戱作花卿歌
杜甫(子美)
成都猛將有花卿
하니學語小兒知姓名
이라勇如快鶻風火生
하니注+勇如快鶻風火生 : 南史에 曹景宗이 謂所親曰 我昔在鄕里에 騎快馬如龍하여 覺耳後生風하고 鼻尖出火하니 此樂이 使人忘死라하니라見賊唯多身始輕
이라라하니라旣稱絶世無
하니오
장난삼아 지은 花卿의 노래
두보(자미)
成都의 맹장 중에 花卿이란 분 있으니
말 배우는 어린아이도 그의 이름 안다오.
용맹하기 날쌘 매와 같아 바람과 불 일으키며 달리니
注+《南史》에 曹景宗이 친한 사람에게 이르기를 “내가 옛날 향리에 있을 적에 용처럼 잘 달리는 말을 타고 가니, 귀 뒤에서 바람이 나오고 콧구멍에서 불이 나오는 것을 느꼈는 바, 이 즐거움이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을 잊게 한다.” 하였다.적을 많이 보아야 몸이 비로소 가벼워지네.
緜州의 副使인 段子璋이 모반하여 柘黃 옷 입으니
우리 花卿이 소탕하여 당일로 평정하였네.
段子璋의 해골 피로 범벅이 되었는데
손으로 들어 崔大夫에게 던져 주었다오.
李侯가 다시 節度使 되니
사람들은 우리 花卿이 세상에 다시 없는 장수라 말하네.
이미 세상에 다시 없는 인물이라 일컬어지니
天子께서 어찌 불러다가 京都를 지키게 하지 않으실까.
賞析제목에 ‘戱作’이란 말을 쓴 것은 시의 마지막 두 구가 표면적으로는 花卿을 매우 칭찬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花卿은 花敬定으로, 이 시에 나오는 사건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上元 2년(761) 4월 梓州刺史 段子璋이 반란을 일으켜 東川節度使 李奐이 있던 緜州를 습격하여 스스로 梁王이라 칭하고 黃龍이라 改元하였으며 면주를 黃龍府로 개칭하고 百官을 설치하였다. 5월에 成都尹인 崔光遠이 부하 장수 花敬定을 이끌고 단자장을 공격하여 면주를 탈환하고 그를 잡아 목 베었다. 뒤에 화경정이 단자장을 죽이고 東蜀을 크게 약탈하자, 천자는 최광원이 군사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것에 분노하여 그를 파면시켰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화경정의 잘못은 말하지 않고 그가 용감하게 싸워 반란을 평정한 점을 주로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