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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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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前行
唐庚(子西)
大觀四年 張天覺 拜相이러니 是夕 彗星沒하고 久旱而雨하니라
內前車馬撥不開하니
文德殿下
紫微舍人拜右相하니注+紫微舍人拜右相 : 唐開元中 改中書省爲紫微省하니 張天覺 自中書舍人爲相이라
押赴文昌臺注+文昌臺 : 唐則天 改尙書省爲文昌臺
昨夜光照牖러니
是夕鋒芒如禿箒
明朝化作甘雨來하니
官家注+官家 : 五帝 官天下하고 三王 家天下하니 兼五三之德이라 故曰官家喜得調元手
周公禮樂未制作인댄
致身姚宋亦不惡이라注+致身姚宋亦不惡 : 通鑑 唐開元間 姚宋 相繼爲相하니 姚崇 善應變成務하고 宋璟 善守成持正이라 唐世賢相 前稱房杜하고 後稱姚宋焉이라
我聞二公拜相年
民間斗米三四錢이라注+民間斗米三四錢 : 唐貞觀四年 米斗三錢하고 外戶不閉하니라


皇宮 앞을 읊은 노래
당경(자서)
大觀 4년(1110)에 張天覺이 정승에 임명되었는데, 이날 저녁 혜성이 없어지고 오래 가물다가 비가 내렸다.
大內 앞에 수레와 말 밀쳐 낼 수 없을 정도로 많더니
文德殿 아래에는 麻紙에 쓴 詔勅 받들고 돌아가네.
紫微省의 舍人 右相에 임명되니注+唐나라 개원 연간에 中書省을 고쳐 紫微省이라 하였는데, 장천각이 중서사인으로 있다가 정승이 되었다.
中使는 조칙 받들고 文昌臺注+唐나라 則天武后가 상서성을 고쳐 문창대라 하였다.로 달려가네.
旄頭가 어젯밤엔 빛나 창문에 비치더니
오늘밤엔 칼끝 같은 별빛 어두워 몽당비처럼 되었네.
다음날 아침에는 날씨 변하여 단비 내리니
官家注+五帝는 천하를 관청으로 여기고 三王은 천하를 집으로 여겼으니, 오제와 삼왕의 德을 겸하였으므로 황제를 관가라 한 것이다.는 調元의 솜씨 얻음 기뻐하신다오.
周公처럼 禮樂 제작하지 못할진댄
姚崇과 宋璟처럼 몸 바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注+《通鑑》에 “唐나라 開元年間에 姚崇과 宋璟이 서로 이어 정승이 되니, 요숭은 변화에 대응하여 일을 이루기를 잘하였고 송경은 守成하여 正道를 지키기를 잘하였다. 당나라의 어진 재상으로 앞에서는 房玄齡과 杜如晦를 칭하였고 뒤에서는 요숭과 송경을 칭하였다.” 하였다.
내 들으니 두 공이 정승에 임명되던 해에
민간에 쌀 한 말 三四錢이었다오.注+唐나라 貞觀 4년(630)에 풍년이 들어 곡식이 흔해서 쌀 한 말 값이 3전이었고 바깥문을 닫지 않았다.
賞析
이 시는 張商英(字 天覺)이 정승이 된 것을 축하하여 지은 것이다. 첫구의 두 글자를 취하여 제목으로 삼았는데, 內는 大內로 大內의 전각 앞에서 大臣의 직책에 임명된 일을 서술한 것이다.《通鑑》에 “宋 徽宗 大觀 4년(1110) 6월에 張商英을 尙書右僕射에 임명하였다. 당시 蔡京이 오랫동안 國權을 도둑질하여 안팎에서 원망하고 미워하였다. 황제는 장상영이 반대의견을 내세울 수 있으며 또 어질다고 일컬어지는 것을 보고 人望에 따라 그를 정승으로 임명하였다. 그 무렵 오랫동안 가물고 혜성이 하늘 가운데 뻗쳤는데, 장상영이 기용되자 그날 저녁 혜성이 보이지 않고 다음날 비가 왔다. 황제가 기뻐한 나머지 商霖이란 두 글자를 크게 써서 하사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宣麻 : 唐宋代에는 將相을 임명할 때에 흰 麻紙에 詔書를 써서 公布하였는데, 이를 선마라 한다.
역주2 中使 : 궁중의 使者를 가리킨다.
역주3 旄頭 : 彗星을 이른다.《爾雅》에 “彗星을 攙搶이라 한다.” 하였는데, 머리 부분이 들소꼬리[旄]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彗星을 旄頭라 칭한다. 彗星은 兵亂을 상징하는 별로 이 별의 꼬리가 길게 나타나면 난리가 있을 조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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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전행 771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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