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나라 황제 여색 중히 여겨 傾國之色 생각하였으나
注+漢나라 이연년의 노래에 “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니 천자가 처음에는 그녀를 몰랐네. 한 번 웃으면 남의 城을 기울게 하고 두 번 웃으면 남의 나라를 기울게 하네. 성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기울게 함을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가인은 두 번 다시 얻기 어렵다오.” 하였다.宇內를 다스린 지 여러 해에 구하지 못하였네.
楊氏 집안에 딸이 막 장성하였는데
깊은 閨中에서 자라 아무도 알지 못하였네.
하늘이 낸 고운 資質 스스로 버리기 어려워
하루 아침에 뽑혀 君王의 곁에 있었다오.
注+開元 11년(723)에 楊貴妃가 壽邸로 시집와 壽王의 妃가 되었는데, 뒤에 불러 女官을 삼고 호를 太眞이라 하였으며, 다시 수왕을 위하여 韋昭訓의 딸에게 장가들게 하였다.머리 돌려 한 번 웃으면 온갖 아름다움 피어나니
六宮의 곱게 단장한 여인들 안색을 잃었다네.
봄날씨 차가울 제 華淸池에 목욕하게 하니
온천 물 매끄러워 엉긴 기름 같은 살결 씻었다오.
시녀가 부축하여 일으키는데 가녀려 힘이 없으니
처음 새로이 은택을 입던 때라오.
구름같은 머리와 꽃같은 얼굴에 金步搖 꽂고
芙蓉帳 따뜻한데 봄 밤을 지내었네.
봄 밤 너무 짧아 해가 높이 떠야 일어나니
이로부터 군왕은 일찍 조회하지 않았다오.
총애를 받아 잔치에 모시느라 한가한 때 없었으니
봄이면 봄 유람 따라가고 밤이면 밤을 독점하였네.
後宮에 아름다운 여자 삼천 명이었으나
삼천 명의 총애 한 몸에 있었다오.
金屋에서 단장하고 아리따이 밤에 모시고
玉樓에서 잔치 파함에 취하여 봄처럼 화하였네.
자매와 형제들 모두 땅을 떼어 封侯되니
注+楊貴妃의 사촌 오라비인 양국충이 公에 봉해지고 여자 형제들은 國夫人에 봉해지니, 호를 韓國ㆍ虢國ㆍ秦國 세 부인이라 하였다.광채가 門戶에 생겨남 부러워하였네.
마침내 천하의 부모들 마음으로 하여금
아들 낳는 것 중하지 않고 딸 낳는 것 중하게 하였다오.
驪山의 華淸宮 높은 곳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신선의 음악 바람에 날려 곳곳마다 들렸네.
고은 노래와 하늘거리는 춤 관현악 소리에 엉기니
하루 종일 보아도 君王은 부족하게 여겼다오.
漁陽의 북소리 땅을 진동하며 몰려오니
놀라 霓裳羽衣曲을 파하였네.
九重의 城闕에 연기와 먼지 일어나니
千乘과 萬騎 서남으로 피난 갔네.
翠羽로 장식한 깃발 흔들흔들 가다 다시 멈추니
서쪽으로 도성문 백여 리를 나갔다오.
六軍이 출발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어
아름다운 蛾眉의 여인 말 앞에서 죽었네.
꽃비녀 땅에 버려져도 거두는 사람 없으니
翠翹와 金雀과 玉搔頭도 함께 버려졌다오.
注+翠翹와 金雀과 玉搔頭는 모두 부인의 머리 장식이다.君王은 얼굴 가리고 구원할 수 없어
머리 돌림에 피와 눈물 뒤섞여 흘렀다오.
누런 먼지 자욱하고 바람 쓸쓸히 부니
구름 사이의 棧道 구불구불 劍閣에 올랐네.
峨嵋山 아래에 다니는 사람 적으니
깃발도 광채가 없으며 햇빛도 희미하였네.
蜀江 물은 푸르고 蜀山도 푸른데
聖主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그리워하는 情이라오.
