醉時歌
杜甫
贈廣文舘學士鄭虔이라
諸公袞袞登臺省
하나廣文先生官獨冷
이요甲第紛紛厭粱肉
이나廣文先生飯不足
이라先生有道出羲皇
하고先生有才過屈宋
이라德尊一代常坎軻
하니名垂萬古知何用
고杜陵野老
注+杜陵野老 : 漢宣帝陵이 在京兆하니 子美本杜陵人이라 故自稱杜陵野客이라하니라人更嗤
하니被褐短窄鬚如絲
라日糴太倉五升米
하고時赴鄭老
라注+時赴鄭老同襟期 : 鄭老는 指虔也라得錢卽相覓
하여沽酒不復疑
라忘形到爾汝
하니라淸夜沈沈動春酌
하니燈前細雨簷花落
이라但覺高歌有鬼神
하니焉知餓死塡溝壑
고相如逸才親滌器요注+相如逸才親滌器 : 司馬傳에 文君이 奔相如하여 俱之臨邛하여 盡賣車騎하여 買酒舍하고 乃令文君當壚하고 相如身著犢鼻褌하여 滌器於市하니라子雲識字終投閣
注+子雲識字終投閣 : 揚雄傳에 王莽時에 甄豊이 爲上公이러니 莽이 旣以符命自立하다 卽位之後에 誅豊父子하고 投劉棻四裔하며 辭所連及에 便取不請하다 時에 雄이 校書天祿閣上이러니 治獄使者來하여 欲收雄한대 雄이 恐하여 乃從閣上自投下하여 幾死하다 棻이 嘗從雄學作奇字라 京師爲之語曰 唯寂寞自投閣이라하니라 이라하니石田茅屋荒蒼苔
라儒術於我何有哉
오孔丘盜蹠俱塵埃
라不須聞此意慘慘
이니生前相遇且銜盃
라
취했을 때를 읊은 노래
두보
廣文舘 學士인 鄭虔에게 준 것이다.
諸公들 연이어 臺省에 오르나
廣文先生은 벼슬자리 홀로 寒微하고
훌륭한 저택들 분분히 膏粱珍味 배부르나
광문선생은 밥도 부족하다오.
선생의 도는 伏羲氏에게서 나왔고
선생의 재주는 屈原과 宋玉보다 뛰어나네.
德이 한 세상에 높으나 항상 不遇하니
名聲이 萬古에 전한들 어디에 쓸지 알겠는가.
杜陵의 촌늙은이 사람들이 더욱 비웃으니
注+漢나라 宣帝의 陵이 京兆에 있었는데, 杜子美는 본래 두릉 사람이었으므로 杜陵野客이라고 자칭한 것이다.걸친 갈옷 짧고 좁으며 귀밑머리는 실처럼 희다오.
날마다 太倉의 다섯 되 쌀 사오고
때로는 鄭氏 노인 찾아가 흉금을 함께 하며
注+鄭老는 鄭虔을 가리킨 것이다.돈 얻으면 곧 서로 찾아가
술 받아 마시며 다시 의심하지 않네.
形體를 잊어 너나하는 사이 되니
통쾌하게 술 마심 참으로 나의 스승이라오.
맑은 밤 깊어가는데 봄 술잔 오가니
등잔 앞의 가랑비에 추녀에서는 꽃잎이 떨어지네.
다만 소리 높은 노래에 귀신이 도와주는 듯하니
어찌 굶주려 죽어 골짜기에 버려짐 알겠는가.
相如는 재주 뛰어났으나 친히 그릇 씻었고
注+《漢書》〈司馬相如傳〉에 卓文君이 司馬相如에게 달려와 함께 臨邛에 가서 수레와 말을 모두 팔아서 술집을 산 다음, 마침내 탁문군으로 하여금 술 파는 자리를 맡게 하고 相如는 몸에 쇠코잠방이를 걸치고서 시장에서 그릇을 씻었다.子雲은 글자 알았지만 끝내 天祿閣에서 투신하였네.
注+《漢書》〈揚雄傳〉에 王莽의 때에 甄豊이 上公이 되었는데, 왕망은 이미 符命에 따라 스스로 즉위하였다. 즉위한 뒤에 견풍 父子를 죽이고 劉棻을 사방의 먼곳으로 유배 보냈으며 獄辭에 연좌된 사람은 모두 잡아들이면서 奏請할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이때 揚雄이 天祿閣 위에서 책을 校正하고 있었는데 옥사를 다스리는 사자가 와서 양웅을 체포하려 하자, 양웅은 두려워서 마침내 각 위에서 스스로 투신하여 거의 죽게 되었다. 유분은 일찍이 양웅에게 기이한 글자 만드는 것을 배운 바 있었다. 경사 지방에서 말하기를 “적막하게 閣에서 스스로 투신하였다.” 하였다.선생은 일찍 歸去來를 읊어야 하니
돌밭과 초가집 푸른 이끼 황폐하여라.
儒學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 있는가
孔子와 盜蹠 모두 흙먼지가 되고 말았다오.
굳이 이 말 듣고 마음에 서글퍼할 것 없으니
생전에 서로 만나 우선 술이나 마셔보세.
賞析이 시는《杜少陵集》3권에 실려 있는 바, 취했을 때의 기분을 읊은 노래이다. 廣文館博士 鄭虔에게 준 시로 天寶 13년(754) 봄에 쓰여졌다. 정건은 당시의 유명한 학자로 참소를 받아 10년간 멀리 귀양갔다가 장안으로 돌아와 광문관박사가 되었다. 그는 성품이 초탈하고 호방하여 술을 좋아하였으며 두보와 친분이 깊었다. 이에 이 시를 지어 재주를 품었으나 때를 못만나 불우한 그의 처지를 읊었다.
權韠〈1569(선조 2)-1612(광해군 4)〉의《石洲集》7권에 두보의〈취시가〉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꿈에 작은 책자 하나를 얻으니 바로 金德齡의 詩集이었다. 그중 첫편이〈醉時歌〉였는데 여러 번 반복하여 읽고서야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내용에 취시가여, 이 곡조 아는 이 없어라. 나는 꽃과 달에 취하려 하지 않으며 공훈도 세우려 하지 않노라. 공훈을 세움도 뜬구름이고 꽃과 달에 취함도 뜬구름이네. 취시가여,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어라. 단지 장검 차고 明君을 받들었으면 하네.[醉時歌此曲無人聞 我不要醉花月 我不要樹功勳 樹功勳也是浮雲 醉花月也是浮雲 醉時歌無人知我心 只願長劍奉明君]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 서글프게 여겨 다음의 시 한 수를 읊는다.
장군은 예전에 병기를 잡았는데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랴. 지하의 영령 끝없는 恨 취시가 한 곡조에 역력하네.[將軍昔日把金戈 壯志中摧奈命何 地下英靈無限恨 分明一曲醉時歌]”
金德齡〈1567(명종 22)-1596(선조 29)〉은 용맹이 뛰어나 임진왜란에 많은 왜적들을 물리쳤으나 반역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인물이다. 시의 장군은 바로 김덕령을 가리킨 것이다.
이외에도 蔡彭胤〈1669(현종 10)-1731(영조 7)〉의《希菴集》6권에 이 시에 차운한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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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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