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