行宮에서 달 보니 달빛에 마음 슬퍼지고
밤비에 방울소리 들리니 애간장 끊어지네.
하늘이 돌고 땅이 돌아 龍馭가 돌아오니
이곳에 이르러 머뭇거리며 떠나가지 못하였네.
馬嵬坡 아래 진흙 속에
玉顔은 볼 수 없고 부질없이 죽은 곳만 남았다오.
군주와 신하 서로 돌아보고 눈물 흘려 모두 옷 적시니
동쪽으로 도성문 바라보고 말 가는 대로 돌아왔네.
돌아오니 못과 동산은 모두 예전 그대로라
太液池엔 연꽃 피었고 未央宮엔 버들가지 드리웠네.
부용은 미인의 얼굴 같고 버들은 눈썹 같으니
이를 대함에 어찌 눈물 떨구지 않겠는가.
봄 바람에 桃李花 피는 밤이요
가을비에 오동잎 떨어질 때라오.
西宮과 南苑에 가을풀 많으니
붉은 낙엽 계단에 가득해도 쓸지 않았네.
梨園의 弟子들 백발이 새롭고
椒房의 阿監은 청춘의 모습 늙었다오.
저녁 궁전에 반딧불 날자 그리움에 서글퍼지니
외로운 등불 심지 다 돋우고 잠 못 이루었네.
더딘 更鼓 소리는 처음으로 긴 밤을 느끼고
반짝이는 星河는 날이 새고자 하누나.
鴛鴦의 기와 차가운데 서리꽃 짙으니
翡翠 이불 차가운데 누구와 함께 잘까.
아득히 사별함 한 해가 지났으나
魂魄은 일찍이 꿈속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오.
임공의 道士인 鴻都客은
정신으로 혼백을 불러온다 하네.
군왕의 전전하는 그리움 감동시키기 위해
마침내 方士로 하여금 은근히 찾게 하였네.
바람을 밀치고 기운을 타고 번개같이 달리며
하늘에 오르고 땅속에 들어가 두루 찾았다오.
위로 푸른 하늘 다하고 아래로 黃泉에 이르렀으나
두 곳 아득하여 모두 볼 수 없었네.
문득 들으니 海上에 신선이 사는 산 있는데
이 산은 허무하고 까마득한 사이에 있다 하네.
누각과 궁전 영롱하고 오색 구름 일어나니
그 속에 아름다운 선녀들 많다네.
그 중에 한 사람 있는데 字가 玉眞이니
注+옥진은 바로 楊貴妃이다.백설 같은 피부에 꽃 같은 모습 거의 비슷하였다오.
금대궐 서쪽 행랑의 玉門 두드리고
다시 小玉으로 하여금 雙成에게 전달하게 하였네.
注+소옥과 쌍성은 서왕모의 두 시녀이다.漢나라 天子의 使臣이 왔단 말 듣고는
九華帳 속에 꿈꾸던 魂이 놀랐다네.
옷을 잡고 베개 밀치고 일어나 배회하니
진주로 꾸민 발과 은병풍이 따라 열리네.
구름 같은 머리 반쯤 기움 막 잠에서 깨어서이니
화관 정돈하지 못하고 당 아래로 내려왔네.
바람이 신선의 소매에 불어 표표히 날리니
흡사 霓裳羽衣曲에 따라 춤추는 듯하였다오.
옥 같은 용모 적막하고 눈물 줄줄 흘리니
배꽃 한 가지 봄비 머금은 듯하여라.
情을 머금고 응시하고 군왕께 사례하기를
한 번 작별함에 음성과 용모 모두 아득하니
昭陽殿 안에 은혜와 사랑 끊기고
蓬萊宮 가운데에 세월이 오래되었습니다.
머리 돌려 인간이 사는 곳 내려다보니
長安은 보이지 않고 먼지와 안개만 보였습니다.
오직 옛물건으로 깊은 情 표하오니
자개상자와 금비녀 보내드리옵니다.
비녀는 한 가락 상자는 한 쪽을 남기니
금비녀는 황금 갈라지고 상자는 자개 떨어졌습니다.
