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謂子路曰 君子而強氣면 而不得其死하고 小人而強氣면 則刑戮荐蓁하나니라
豳詩曰 殆天之未陰雨
하여 徹彼桑土
하여 綢繆牖戶
注+殆는 及也라 徹은 剝也라 桑土는 桑根也라 鴟鴞는 天未雨에 剝取桑根하여 以纏綿其牖戶하니 喩我國家積累之功이 乃難成之苦者也라면 今汝下民
이 或敢侮余
注+今者는 周公時라 言我先王致此大功至艱하니 而下民敢侵侮我周道아 謂管蔡之屬을 不可不遏絶之하여 以存周室者也라아하니라
孔子曰 能治國家之如此면 雖欲侮之라도 豈可得乎아 周自后稷으로 積行累功하여 以有爵土하고
公劉重之以仁하고 及至大王亶甫하여는 敦以德讓하여 其樹根置本이 備豫遠矣라
初에 大王都豳할새 翟人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不得免焉하고 事之以珠玉이라도 不得免焉이라
於是에 屬耆老而告之호대 所欲吾土地라 吾聞之호니 君子不以所養而害人이라하니
二三子何患乎無君이리오하고 遂獨與大姜去之하여 踰梁山하여 邑于岐山之下한대
豳人曰 仁人之君이라 不可失也라하고 從之如歸市焉하니라
天之與周
와 民之去殷
이 久矣
니 若此而不能天下
는 未之有也
어늘 武庚惡能侮
注+武庚은 紂子니 名祿父라 與管叔共爲亂也라리오
鄁詩曰 執轡如組
하니 兩驂如儛
注+驂之以服으로 和調中節이라라하니라 孔子曰 爲此詩者
는 其知政乎
인저
夫爲組者는 總紕於此하면 成文於彼하니 言其動於近하면 行於遠也라
執此法以御民
이면 豈不化乎
리오 竿旄之忠告至矣哉
注+竿旄之詩者는 樂乎善道告人이니 取喩於素絲良馬如組紕之義라라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군자가 혈기가 강하면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소인이 혈기가 강하면
刑戮을 계속해서 받게 되는 법이다.
≪
詩經≫
豳風에
注+지금은 주공이 살던 때이다. 우리 선왕께서 이 큰 공적을 지극히 어렵게 이루었으니 백성들이 감히 우리 주나라의 도를 업신여기겠는가. 管叔과 蔡叔 무리를 막고 끊어서 주나라 왕실을 보존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국가를 다스리기를 이렇게 한다면 비록 업신여기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周나라는
으로부터 훌륭한 행실과 공적을 쌓아
爵位와 국토를 소유하였고,
는 거기에다 인후한 덕이 있었고,
에 이르러서는 덕과 겸양으로 돈독하게 하여 그 세워둔 뿌리가 먼 뒷일까지
豫備할 수 있었다.
당초에 태왕이 豳 땅에 도읍하였을 때에 翟人(狄人)이 침략하자, 그들을 皮幣로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였고 珠玉으로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였다.
이에 耆老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저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토지이다. 내가 듣기로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토지를 가지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음을 근심하는가.’ 하고 마침내 홀로 부인 太姜과 함께 떠나 梁山을 넘어 岐山 아래에 도읍하였다.
그러자 豳 땅 사람들이 ‘어진 군주이다. 놓쳐서는 안 된다.’ 하고 따르기를 시장에 돌아가듯 하였다.
하늘이 주나라를 돕고 민심이 은나라를 떠난 지가 오래되었으니, 이러한데도 천하를 다스리지 못한 경우는 있지 않았다. 그러니
武庚이 어찌 업신여길 수 있었겠는가.
注+武庚은 주왕의 아들이니 이름은 祿父이다. 관숙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注+驂馬는 服馬와 조화롭게 잘 어울려야 하는 것이다.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 시를 지은 자는 정치에 대해 잘 알 것이다.
대체로 실끈을 만드는 것은 손에서 짜면 저기에 무늬가 이루어지니, 가까운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면 먼 곳에서 행해지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방법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면 어찌 교화되지 않겠는가.
에서
忠告한 것이 지극하다.”
注+〈竿旄〉라는 시는 선한 도를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을 즐거워한 것이니,