다만 마음이 금비녀와 자개처럼 견고하다면
天上과 人間에서 마땅히 서로 만나볼 것입니다.
작별을 당하여 은근히 거듭 말을 전하니
맹세하는 말 가운데에 두 마음만이 서로 안다네.
七月七日 長生殿에
한밤중 아무도 없는데 귓속말 하였다오.
注+천보 10년(751)에 명황이 楊貴妃의 어깨에 기대어 하늘을 우러러 牽牛와 織女의 일에 감동하고 은밀히 서로 마음속에 맹세하여 영원토록 맺어져 부부가 되기를 원하였다.하늘에 있으면 比翼鳥가 되기 원하고
땅에 있으면 連理枝가 되기 원하였다오.
하늘과 땅은 장구하나 다할 때 있어도
이 恨은 면면이 이어져 끊길 날 없으리라.
이 시는《白香山集》12권에 실려 있는 바, 唐 玄宗과 楊貴妃의 사랑을 詩化한 것으로, 白居易의 長篇詩 중〈琵琶行〉과 함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바, 서정성이 농후한 敍事詩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唐宋詩醇》에 “유사 이래로 女禍가 唐나라보다 심한 적이 없었다. 明皇이 卽位하였으나 覆轍이 멀리 있지 않았다. 開元 연간에는 마음을 다하여 어느 정도 太平을 이루었으나, 天寶 연간 이후로는 마음이 여색에 빠져 太眞(楊貴妃)을 은밀히 받아들여 新臺의 비난을 받았다. 艶妻가 禍端을 일으키기를 일삼아 졸지에 播遷하였는데, 宗社를 再建한 것은 요행이었다. 姚崇과 宋璟 같은 賢臣들은 그를 보좌하기에 부족하였고 일개 太眞은 그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였다. …… 白居易의 詩는 특히 묘하여 내용과 형식이 相生하며 沈鬱하고 哀艶한 가운데에 諷刺를 갖추었다. ‘漢皇重色思傾國’ ‘從此君王不早朝’ ‘君王掩面救不得’은 모두 은미한 표현이며, ‘養在深閨人未識’은 尊者를 위해 諱한 것이다. 전체 내용은 보통 4段으로 나눈다. ‘漢皇重色思傾國’에서 ‘驚破霓裳羽衣曲’까지는 楊貴妃가 총애를 독차지한 일을 서술한 것인데 돌연 ‘漁陽鼙鼓動地來’ 두 구로 은밀히 속뜻을 나타내었고, ‘九重城闕煙塵生’에서 ‘夜雨聞鈴腸斷聲’까지는 馬嵬의 일을 서술한 것인데 ‘ 行宮見月傷心色’ 두 구로 은밀히 속뜻을 폈으며, ‘天旋地轉回龍馭’에서 ‘魂魄不曾來入夢’까지는 上皇이 南宮의 옛날을 그리워하는 情을 서술한 것인데, ‘悠悠生死別經年’ 두 구로 역시 은밀히 속뜻을 폈다. ‘臨邛道士鴻都客’에서 끝까지는 方士가 招魂하는 일을 서술하였으며, 마지막 長恨을 點睛으로 하여 詩를 끝맺었다.” 하였다.
위의〈新臺〉는《詩經》〈邶風〉의 篇名으로 宣姜을 아내로 맞이한 宣公을 비판한 내용이다. 春秋時代 衛나라 宣公이 아들 伋을 위해 齊나라 公主를 맞이해 오게 하였는데, 그녀의 자태가 빼어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아내로 삼으니, 이 여자가 바로 宣姜이다. 玄宗 역시 아들인 壽王을 위해 양귀비를 맞이해 오게 하였는데,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며느리감을 아내로 삼았으므로 新臺의 詩를 인용하여 비유한 것이다.
唐 玄宗과 楊貴妃의 사랑을 읊은 것으로는 이외에도 元稹의〈連昌宮詞〉, 陳鴻의〈長恨歌傳〉등 여러 편이 있으나 白居易의 이 시가 단연 頭角을 나타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